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 4남매가 고희기념으로 주선해준 덕분에 아내와 같이 2008. 4. 14부터 4. 25까지 12일간에 걸친 유럽의 스페인(Spain)과 포르투갈(Portugal) 그리고 아프리카 북단의 모로코(Morocco) 등 3개국의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기억력이 많이 쇠퇴하여져 생각도 안 나고 들어도 자꾸 까먹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기기에는 부끄럽지만 그래도 몇 가지는 남겨 두겠기에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여행 제1일차인 4.14 월요일 13:30에 노랑풍선 여행사의 인솔자(김정업씨)와 일행 22명이 인천국제공항을 Kal기로 출발하여 13시간만에 현지시간 저녁 8:30(스페인과 우리나라와의 시차는 7시간임)에 스페인 마드리드공항에 도착 호텔(Holiday inn express)에 여장을 풀었다.
스페인(Spain)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수도를 Madrid(인구 500만명)로 하고 인구는 40,217천명이고 면적은 한반도의 2.3배인 501,800㎢ 주요민족은 라틴족, 주요언어는 스페인어 종교는 로마 카톨릭교 이다. 주요도시로는 Barcelona, Granada, Sevilla(세비아)를 들 수 있다. 현재는 왕이 있는 입헌군주국으로 민주주의에 기초를 둔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으며 국회는 2원제이다. 전통적인 농업국가로 유럽 중에서 농업의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하며 소맥, 감귤류, 포도, 올리브 등이 유명하다. 또한 680㎞에 달하는 대서양연안은 천혜의 어장으로 원양어업 및 근해어업이 모두 활발하다. 대표적인 공업으로는 기계, 조선, 섬유 등이나 무엇보다도 관광산업이 중요한 소득원이 되고 있다. 기후는 특색 있는 지형과 해류의 영향으로 다양한 기후를 나타내고 북서부의 대서양 연안은 온난한 해양성 기후로 비가 많으며 마드리드를 포함하는 중부 고원지대와 남서부는 대륙성의 건조한 기후를 나타낸다. 또한 남동부의 지중해 연안은 전형적인 지중해성기후로 일 년 내내 온난하다. 스페인 내륙 및 남부의 여름 햇빛과 더위는 너무 강열해서 반드시 모자나 선글라스를 착용하여야 한다. 의류는 한국의 계절과 비슷하게 준비하면 된다. 풀라밍고를 비롯한 많은 민속무용이 발달했으며 프랑스, 이탈리아, 아랍풍의 다양한 양식으로 건축술이 발달했고 가우다와 같은 세계적인 건축가도 배출 되였다.
제2일차인 4.15 화요일전용버스로 구시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는 꼬로도바(Cordoba)로 이동(마드리드에서 약 6시간 소요) 카도릭과 이슬람의 문화가 혼합된 메스키다 사원, 유대인의 거리와 꽃길, 17c분위기의 작은 광장인 표트르 광장등 구시가를 관광함.
