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샬롬!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길 소망합니다. ‘화장실에서 지켜야 할 습관’ 두 번째는 ‘변기뚜껑 닫고 물 내리기’입니다. 물 내릴 때 변기 속의 물이 튀는데, 이때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물방울이지만, 그 안에 엄청난 세균이 득실거린답니다. 이 세균은 변기주변과 수건과 칫솔에도 묻어서 더욱 위험하다고 하네요.
(기자)나이 들면 저도 선생님처럼 남을 좀 웃길 수 있을까요?
(시인)개그맨 같죠? 하하. 그런데, 나이 들어서 웃기는 게 아니라, 은혜 받아야 웃길 수 있어요. 한 번쯤 죽었다가 살아나야 해요. 송해 선생이 그랬잖아요. ‘땡을 맞아봐야 딩동댕의 가치를 안다’고. 마이너 없는 메이저 없어요! 고통 없는 웃음이 어디 있어요? 그래서 살아날 보장이 있다면, 젊어서 한 번쯤 죽을병에 걸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62살 때, 저는 쓸개가 터져서 뱃속이 다 썩었어요. 10만 명 중의 한 명 정도 살아날 병이었는데, 명의를 만나 살아났어요. 그 후에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라는 시집에 이런 말을 썼어요. ‘버림받은 마음일 때에만 들리는 소리가 있다/힘들고 지치고 고달픈 날들/ 너도 부디 나와 함께/ 인생은 ‘고행’이 아니라/여행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구나!’
(기자) ‘고행을 여행으로 바꾸는 작은 정성에, 독자들은 감동하고 지지를 보낸다.’고 했습니다. 커브를 돌 듯, 이어령 선생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시인)이어령 선생의 유고시집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를 보면, 그 서문이 명문이에요. 눈 감기 며칠 전, 편집자에게 불러줬다지요. 저는 그분이 ‘평생 이야기장사꾼에 새것만 좋아하는 분’인 줄 오해했는데, 그 시를 읽고 감동했어요. ‘네가 간 길을 내가 간다./ 그곳은 아마도, 너도 나도 모르는 영혼의 길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지, 우리 것이 아니다.’ 먼저 여읜 딸하고 아버지가 책에서 하나가 됐어요. 그래서 올봄에 돌아가신 후, 제가 한참 마음이 힘들었어요.
(기자)마지막으로,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좋겠습니까?
(시인) ‘달라이라마’는 ‘무욕(無慾)이 아니라, 탐욕(貪慾)만 안 부려도 좋다’고 했어요. 세상이 번쩍거려 보여도 다 별거 없어요. 만족 못하고 비교하면, 너도나도 별수 없어요. 너무 잘하는 거, 잘 되는 거, 찾아 헤매지 마세요. 좋아하는 거 있으면, 그거 하세요. 보여주려는 마음이 앞서면, 자존심 상하고 상처만 입어요. 좋아하는 거 하면, 하다가 그만둬도 상처 안 받아요. 자존감이 남습니다.(출처; C닷컴, 시인 / 나태주, 기자 / 김지수)
얼마 전에 돌아가신 송해 선생이 말씀했다는 “땡을 맞아봐야 딩동댕의 가치를 안다”는 대목이 제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리고 나태주 시인의 시(詩) “힘들고 지치고 고달픈 날들/ 너도 부디 나와 함께/ 인생은 ‘고행’이 아니라/ ‘여행’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구나!”하는 시구(詩句)가 제 마음을 흔들어놓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누군가와 함께라면, 우리 인생은 ‘고행’이 아닌 ‘여행’일 수 있습니다. 부디 우리 인생을 ‘고행’이 아닌 ‘여행’삼아서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물맷돌)
[야곱이 말했습니다. “제가 나그네처럼 이 세상을 떠돌아다닌 햇수가 백삼십 년이 되었습니다. 제 조상들보다는 짧게 살았지만,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삶이었습니다.”(창47:9,현대어, 현대인, 쉬운성경 종합) 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은 장차 우리가 누릴 영광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롬8:18,현대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 자신만의 ‘보물’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오늘은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處暑)입니다. 그리고 처서가 ‘땅에서는 귀두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는 말도 있답니다. 어쩌면, 오늘 이후에는 모기물릴 염려가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늦더위가 무섭다’는 것 잘 아시겠지요? 아무쪼록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저는 수첩과 볼펜을 항상 들고 다닙니다. 그래서 누군가 저에게 사소한 도움을 주거나 조금이라도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면, 그때그때 메모하고 있습니다. 신병(新兵)이 이제 막 전입 와서 맞선임(자신보다 바로 앞에 전입해온 병사)이 알려주는 내용들을 열심히 받아 적듯이, 저는 ‘감사일기’를 위한 메모를 빠짐없이 적어나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그간 써 내려간 수첩을 살펴보니, 하루에 족히 세 장이 넘어가는 분량이 적혀 있었습니다. 저의 하루가 이처럼 수많은 이의 도움이 있었기에 행복하고 평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지만, 놀라운 깨달음을 얻은 순간, 또다시 부끄러운 감정이 솟구쳤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제게 선행을 베푼 이들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인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형식적이고 기계적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내뱉는 것이 아닌, 진실한 마음을 담아 감사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식사 후 복귀하면서 커피 한 잔 사다주신 주무관님부터 시작해서, 생일축하를 해주신 인사행정과 간부님들, 그밖에 하나하나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저의 하루를 소중하게 채워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공짜는 없어. 알베르토!”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배트맨의 대사입니다. 영화주제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중요한 대사는 아니지만, 이 말이 저에게 주는 교훈이 컸습니다. 영화 속 ‘고담’이라는 도시의 평화는, 사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배트맨이 정의를 수호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일상 속에서 누리는 ‘크고 작은 행복들’도 그 누군가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다만 ‘고담’에는 배트맨 한 사람뿐이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서로 도와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덧 하루의 중요한 일과로 자리잡은 감사일기 쓰기, 고마운 사람들로 가득한 ‘감사일기’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저 자신만의 보물’이 되었습니다.(출처; 샘터, 김도현 / 육군병사)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결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사람마다 좀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서로서로 도와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고비 때마다 나타나서 도와주는 ‘천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보답으로, 저도 나름 볼품없는 천사의 모양이라도 내보려고 하나, 그게 쉽지 않습니다. 아무튼, 저로서는 감사할 일이 참 많습니다. 혹시라도 불평할 일이 생기면, ‘감사했던 일들’을 억지로라도 떠올립니다. 사실, 제가 정말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건만, 참으로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살아왔고, 지금도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무엇보다, 지금까지 저를 지켜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물맷돌)
