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도로공사 준공검사도 무사히 끝내고,
추가로 나온 ‘샤르마’ 항구 하청공사는 별다른 일이 없으면,
아랫사람에게 맡기고 국내 귀임하기 쉬우니,
우선 당신이 먼저 서울 들어가서 애들 보살피고 있으면
곧 뒤따라 합류하도록 합시다." 내가 입을 열었다.
“곧 들어 갈 수 있다면 같이 귀국하면 되지 왜 먼저 들어가도록 해요?
나하고 있는 것이 지겨워서 그래요?
"
“ “남은 일이 대수롭지 않은데, 부인과 동거하면서 경비를 축내는 것이 부담스러워 그렇지 뭐,
중동본부에 의사타진 해보고 여행이나 좀 하자고 하는 게 낮지
여기 촌구석에 둘이 쳐 박혀 있는 것이 뭐 좋은가?”
“
“여행”이라는 말에 현준엄마는 귀가 쫑긋했다.
“그럼 빨리 여행하고 나서 같이 귀국하도록 졸라 봐요”
물론 한달전 하지 휴가 시즌에 인접국 죠르단에 같이 관광을 다녀왔다. 육로의 짧은 일정으로
페트라, 사해, 등 명승지를 둘러보고 멀리 가지 못 한것을 아시워 했다.

중동본부 관리 담당 김 이사에게 넌지시 의사전달을 했다.
준공도 끝났으니 부인도 돌려보내야 하겠는데,
그냥은 서운해 할 테니 어디 여행이라도 허락해 주시면 고맙겠다고,
중동본부에서 즉각 대답이 왔다. 불원간 회장님이 중동본부에 방문하실 계획이니
시간을 맞추어 부부가 인사를 드리고 준공결과 보고도 하고
그 자리에서 여행허가를 득해보자고.
나는 어깨가 으쓱해 졌다. 회장님 앞이라면
누구보다도 수주경위와 현장추진 전말을 잘 아는 사람이라
내 공로를 누구보다 잘 이해 해줄 것이라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귀국 준비 할 것은 없지만 내버리지 못 할 자질구레한 짐들을 챙겨두고
리야드 중동본부 갈 차비에다 우리 부부는 감독관 가족과
현장간부간의 송별만찬도 가지고 기념사진도 찍고 했다.


리야드 중동본부에 당도한 시간에는,마침 회장님은 중동본부 사무실에 먼저 도착하여
수행간부들과 김이사 함께 좌담을 하고 있었다.
회장님은 인사차 들어간 우리 부부에게 무척 화사한 표정으로 맞아주었다.
그러나 항상 말씀은 간략했다.“수고 했어”
나는 말씀이 너무 아쉬워 준공검사도 성공적이고 비용도 적게 들고 어쩌고… 늘어놓자,
이미 듣고 알고 있다는 듯 입술 가에 미소만 띄운 체,
“김 이사, 그것 가지고 와”
불쑥 한마디 하고, 김 부장이 가져온 봉투 하나를 내민다.
옆에서 김 부장이 말을 거들어 준다.
“부인 귀국 전에 같이 유럽지역 여행이라도 하라고, 회장님이 경비를 보태 주시는 것입니다.”
아마 사전에 여행요청을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둔 모양이다.
여행경비를 좀 얻어 쓸 가하는 바람도 없지 않았지만,
운도 때기 전에 불쑥 봉투를 내놓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봉투를 본 현준엄마도 덩달아 합창이 되어 나왔다.
그제야 한 말씀 하신다.
“박 소장은 그 현장 마무리하고 좀 쉬었다가,
좀 더 큰 현장 하나 더 치러야지! 여행은 즐겁게 해!”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 방을 물러 나온 우리 부부는 두툼한 봉투에 내심 안심 하면서,
옆방에 나와 슬그머니 봉투를 열어보았다.
나는 현지 화폐인줄 알았다가 “$”화폐 묶음인 것을 보고 약간은 놀랐다.
단순 여행경비 보조차원이 아니고 현장 성공 “보너스”같은 성격이라고 생각하니,
이것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히 여행경비 보조치고는 많은 액수였다.