Cordoba는 20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도시로 로마인과 이슬람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 수세기에 걸쳐 흘러들어온 다양한 문화로 인해 문화적으로 풍요로울 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에 그 흔적들이 남아 있다. 가운데 기독교 성당이 들어서 있는 Aljama 모스크는 역사적인 유적지의 가운데 다른 문화의 공존을 느낄 수 있었다. 꼬로도바를 관광한 후 이슬람과 기독교의 문화가 공존하는 그라나다로 이동하여 저녁에 풀라밍고 댄스를 관람했는데 이는 전통춤으로 별로 흥미를 느낄 수는 없었으며 값은 70유로(우리나라 10만원 상당)로 너무 비싼 감이 있었다. 관람 후 호텔(Camino de Granada)투숙 (꼬로도바~그라나다 약 2:30소요) (조식-호텔식, 중식-중국식, 석식-호텔식)
제3일차인 4.16 수요일 그라나다(Granada)시내에는 3개의 언덕이 있는데 사비카 언덕은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곳으로 일명 알함브라언덕 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은 당홍색의 성벽과 탑이 선명하게 부각되는 전망 좋은 곳으로 시내와 주변의 경치까지 볼 수 있어 좋은 곳이다. 그라나다의 상징이자 이슬람 건축물 가운데 최고 걸작인 붉은성을 뜻하는 알함브라 궁전(헤네랄리페 정원 산책)등 관광후 남부 지중해의 휴양지 코스타 델 솔(태야의 해변)을 관망하며 타리파(Tarifa)로 이동하여 Ferry에 전용버스를 승선하여 내가 말로만 듣고 지도로만 보아서 알고 있는 대서양과 지중해를 바라보고 또한 그 유명한 지블랄탈 해협을 관망하며 건너보는 기분은 아주 감명 깊고 인상적 이였으며 내 일생 잊지 못할 훌륭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된다. 지부랄탈해협(최단직선거리 14㎞라 함)을 통과 1시간 만에 항구도시인 아프리카의 북녘 땅인 모로코(Morocco)의 탕헤르(Tanger)로 이동하여 석식 후 호텔(Ahlen Village)투숙. 시간은 모로코가 오전 3시라면 스페인은 오전 5시 이므로 즉 2시간의 시차가 있다.
점심과 저녁 식사 때는 집에서 준비해간 고추장과 김을 아주 요긴하게 써먹었다. 그리고 집에서 행주로 다시마의 염분을 잘 닦아서 작게 썰어서 만든 다시마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먹으니 짭짤하여 속이 메시게운게 없어지고 입안이 개운하였다. 다시마와 사탕을 가지고 다니며 일행과 가이드와 나누어 먹으니 다들 좋다고 하였다. 물은 집에서 조그만 병 두 개를 준비해 가지고 가서 그 병에다 계속하여 식당에서 물을 보충하여 넣고 다니며 먹으니 별도로 물 한 병에 1유로(한화로 1600원)씩 주고 사 먹지는 않았으나 물병을 준비 안한 사람들은 차에서 외상없이 꼬박 꼬박 사먹여야만 하였다. 그리고 저녁에 일행 중 이 얘기 저 얘기 끝에 우리 경복 39회 김선규씨 부부를 알게 되어 객지에서 후배동문을 만나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특히 그는 영어와 중국어를 잘하여 많은 도움을 주게 되어 앞으로 재미있는 여행을 하게 되었다. (조식-호텔식, 중식-현지식, 석식-호텔식)
제4일차인 4. 17 목요일 모로코(Morocco)는 인구 160만인 라바트(Rabat)를 수도로 하고 전국 인구수는 2,920만 명이고 면적은 710,850㎢로 한반도의 3.3배인 면적을 가지고는 있으나 그중 30만 ㎢는 사하라사막 이라고 한다. 주요도시로는 카사불랑카(Casablanca), 마라케쉬(Marrakech), 훼스(Fes)가 있고 모로코는 오랫동안 서양 사람들에게는 낭만이 가득한 유혹의 나라로 여겨지던 곳이다. 아프리카인, 이슬람인, 아랍인, 베르베르인, 유럽인의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져 있어 다채롭고 풍부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고풍스런 도시들과 곳곳에 남아 있는 로마의 유적, 베르베르의 요새 아름다운 이슬람 양식의 기념비 등에서 모로코의 향기를 잘 느낄 수 있다. 이국적이고 생소한 것들을 찾는 사람들에게 있어 모로코는 그들의 기대를 져 버리지 않을 나라일 것이다. 재래시장(souks)에서는 황홀한 기하학적 무늬의 카펫과 새로 우려낸 민트차의 향기등 모로코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그들의 실생활을 접할 수 있으며 이는 모든 관광객에게 색다른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모로코의 지리적인 특성은 기후에 또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내륙지방은 대륙성, 리프트산맥이 있는 북부는 지중해성 대아틀라스 이남은 사막성 기후이다. 해안지방은 일반적으로 연중 온화한 기후를 보인다. 저지대의 겨울기온은 낮에는 30℃, 밤에는 15℃ 정도이고 여름의 낮기온은 45℃에 달한다. 고지대의 겨울은 북극에 버금갈 정도로 추워 옷을 단단히 껴입어야 한다. 11월부터 4월까지는 우기이기 때문에 모로코를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봄(4~5월)과 가을(9~10월)이다.
