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무슬림들이 믿는 알라는 전혀 다르다
창21:12-21, 갈6:14
인간만이 신을 믿는데 이 신을 믿는 것을 종교라고 하는데 종교는 세상이 있는 한 인간들과 분리할 수 없다는 데는 반론이 없다. 그런데 인간이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사람들을 다스린다면 종교 때문에 사람들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종교 때문에 불행을 당할 수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자신이 어느 종교를 택하느냐에 따라 이 땅에서와 내세에서 행복할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불행하게도 자신이 어디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서 원치 않는 종교를 갖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지금 이란에서는 한 여성이 히잡을 제대로 착용안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되어 갔다가 시신으로 나오면서 히잡을 벗자는 시위가 넉달이상 지속되고 있다. 이란에는 여성 옷차림을 단속하는 ‘도덕 경찰’이 있다. 이 도덕 경찰은 이란 여성 인권 탄압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9세 이상 모든 여성의 히잡(이슬람 여성이 머리와 목 등을 가리기 위해 쓰는 두건의 일종) 착용을 의무화했다. 그리고 히잡 의무 착용 규정을 둔 국가는 전 세계 57개 이슬람권 국가 중 이란뿐이다. 특히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쓰지 않으면 2개월 이하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한다고 한다. 지난 9월 16일에는 마흐사 아미니(22)라는 여성이 가족과 함께 테헤란을 여행 중 히잡을 엉성하게 썼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의문사한 사건이 발단돼서 지금 이란전역에서 히잡 반대 시위가 4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이슬람교를 따르는 무슬림은 크게 두개의 종파,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뉜다. 오늘날 전 세계 약 18 억 무슬림 중 약 85%가 수니파고 15%는 시아파다. 시아파는 이란, 이라크, 등의 국가에서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수니파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주축으로 모로코에서 인도네시아에 이르는 40 개 이상의 국가에서 대다수를 차지한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를 자제하지만 몇 년전까지만 하여도 전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이 되면서 여러나라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사람들은 사람들 외모로부터 그들의 문화 종교까지 알게 되는데 이슬람교는 여자들이 머리에 히잡을 쓰기 때문에 누구나 금방 저 여자는 이슬람교를 믿는 다는 것을 즉시 알 수 있다. 다음주일은 금년 마지막 주일인 12월 25일인데 이 날은 기독교의 예수탄생일 이라고 하지만 실은 예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날이다. 초대교회시절 지하에 있던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공인되면서 로마가 믿었던 태양신의 탄생일인 12월 25일에 예수가 탄생했다는 기상천외같은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 거의 2천년 동안이나 내려오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내가 오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크리스마스날 보다 더 경이로운 종교행사를 말하고자 한다. 과연 전 세계인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는 이슬람교의 라마단 축제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이슬람교도의 수는 대략 18억 내외로 지구촌의 4사람 가운데 한 명은 이슬람교도인 셈이다. 이슬람교는 해마다 라마단이 시작되면 한달 내내 동이 틀 무렵부터 땅거미가 질 때까지 음식·술·성관계를 금하도록 계율로 정해두었는데 이 라마단중에서 가장 큰 행사는 2백만명 정도의 무슬림들이 메카에 도착해서 메카사원의 중앙에 있는 카바신전 주위를 시계반대 방향으로 도는 행렬이야말로 지구촌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무슬림들이라면 평생 한 번 메카성지순례 즉 라마단 하지에 참가하는 것이 최고의 소망이라고 하는데 라마단 때 열리는 메카순례 즉 하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1. 메카성지순례 (하지)