여행경비는 현지 급료를 모아 두면서 준비 한 것이 있으니,
우선은 여행 시 돈 걱정이 없어 좋고,
국내 돌아가는 현준엄마에게 빈손으로 들어가지 않으니
당장 “현장 성공 보너스”가 많고 적고를 접어두고 기분은 그만이었다.
이제는 유럽여행도 초행이 아니니 꽤나 자신만만했다.
행선지를 리야드 - 로마 - 파리로 잡고, 파리에서 현준엄마는 서울로,
나는 리야드로 헤어지는 코스를 잡았다.
누군가 귀띔하기를, 기왕 회장님이 봐주시는데 미국까지 돌아 서울에 부인을 내려드리고
세계일주 계획을 세우지 않느냐고 했지만,
내 생각에는 봐주더라도 절도 있게 해야지,
너무 많은 시간과 경비를 낭비하는 것은 모양세가 좋지 않다고 마음을 굳혔다.
로-마 공항에 도착한 나는, 대합실에 있는 여행안내 창구에서
적당한 Hotel을 예약하고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를 가지고 Taxi를 잡으니,
지난번 첫 로-마 입국 때 파키스탄 국적의 주 감독 입국 비자 문제로,
만 하루를 동분서주하여 해결 했던, 그 토록 서글픈 기분하고는 180° 틀리게,
이제는 현준엄마와 함께 라는 보람을 실현시키는 기쁨과,
단순 관광만을 위한 부담 없는 여행의 기쁨이, 말로 형언 할 수 없이 만족스럽게 엄습해왔다.
자그마한 로마 시내 관광호텔에 짐을 풀고 난 우리는
우선 낮잠부터 한숨 자고나서 Hotel방에 있는 여행가이드 책자를 뒤적이다
결국 오늘은 “Night City Tour"를 하기로 하고 Hotel 후론 터에 부탁을 했다.
Ticket을 끊고 40분 후면 Bus가 Pick up하러 올 것이라고 설명하던
호텔 관리인이 아는 척하면서 한마디 한다.
“당신들 Korean맞지?, 다른 방에도 Korean이 투숙했는데 당신들 만나고 싶어 하는데…”

나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 둘만의 오붓한 여행을 하는 마당에 누가 안내라도 받겠다고 접근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입구 홀에서 서있는데 한국사람 얼굴을 한 중년신사가
아는 척하면서 우리 앞에 “하이"하고 접근한다.
“한국사람 입니까?”하고 내가 물으니 못들은 척하면서 영어로 인사를 건넨다.
“어디서 왔느냐?” “어디로 여행하느냐?” “직업이 무엇이냐?”
이것저것 물어대니 약간 귀찮은 것 같아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같은 동양인이라도 영어를 하게 되면
발음과 억양이 국적별로 크게 틀린 것을 알고 있는 터인데,
이양반의 발음은 틀림없이 한국사람 임에 틀림없는데,
영어로만 지껄이며 추군 대니 금방 싫어졌다.
우리 부부는 갑자기 시장기가 느껴져 관광Bus가 오기 전에
간단히 배를 좀 채우고 져 호텔 밖을 내다보니
마침 건물 옆에 “Chinese Restrant"이 있어,
시간이 30分정도 여유 있는 것을 보고 그곳에 들어갔다.
우리가 간단한 음식을 빠른 시간 내 될 수 있는 것을 주문하고 나니,
뒤 딸아 호텔에서 추군 거리던 한국인(?)이 들어 서드니,
한쪽구석에 자리를 잡고 우리와 같은 음식을 시킨다.
음식점 종업원은 이탈리아 사람이다. 내가 음식이 좀 싱거운 것 같아서
그동안 들은 풍월로 아는 척했다.
“당신??자쪼이??를 아느냐?”
자쪼이는 우리 음식에서 장아찌 같은 밑반찬으로 김치가 없는
외국 중국음식집에 자주 애용했었다.
“예스, 자쪼이를 왜 모르겠소, 차이니즈 김치가 아니냐? 갖다드릴까요?”
나는 자쪼이를 차이니즈김치라고 표현하는데 우선 놀라왔다.
이때만 해도 한국인의 해외관광이 생소한데 이곳에서 김치를 들먹거리니,
물론 세계적 관광지라서 그렇지만 반가운 표현으로 들렸다.
시간 때문에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니,
구석에 앉아있던 거 친구도 시킨 음식을 취소시키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하며 우리를 따라 나선다.