[어찌 입 다물고 있을 수 있나요? 입 벌려 주께 노래 부르지 않을 수 있나요?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 영원토록 이 고마움 어찌 다 말 하리요?(시30:12,현대어)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뜻입니다.(살전5:18,현대어)]
세상에는 무례하게 대해도 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샬롬! 어저께 주일은 은혜로이 잘 보내셨는지요? 이번 한 주간도 내내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부터 ‘화장실에서 꼭 지켜야 할 습관 6가지’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그 첫째로, ‘용변 시 스마트폰 보지 않기’입니다. 용변을 볼 때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오랜 시간 앉아 있게 되면, 항문 건강에 치명적이라고 합니다. 치핵 또는 치질이 발생할 위험이 있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는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이가 많습니다. 상대의 안부는 궁금해하면서 자신의 안부는 묻지 않습니다. 상대의 감정이나 욕구는 중요하게 여기지만,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상대의 고통은 돌보지만, 자신의 고통은 오히려 후벼 파버립니다. 이렇듯, 상대에게는 예의 바르지만, 자신에게는 무례한 사람이 참 많습니다.
이들에게 친절은 늘 밖으로 향할 뿐입니다. 왜 자신에게 불친절한지 물어보면, 이들은 이렇게 답합니다. “잘하는 것도, 마음에 드는 점도 없는데, 어떻게 친절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친절한 이유는, 그 사람이 꼭 마음에 들어서도 아니고, 어떤 일을 잘해서도 아니며, 더 나아가 그를 존경해서도 아닙니다. 그것이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친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자신이 마음에 들거나 무언가를 잘해서도, 자신을 존경해서도 아닙니다. 아무런 선택권도 없이 이 세상에 던져져서, 어떻게든지 잘 살아보려고 애쓰는, 자기 자신에 대한 예의인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자신이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평생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친절하지만 자신에게 불친절한 사람을 ‘신경증’이라고 진단합니다. 아동기에 겪은 부정적인 경험 때문에 ‘자신을 탓하는 방어기제’가 지나치게 발달한 것입니다. 이들은 무슨 일만 있으면 자기 탓을 하도록 습관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무례하게 대해도 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라도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정하고 지켜보도록 합시다. 몸이 아프면 잘 챙겨주기, 힘든 일이 생기면 자신을 비난하지 않기, “안녕!”하고 거울 속의 나에게 인사하기. 이 3가지는, 내가 가진 ‘나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입니다.(출처; 좋은생각, 문요한 /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이 글을 읽으면서, 저도 ‘그동안 저 자신에게 참 무례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신앙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과제’는 이기심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죄가 ‘이기심(利己心)’에서 발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기심과 자기애(自己愛)는 구분해야 할 겁니다. 이기심은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그 자신에게도 결국은 피해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적극 멀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애는 ‘자신에 대하여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禮儀)’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진정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타인도 사랑할 수 있으리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결코 사랑할 수 없지 않겠나 싶습니다.(물맷돌)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마19:19) 남편들도 아내를 제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엡5:28,현대인)]
‘나(我)’라는 사람이 싫었습니다! 삶은 갈수록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샬롬!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8월의 세 번째 주말 아침입니다.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날이 되시길 빕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상추를 제일 많이 먹는답니다. 그런데, 상추에는 효능이 엄청 많답니다. 스트레스 해소, 눈 건강(루테인 성분 포함), 통증완화, 피로회복, 몸 속 독소 제거, 피부건강, 숙취해소, 이뇨작용, 변비완화, 불면증예방, 빈혈예방(출처; 마음건강 길)
사람들이 종종 저에게 “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되었습니까?”하고 묻곤 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그 무엇보다 저 자신이 정신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사춘기를 지나 우울과 불안이 커지면서, ‘나(我)’라는 사람이 싫었습니다. 삶은 갈수록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대학시절 내내 자기비난과 자기학대에 빠져 살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나는 왜 나를 이렇게 함부로 대할까?’ 혼자서는 도저히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답을 얻고자, 저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왜, 나 자신을 함부로 대하게 되었는지? 자신과의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하나하나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단지 고통이 커서 상담실을 찾는 게 아닙니다. ‘그 고통 속에 혼자 있다’고 느낀 나머지, 그런 자신을 돌볼 수 없기 때문에 상담실을 찾습니다. 이들은 고통 받는 그 자신을 외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비난을 퍼붓습니다. 고통에 고통을 덧붙이는데 익숙합니다. 심지어, 힘든 일이 생기면 ‘정신 차리라’는 미명하에, 자기 뺨을 때리거나, 머리카락을 쥐어뜯거나, 날카로운 것으로 자기 몸을 긋는 등, 자해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자기 연민이나 자기 친절은커녕, 스스로를 해치고 있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최소한의 예의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를테면, 처음 만난 사람끼리 존댓말을 하거나, 줄을 서서 순서를 지키는 것 등이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가까워도 ‘해서는 안 될 말’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아프거나 힘든 일을 겪을 때에는, 우리는 상대를 걱정하면서 친절을 베풉니다. 