무슬림들은 그들 달력으로 해마다 라마단이 되면 한 달 동안 라마단 절기를 지키는데 그들 중 일부는 메카에 가서 성지순례 즉 하지를 한다. 닷새 동안 진행되는 성지순례는 메카에 도착하면 순례객들은 흰 천을 두르고 메카 대사원 중앙에 있는 육면체 카바신전을 반시계방향으로 7바퀴 도는 것으로 시작한다. 카바 신전 주위를 7번 돌고나면 카바신전 벽에 붙어 있는 검은 돌에 입맞춘다. 석전 참배를 마친 순례객들은 이스마일의 생모인 하갈이 물을 구하러 다녔다는 고행을 경험하고자 인근 사파 언덕과 마르와 언덕 사이를 7번 오가는 '왕복 의식'을 치른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창21장14절에는 하갈이 아브라함의 장막을 떠나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였다가 부대에 물이 떨어지매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죽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고 울었을 때 천사가 하갈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을 열어주시매 우물을 보고 부대에 물을 채워 이스마엘에게 마시게 하였다고 창21장19절에 기록한 것을 근거로 하지때는 순례객들이 사파언덕과 마르다 언덕 사이를 7번 오가는 왕복의식을 치른다. 실제로 브엘세바에서부터 메카까지는 1000km인데 순례객들이 하지때 메카에 와서 하갈이 우물을 발견한 곳이 메카라고 하면서 하갈이 물을 부대에 떠나 이스마엘에게 주었던 이런 고난의 행사를 한다는 것은 성경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사실이 아니 것을 진짜처럼 순례객들이 행한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다음은 메카에서 동쪽으로 8㎞ 떨어진 성지들인 라흐마 산과 무즈달리파산을 방문한 후 이후 미나계곡에서 숙영하고 무함마드의 마지막 설교장소였다는 아라파트 산에서 해질녘까지 기도한다.
다음날은 아브라함의 희생제를 기념하여 희생제를 바치고 또 순례객들은 무즈달리파산에서 작은 돌멩이를 몇 개 주운 뒤 3일 동안 미나계곡 근처 자마라트다리에서 악마를 상징하는 돌기둥 벽에 돌을 던지는데 이 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압사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한다. 악마는 영적인 존재인데 돌 던진다고 악마가 돌에 맞는다는 것일까? 그들 행사를 보면 모두가 비현실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비현실속에서도 그들은 생애 한번이라도 이 하지에 참여하는 것을 평생소원으로 여기는데 불행하게도 2015년9월24일에도 성지순례(하지) 기간 밀집한 순례객들이 미나 계곡에서 악마를 추방하고자 돌기둥 벽에 돌을 던지는 과정에서 압사 사고가 발생해 1천500명 이상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런 하지기간중에는 해마다 압사사고가 그치지 않는 이유는 라마단 기간 중 순례객들은 이런 압사사고는 신을 위한 순교로 믿기 때문에 전혀 두려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2. 이슬람교의 탄생 배경
바울순교 후 64년부터 311년까지 박해 중에서도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면서 교회는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하여 기독교공인이 선포되자 교회는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교리적인 논쟁에 휘말리게 되었는데 사도바울이 3차 전도여행에서 세운 에베소교회가 431년 에베소 3차 공의회를 통해 마리아를 예수의 어머니가 아니라 하나님의 어머니로 결정하면서 교리적으로 변질을 가져와 오늘날 로마 카톨릭이란 초대형 이단이 탄생된 것이다. 이렇게 타락하고 변질된 카톨릭 교회가 항상 염두에 두었던 것은 예루살렘을 탈환하여 교황청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서 세계 모든 종교의 통합을 이루어 로마 교황으로 하여금 모든 이방종교들을 총체적으로 관장하는 승원장 즉 교황이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북아프리카 지방에 수도원들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수도원하면 장차 성직자가 될 사람들이 수도하는 곳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로마카톨릭교가 전 세계 지배를 위하여 만든 로마교회의 정보 수집을 위한 지부였다. 당시에 로마카톨릭교에서는 큰 도시에서 떨어진 작은 부족들 마을에 수도사들을 침투시켜 이상한 예언들을 하고 다니게 했는데 그 예언이란 장차 한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 아랍의 부족들을 하나로 통일시켜서 서로 싸우지 않는 나라를 건설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이러한 예언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었고 그러한 예언이 퍼져 나간 후로는 부족들 간에 전쟁이 있을 때 마다 언제 그러한 지도자가 나타날 것인지 고대하게 되었다.