우리나라의 60년대 수준인 모로코
이날은 시간관계로 아침4시 모닝콜, 5시 식사, 6시 출발로 너무 강행군 이였다. 우천인데도 불구하고 고대도시인 페스(Fes)로 이동(탕헤르~페소 4시간소요) 도착 후 8세기 고대도시 메디나, 구시가지, 카라위인 회교사원, 가죽염색공장등을 관광 하였는데, Fes는 유네스코에 등록되여 있는 4개의 세계 중세 봉건도시인 이집트의 카이로, 시리아의 다마스커스, 모로코의 마라케쉬와 더불어 그중 하나인 도시이다. 페스는 9세기 도시건설당시에 금 곡갱이가 발견 되였다 해서 "Fes"(곡갱이)란 단어를 따서 지명을 "Fes" 라고 하였다고 한다. 페소의 거리는 골목이 9천여 개나 있다고 하는데 한번 잘못 들어가면 길을 잃고 찾아 나올 수가 없다고 하는데 막상 골목길을 들어가 보니 당나귀가 짐을 싫고 운송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가 하면 첨단산업이 뒤엉켜 있는 20세기와 21세기가 공존하는 현장을 실감해 보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좁은 골목길에는 우리와 같은 관광객과 그곳 시민들로 뒤범벅이 되어 교통체증이 심함을 느꼈다. 모로코에서는 볼펜인기가 대단하여 길거리에서 많은 어린이와 성인남자들이 볼펜을 달라고 손짓을 하고 따라 다니는 풍경은 진풍경 이였다. 그리고 특히 한 것은 카페에서 차를 마실 때 서로 마주보고 앉아서가 아니고 옆에 앉아서 차를 마시는 풍경도 진풍경중의 하나였다.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가내수공업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60년대 수준과 같았고 빈민가가 눈에 들어오는데 가이드 말에 의하면 그들은 하루에 1유로 (한화로 1,600원정도)만 있으면 생활이 가능하다고 하니 얼마나 생활수준이 열악한지를 알 수가 있었다. 외관상으로는 기초 인풀라 시설인 도로망 구축은 그런대로 잘 된 것 같았다. 광활한 들판과 비옥한 토지 등 자연자원이 풍부한 이용가치가 많아 개발의 여지가 크다고 느껴지는데 가이드 말에 의하면 이 나라는 외국인이 투자를 한다 해도 현지법으로 외국환 송금이 금지 되어 있어서 달러를 반출할 수없는 판국이라 외국의 투자를 기대할 수없는 아쉬움이 있었다.
페스는 수도 라바트의 동쪽 160㎞, 리스 산계(山系)의 남쪽 기슭에 있고 801년 이드리스왕조의 2대 이드리스2세가 수도로 삼고, 마그레브에서의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후 1276년에 마리니드왕조가 라바트에서 새로운 페스를 건설하였다. 대서양 연안의 카사불랑카나 라바트에서 지중해연안의 알제로 통하는 대상로의 요지로서 독자적인 상공업이 발달되고 있다.
페스를 관광 후 모로코 대서양 연안에 있는 항구도시 카사불랑카로 이동(페스~카사불랑카 약 4시간 소요)하여 석식 후 호텔(La Corniche)에 투숙함.