꼭 미행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이윽고 버스가 왔고, 몇몇 Hotel을 돌아 관광 희망자를 몰아 실은 후
어둑해질 무렵 넓은 광장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곳에서 야간 시내관광 희망자들이
단체로 혹은 개별로 잔뜩 몰려있었다.
이윽고 안내원이 영어 권, 라틴어 권, 일본어 권 하면서 그룹을 나누고
특별히 영어권 중에도 “아메리카 엑스프레스”회원들은 다른 그룹을 만든다.
영어그룹에 편승하기로 하고 광장에 서 있는데 예의 거 친구 또 치근덕거리며,
“내일은 여행계획이 어디냐?”
“며칠간이나 이 호텔에 있느냐?”
나는 귀찮은 생각이 들어 반문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국적이 어디냐? 꼭 한국사람 같다”
“왜 단신이냐. 무슨 비즈니스로 왔느냐?”
내 질문에는 우물쭈물 했고 막상 대화를 유도하니
영어실력도 단순한 것 외에는 막히는 친구였다.
안내양이 서둘러 Bus를 바꾸어 타라는 말 때문에 거 친구는 제처 두고
날 세게 두 사람은 좋은 자리를 잡아 앉았고,
유창한 가이드의 안내방송을 들으며 시티투어를 시작했다.

안내양은 체격이나 미모가 놀랄 정도에 유창한 영어실력은 둘째로 하고,
사람들을 쳐다보고 대답하고 안내하는 모습이
그토록 상냥하고 열심인데 정말 놀라왔다. 마지못해 하는 안내행동이 아니라,
정성을 다 들여 최선을 다 하는 듯 하는 직업의식에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모습으로 감탄을 않을 수 없었다.
나는 Bus속에서 현준엄마와 속삭였다.
“뒤쪽 어딘가 앉아있는 저 친구가 무척 기분이 나쁘다.
이곳에 북한공작원이 꽤나 설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가 뭐 요인 들쯤으로 착각하고 냄새 맡는 것 같지 않아?
분명히 한국사람 얼굴과 말씨인데 국적도 말하지 않고…,
적당한 기회에 따돌려 버려야지”
내말에 현준엄마도 동감이 간다고 했다. 사람들에게는 육감이라는 것이 있게 마련인데,
처음 호텔 도착 할 때부터 호텔 관리인이 “Korean"운운 하는 것부터 심상치 않았다.
냄새를 맡았다면 공항에서 호텔예약을 할 때 국적을 물어본 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단순 해외 취업 근로자 자격이고 위로 관광여행 중이니
켕길 것은 없다고 생각도 했다.
네온사인이 번뜩이는 로-마 시내를 관광하는 도중에
저녁식사와 함께 쇼 관람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우리 부부가 앞자리에 자리를 차지하고 사방을 둘러보니,
각 여행사로부터 무척 많은 관광객이 운집한
넓은 좌석과 휘황찬란한 무대가 준비되어 있고,
이윽고 각양각색의 쇼가 연출되는데 알아듣기 쉬운
이탈리아식 영어 사회자 말솜씨부터 무척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전연 뜻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으니,
기막힌 “소매치기”솜씨를 과시하는 쇼맨이 관중들 중에서 나를 집어 무대로 나오란다.
어벙하게 생겨보였던지 사양하는 나를 억지로 무대 위로 올려놓고 갖가지 재주를 부리는데
내 손가락을 작두위에서 자르는 듯 하는 흉내에서 당근을 잘라 보이는데
당근을 쥐고 있는 부위가 키로친 모양의 작두 뒤에서 내 급소와 일치 하게 해 놨으니
꼭 내 물건을 작두로 자르는 시늉을 하게 되어, 좌중은 배꼽을 쥐고 웃었고,
그동안 언제 빼 갔는지 내 패스포트와 뒤 지갑하며, 나도 모르게 넥타이마저 풀어갈 때는
소매치기 쇼맨의 솜씨가 제법이었고, 나는 훌륭한(?) 놀림감 보조 역할을 잘했다.
끝내는 나한데 수고 했다고 칭찬하고 여행 잘하라는 당부도 하는 예의도 보였다.
때문에 그다음 코스에서는 같이 Bus탄 여행객은 다 우리 부부를 알아보고,
한마디씩 말을 붙이고 그날의 히로인이 되었다.