(1) 마호메드 (무함마드) 등장
마침내 570년경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한 사람이 태어났는데 그가 후일에 세계 역사를 바꾸어 놓은 바로 마호메드(아랍어로 무함마드)였다.
이슬람교가 출발한 아라비아 땅은 그 옛날 하갈과 이스마엘이 사라의 핍박을 피하여 아브라함의 집을 나온 후에 목이 말라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우묵한 것을 터치시니 거기서 물이 나와 마시고 소생했다는 성경 이야기를 빗대어 그 우물 곁에는 카바 신전이 세워져 해마다 수백만의 순례자들이 찾는 이슬람교의 최대 성지가 되어졌다. 전설에 의하면 그 우물을 차지하기 위하여 부족간의 암투가 벌어졌는데 마침내 그 우물을 차지한 부족이 이스마엘 직계자손 중에 꾸라이시 부족인데 그 부족의 한 인물이 바로 마호메드의 할아버지 되는 압둘 무타리부라는 사람이다. 마침내 압둘 무타리부는 메가의 영웅이 되어 그들이 섬기는 신에게 기도하기를 만약 신께서 열 명의 아들을 주신다면 그 중에 한 아들을 희생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원했는데 수년 후에 열 명의 아들을 얻었고 그 중에 압둘라라는 막내아들을 특별히 사랑했는데 압둘 무타리부는 그 막대 아들 압둘라를 신께 희생제물로 바치는 대신 약대 100마리를 바치고 아들을 속량해 내었다고 한다. 압둘라는 569년에 아미나라는 여성과 결혼한 후 대상들과 함께 길을 떠난 후 돌아오지 못했으나 아미나는 유복자를 임신하였는데 그가 바로 마호메드이었다. 불행은 겹쳐서 오는 법인지 마호메드의 7살 되던 해에 그의 어머니 아미나가 죽고 2년 뒤 마호메드 9살 되던 해에는 할아버지인 압둘 무타리부도 죽으면서 마호메드는 9살 때 부터 삼촌을 따라 낙타상인들과 동행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어느 날 카톨릭 수도사가 마호메드의 등을 보여 달라고 해서 등을 보여 주었더니 그 수도사가 하는 말이 "이 표시는 예언자의 인이니 당신들은 이 아이를 잘 보호하시오 특별히 유대인들이 이 아이의 생명을 빼앗으려 할 터이니 신의 일을 하게 될 이 아이의 생명을 잘 지키도록 하시오. 이 아이는 장차 위대한 일을 하게 될 것이오." 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교황청의 한결같은 소원은 예루살렘에 교황청을 세우는 것인데 로마 카톨릭은 이것을 반대하는 정통파 유대인들과 카톨릭 교리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을 제거하는 그 일을 대신해 줄 인물이야말로 전 아랍사람들을 한데 묶어 교황청에 복종하게 할 아랍인들의 영웅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마호메드였다.
(2) 마호메드의 첫 결혼
마호메트가 25세이었을 때 교황청에는 이 모든 일을 추진할 한 여인을 택하였는데 바로 수도원에 있던 40세인 하디자로 마호메드의 첫 번째 아내가 되었고 그녀의 사촌 오라버니는 바라카였다. 그녀는 자신의 전 재산을 카톨릭 교회에 헌납하고 수녀원에서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던 어느 날 특수 임무를 받아서 세상으로 나와 마호메드와 결혼을 하게 된다. 사탄은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이스마엘 자손들에게 복음이 들어가지 못하게 공작하고 있었고 카톨릭은 정통파 유대인들을 제거하는 일과 카톨릭 교리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을 제거하는 사역을 계획하는 일에 마호메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이용당하고 있었다.