나의 편견으로는 모로코는 아프리카대륙 국가이니 당연히 사람들은 흑색인종이 대부분 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가서 보니 흑인은 볼 수 없고 백인이나 아랍인들로 거리는 꽉 차 있었다. 북쪽 아프리카라 유럽인들이 왕래가 빈번하고 역사적으로도 유럽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모로코 뿐 만 아니라 아프리카 북부국가들은 이집트, 튀니지, 리비아도 비슷하다고 한다. 밤거리도 유럽풍이 그대로 적용 되여 그다지 낮 설지 않은 시가지를 볼 수 있었다. 특히 탕헤르의 호텔방에는 우리나라 LG TV가 설치 되여 있어 무척 반가웠으며, 페스의 식당에서는 종업원이 88올림픽 때 유행되던 “대한민국 대한민국” 하며 박수치며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우리나라의 국력이 그만큼 신장 되였음을 알려 주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된다. 모로코에는 휴게소마다 화장실을 이용할 때는 개인별로 1유로씩 돈을 내야만 하는데 개인별로 내면 지출이 크므로 가이드가 제안하기를 우리일행이 22명으로 방이 11개로 배정되여 있어 방별로 추첨을 하여 당첨되는 방이 2로씩 내면 22명 모두가 동시에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으니 그렇게 하자고 하여 휴게소 마다 화장실 사용료를 지불하는 추첨이 버스 안에서 모로코를 떠날 때 까지 7번 계속 되였으나 나는 화장실 사용료를 지불하는 추첨에서는 다행스럽게도 걸리지 않는 영광(?)을 얻었다. (조식-호텔식, 중식-현지식, 석식-호텔식)
제5일차인 4. 18 금요일 카사블랑카는 모로코 최대도시 로서 15세기에 이 도시를 건설한 포르투갈인이 붙인 이름으로 하얀 집이라는 뜻이다. 20세기에 들어와 서구풍 으로 크게 개조 되여 고층건물이 많아지고 거리는 차와 사람들로 번잡하다. 그러나 해안으로 나가면 호텔들이 즐비하고 해변에서는 사람들이 한가롭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상업도시이면서도 휴양지라는 양면성이 카사블랑카의 특징이다. 이날도 역시 모닝콜4시, 식사 5시, 출발6시로 서두르는 날이 되었다. 아침을 먹은 후 카사블랑카 거리를 구경하며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모하메드5세 광장, 세계 모스크 중 가장 높은 하산 메스키타등 간단한 시내관광을 한 후 탕헤르로 이동하여 페리호를 타고 스페인으로 향할 계획 이였다
일기예보는 매일같이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하였는데 우리일정은 다행이도 관광할 때는 비가 그치고 버스에 승차하여 이동 중에는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등 하늘의 돌보심이 있어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차중에서 가이드가 연락이 왔다면서 하는 말이 바다의 기상이 나빠서 스페인으로 돌아가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하여 긴장하였는데 다행이도 쾌속 페리는 운항이 중지되고 다른 페리를 타고 무려 2시간 20분 만에 목적지인 스페인의 Tarifa로 못가고 타리파에서 좀 떨어진 항구인 알헤시라스(Algeciras)로 가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 이였다. 배에서 나려서 저녁을 먹고 세비야(Sevilla)에 도착 호텔(Pigasso) 밤 12시 경에 투숙 하였다.
