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가시
고전 12:8-11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평생을 살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에게 족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도 바울이 어렵고 힘든 고난을 경험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는 특별히 바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우리의 삶을 통해서 경험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신령한 것이라고 명하는 각양의 은사들이 나타났다.
지혜의 말씀이, 지식의 말씀이, 믿음이, 병 고침이, 능력이, 예언이, 영들 분별함이, 각종 방언이, 방언들 통역이 각각의 교우들에게 주어졌다(8-10절).
그런데 다양한 그 모든 은사들은 오직 하나의 근원에서 주어졌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즉 성령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것이다.
바울은 이처럼 다양한 은사들이 오직 한 분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왜 하나님은 각각의 교우들에게 각각 은사를 주셨는가? 그 이유는 분명하다. 받은 은사로 직분과 사역을 유기적으로 감당함으로 교회를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다.
은사는 한 마디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 선물은 오직 신자가 주님의 교회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그래서 신자는 자신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각각 직분을 받는다. 직분은 교회 공동체에서 사역으로 열매를 맺게 된다.
그런데 은사의 수혜자가 되는 교인들에게 이상한 반응들이 나타났다.
정상이라면 은사를 주신 분이 성령님이므로 그 은사에 대해 누구도 자랑하지 않는다. 그런데 자랑한다. 남의 은사와 비교한다.
그리고 성령님이 은사를 주셨으므로 주신 목적이 반드시 있다. 그런데 그 목적을 따라 은사를 사용하지 않는다.
마치 훈장처럼 자랑만 한다. 왜 이런 이상한 일이 발생했는가? 고린도 교인들이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고백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면서, 우리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면서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첫째 : 은혜는 하나님의 뜻에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11절)
오늘 말씀 전반부에 보면, 사도바울은 자기가 아는 어떤 사람이 주의 환상과 계시를 경험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십사년 전에 세째 하늘에 이끌려서 하늘나라를 경험하였고, 하나님의 여러 계시를 듣고 왔습니다.
그 사람은 영적으로 특별한 체험을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알고 있다는, 천국을 경험한 사람은 바로 바울 자신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의 환상과 계시를 경험했지만, 그것을 마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경험한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경험한 환상과 계시를 말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고린도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 교사들의 공격에 대한 답으로 했던 말입니다. 거짓교사들은 바울이 진정한 사도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자신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환상과 계시를 받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진정한 사도임을 변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러한 영적인 신비의 경험을 한 것이 자기가 아닌 것처럼, 객관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자신이 놀라운 영적 경험을 했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자신이 어떠한 노력을 해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저 주신 전적인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뭔가 받을 만한 일을 했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대표적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가시도 주십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후12:7)
사도 바울은 주의 환상과 계시를 체험한 은혜에 대해서 말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육체에 가시가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사역을 할 때에 놀라운 기적을 행했던 사람입니다.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쳐주고 병고친 자도 고쳐주었습니다.
심지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습니다(행 19:12).
그런데 정작 사도 바울이 고백하는 것은 자신에게 못 고칠 육체의 가시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신이 가진 병을 육체의 가시로 표현한 것은 그것이 가시에 찔리는 것처럼 아주 괴롭고 아프기 때문입니다.
그 고통이 심했던지 그 육신의 가시를 사탄이 주는 고통으로 여길 정도였습니다.
그 육체의 가시는 무엇인지는 확실히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간질병이나 눈병, 아니면 바울을 괴롭히는 사람들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육체의 가시는 바울의 사역에 있어서 약점이 될만한 것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 육체의 가시가 고통스럽고, 하나님의 사역에 방해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합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간곡하게 기도를 했겠습니까? 그런데 육체의 가시가 해결되지 않으니 세번씩이나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만큼 사도바울은 병을 고침받기 위해 간절히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주시지 않으십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육신의 가시를 놓고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그것이 자신으로 자만치 않기 위해서 임을 깨닫기도 했지만, 그 때에 또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이러한 말씀을 주십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후12:9)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육체의 가시속에 고통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셋째 : 그리스도의 능력안에 있기 위함입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9)
하나님은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는 그의 약함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약한 부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이 약함 가운데 있게 하심으로, 사도바울이 행하는 능력들이 바울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드러내고자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힘으로 다른 이들을 고친다고 한다면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병도 고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병을 그대로 두심으로, 사도 바울이 하는 사역이 바울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일을 하고 있으심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 또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의지하도록 하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사도 바울 안에 늘 경험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하나님 앞에 나의 약함을 고백하며 주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갈 때에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강하심이 드러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