40세가 되었던 어느 날 마호메드가 메카 외각에 있는 히라산의 어느 동굴에서 성스러운 환상을 보았다고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슬람교는 마호메드가 본 모든 환상은 언제나 바라카가 해석해주는 대로만 기록된 것으로 그 때 보았다는 마리아 환상들을 기초로 하여 오늘날 코란이란 경전이 만들어졌다. 마호메드가 보았다는 마리아에 대한 환상으로 인하여 카톨릭을 신봉하는 왕들로부터 이슬람교는 보호를 받았으나 마호메드가 쓴 다른
문서에도 이슬람교리를 만들었던 기록이 없지만 있다면 그 문서에는 이슬람 교리를 만들어 가는데 교황청이 무슨 역할을 했는지가 소상하게 기록되었을 것인데 위에서 말했듯이 어떻게 하면 정통파 유대교와 카톨릭 교리를 반대하는 기독교를 말살할 것인가 하는 문서가 외부에 유출되면 두 종교는 다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서로 견제하면서 서로 조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호메트가 지시받은 교리는 아내 하디자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알려졌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슬람교는 전파되기 시작했다.
마호메드는 632년에 죽고 나자 이슬람교는 오히려 더 번창하게 되었다. 교황청의 목적대로 아랍의 모든 유목민 부족들이 알라 신과 그의 선지자 마호메드의 이름 아래 통일되어 갔을 때까지 아랍 사람들의 속내를 알지 못한 교황청은 이슬람교가 북아프리카 지역을 침략하여 통일시키는 일까지 승인하여 주었고 자금까지 대어 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일이 진행될 때 교황청에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약속받고 재정을 지원했다고 한다.
첫째 정통파 유대인들과 카톨릭 교리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을 제거할
두째 교황청을 위하여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카톨릭에 돌려줄 것 이었다.
이러한 조약이 체결되고 자금이 지원되자 이슬람교는 북 아프리카 전역을 휩쓸면서 세력을 키워갔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로마 카톨릭은 종교재판이라는 무시무시한 방법으로 기독교인들을 학살하였고 이슬람도 동방에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무차별 죽이므로 그들의 조약은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세월이 흘러서 이슬람 군대는 마침내 로마 카톨릭에 진 빚을 갚아야 할 때가 도래하였지만 가는 곳마다 승리를 맛 본 아랍 사람들은 교황청의 군사력이 별것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교황청역시 아랍 사람들이 더 이상 교황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슬람지도자들은 교황청이 그렇게 손에 넣고 싶었던 예루살렘의 중요성을 안 후에는 성전 산에 바위사원을 세웠다.
3. 예루살렘을 거쳐간 주인들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를 가진 예루살렘은 3000년전에는 여부스라는 가나안의 한 부족이 차지하고 있다가 다윗왕이 뺏어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삼았으며 아들 솔로몬왕은 그곳에 하나님 성전을 건립하였다. BC 935년 다윗왕국이 이스라엘과 유대로 양분되자 예루살렘은 남방 유다의 중심지가 되었다. BC 586년 바빌론의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가서 BC 538년까지 억류하였다가 페르샤의 고레스 왕이 이들을 석방해 줌으로써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솔로몬 성전도 재건하였으나, 옛날의 번영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1) 로마와 비잔틴제국 (BC 63-614)
BC 63년 폼페이우스가 거느린 로마 군이 성벽을 파괴하고 이 도시를 점령하면서부터 예루살렘은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나, BC 37년부터 헤롯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함으로써 솔로몬 왕 이후 잠시 번영을 되찾았다. 후에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티투스가 70-71년에 이 도시를 공격함으로써 헤롯 시대의 번영은 사라졌고 그 후 유대전쟁에서 패하면서 135년 로마는 예루살렘에서 유대교도들을 몰아냈다. 그 후 로마가 그리스도교 국가가 되자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교도의 순례자로 붐비었으며, 콘스탄티누스 1세(306-337)의 명령으로 최초로 그리스도의 무덤이 있다고 하는 성묘교회가 건립되면서 예루살렘은 비잔틴제국하에서 유지되고 있었다. 비잔티움은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324~337)가 330년에 수도를 동쪽에 '새로운 로마'로 정하고 콘스탄티노플이라 명명한 후 동로마라는 새로운 영역의 중심이 되기 시작했다.