밤늦을 무렵 일행은 지하에 있는 아담한 토속적인 냄새를 풍기는 홀에 안내되었는데,
옛 로마 병정과 기념촬영을 하고나서 좌석에 앉히고,
음료수 대접을 하고나서, 곧바로 악사와 가수가 관중의 요청 곡을 들려주거나
관중들 노래를 시키는 여흥 시간을 가졌다.
사회자는 한 사람 한 사람 차례로 마이크를 갖다 대고 어디서 왔느냐?
무슨 노래 좋아하느냐?
조크를 하면서 분위기를 잡아 갔는데 우리 차례에 와서는
다짜고짜,
"You Japanese?"하고 운을 뗀다.

나는 속으로 내가 나폴 리탄 Song을 좋아하니, 그것을 신청하려고 했는데,
사회자가 이렇게 나오니 나는 대뜸,
“No, I'm Korean, You may not know Korean Song"하고 말을 끄집어내니
사회자 친구, 나의 말 끝나기 전에,
“Oh! Korean, I know Korean Song"하고 반주자들에게 뭐라고 한마디 하고 나서는
마이크를 잡고 ”아리랑“을 불러댄다.
이 친구 한 소절을 부르고 나서 얼른 나한데 마이크를 넘긴다.
한 곡조 뽑는 데는 이력이 있는 때라 낭랑한 목소리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 은∼”하고 냅다 감정을 넣어 불러대니,
아코디언, 기타리스트 신이 나서 볼륨을 높이면서 이절을 더하란다.
노래가 끝이나니 관중의 박수도 높은 것이
초저녁 쇼 무대 위의 안면 있는 친구라서 그러했지만,
그때만 해도 생소한 한국아리랑이 악단들과 어울려 잘 역어 냈다는 칭찬 같았다.
한 사람 한 사람 차례가 넘어 가는데, 멕시코, 미국, 인도 … ,
수없이 많은 국적의 사람들이 때로는 나도 아는 노래도 있고,
내가 모르는 스페인 노래는 악단이 신이 나서 앙코르 송을 받고
분위기는 그런 대로 잘 넘어가는데,
나는 저쪽 끝에 앉아있는 문제의 치근덕거리는 친구가
어느 국적으로 말할 것이며 무슨 노래를 신청할 것인지
자못 궁금해서 차례를 지켜보고 있었다.
드디어 이 친구 차례가 왔는데, 사회자가 앞에서 뭐라고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시늉을 하는 게 아닌가?
“You Japan? Korean? Chinese? Taiwan? Malaysia?" 아무리 역어 봐도
어색한 웃음만 띈 체 손을 내젓는다.
아무리 영어 못하는 놈이라도 자기나라 국적 정도는 말을 해야지 아주 분위기를 깬다.
나한테는 어디서 왔느냐는 둥 제법 영어로 말을 붙이던 놈이 저러하니,
노래를 시킬까봐 벙어리 흉내 내는 척 하지만,
국적과 신분을 저토록 숨길 이유가 의심스러웠다.
나는 그때 느낌이 그 친구는 확실히 우리를 어떻게 해 보려고
따라 다니는 놈이라고 다시 한 번 심정을 굳혔다.
>
다음 날 일찍 나포리 경유 폼페이 관광 투어에 참석하고 부터는>
문제의 공작원(?)을 따 돌리고 즐거운 이틀간의 명승지와 유적지를 관광하고 지냈다.
이 코스는 지난번 주 감독과 일차 훝어 본 곳이라
나는 집사람의 좋은 안내 역활을 할 수있었다.
로-마에서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오후 약간은 쌀쌀한 날씨였다.
초행길이라 약간은 주눅이 들어 공항수속을 끝내고 더듬거리고 나오니,
바로 Taxi대기소까지 나와 버렸다.
사전에 Hotel예약도 않고 현지 화폐도 바꾸지 않고 Taxi를 잡았으니,
순서가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설마 파리도 관광천국인데
Taxi기사가 잘 안내해 주겠거니 하고 Taxi를 올라탔다.
운전기사는 새파랗게 젊은 녀석인데, 웬걸, 영어를 한마디도 못한다.
내가 뭐라고 지껄이면 자기는 불어로 뭐라고 지껄이고 전혀 의사전달이 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영어가 안 통한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들었던 기억이 그때야 난다.