밀항자 진드기 소동
여기서 진드기 얘기를 좀 해야겠다. 모로코는 못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하루에 1유로만 있어도 생활을 하는 열악한 환경 때문에 가급적이면 돈을 많이 벌어서 호화롭게 살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지라 모로코의 12~ 18세 소년들이 유럽에 가려면 돈이 많이 소요되는데 돈은 없고 가기는 가야겠고 해서 관광버스가 출발하기 전날 밤에 스페인으로 향하는 버스나 트럭에 몰래 침입해서 차의 하부를 뜯고 조립해서 바퀴위에나 다른 좁은 공간에 들어가서 간단한 음료와 빵을 준비해서 밀항을 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 버스에도 밀항자가 4~5명이 버스에 진드기처럼 붙어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다. 나는 정말일까 하고 의아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작 탕헤르에 도착하여 배에 승선하기 직전에 모로코 경찰이 버스를 삿삿히 검색한 결과 3명의 소년이 나와서 도망 하는 것을 목격하고 놀람을 금치 못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도망가는 소년을 경찰이 체포하지 아니하고 그냥 내버려 두고 밀항만 봉쇄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었다. 도망간 진드기는 다른 버스나 화물차에 곧 익숙하게 스며들어 밀항을 계속할 것이다. 이곳에서는 밀항하려는 자들을 버스를 조작해서 붙어간다고 해서 스페인어로는 “미캐니코(mechanico)”, 영어로는 “미캐니시얀(mechnician)” 즉 “기계수리공”이라는 뜻의 이름을 붙였고 우리나라 말로는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하여 “진드기”라고 한다. 이런 자들이 밀항에 성공하면 스페인이나 이태리등 유럽지역에 퍼져서 쓰리등 도적질을 하여 돈을 벌어서 귀국한다고 한다. 그게 웃지 못 할 사건이고 현실 이였다. (조식-호텔식, 중식-도시락, 석식-호텔식)
제6일차인 4. 19일 토요일 세비야(Sevilla)는 Madrid에서 남서쪽으로 540㎞떨어진 곳에 위치한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내 세비야州의 주도로서 스페인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다. 도시를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는 과달키비르강(Guadalquivir)의 상류연안에 자리 잡은 이곳에는 오늘날 70만 명에 가까운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과거에 이 곳 세비야항은 스페인과 아메리카 대륙간 무역거래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지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후 새롭게 태어난 항구들에 의해 중요도가 과거보다 약화되긴 하였으나 현재까지도 세비야는 이베리아 반도의 항구중 대표격으로 그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이날은 비가 유독 많이 내려 관광하는데 큰 차질을 빚고 말았다. 억수같은 비를 맞으며 스페인광장을 가보니 배수가 안 되여 광장일부가가 물에 차여 보행이 불편함을 느꼈다. 마리우 루이사 공원, 황금의 탑과 세계3개 대성당중 하나인 세비야성당은 그야말로 2천㎏이나 되는 많은 금으로 장식된 내부의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비야 대성당 안에는 저 유명한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한 콜럼부스가 잘 안장, 보존 되여 있었다. 간단한 시내관광을 한 후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으로 이동하여 석식 후 호텔(Londres)에 투숙하였다.
포르투갈(Portugal)은 수도를 리스본(Lisbon 인구 약200만명-- 현지에서는 Lisboa라 한다. 리스본은 일본사람들이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함)으로 하고, 전국의 인구는 약 1천70만명, 면적은 92,131㎢(한반도의 약 2/5)의 적은나라로, 주요도시는 뽀로토(Porto)와 꼬임브라(Coimbra)이고, 주요민족은 이베리아족, 켈트족, 게르만족 및 무어족 등의 혼혈민족이고 ,언어는 포르투갈어(Portuquese)이고 종교는 카톨릭이다.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매우 저렴하고 매혹적인 나라이다. 과거에는 해양생활을 했던 나라로 뛰어난 해변 휴양지, 멋진 도시와 자연경관이 올리브농장과 포도원, 밀밭사이로 펼쳐져 있다. 포르투갈은 40년간의 독재정치를 겪으면서 유럽영향력의 중심과 현대적인 생활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북유럽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갈 수 있는 여름철 휴양지로 선호되면서 발전하였다.
북부와 중부지방은 인구밀도가 높으며 산악지대로 강, 계곡, 숲과 산이 많다. 숲이 우거진 북부에는 많은 포도재배지역이 있고 옥수수, 감자, 호밀 등이 재배된다. 남부지방에는 숲은 적지만 올리브, 포도재배지, 오렌지와 무화과나무가 풍부하고 봄에는 아몬드가 만발하다.