(2) 아랍 족속 (614-이후)
예루살렘은 동로마 즉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아오다 614년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호스로 2세가 비잔틴 제국군을 격파하고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다. 마호메드가 죽은 후 불과 7년째가 되는 638년 이슬람교로 단결한 아랍인이 이곳을 함락시켰다. 현재 바위사원에 있는 큰 바위는 마호메트가 꿈에 천사 가브리엘의 안내로 알라신 앞까지 갔다는 이른바 승천(미라지)의 장소로서 신성시되고 있다. 아랍인들은 솔로몬의 궁전이 있던 곳에 지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 압둘 말리크(재위 685-705)가 이곳에 바위 돔 사원을 건립하였다. 마호메드가 바라카의 지도를 받으면서 코란을 기록하는 중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잡아 제사를 드리라는 말씀을 변개하여 모리아 산으로 가서 이스마엘을 잡아서 제사를 드렸다고 거짓말을 쓴 것들로 인해 이슬람교도들은 이 예루살렘을 성지로 기억하고 있다.
(3) 로마카톨릭(십자군 전쟁)(1099-1229)
예루살렘을 차지하려고 그렇게 공을 드렸던 교황청은 마침내 1099년에는 제1차 십자군전쟁을 일으켜 예루살렘을 침략하여 이슬람교도와 유대교도의 대학살을 자행하고 이 곳을 수도로 하는 예루살렘 왕국을 건설하였으나 1187년 이집트 아이유브 왕조를 건설한 살라딘이 이슬람 세력을 모아 예루살렘을 탈환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친 십자군 원정이 있었으나 1229년 2월-1244년 8월까지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와의 화의로 이 땅을 회복한 적이 있을 뿐 성지 탈환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카톨릭의 군대와 아랍의 군대는 오래 동안 전쟁을 하게 되었고 수 세기가 흘러갔지만 예루살렘은 교황의 손에 넣을 수가 없었다.
(4) 시리아 맘루크 왕조(1299-1516)
아랍 사람들은 알라 신의 이름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마침내 터키가 아랍인들이 손에 넘어갔다. 이슬람과 로마교황청의 수년에 걸치는 전쟁을 치르면서 마지막 선택의 길은 적당한 선에서 휴전을 하는 것이었다. 그 때 중재자로 나선 사람이 유명한 성 프란시스(1182-1226)였다. 그들은 공식 협상을 통하여 이른바 정교조약을 조인하고서 휴전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맺어진 그 조약에는 터키를 카톨릭에 양보하고 카톨릭 쪽에서는 레바논을 아랍영토로 인정할 것이며 또한 로마 카톨릭이 아랍국가에서 활동할 수 있는 한 회교도들 또한 아무런 간섭없이 이슬람 사원을 세울 수 있게 하는데 동의했다. 그리고 그들은 상호의 종교를 독립된 종교로 인정하고 공동의 적이 되는 정통파 유대인들과 카톨릭 교리를 반대하는 기독교를 공동의 적으로 간주하여 이를 제거하는 일에 공조하기로 약속하면서 조약이 체결되었다.