“Hotel"하고 왜치니 Hotel은 알아듣고 어느 Hotel이냐는 듯 반문한다.
내가 영어로 First Class는 너무 비싸니 Second Class로 당신이 찾아달라고 했더니,
알아듣지 못하고 계속 고개만 갸웃거린다. 내가 손가락을 두 개 벌려 보이면서
“Second Class"하고 소리치니 이 친구 손가락을 네 개 폈다, 세 개 폈다 하면서
자구 딴소리를 한다.

내가 “Second"하고 손가락 두 개를 더 강조해서 보이니까,
이 친구 고개를 한번 갸우뚱하더니 무선으로 어딘가 안내를 요청하는 것 같다.
총알Taxi같이 한달음에 달려와서 우리에게 다 왔다고 내리란다.
큰 Hotel 앞일 것이라고 여겼던 우리는 변두리 여인숙 같은 곳에 내려주는 것을 보고
당황했으나, 속으로 근처 어딘가 Hotel이 큰 게 있겠지 하고 그냥 내렸다.
여인숙 안에 들어가서 다시 안내를 받기로 하고
들어서니 인사를 하며 맞아주는 사람이 할머니다.
의사소통은 전무하고 숫제 웃음 띤 벙어리 시늉으로 다른 큰 Hotel에 가고 싶다.
Taxi를 불러 줄 수 있느냐 아무리 해도 소용없다.
우선은 피곤하고 가방이 무거워 안내하는 데로 방을 잡기로 했다.
이층 계단을 올라간 방에는 캥하니 아무 장식도 없는 방안에 침대하나 달랑 놓여있고
옆에 샤워 겸 화장실하나 붙어 있는 것이 우리나라 시골 여인숙도 이보다는 낳을 것이
그야말로 독신여행자 잠만 자고 가는 곳 인 듯하다.
가방을 놓기 무섭게 여관 밖을 걸어 나와 근처 Hotel이라도 잡든지
식당이라도 들어갈 속셈으로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어도 볼품없는 주택가와 간이 공장 비슷한 건물만 나오고,
기대했던 거리가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 중심가에서 상당히 변두리 인가보다.
Taxi기사가 왜 이런데 안내했을까 하는 의문이 자꾸 든다.
“Second class"하고 말한 것이 못 알아들어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인 것이
무언가 잘못 오해된 것이 틀림없다.
결국 날씨는 어두워지고 피곤이 엄습해와 더 이상 걷는 것은 포기하고
우선 오늘은 이 여인숙에서 때우고,
내일 아침 다시 Taxi를 타고 항공회사를 찾아가 항공일정을 재확인할 때
새로운 호텔을 잡기로 마음을 바꾸고 여인숙에 들어갔다.
저녁은 길거리 과자조각과 캔 주스를 산 것으로 때우고 잠을 청할러니 방안에는
온기가 하나 없이 한기가 스며온다.
더운물도 샤워꼭지에는 나오지 않는다. 옷을 입은 체 부부가 체온을 의지하여
부둥켜안고 잠을 청할 수밖에,
그래도 몇 일간 이탈리아 여행으로 지친 몸이라 새벽까지 골아 떨어졌으니 피로는 풀었다.
여인숙에 이른 아침밥을 시키니 “크라숑”빵과 커피한잔이다.
그래도 꿀맛이다. 숙박비는 주머니 잔돈 달러 몇 푼으로도 남는다.
볼품없는 파리의 첫날밤은 기막히게 싸구려 여인숙의 추억으로 오래 남아있다.
Taxi를 불러 잡아타고 Korean Air Line회사를 가자고 했더니,
말도 못 알아듣고 자꾸 주소를 달라는 시늉을 한다.
또 한 번 방황 하는가 생각하다, 얼른 “알리 탈리아”라고 소리쳤다.
이태리 여행사 어딘가 가면 근처 대한항공도 있으려니 해서,
우선 알아듣는가 하고 소리 쳤더니
“위”하고는 신나게 달린다. 한참 만에 번화가 어딘가에
“알리 탈리아”라고 간판이 있는 곳에 Taxi가 도착했다.
“알리 탈리아” 문 앞에 들어서니 상냥한 여직원이 친절히 맞아주었다.