공용어는 포르투갈어 이지만 관광지나 호텔 또는 레스토랑에서는 영어와 불어도 통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포르투갈인은 카톨릭을 믿고 있다. 종교적인 큰 축제일은 휴일로 정해져 있다. 가장 중요한 축제인 카니발과 부활절 기간 동안 포르투갈 여행하는 것 또한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여행성수기는 6월 중순부터 9월까지이다. 축구를 열광적으로 좋아한다. 남녀차별이 심하지 않고 가정생활을 중시하며 자녀는 많이 두지 않고 나이든 부모를 모시고 사는 풍속이 있다.
기후는 대서양에서 부는 바람의 영향으로 해안지방의 기후는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에 서늘하고 온난하다. 본토의 중앙을 흐르는 테주강을 경계로 북부의 산악지방은 강우량이 많고 습도도 높은데 비해 남부 대서양쪽은 화창하고 건조하여 지내기 좋다. 유럽에서 가장 햇볕을 많이 쪼일 수 있는 나라로 손꼽힌다. 일반적으로 4월부터 10월까지는 따뜻하다. 보통 눈은 산악지역에 내리고 스키시즌은 1월부터 3월까지 이어지는데 그중 2월이 가장 적당하다.
포르투갈과 스페인과의 시차는 1시간(포르투갈 오전5시면 스페인은 오전6시)으로 우리나라와는 8시간 차이가 난다.
여행을 일주일째 하며 보니 이곳 유럽은 운전자들이 운행규정을 아주 철저히 지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절대로 무리하게 운행하지 않고 2시간 달리면 15분 휴식, 계속해서 2시간 이상을 달리면 30분씩 휴식을 취하고 있음을 볼 때 우리나라처럼 난폭운전이나 무리하게 피로도 잊은 채 과로운행으로 일어나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경찰의 단속도 중요하지만 운전자가 이를 철저히 지키는 마음이 대견스러워 보였다. 차에 부착된 “타고미터”를 점검 시 휴식시간을 제대로 이행했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6일을 계속 운행하는 경우는 반듯이 하루를 의무적으로 쉬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의 버스기사 카롤로스도 내일이면 교대한다고 했다. 시간이 좀 급하여 우리 일행이나 가이드가 쉬는 것을 생략하거나 휴식시간을 줄이도록 해보려고 운전자에게 말을 해봐도 카로로스는 말을 듣지 않고 철저히 운행규정을 이행할 뿐 이였다. 그리고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에는 출입국시 그냥 버스가 통과하고 별도의 신고나 검문이 없이 자유로이 통행이 허용되고 있었다.
리스보아에의 호텔에서 서울을 떠난지 6일 만에 처음으로 서울에 나의 셋째딸 惠英과 안부 전화통화를 했는데 무고하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하였는데 장거리인 국제통화인데도 서울시내 처럼 감도가 좋았다.
(조식-호텔식, 중식-중국식, 석식-호텔식)
제7일차인 4. 20 일요일 조식 후 유럽의 최서단이며 우리나라의 땅끝마을인 전남 해남군 土末里와 같은 포르투갈의 땅 끝 마을인 까보다로까(로까곶)으로 이동하여 해변절벽위에서 대서양을 관망한 후 리스본으로 귀환하여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제로니모스 수도원, 벨렘탑, 아름다운 프랑스식 정원인 에두아르도 7세공원, 로시우광장 등 간단한 시내 관광후 성모 마리아 발현 후 성지로 유명해진 파티마로 이동하여 대성당등 관광 후 석식 후 호텔(Cinquentenario)투숙
성모 마리아 발현지를 찾아
가이드 말에 의하면 1917.5.13 이곳 파티마(Fatima)에서 양치기 목동 루치아 (당시 10세 여)와 그의 사촌동생 프란치스코(남)와 히야친타(여) 3인이 쉬고 있는데 성모 마리아가 발현하여 “앞으로 3대 기적이 일어나고 이곳에 대성당이 건립될 것이다”라고 예언 했다고 하는데 그 후 6.13, 7.13, 8.13, 9.13과 10.13 도합 6차례에 걸쳐 발현 하여 그 결과로
-1918. 5. 13 제1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었고
-목동들이 앓고 있던 불치병이 완치 되였고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저격사건이 발현일과 동일한 날인 1981. 5.13 일어났으나 생명은 무사하게 된 일들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대성당이 건립 되여 성지가 되었다.