잘해주지는 못할망정, 적어도 ‘꼴좋다!’라고 비아냥거리거나 ‘이 바보야!’하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는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이가 많습니다.(월요일 아침에 계속)(출처; 좋은생각, 문요한 /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우리는 초등시절부터, 소크라테스가 말했다고 하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이해하기 아주 쉬운 말인 듯하나, 사실은 정말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경구(警句)였습니다. 어쩌면, 그 주변 사람들은 거의 다 알고 있는 ‘그 자신의 문제’를, 자기 자신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뒤통수조차 제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특히 ‘인간의 마음’을 의미하는 ‘창자(애)’는 더더욱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결코 ‘나 자신’을 안다고 말할 수가 없을 겁니다. 하건만, 자기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우리는 그 누군가를 잘 아는 것처럼 ‘함부로 평가하거나 비난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른 그 누구에 대하여’ 쉽게 단정해서 말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물맷돌)
[‘어떻게 살아가야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그걸 알려고 애쓰는 자는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깨달음을 지니지 않고(지혜를 얻지 못하고) 한평생을 어찌 살아가랴!(잠19:8,현대어) 여러분의 몸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성령의 집이며,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살고 계신다는 것을, 아직 모르십니까?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고전6:19,현대어)]
당신은 다른 사람을 얼마나 기쁘게 해주고 있습니까?
샬롬! 지난밤도 평안하셨는지요?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그래선지, 매미는 더욱 극성스럽게 울어대고 있습니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고마워 우울증’이라는 책을 쓴 일본 의사는 “몸과 마음이 엉망이 되어버리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했다”고 하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계속 그 일을 하다가 힘들어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말기 암에 걸려 병실에서 마주한 두 노인이 서로의 인생에서 마지막 친구가 되어준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카터’와 ‘에드워드’의 만남은 ‘죽음을 앞둔 인생’에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쓴 버킷리스트는 하나하나가 ‘지나간 삶에 대한 후회와 갈망의 정산표(精算表)’와도 같은 것으로, 두 노인은 그것을 실행해나가면서 서로를 향하여 마음을 열고 마침내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이 이집트 피라미드에 올라가서 나눈 대화는, 노인이 친구에게만 할 수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카터는 에드워드에게 ‘고대 이집트인들이 죽음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영혼이 하늘나라에 가면 하나님께로부터 두 가지 질문을 받게 되는데, 그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여부’가 결정된다는 겁니다. 그 첫째 질문은 ‘당신은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이고, 둘째 질문은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었는가?’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 카터가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장례식에서 에드워드가 추모사를 했는데, 그는 ‘카터와 함께 한 시간이 인생최고의 시간이었다.’고 하면서, 그 이유가 ‘진정한 친구를 옆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저에게 버킷리스트를 묻는다면, 저는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임종할 때 곁에 있어 줄 친구를 두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사랑하는 친구의 임종순간에 그의 인생을 격려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 ‘인생의 좋은 친구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처럼,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잠27:17)”(출처; 빛과 소금, 강진구 / 영화평론가)
카터와 에드워드가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제 죽음을 앞둔 그들이 이 세상에 대한 미련과 욕심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나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고 기쁨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럴 때, 좋은 친구가 자연스레 가까이 하리라고 봅니다. 요컨대,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한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물맷돌)
[나는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친구가 됩니다. 나는 주의 법도를 지키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친구가 됩니다.(시119:63,표준)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친구로 만들어주려고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덕분입니다.(롬5:11,현대어)]
어머니는 힘든 일이 생겨도 웃으면서 일을 해결하곤 하셨습니다.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오늘 하루도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은 다시 한 번 나태주 시인의 시(詩) 한 편을 소개함으로써 하루를 열어갈까 합니다. ‘봄의 들판 / 여름의 언덕 / 가을의 나무 / 아, 겨울의 눈 / 그리고도 흰 구름과 바람과 / 별과 새들과 강물과 / 너 한 사람! /
이 세상에 와서 내가 만난 가장 빛나고도 서럽고도 아름다운 항목들.’
꼭 되고 싶었던 교환학생 결과 발표 날이었습니다. “조건부 합격.” ‘조건부’라는 말이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모든 비용을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어려운 친척들을 살피느라, 저를 뒷받침해 줄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결국 다른 사람에게 그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집에 가니, 어머니께서 ‘콩나물잡채를 해 놨다’며 말갛게 웃으셨습니다. 10년 된 낡은 앞치마를 두른 채였습니다. 순간, 짜증이 났습니다. 저의 환경이 구질구질하게 느껴졌습니다. 제 표정을 눈치 챈 어머니께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이때, 제 입에서 모진 말이 나왔습니다. ‘이런 집이 아니었다면 더 행복했을 거’라고. ‘돈 걱정하며 사는 게 지긋지긋하다’고.