나는 사실은 대한항공을 가고 싶은데 길을 몰라 그러니 주소를 좀 적어달라고 했다.
어디다 전화를 걸고 주소를 적어준 쪽지를 주면서 여기서
아주 먼 곳이라고 친절히 말해준다.
다시 Taxi를 잡고 쪽지를 보여주고 달리니
완전히 왔던 길을 다시 달리는 코-스 같았다.
우선은 파리의 시내관광을 Taxi창밖으로 내다보는 것으로 때우면서 한참 만에 대한항공이라고 간판이 있는 곳에서 내렸다.
혼자 생각에 그 안에 한국인한데 여러 가지 안내를 받을러니 생각하니
그제야 안도의 마음이 생겼다.
문을 밀고 들어서면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말을 하니,
여러 직원이 앉아 있는데 아무도 “어서 오세요”하는 소리가 없다.
자세히 보니 전부 현지인이고,
한국 사람은 한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영어로 질문이다.
“대한항공으로 서울행 비행기를 Re-Confirm하려는데 우선 한국인 직원은 없느냐?”
“한국인 직원이 왜 필요하냐. 내가 확인 해주겠다.”
“다른 안내도 받고 싶고 해서 한국인 직원이 필요한데…”
“이층에 계시는 매니저가 한국인이지만 티켓업무는 여기서 해야 한다.”
“이층 매니저와 통화 좀 할 수 있느냐?”
바꾸어준 전화통에 “여보세요”하고 한국말이 나오니 우선은 반가웠다.
“사우디에 근무하다 파리에 처음 여행 온 사람인데
여러 가지 안내도 받고 싶어 해서 만나 뵈었으면 하는데…”
“올라오시오”

내 나이 또래의 매니저와 반갑게 인사하고 어제 공항에서부터
여인숙에 하룻밤 묵은 일을 설명하면서
우선 적당한 Hotel부터 하나 소개해 주었으면 하고 부탁을 했다.
“아마 당신이 second class라고 손가락 두 개 펴 보인 것을
Taxi기사가Two star로 잘못 이해한가.
본데 Hotel은 Five star부터 차례로 등급을 매겨 가는데 Two star는
여인숙 급으로 여행객은 사용할 수 없지요.
고생하셨습니다. 어느 정도 경비를 생각하십니까?”
“저는 항상 너무 고급스러운 것은 싫어하니 이류급으로 적당한 곳이면 됩니다."
“선생님이 일부러 관광차 이곳에 오셨는데 체류기간동안 경비는 부족하지 않겠지요?”
“예, 경비 걱정은 없습니다만, 절약해야하지 않겠어요?”
“요새 이곳에 특별 문화 행사가 있어 적당한 Hotel은 예약하기 무척 힘듭니다.
이곳에 Enjoy차 오셨다면 숫제 일급 Hotel을 쓰세요,
오히려 교통비나 식당 등을 생각하면 그것이 더 낳을 것 같습니다.”
“그럼 좋습니다. 정해 주시는 데로 들지요”
다시 한 번 전화를 걸고 어쩌고 했다.
“일류 호텔도 다 만원이고??스위트 룸??만 남았는데 KAL에서 연락하면
좀 싸게 해줄 수 있다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요금은 1박에 150$정도입니다.”
나는 요금이 무척 비싼 것에 놀랐지만 우선은 주머니가 든든한데 매니저가 추천하니
호기를 부리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3박4일 정도니 한번 비싼데 Enjoy이 해 보지 뭐”
나는 대답하면서 현준엄마를 돌아봤다.
“중심가에 새로 지은??세라톤??호텔인데 파리에서는 제일 좋은 Hotel입니다.
기왕 부부가 즐기려 오셨으면,
다른데 비용을 쓰는 것 보다, 이 호텔에 드시는 것도 괜찮을 것입니다.”
전화를 걸어 예약을 맡치고, 주소를 적고, 비행기Ticket 재확인을 끝내고
고맙다고 인사한 후에 우리는 Taxi로 세라톤Hotel에 왔다.
그리고 문 앞에 보니 큼직한 별이 다섯 개가 박혀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 촌사람은 그제야 호텔등급이 별자리 숫자로 표시 한다는 것을 알았고,
훗날 Five star도 A,B등급이 있다는 것도 알았으니,
2nd class가 Two star로 오인되고, 다음날 Five star로 변신했으니,
이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는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
예약이나 안내도 없이 발을 들여 논 만용에 기인했다고 해야겠다.


