어린 시절의 친구들과 송년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같이 스타워즈 에피소드 8편에 해당하는 <라스트 제다이>를 봤다. 지금으로부터 40년전 조지 루카스의 우주와 세계에 대한 상상과 기획으로 시작된 이 장대한 서사의 환타지는 애초에 9부작이라는 설정을 두었지만 4,5,6편을 먼저 시작하고 후대에 와서 1,2,3편을 만든 후 끝나는가 했지만 이 시리즈를 그만 두기엔 너무 아까웠는지 7편인 <깨어난 포스>에 이어 8편인 <라스트 제다이>가 개봉했다. 모든 시리즈는 과잉을 낳기 마련이다. 헐리우드의 기획은, 특히 상업성이 어느 정도 보장된 것이라면 이 시리즈의 유혹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최소 9편까지는 갈 것으로 보이는 스타워즈는 어쩌면 더 길어져 12편까지 갈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들린다. 스타워즈의 전체 얼개는 지구 문명과는 동떨어진 아주 먼 옛날, 저 멀리 어떤 은하계에 있을지도 모를 (혹은 있었을지도 모를) 존재들과 문명들이 ‘포스(Force)’라는, 원천적 능력과 선악구도를 기본으로 은하계 문명의 패권을 놓고 다투는 설정인데 이는 많은 관객들에게 - 특히 서구인들에게는 - 큰 열광과 호응을 낳았다. 조지 루카스의 기본적인 이런 설정은 매력적이었지만 막상 영화로 봤을 때는 뛰어난 연출은 아니었고 - 연출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이지만 이를 제외하고 본다면 다른 부분들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 영화가 시리즈의 형식인데다 기본적인 설정의 변주 안에서 뻔하게 흘러가는 부분들이 적지 않은지라 내 취향도 아니었다. 스타워즈는 넓게는 SF의 범주에 넣기는 하지만 사실주의에 가까운 하드 SF의 정반대편에 서 있는, SF라고 보기에도 더한 환타지이기에 드라마적 공감대에서는 멀리 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이들이 보기엔 스타워즈 시리즈가 너무나 만화같아서 공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워즈 시리즈를 아예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스타워즈 시리즈보다 잘난(!) SF 영화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고 조지 루카스가 그려놓은 서사적 세계관의 큰 그림이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재미있게 보면서 공감할 건 공감하고 씹을 건 씹는다^.^는 점에서 친근한 영화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라스트 제다이>는 개인적으로 다소 지루하게 봤던 지난 몇몇 시리즈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재밌게 봤다. 시리즈의 과잉에도 불구하고 시리즈가 진행될 때마다 간혹 매력적인 작품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번의 작품이 그런 듯 하다. 전편인 <깨어난 포스>도 재미있었지만 이번에는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더 볼 것이 있을까 하던 차에 변화와 깊이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진진하게 봤다. 일차적인 재미로 보자면 스타워즈의 특징이기도 한 우주의 전투 장면인데 이는 영화적 기술의 발전에 의해 마치 영화에 직접 들어가서 비행사가 된 것처럼 혹은 게임의 한 장면에 참여하는 것과도 같은 스릴이 넘쳤다. 나아가서는 제다이와 다스베이더로 상징되는 선악구도와 포스를 지닌 자가 모든 것을 지배하리라는 것의 설정에서 벗어나 선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소수의 영웅들이 이끌어 가는 구도에서 흑인, 동양인 등으로 상징되는 여러 시민들이 주인공들이 되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또한 루크 스카이워커를 지나 새로운 제다이로 부상하고 있는 레이가 선악의 경계를 넘어 자신의 다면적인 면을 암시하는 다층의 전개장면은 뛰어난 심리묘사이자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권력은 점점 커질수록 선악의 경계와 유혹은 더 커지는 법이다. 이제 스타워즈도 소수의 절대왕정에서 다수의 민주정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를 현재의 한국사회에 대비하여 본다면 무리일까^.^ 또한 ‘포스가 그대와 함께 하길(May the Force be with you)’이라는 유명한 대사가 영화의 중요한 부분을 말해주지만 이 포스에 대해 <라스트 제다이>는 더 나아간다. 말하자면 이번 편에서 서구의 물질적인 면보다 동양적인 마음의 자세와 수양이 대등하거나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주제를 던진다. 마지막 제다이라고 할만한 루크 스카이워커가 새로운 제다이인 레이를 위해 섬의 수양바위에 앉혀놓고 설교를 할 때 나는 남해 여수 돌산도의 향일암에서 수양을 했던 원효선사의 수양바위와 생김새가 너무 비슷해 깜짝 놀랐다. 또한 루크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공화국의 재건을 위해 불사른 후 어쩌면 성철스님의 입적과도 비슷한 방식으로 스스로 생을 정리한다. <라스트 제다이>는 생각 이상으로 동양의 정서가 짙었다. 스타워즈의 기본적인 설정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질문이기도 하고 문제이자 화두이기도 한 것은 전쟁이다. 인류문명이 시작된 이래 전쟁은 멈춘 적이 없는 듯 하고 1,2차 세계대전을 지나 냉전을 끝내고 큰 전쟁은 없는 시기라고 하지만 크고 작은 내란이나 국지전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지금의 물질문명 속도는 이미 가속이 붙기 시작해서 앞으로의 100년은 이전 100년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물질적으로는 발전된 모습을 보일 듯 하다. 그러나 그때에도 전쟁은 문명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일까.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될 공산이 아직까지는 적지 않아 보인다. 스타워즈의 구도는 선악끼리의 대결이지만 막상 실제의 전쟁은 선악의 경계가 모호하고 권력끼리의 패권을 다투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스타워즈는 아득한 미래의 세계 혹은 과거에 지구문명 이상으로 오래 지속되어 온 은하계 저편 어딘가의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전쟁의 습성만큼은 지금의 문명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전쟁을 바라보는 스타워즈의 시각에 대한 불만은 스타워즈 자체라기 보다는 그것을 역사적으로 치루어 온 인류문명의 시각에 돌려야 할 것이다. 건설적인 파괴가 혹 있을 수는 있겠으나 건설적인 전쟁은 온당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 문명수준이 아직은 여기까지라는 지표에 불과할 뿐일지도 모른다. 고정관념은 종종 새로운 변화와 세계의 전개를 저지한다. 스타워즈가 새로운 시리즈로 계속 성공하려면 변화는 불가피하고 변화가 없다면 시리즈는 멈추는 것이 맞을 것이다. 절대 레전드의 향수를 지닌 스타워즈 팬들에게 여러 이견이 있는 듯 하지만 라이언 존슨 감독은 새로운 시리즈를 위한 변화와 깊이의 전개를 보여주었다. 루크 스카이워커는 영화에서 떠났고 레아 공주는 영화를 촬영하고 세상을 떠났다. 절대 레전드는 사라지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시민들이 문명을 일구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