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란 무엇인가?
서론
우리는 쉽게 목회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목회가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것은 목회 신학 또는 목회 철학을 규정하는 일로서 성경에 대한 많은 연구와 사색을 통해서 결정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목회에 대한 정의를 조금씩 다르게 표현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소천하신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님 같은 분은 목회를 "예수님의 제자를 만드는 일"로 보고 있고, 할렐루야 교회의 김상복 원로목사님은 성도들이 교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성도들 각 사람을 온전하게 세우는 일을 목회의 본질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목회의 본질과 중심 요소들은 일치하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각 교회의 목회자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은사와 재능에 따라 다양한 목회관(牧會觀)으로 사역에 임하고 있다. 그런 다양성 속에서 나름대로의 목회에 대한 정의를 성경속에서와 목회현장속에서 알아보고 앞으로 내가 걸어야할 목회의 길에 적용 할 방법과 나의 올바른 목회의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본론
1. 목회의 정의
1) 사전적 정의
목회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목사 또는 전도사가 행하는 모든 교역자적 행위로서 사목(司牧:천주교 등의 용어) ·교역(敎役) 또는 사역(使役)이라고도 하며, 설교 ·의식의 집행, 교회의 운영 ·관리, 평신도의 지도교육 ·훈련 등의 업무를 가리킨다. 그러나 어떤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는 교리를 신앙문답서에 따라 바르게 가르치고 신앙지식을 체득하도록 지도하는 데 중점을 두며, 또 다른 개혁교회에서는 평신도를 교회의 일원으로서 훈련하고, 교회생활을 바르게 하도록 지도하는 데 중점을 둔다.
"목회(ministry)"란 교역(敎役)으로 번역될 때 말의 불이를 보면 이는 독자적 직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존재에 의해 세워진 종(servant)으로서의 직을 말하며, 이는 주어진 일을 위하여 무엇을 봉사케 함을 뜻한다. 본디 순우리말에는 없던 것이 개신교가 들어와 퍼져 나가면서 생겨나 개신교 안에서 주로 쓰이고 있으며 이는 "칠 목(牧)"과 "모일 회(會)"의 두 한자가 한데 어우러져 된 말로서 "모임을 치는 것"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곧, 사람이 양, 염소, 소, 말 같은 짐승을 먹이고 기르듯이 목회는 교회의 지도자 된 사람이 믿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를 기독교 신앙의 정신을 따라 잘 돌보는 것을 가리킨다.
2) 성경속에서의 정의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1-12) 성경에서는 이처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목사와 교사가 해야 할 일인데 그 과정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즉 가르침을 통함과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즉 행함을 통하여 결과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이라는 말이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의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 5:2-3) 베드로 전서에서는 행위의 주체가 자기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따라하는 하나님이시며, 억지나 강제가 아닌 자원함으로, 그리고 그 결과가 자신의 이득을 위함이 아니어야하며 다스리는 머리가 아닌 섬기는 종의 자세로 양의 무리에게 본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야만 결과적으로 영광의 관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2. 목회 행위와 내용
1) 목회자와 예배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성례전에 참여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자들을 찾으신다(요4:23-24).는 말씀과 십계명 중에서 제1계명부터 제4계명까지의 말씀은 모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라는 명령이다. 목회자는 이 예배 성례전을 집행하며 하나님과 성도의 중보자로서 역할을 다하는 자이며 그 행위를 목회라 한다.
이것은 섬김의 사명으로 감당해야 하며 이 섬김은 그리스도의 행동 강령인 사랑으로 연결되어 이루어질 때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확장하는 으뜸인 도구가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구성된 교회 공동체를 사랑으로 묶는 것이 목회인 것이다.
2) 목회자와 설교
종교 개혁 이후 성공회와 루터 교회는 말씀과 성례전이 조화를 이루는 예배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으나 개신교에서는 특히 장로교와 개혁교회들은 이러한 균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오직 설교 중심의 예배를 지속하고 있다. 그래서 설교는 가장 중요한 사역(ministry)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렇지만 설교는 예배를 통하여서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의 소중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는 “예배가 하나님과 백성과의 대화(dialogue)이다“라는 존 헉스터블의 말을 인용할 때 설교의 내용은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이처럼 설교는 성도들이 받는 은혜라는 값없는 선물의 통로이며 매개체인 것이다. 그리고 설교자인 목사는 전달자이다. 설교자는 구약에서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의 운반자였으며 신약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선포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신약의 사도들은 자신들이 외치는 말씀이 인간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의 설교는 그리스도께서 말씀의 옷을 입고 회중을 찾아와 주시는 사역이다. 본회퍼는 “선포된 말씀은 진정 말씀이 육신이 되어 찾아오신 역사와 오늘의 그리스도 자신이다. 그분은 말씀으로서 자신의 회중 가운데를 걷고 계신다”라고 말한 것처럼 설교는 단독 행위가 아니라 성령의 동행으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만남인 것이다.