저는 친구와 술이나 마실 요량으로 현관문을 나섰습니다. 어머니께서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따라 나와 제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셨습니다. “아들, 이걸로 든든한 안주 사 먹어!”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어머니께서 주신 돈이 만져졌습니다. 꾸깃꾸깃 접힌 만 원짜리 세 장이었습니다. 문득 물건을 살 때마다 고민하면서 돈을 꺼냈다가 도로 넣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어머니는 힘든 일이 생겨도 웃으면서 일을 해결하곤 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대단해보이면서도, 속으로는 좀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구겨진 돈처럼, 어머니도 때로는 움츠러들었을 겁니다. 그럴수록 마음을 펴면서 스스로를 다잡았을 것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어머니처럼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단단한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비록 주머니 속 돈은 꾸깃꾸깃하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활짝 펴진 어머니처럼 말입니다.(출처; 좋은생각, 이윤석 / 경기도 양평군)
위의 글에서 ‘어머니는 힘든 일이 생겨도 웃으면서 일을 해결하곤 하셨습니다.’라는 글이 제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유무(有無)를 떠나서, 현재 주어진 상황을 일단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가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고 여겨진다면, 새로운 돌파구를 부지런히 찾아봐야 할 겁니다. 징검다리를 건널 땐, 현재 발을 딛고 있는 ‘그 돌을 잘 딛고’ 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밟아야 할 돌’을 바라봐야 합니다. 아무튼, 좋으신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심을 믿고 의지하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열심히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물맷돌)
[여러분은 이런 은사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얻도록 최선을 다하십시오. 이제 나는 이러한 은사보다 더 나은 것을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고전12:31,현대어) 만일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주께서도 여러분에게 응분의 보상을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께서는 꾀를 부리는 자들을 특별히 눈감아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골3:25,현대어)]
언젠가부터 드라마를 보면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샬롬!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이제 입추와 말복이 지났으니, 조금씩 기온이 떨어지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래도 무더위는 여전할 겁니다. 오늘 하루도 내내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1938년생 가수 현미 씨는 아침밥 대신 3잔 마시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첫째 잔은 생수 한 잔, 둘째는 선식, 셋째는 토마토나 사과주스 한 잔을 마신다는 겁니다.
언젠가부터 드라마를 보면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드라마 보고 우는 사람을 놀리는 쪽에 속했는데, 이제는 울면서 ‘누가 놀릴까?’ 눈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거실에는 어차피 아내와 아이들이 있을 뿐인데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눈물을 보이는 제 모습을 낯설어할 것 같습니다. 아니 무엇보다도, 저의 눈물에 제가 낯설어하고 있습니다. 엉엉 우는 남편이라니,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는 아빠라니,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최근 저로 하여금 울게 만든 드라마는 ‘우리들의 블루스’입니다. 원래 좋은 각본을 쓰기로 유명한 노희경 작품에,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이 총출동해서 방송 전부터 화제를 모았습니다. 조금은 비밀스러운 역할의 쌍둥이 언니가 알고 보니 다운증후군을 가진 장애인이고, 두 자매가 제주도에서 만남으로써 ‘사건이 발생’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울 준비를 하고서 본방송을 기다렸고, 이번에는 아내와 아이에게 숨길 마음 하나 없이 손목으로 눈 아래를 닦다가, 휴지로 코를 풀다가, 결국은 소리내어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매번 우는 것만은 아닙니다. 머지않아 곧 종영하게 될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볼 때에는 입가에 미소가 가시질 않고 있습니다. 지상파방송국에 편성되지 못하고 새로 생긴 신생채널에서 방영되고 있지만, 첫 회부터 퍼진 입소문 덕에 ‘올여름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듯합니다. 한 주(週)에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마무리되는 신선한 구성, 자연스러운 특수효과와 연출 등 칭찬할 게 한둘이 아니지만, 무엇보다 먼저 짚어야 할 것은 바로 ‘주인공의 연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영우’는, 한 번 본 것은 그대로 암기하는, 천재변호사입니다. 그리고 자폐스펙트럼에 속합니다.