성모마리아의 발현했다는 소식이 퍼졌으나 아무도 이를 믿지 않으려고 해서 처음엔 목동들의 가족부터 친지로 펴져 마을 사람들이 같이 발현장면을 목격했는데 마지막 발현한 10. 13에는 인근 주민이 7만여 명이 참석하여 확인하므로서 1930. 5. 13 로마 교황청에서도 성모발현을 입증 하였다고 한다.
우리 일행 중 누가 말하는데 특히 목동중 루치아는 보고 듣고 말하고 했는데 수녀가 되어 일하다 최근에 93세로 작고했다고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목동중 프란치스코는 보고 듣기만 했다고 하는데 1919.4.4에 선종했고, 히야친타는 보기만 했는데 1920.2.20에 선종했다고 한다. 해마다 발현일인 5.13에는 세계 각국에서 순례자들이 수십만명 씩 몰려들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기도장에서는 어떤자가 무릎으로 바닥을 기어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기어가면서 기도를 드리면 소원성취 된다고 한다. 소원이 성취되는지 여부는 확인되지는 않았다.
성당내 도로와 광장은 모두 흰돌을 깨어서 만든 보도 부럭으로 사용함을 볼 때 자연석을 활용하여 예산을 절감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조식-호텔식, 중식-중국식, 석식-호텔식)
제8일차인 4. 21 월요일호텔 조식 후 대학도시인 실라망카를 경유하여 중식 후 옛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시인 아빌라로 이동하여 간단한 시내관광 후 마드리드(Madrid)에 도착 석식 후 호텔(Holiday inn express rivas)투숙. (조식-호텔식, 중식-중국식, 석식-한식)
제9일차인 4. 22 화요일호텔 조식 후 고야의 고향인 사라고사(Zaragoza)로 이동 바실리카 필라르 대성당, 필라르 광장, 로마시대 때 만들어져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성벽 등 간단한 시내 관광 후 바로셀로나로 가는 도중 어느 휴게소에서 보니 우리의 LG 컴퓨터가 설치 되여 있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과 우리국력이 얼마만큼 신장 되였는지를 알 수 있었다. 가우디의 숨결이 느껴지는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여 석식 후
호텔(Les torres)투숙 (조식-호텔식, 중식-현지식, 석식-호텔식)
제10일차인 4. 23 수요일바로셀로나(Barcelona)는 스페인에서도 꽤나 부유한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과는 매우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물가도 좀 비싸고 어느 관광지를 가나 무료입장은 거의 없다. 그러나 곳곳에 산재해 있는 다양한 볼거리는 유럽의 그 어느 도시 못지않다.
스페인이 낳은 천재 건축가인 가우디의 최후의 작품인 사그라다 파일리아(성 가족성당)는 앞으로 200년 후에나 준공될 것이라고 하는데 매우 웅장해 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있었고,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가우디 설계의 구엘공원을 관광, 바르셀로나 최대의 번화가인 람블라스 거리에 와보니 2층 버스위에 지붕이 없는 관광버스가 운행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고, 1992년에 개최한바 있는 바르셀로나 올림픽경기장으로 가서 경기장의 각종 시설을 둘러보고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황영조 선수의 모습이 새겨져있는 황영조상 옆에서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황영조상을 만들은 돌은 한국에서 직접 수송하여 제작했다고 한다. 바로셀로나 시내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몬쥬익 언덕 등 관광 후 공항으로 이동하여 JK459 항공기편으로 마드리드(비행시간 1시간20분 소요)에 도착 석식 후 호텔(Holiday inn express rivas)투숙
(조식-호텔식, 중식-현지식, 석식-중국식)
제11일차인 4. 24 목요일 Madrid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문명과 오리엔트적 요소가 잘 결합되어 있어 그 매력을 더하고 있으며 고색창연한 건축물과 미술관, 박물관,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고, 거리에는 옛날 모습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나 신시가지에 들어서면 현대적인 빌딩거리가 펼쳐지며 교외에는 공장과 고층건물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로 주변으로 팽창해 나가는 대도시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 푸에르타 델솔, 스페인광장, 왕궁, 그란비아 거리등을 관광함. 왕궁내 소장된 유물을 들러보니 옛날의 무적함대를 자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철갑장신구와 말을 탄 장군들의 의상 등 그 거대한 역사의 힘을 실감나게 하였다. 어쩌면 그리 보존을 잘해두었는지 감탄할 뿐 이였다.