(5) 오스만 투르크 (1516-1920)
교황청과 아랍군의 정교 조약에 터키를 카톨릭에 양보하는 것으로 했지만 1299년 터키에서 일어난 오스만 1세가 세운 투르크 제국은 1453년에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고 이스탄불로 수도를 옮겨 번성하였고 예루살렘 땅은 1516년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셀림 1세가 시리아 맘루크 왕조의 세력을 꺾고 예루살렘을 지배하게 되었다. 현존하는 성벽의 대부분은 술레이만 대제(1520-1566)시대에 축조된 것인데 오스만 터키도 쇠퇴하여 19세기 중엽 이 후 유럽 영토 대부분을 상실한 투르크제국은 1908년에는 케말파샤 아타튀르크는 1922년 11월 술탄 정부의 폐지를 선언함으로써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멸망하고 터키로 탄생하였다.
(6) 영국 (1920-1948)
한편 제1차 세계대전 말기에 터키군이 패퇴하고 앨런비 장군이 거느리는 영국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으며 1920년부터 팔레스타인이 영국의 위임 통치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후 1차대전 중의 벨포어 선언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유대인들이 격증하였으며 1948년 5월14일에 이스라엘 국가로 독립하였다. 이에 따라 예루살렘은 요르단과 이스라엘이 동서로 양분되었다가 1967년 6월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전역을 차지했으나 아직도 예루살렘 성전 산에는 이슬람 사원이 그대로 남아 있다. 현재와서 보면 이제는 예루살렘이 교황청의 소유가 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슬람교의 소유가 되지도 못했고 교황청이 그렇게 없애 버리려고 했고, 아랍사람들이 그렇게 박해했던 유대인들이 거의 다 차지하게 되었다.
4. 로마카톨릭과 이슬람과의 합작품 - 파티마성당
한편 1910년경에 포르투칼에서는 공산주의 운동이 나타나면서 공산주의자들은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악선전하면서 포르투칼에서 카톨릭을 제거하려 하여서 교황청에는 포르투칼에서 확산되는 공산주의를 막아 내려면 마리아가 나설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위대한 쇼를 준비한 사건이 마호메드의 딸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포르투갈 산타렘주 빌라노바데오렘에 있는 파티마 마을에서 일어났다.
1917년 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13일이 되면 3명의 어린 목동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죄의 회개와 로자리오의 기도 (로자리오'란 가톨릭의 기도용 도구인 묵주의 이탈리아어 발음)를 권하였다는 유래 때문에 이 작은 마을에 성모마리아의 나타남으로 일약 순례지로 떠오르게 되었다. 1930년 레이리아의 주교가 이 사실의 신빙성을 인정하게 되면서 파티마의 로자리오 성모에 대한 숭앙은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지금은 파티마 대성당이 건립되어 해마다 600만명 정도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아 참배한다. 65m의 탑위에 큰 십자가를 꽂은 것으로 유명하다. 카톨릭은 거짓을 진리로 바꾸어 사람들을 믿게 하는 능력이 있음을 볼 수 있다.
5. 유일신을 믿는 세계 3대 종교의 비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세 종교의 공통점은 유일신을 믿는다는 점이며 원래 이 세 종교는 출발부터가 아브라함을 자기들 종교의 조상으로 섬긴다. 다만 유일신을 부르는 명칭이 유대교서는 신을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 처음 하나님이 직접 모세에게 가르쳐준 이름은 '나는 나다'라는 의미의 '에헤으아세르 에헤으'였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감히 신의 거룩한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된다고 믿어서 유대인들은 신의 이름을 발음하려 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야훼' 혹은 '여호와'라 부르나 한국 기독교에서 가톨릭은 '하느님' 개신교는 '하나님'이라 칭한다. 이슬람교는 '알라'라 부른다. 그러나 조금 깊이 들어가 보면 유대교는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직접 신과 계약을 맺은 것을 믿는 유대민족의 종교인 반면 기독교는 하나님의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종교로 이를 받아들이면 누구나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 이보다 늦게 발생한 이슬람교는 예수를 구세주가 아닌 예언자로 인정하고 무함마드를 최후의 가장 위대한 예언자로 보는 종교다. 뿌리가 같기 때문에 당연히 이들 종교는 모두 <구약성경>을 <성경>으로 믿는다.