다운증후군과 자폐스펙트럼 모두 ‘일정한 기준’에 의하여 발달장애로 분류되지만, 특성과 증상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입니다. 물론, 드라마에서 우영우는 탁월하게 특이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기에 따라 판타지(幻想)라고 할 수 있겠으나,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을 면밀히 관찰한 듯한 배우의 연기는 그 위화감을 꽤 덜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발달 장애인이지만, 증상은 너무도 다른, 한 의뢰인 앞에서의 우영우 모습에, 저는 그만 참았던 눈물을 다시 터뜨리고 말았습니다.(출처; 좋은생각, 서효인 / 시인)
이미 들어서 잘 아시겠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제작진은 ‘주인공 우영우’를 연기할 배역으로 ‘박은빈’을 정해놓고, 그녀가 그 역을 맡겠다고 수락할 때까지 1년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박은빈’ 한 사람 때문에 무려 1년 동안이나 드라마 제작을 미루고 있었던 겁니다.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제작진은 ‘우영우 역을 제대로 연기할 사람은 박은빈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그토록 오래 기다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박은빈’은 그 엄청나게 많은 대사를 다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대사암기뿐만 아니라, ‘표정연기(심지어 눈동자까지)도 거의 완벽하게 연기하고 있다’고, 드라마 관련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그야말로 ‘박은빈’은, 그 드라마 제작진들에게는 ‘꼭 필요한 단 한 사람’이었던 겁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나(我)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서 태어났다면, 그 얼마나 큰 영광일까?’하고, 겁도 없이 감히 생각해봤습니다.(물맷돌)
[오네시모가 전에는 그대에게 ‘쓸모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리스도인이 된 지금에는 그대에게나 나에게나 ‘참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그는 이제 내 분신(分身)과 같은 사람입니다.(몬1:11-12,현대어)]
‘작은 것’이라도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라!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오늘 하루도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자녀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 “친구들을 만나면 두 가지를 명심하라”고 들려주곤 한답니다. 첫째는 ‘네가 말하는 시간의 두 배만큼 친구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이고, 둘째는 ‘어떤 경우에도 친구 험담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유대경전엔 ‘남을 헐뜯는 험담은 살인보다도 위험하다.’고 되어 있답니다. ‘살인은 한 사람밖에 죽이지 않으나, 험담은 반드시 세 사람을 죽인다.’는 겁니다. 그 세 사람은, ‘험담을 퍼뜨리는 사람 자신, 그것을 말리지 않고 듣고 있는 사람, 그 험담의 대상이 된 사람.’이랍니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20대였습니다. 농사로 치면, 20대는 씨를 뿌리는 시기라서, 언제 씨앗이 발아해서 열매를 맺을지 알 수 없는 시기입니다. 그 시절은 ‘끝이 잘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기분으로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소설가 김연수는 20대를 “결과가 없는, 원인만 있는 삶”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행복에 관한 생애주기 역시 20대에게는 불리합니다. 행복지수는 파도 모양으로 움직이는데, 10대까지 상승하다가 20대 초중반에 바닥을 치고 30대 중후반까지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20대에 불안이 극에 달하는 것은 특히 ‘미래’ 때문입니다. ‘미래중독자’의 저자 ‘대니얼 밀로’는, “인류가 상상력을 발휘해서 ‘미래’라는 시간개념을 발명한 후, 인간에게 숙명처럼 ‘불안’이 따라왔다”고 했습니다. 현재만 사는 동물들에 비해서, “인간은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을 현실처럼 느끼면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겁니다. 오늘 힘든 것은 견딜 수 있지만, 미래가 암담할 거라고 생각하면 인간은 불안을 느낍니다.
그 덕분에, 철학과 종교는 ‘불안을 다스리기 위한 방법’을 개발해냈습니다. ‘과거나 미래가 아닌 이 순간을 살라!’는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은 그 중 최고의 처방전입니다. 고로, 우리의 문제는 ‘현재를 어떻게 사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권유하고 싶은 것은 ‘목표를 가능한 한 작게 쪼개라’는 것입니다. 먼 ‘미래의 일’을 ‘현재’로 끌어와서 눈앞에 두고 살펴보라는 겁니다.
20대(代)라면, 토익 900점 이상과 취업, 그리고 결혼과 같은 큰 목표를 세울 게 아닙니다. 내 방 정리, 영어문장 5개 외우기처럼, ‘해야 할 일을 쪼개어 포인트처럼 적립하라’는 겁니다. 목표를 쪼개는 이유는, 성취의 문턱을 낮춰서 자주 성공의 경험을 느끼고, 자기성취감을 키우기 위한 것입니다. ‘라이프코치(인생을 코치해주는 사람)’들이 꼽는 최고의 습관이 ‘침구정리하기’인 것도, 그것이 하루를 성공의 경험으로 열게 하고, 청결함을 넘어 ‘나는 정리정돈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새 정체성을 갖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원인이 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때, 온 세상 우주만물(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창조주 하나님; 물맷돌)도 우리의 꿈에 귀를 기울입니다.(출처;C닷컴, 백영옥/소설가)
저의 어머니께서는 생전에 ‘과거현재미래의 일들에 대한 걱정을 함께 쌓아두고’ 걱정하면서 사셨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현재의 일을 걱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과거에 있었던 일들도 끄집어내어 걱정하시고, 뿐만 아니라 장차 미래에 해야 할 일 또는 일어나리라 생각되는 일들을 ‘현재’라는 마당에 끌어다놓고 걱정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할 것이고, 오늘의 고통은 오늘로 충분하다.(마6:34)”고 하셨습니다. 복음성가에도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 험한 이 길 가고 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 주님 예수 팔 내미사 내 손 잡아주소서’라는 노래가 있습니다.(물맷돌)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너희의 내일 일도 돌보아주실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의 것으로 족하다.(마6:34,현대어)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작은 일에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큰일(많은, 쉬운성경)에도 정직하지 못하다.(눅16:10,현대인)]
그라운드 위의 하나님
뉴욕 양키스의 야구선수 요기 베라는 독실한 기독교인입니다.
요기 베라는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배트로 십자가를 그리고 잠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친구이면서 상대팀 선수인 조 개러지가 요기 베라의 기도를 보고는 심판에게 타임을 요청했습니다. 조는 요기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나도 크리스천이네. 자네가 십자가를 그린다고 하나님이 자네 편만 들지는 않아. 하나님은 그냥 구경이나 하시도록 내버려두고 그냥 경기를 하는 게 어떤가?”