“Five star"에 “스위트 룸”은 대단했다. 피곤에 찌든 현준엄마 얼굴이
이때만큼 밝게 변한 것은 처음이다.
수행원도 없는 사람이 스위트룸에 들었으니, 우선 크기에 놀랐고 이때까지는
그렇게 큰 침대와 그렇게 호사스런 욕실은 처음 구경했다.
침대가 한없이 넓은 것은 고사하고 참으로
쿠션이 괜찮아 보였고, 넓은 욕실 안에는 화려한 화장대하며,
면도용 오목거울서부터, 헤어드라이기 까지 없는 것이 없다.
거품용 세제에다, 무척 두껍고 큼직한 타월과 목욕가운하며,
요새는 웬만한 호텔이나 부잣집엔 다 있을 법 하지만,
이때만 해도 우리 촌 부부는 처음 봤다.
냉장고에는 별의별 음료수가 다 들어있고, 숫제 우리가 온다고
꽃바구니는 물론 과일 바구니 안에는 별의별 과일이 다 들어있다.
“그래, 이래야 원 불란서 여행 온 맛이 나지, 2nd class가 왠 말이요. 너무너무 좋아요.”
좋아하는 값으로 친다면 스위트 룸 방값은 오히려 싸게 보였다.
건물도 크고 볼 것도 많지만 지하 아케이드에는 없는 상점이 없다.
고급음식점부터 고급선물 판매점하며….
숫제 투어버스도 이곳에서 제일 먼저 떠나고 제일먼저 도착시켜준단다.
내가 돌아갈 사우디 행 비행기 표 확인은
숫제 “후론트”에서 즉각 처리되고 우리가 그동안 촬영한 사진 필름은
당일로 최 일류 인화지에 영상도 화사하게 방에다 배달되었다.
KAL매니저 말이 틀림이 없음을 확인했다.

“Enjoy차 여행이면 다른 비용을 아끼고 좋은 호텔을 잡으시오”하는 말이 몇 번이고
그럴 사 하다고 우리 부부는 다짐을 하고
“시티 투어”로 그림에서만 보던 “에펠 탑”등정과 곳곳을 둘러보고
베르사유 궁전 탐방 등, 근교 투어도 골라서 하고,
나름대로 첫 파리 관광을 보람 있게 했다. 상들리이제 Shopping을 시도했으나
엄청난 고가에 기가 죽다가도 마침 비교적 싼 이탈리아 브랜드 옷
판매점을 발견한 현준엄마는
눈을 딱 감고 정장 두벌 사 입었다.
의복이 날개라고 어제까지 그렇게 초라하던 한국아줌마가
이젠 샹드리이제 거리에도 어울리는 국제 숙녀 티가 난다.
'무랑르즈' 극장에서도, '목마르트'언덕에서도, 촌티를 벗은 현준엄마는
뭇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기분이 무척 좋아보인다.
더 체류하고 싶어 하는 현준엄마를 달래서 서울행 KAL라운지까지 안내한 후
다시 Riyadh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
그래도 오랫동안 사막에 갇힌 생활 끝에 바라던 부부동반 여행을 실현하고 나니
국제무대에 뛰고 있는 나름대로의 보람이 느껴졌다.

여행기 끝
첫댓글 야. 젊었다. 그 옆의 여사님도 미인이고, 나도 첫 파리, 로마여행이 1978년이니 꼭 32년된 것같은데 그때는 함께 해외에 나가지 못해 혼자였다네 해외에 주재했으니 결혼 몇주년 기념여행같기도 하고. 젊었을때의 친구부부가 그리 좋게 보인답니다. 음악을 즐기는 두분, 늘 보아도 행복해 보이는데 사는 날까지 더행복 하세요
32년전 사진을 보관했다가 컴에 저장, 스켄한 것만도 힘든 작업인데, 어렇게 카페에 글과 함께 올리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 노력과 정성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겠네요.
길고 진부한 이야기를 내 놓기 무척 망설였는데 두분 사이버 원로의 댓글을 받으니 염천에 땀을 뺀 일이 보람없지 않은듯해서 무척 기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