3) 목회자의 교육과 상담
교회에서 교육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고 위임하신 사업이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때며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행전 2:42)에 나타난 교회의 4대 기능중의 하나가 교육이다. 그리고 상담은 에릭슨에 말에 의하면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도우고, 또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도우는 전적인 과정이다. 이 상담이 교회에 필요한 것은 사람은 누구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문제는 이것은 인간이 피조물이라는 근본적인 이유와 현실의 세상을 살아간다는 이유가 결합되어 누구에게 문제라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이 상담이다.
상담은 상담으로 결과를 도출하기보다 교육과 어우러져 결과를 만들어 나갈 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인간으로 다듬어 가는 과정에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럼으로 이것 또한 교회에서 행해져야 할 중요한 사역의 범위에 든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가르치는 교육과 상담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생활을 본받아 새사람으로 변화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인격에 이르기까지 북돋아 주는 것이 상담과 교육이므로 목회자는 등한시 할 수 없는 일이다.
4) 목회자와 행정
교회에서 행정이라면 통치나 정치적이 다스림을 떠올린다든지 아니면 일반적인 사무 처리나 그리고 전산화 등의 사무적인 면으로 오해하기 쉬우나 교회에서 행정은 목회자의 목회관(牧會關)에 입각한 성도의 가르침과 교제와 구제를 위한 교회 조직의 조직과 운영 그리고 관리를 말한다. 또한 이것은 교회에서 행해지는 모든 행위의 서포터의 역할을 감당하는 기반이기도 하다. 교회의 사역 가운데 예배, 교육, 친교와 같은 것을 목양이라면 전도와 봉사 등은 선교라면 이 모든 일의 지원과 관리는 행정의 범주에서 시작되고 그에 따른 관리를 받게 되는 것이다. 예배에도 예배 행정이 있고 교육에도 교육행정이 있다. 물론 선교에도 당연히 선교 행정이 있는 것이다. 작금에 나타나는 교회문제를 분석해 보면 문제는 예배나 설교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행정에서 발생 되어 졌음을 통하여 행정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5) 목회자와 윤리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아감으로 목회자는 윤리적인 행위자여야 한다. 목회자가 입으로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자신이 도덕적으로, 또는 윤리적으로 타락한 생활을 한다면 그 목회자는 이미 자격을 상실한 자이다. 목회자가 윤리적 실천이 없거나 부족할 때 자신의 양심을 속일 수 없는 가책과, 다른 사람으로부터 날카로운 비판의 화살을 받게 될 것이다.
목회자의 윤리의 기준은 본회퍼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자신의 신학적 출발이 된 것처럼 목회자의 윤리의 기준도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그리스도를 앎과 그의 삶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윤리의 기준이 된다. 결국 타자를 위한 존재라는 결론으로 목회자도 정의 되어야 한다면 윤리의 기준은 누구를 위해 어떤 일을 행했는가의 판단 기준이 된다.
한편으로는 우리는 지금의 세상에서 우리는 시대에 맞는 윤리라는 사고의 전환도 필요하다. 시대에 맞는 페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가톨릭에서 강조하듯 인간 존엄성의 윤리, 생태윤리의 관심 등 가톨릭교회가 현실을 해석하고 기독교인다운 행동지표를 제시함을 볼 때 그 기준은 언제나 인간 존엄성이다. 그리고 둘째를 자연법의 윤리인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여기서 더 나아가 통전적인 윤리가 필요하다 즉 개인윤리와 사회윤리의 조화를 이루는, 우선되거나 처짐이 없는 조화로운 윤리가 필요한 세상임을 알아야 한다.
결론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을 침에 있어서 말씀과 현실의 조화 그리고 말씀과 실천의 조화가 제일 중요하다. 목회에서 예배나 설교나 행정이나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으나 각각의 중요성보다 그 여러 가지 조건들의 어우러짐이 가장 중요하다.
목회의 기초는 인격이과 윤리로 이루어지며 그 본질은 봉사라는 행위로 나타나는 사랑이며 그 척도는 희생이다. 그로인한 결과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으로 나타날 것이지만 우리는 그에 순종함으로 면류관을 얻는 것이다. 목회에 다른 기술이나 꾀는 필요치 않다. 말씀과 기도가 첫째 도구이며 유일한 도구이다. 그것으로 행하는 하나님의 일에는 도우시는 성령의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아가는 것이 참 목회인 것이다 . 나는 나의 앞날에 이런 목회를 염두에 두고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