조는 같은 성도로써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요기 베라가 신앙심을 어필하는 것이 불편했던 것입니다. 요기 베라는 이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구경만 하는 것을 싫어하시는 분이야. 아니, 관중석에 앉아 있기를 오히려 거부하시는 분이지. 하나님은 그라운드에서 우리와 함께 뛰기를 원하신다네. 자네와 나, 우리는 서로 믿는 하나님과 함께 경기를 하면 되는 것이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에는 승리와 패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성도의 삶은 패배와 고난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나의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드리십시오. 아멘!!
주님! 기쁨에도, 슬픔에도, 승리에도, 패배에도 주님이 드러나게 하소서.
모든 과정을 선한 길로 이끌어주실 줄 믿고 삶의 키를 주님께 맡깁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생명을 살린 피
호주에 사는 한 고령의 노인이 병원을 찾아 헌혈을 했습니다.
헌혈을 마친 노인이 병원을 나서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꽃다발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노인을 향해 열렬한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살려줘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축하의 주인공인 해리슨은 60년 전 우연히 수술을 받다가 자신에게 ‘RH 병’을 치료할 수 있는 항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RH 병’은 산모의 혈액이 태아를 공격하는 희귀병인데 해리슨의 피로 이 병을 고칠 백신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헌혈로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해리슨은 이후 2주마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60년 간 헌혈을 했습니다. 1173번의 헌혈을 통해 200만 명을 살린 해리슨은 81세가 되면서 호주 법으로 더 이상 헌혈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헌혈을 하던 날에 그동안 해리슨에게 도움을 받은 많은 부모와 자녀들이 병원으로 찾아와 감사를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이 수백만 명에게 생명을 선물로 줬듯이 예수님의 보혈로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분명하고 유일한 진리이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예수님의 보혈을 세상에 힘써 전하십시오. 아멘!!
주님! 저에게 주신 것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는 주님의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가지고 있는 조그마한 장점이라도 복음 전파를 위해 사용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복음의 핵심을 준비하라
세계 최고의 컨설팅 기업인 ‘맥킨지(Mckinsey)’에서 중요한 고객을 대상으로 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임원들과 컨설팅 전략을 발표할 직원은 상기된 표정으로 회의장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잠시 뒤 회장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프리젠테이션을 보지도 않고 갑자기 발표자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미안한데 지금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주차장까지 이동하면서 브리핑을 해줄 수 있겠소?”
회의장에서 주차장까지 가는 시간은 약 30초입니다. ‘중요한 회의에 이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실제 맥킨지에서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30초 룰’이 있습니다. 맥킨지는 이 30초 안에 핵심을 전달할 수 있는 테스트를 통과한 직원만 채용합니다.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작가에게 대본을 홍보할 때 주는 시간 역시 30초이고, 미국에서 30위 안에 드는 대기업 ‘프록터 앤 갬블’에서는 1장이 넘는 보고서는 받지 않습니다.
상대방을 설득하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핵심입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과 깨달은 복음의 핵심을 누구에게든 전할 수 있게 30초의 말과 글로 준비해두십시오. 아멘!!
주님! 1분, 한 마디, 한 번의 만남으로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도우소서.
어디서든 짧게 전할 수 있는 간증과 복음의 원리를 준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철저한 자녀교육을 시켰는데도 큰아들이 초등학생 때 내 지갑에서 당시로는 거금인 5천 원을 몰래 훔쳐 하루 종일 친구들과 함께 다니면서 먹고 심지어 친구들에게 장난감을 사주며 그 돈을 썼다. 신나게 놀고 나서야 제 정신이 든 아이는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집 근처를 배회했다. 나는 평소와 같은 체벌로는 아들의 나쁜 버릇을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해 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큰아들이 집에 오자마자 가방에 짐을 싸게 해 고아원에 데리고 갔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사람은 우리 집 아이가 아니다.”
아들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차에 매달려 울었고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
막내아들의 경우에는 문제가 더 심했다. 내가 금고에 넣으라며 전한 선교비 1,500달러를 들고 가출을 했는데 이유는 빨리 유학을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황당하지만 나름의 계획까지 세운 아들을 보고 애초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보내려던 나는 마음을 돌려 더 일찍 보내줬고 그 뒤로 아들은 별다른 문제없이 훌륭히 성장했다. 나에게도 자녀를 키우면서 어려웠던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다.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렸더니 하나님께서 잘 키워주셨다.』 (김장환 목사 개인 노트에서 발췌 편집)
아무리 잘 준비하고 키우려 해도 자녀교육만큼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사랑으로 양육하면 하나님은 그 아이를 반드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지금 아이가 마음을 어렵게 해도 하나님께 맡기며 주님 안에서 잘 양육하십시오. 아멘!!
주님!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오니 하나님이 책임져주시는 자녀가 되게 하소서.
자녀양육에 말씀과 사랑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기억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말씀이 심기면 살아난다
미국의 국회의원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카이로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곳곳의 이집트 유물을 살펴보던 그는 한 골동품 가게에서 3천 년이 지난 곡식 자루에 들어있는 콩알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겉은 돌과 같이 딱딱하고 쭈글쭈글해 말라비틀어진 콩을 본 윌리엄은 호기심이 생겨 푼돈을 주고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와 정원에 콩을 심고 열심히 물과 거름을 줬습니다. 그러자 얼마 되지 않아 싹이 났고, 급기야 열매를 맺었습니다. 나중에 미국의 국무총리까지 오르며 ‘위대한 보통사람’이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대중을 위한 정치를 했던 제닝스는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는데, 마음을 닫은 사람을 볼 때마다 오래전 카이로에서 구입한 완두콩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3천 년 동안 죽어있던 콩알 하나도 땅에 심으면 열매를 맺습니다. 1년생 식물에도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데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정말로 죽으면 사라지고 끝이겠습니까?”