그렇게 막강했던 무적함대를 자랑하던 스페인이 어찌하여 조그마한 섬나라 영국에게 무참이도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었는지? 아마도 군사력이 뒤져서 그렇게 된 것 같다고 생각된다.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유네스코 지정 관광도시인 똘레도(Toledo)로 이동하여 엘그레꼬의 명화가 소장되어 있는 산또또메 대성당, 똘레도 대성당, 구시가지등 시내와 번화가인 그란비아 거리를 관광하였는데 특기할 것은 거리에는 아스콘 포장이 아닌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서 만든 돌불록을 전면 깐 것은 고대도시의 정취를 맛보게도 하였다. 똘레도(Toledo)는 비록 그리 크지는 않은 도시이기는 하지만 스페인 남부의 정치, 경제, 사회중심지로서 풍부한 문화유산을 지닌 곳으로도 똘레도의 장구한 역사를 통해 형성된 독특한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석식 후 인천행 KE914를 탑승한 후 마드리드를 22:20 에 이륙함--기내박 (조식-호텔식, 중식-현지식, 석식-한식)
제12일차인 4. 25 금요일 마드리드를 이륙하여 인천공항에 17:50 무사히 도착하여 버스로 귀가하려고 공항수속을 필하고 대합실로 나오니 연락도 없었는데 뜻밖에도 나의 셋째사위인 朴聖水가 그의 딸 世恩이를 데리고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와 같이 서울로 편안하게 돌아 와 12일간의 긴 여정을 마치니 여행을 주선해준 아이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여행을 끝내고 소감을 다시 한 번 정리해서 말한다면, 내가 가보고 싶었던 지중해와 지부랄탈해협을 건너 아프리카 땅 모로코를 밟아 보았다는 사실은 아주 낭만적이고 인상적인 잊지 못 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감개무량하기만 하였다. 그리고 운전자들의 안전운행을 위한 운전법규의 철저한 이행과 준수하는 모습이 돋보였고, 유럽인들이 역사의 현장보존을 잘해서 후세에 까지 관광자원으로 잘 활용하고 있는 점 우리가 배울만한 것 들이였다. 그리고 여행 시 우리는 무턱대고 외국비행기 보다는 우리나라 비행기로 가면 돈은 더 들더라도 편한 여행이 될 줄 알았는데 막상 스페인 여행은 외국 비행기로 가는 것 보다 돈도 더 들었을 뿐만 아니라 매일 같이 하루도 안 빼고 짐을 가지고 다니는 불편을 격기도 했으므로 차후 외국 여행 시 꼼꼼히 점검한 후 예약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식당마다 종업원들이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라고 한국말로 인사하는 것을 보았는데 우리나라가 그만큼 국력이 신장 되였다는 것을 볼 때 자긍심을 느끼기도 했다. 가는 곳마다 대성당을 관광코스에 넣어 필자와 같은 천주교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짜증스러운 일이기도 했으며, 물을 계속 개인별로 매일 사먹어야 하는데 이는 여행사에서 일괄 물을 구입하여 제공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그리고 여행안내 책을 잘 읽어보고 그 지역의 사정을 미리 살펴보고 가는 것이 유익한 여행이 되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