천년 동안 죽어있던 콩도 제대로 된 땅에 심기면 자라나듯이 하나님을 외면하고 불행한 삶을 사는 메마른 영혼도 말씀이 심기면 살아납니다.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 영혼에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에 씨앗으로 뿌리십시오. 아멘!!
주님! 모든 영혼을 살릴 힘이 있는 말씀을 전할 지혜와 기회를 주소서.
영혼이 말라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생명의 복음이라는 씨를 심읍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사람의 세 가지 유형
근대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프랜시스 베이컨은 곤충에 빗대어 세상에는 3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1. 거미 같이 있어서는 안 될 사람.
거미는 거미줄을 벗어나지 않고 하루 종일 일도 안하고 잠만 잡니다. 그러다 거미줄에 먹이가 걸리면 다가가서 피를 빨아먹는 것이 인생의 전부입니다. 노력도 하지 않고 남의 덕만 보려는 ‘이기주의 인간’을 베이컨은 존재해서는 안 될 사람으로 평가했습니다.
2. 개미 같이 있으나 없으나 그만인 사람.
개미는 부지런하고 협동심도 강합니다. 그러나 개미끼리만 뭉칠 뿐 다른 무리와는 어울리지 못합니다. 있어서 나쁠 것은 없으나 좋을 것도 없는 ‘개인주의 인간’을 베이컨은 개미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3. 꿀벌 같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
꿀벌은 부지런하고 협동심도 강합니다. 심지어 자신들에게 필요한 꿀을 먹으면서도 꽃을 수정시키는 중요한 일을 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이로운 일을 합니다. 베이컨은 꿀벌 같은 사람은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이타주의 인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 즉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살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넘어서 남을 이롭게 하고 생명의 복음을 전하며 선한 일을 하는 특별한 존재로 살아가십시오. 아멘!!
주님! 세상에 복음과 참된 행복을 전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소서.
세상에 꼭 필요한 빛의 성도로 살아갑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슬픔을 바꾸시는 주
뚜렷한 병도 없는데 몸이 너무 약해 거의 평생을 침대에서 보내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거동도 못할 정도의 병약한 몸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에서는 항상 미소가 흘렀고 사람을 대하는 모든 말투가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녀의 사정을 알고 딱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30분만 함께 있으면 어느새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 하고, 가고 싶은 곳도 제대로 못가는 삶인데 어떻게 매사에 긍정적일 수 있는지 궁금했던 한 사람이 그녀에게 비밀을 묻자 그녀는 짧게 “바로 예수님 때문이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이라는 찬송을 쓴 리디아 벡스터 여사였습니다.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면
영원토록 변함없는 기쁜 마음 얻으리
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
리디아 여사의 삶은 찬양의 고백이 그대로 묻어나는 삶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은혜가 기쁨의 이유가 된다는 사실을 믿고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십시오. 아멘!!
주님! 슬픈 마음까지도 주님 앞에 내어놓고 인도하심대로 따라가게 하소서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사람을 살린 절약
조선시대 인종 때 조정에 상소가 올라왔습니다.
“충주 금왕읍에 조륵이라는 지독한 구두쇠가 있어 미풍양속을 해치고 있습니다. 돈을 아끼겠다고 굴비를 사다 천장에 매달아놓고 쳐다보면서 밥을 먹고, 장독에 앉은 파리를 잡아 다리에 묻은 장을 빨아먹는다고 합니다. 조륵 같은 자가 부자가 되면 필시 나라 곳곳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합니다.”
인조는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서 암행어사를 보냈습니다. 거지꼴로 조륵을 찾아간 암행어사는 며칠 묵어가기를 청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매일 진수성찬이 나왔고 며칠을 묵어도 떠나라고 눈치를 주지도 않았습니다. 어찌된 영문인가 싶어 암행어사가 마을 사람에게 조륵에 대해 물었습니다.
“모두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몇 년 전 동네에 흉년이 들어서 모두 굶어 죽게 생겼을 때 조륵이 창고를 열어 마을 사람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환갑이 되고는 그동안 평생 나눌 재산을 모았다며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대접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산을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는 조륵을 구두쇠 자린고비가 아니라 자비롭고 인자한 어버이란 뜻의 자인고비라고 부릅니다.”
돈을 잘 버는 사람보다 잘 쓰는 사람이 지혜롭습니다. 부와 명예, 성공과 세상의 인정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는 청지기 정신을 가지고 사십시오. 아멘!!
주님!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마음의 부자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얼마라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용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신권을 찾아다니는 아이
집을 나서는 큰 딸아이에게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새 돈으로 바꾸러 간다고 했습니다. “신권으로 뭘 하려고?” 예배 때 헌금으로 드리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물을 드리기 위해 먼저 준비하는 아이를 보니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신권 30만원이 있었습니다. 전 ‘이 돈으로 뭘 하지?’라고 생각하다가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어머니가 다니시는 시골 교회에 꽃꽂이 예물로 드렸습니다.
목회사역을 하면서 첫 사례비를 받던 날이 생각났습니다. 저도 신권으로 바꿔서 받은 사례비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앞으로 주님께 온전히 드릴 기회가 적을 것 같습니다. 먼저 온전히 주님께 드릴 수 있어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를 같이 드렸습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 성경을 읽고, 매주 예물에 신경을 쓰면서 사는 큰아이를 볼 때마다 감동이 있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정한 ‘신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 삶 속에서 아름다운 자신만의 신권을 드리는 삶이 됐으면 합니다.
지성호 목사(서울이태원교회)
관계에서의 자유
삶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얼마나 될까요. 우리 삶은 우리가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수없이 많은 줄로 연결돼 있습니다. 놀라운 건 전혀 짐작이 안 되는 줄도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연결도 있습니다.
이런 분을 만난 일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세상에 없지만,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가 그분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와 풀지 못한 앙금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삶이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므로 관계가 주는 긍정과 부정의 영향이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이런 관계에 휘둘려 결국 인생까지 흔들리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됩니다. 이미 존재하는 연결된 관계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과의 관계에 더 집중하면 여러 관계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를 얻는 선물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우영우 변호사가 준 깨달음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다 종영했습니다.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지만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 졸업하고 대형 로펌에 입사한 천재 변호사입니다. 그러나 정작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의 부모님 중엔 아픈 마음으로 드라마를 보신 분들도 계신 것 같습니다. 자폐장애를 지나치게 미화해 현실성이 없다는 겁니다. 실제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넓게 규정해 발달장애인의 현실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지난 주간, 한 어머니가 35개월 된 자신의 아이가 자폐 판정을 받자 아이를 죽이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슴 아픈 사건이 있었습니다. 자폐장애인 부모가 직면한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합니다. 우리 교회는 발달장애인 주간보호센터인 ‘겨자씨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영우 변호사 같은 천재는 없지만 네 분의 발달장애인이 활동보호사들과 함께 현실의 행복을 가꾸고 있습니다. 그래서 ‘겨자씨센터’는 장애인에게도 부모님에게도 희망의 공간입니다. 평범한 장애인이 행복을 누릴 더 많은 공간과 환경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우리 사회를 향해 던진 진정한 교훈일 것입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두 친구가 길을 가다가 곰을 만났습니다. 도망을 치는데 곰도 엄청난 속도로 쫓아왔지요. 도무지 따돌릴 수 없게 되자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친구야, 아무리 달려도 곰보다는 빠를 수 없는데 어찌하면 좋을까.” 다른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친구야, 지금은 내가 어떻게 너보다 더 빨리 달리느냐가 문제지, 저 곰은 아무 문제가 아니야.” 곰이 아니라 친구가 문제라면,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이 죽어야 한다면 얼마나 삭막할까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그렇게 살벌한 경쟁을 벌이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의 제자들도 더 높은 자리를 두고 다투었습니다. 예루살렘 입성 직전 경쟁은 더 치열해졌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 각각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해달라고 청탁했지요. 그걸 알게 된 열 제자는 야고보와 요한에게 분개했습니다. 자기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제자들, 그걸 보고 분노하며 술렁이는 제자들을 보면서, 예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막 10:44, 새번역)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리더의 시간
승객도 승무원도, 그리고 비행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행기는 이륙할 수 없었습니다. 조종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조종사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안내방송은 그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인지 여러 추측을 자아냈습니다. 결국 비행기는 백수십명의 시간과 복잡한 사정들을 삼킨 채 3시간 늦게 이륙했습니다. 지친 몸을 비행기에 싣고 리더의 시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2009년 1월 뉴욕 라과디아공항에서 막 출발한 비행기가 꺼진 엔진 문제로 어딘가에 위험한 불시착을 해야 했습니다. 체슬리 설렌버거라는 조종사는 비행기를 동체로 허드슨강에 착륙시켰습니다. 담대한 결정과 섬세한 기술을 보인 리더십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승객과 승무원이 안전하게 내린 뒤 마지막까지 비행기 안을 두 번이나 둘러보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 사건을 ‘허드슨강의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그 놀라운 기적은 리더의 시간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보여주었습니다. 리더의 시간은 결코 그가 섬기는 공동체와 같을 수 없습니다. 리더의 시간은 ‘가장 먼저, 가장 늦게’가 맞습니다. 가장 먼저라는 부지런함과 가장 늦게라는 책임감을 보여주는 리더의 시간은 반드시 그 공동체에 행복과 안전, 발전과 기적을 선물하게 될 것입니다.
김성국 목사(미국 뉴욕 퀸즈장로교회)
정의를 실천하라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성경은 사랑과 정의(공의)를 함께 이야기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정의, ‘미쉬파트’라는 단어는 ‘공평하게 대한다’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습니다. 즉 ‘미쉬파트’는 보호를 받는 것, 징계를 받는 것, 모두 동일하게 돌아가야 할 몫을 주라는 의미입니다.
특히 과부와 고아, 나그네와 가난한 이 등 우리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적극적으로 보살피고 보호하라는 의미로 ‘정의’를 자주 사용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단순히 구제나 자선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입니다. 이웃이 받아야 할 몫을 그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행위가 마땅히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할 일임을 성경은 알려줍니다.
구약성경은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우하느냐를 한 사회의 정의를 평가하는 척도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는 것은 단지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불의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와 공동체 안에는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고 있습니까.
고상섭 목사(그사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