세 종교의 경전을 보면, 유대교는 <구약성경>과 <탈무드>이며, 기독교는<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이슬람교는 <토라>와 다윗의 시편, 예수 복음서 그리고<코란>이다, 그런데 이슬람교에서는 <코란>을 제외한 세 개는 후대에 일부 내용이 변절 되었다고 본다.
또 세 종교는 공히 죽은 다음의 부활과 최후의 심판 개념을 발전시켰다. 초기 유대교는 '야훼의 날'을 '마지막 날'이라고도 한다. 유대교에서는 '마지막 날'이라는 용어는 메시아가 도래할 것이라는 유대인들의 믿음을 상징한다. 다른 종교들도 종말론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기독교는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전 인류를 심판하는 날이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하나님’이라는 동일한 신을 믿는 종교로서 사랑과 자비, 복음과 구원과는 별개로 작금의 현실은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되어 있다.
예수가 공생활을 시작한 이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을 통해 예수를 믿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면서 박해도 그만큼 심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유대와 사마리아로 퍼졌다. 이때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사울이란 사람이 있었다. 사울은 예수가 다윗이 예언한 구세주이며 이사야 선지가가 예언한 그리스도 곧 메시아라고 선전하는 기독교인들에 대해 격분했다.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거룩한 성전과 율법을 거스르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메섹 그리스도인들을 감옥에 잡아넣기 위해 산헤드린의 정식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는 중에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바울은 기독교의 세계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는 복음을 이방 세계에 전하기 위해 구원의 의미를 '은혜'중심으로 설명함으로써, 유대 관습에 낯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데 성공했다. 신약성경 복음서를 제외한 대부분은 사도바울이 기록한 말씀이다.
(1)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
유대교와 기독교가 극명하게 다른 점이 있다. 유대교는 유대인에 한정된 종교인 반면 기독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계기로 전 인류의 구원을 지향하는 보편적인 종교로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구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이런 율법을 지키면 구원하겠다'라는 약속이나 인간은 그 계명이나 율법을 지킬 수 없어 모두 하나님의 심판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약속 곧 <신약>을 받았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구약>은 어떻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느냐 였다면 <신약>은 예수가 하나님께서 보낸 그리스도 곧 구세주임을 믿게 하고 그를 왜 믿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안내서다.
(2) 이슬람교의 출현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570년 메카에서 태어날 당시 아랍 세계는 한마디로 사막에서의 혹독한 기후 때문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낙타와 양떼를 옮겨 다니며 사는 유목민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자기 종족 이외에는 아무 책임의식이 없었고 그들은 전투에서의 용맹, 부족공동체에 대한 충성심, 약한 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관용 등 남성다운 태도와 여행자손님에 대한 환대 등을 으뜸가는 미덕으로 여겼다. 한편으로는 미신이 유행했다.
무함마드는 자기가 받은 계시에 따라 유일한 알라의 종교인 이슬람교를 포교하는 데 나섰다. 그는 우선 아내에게 알라에 대해 알려주었다. 다음에는 열한 살 난 사촌 동생에게, 그 다음에는 하인에게 설교했다. 그는 613년 공적인 자리에서 가르침을 시작했다. 이슬람의 경전 코란은 무함마드가 알라로부터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인정되는 공식적인 이야기들을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이슬람교는 이를 두고 가브리엘 천사가 전한 신의 참된 말씀이라고 말한다. 이슬람교의 경전은 <토라>, <자브르>, <인질>, <코란>이다. <자부르>는 다윗의 시편이며 <인질>은 예수의 복음서다. 하지만 이 경전들은 유대교나 기독교의<성경>과는 많이 다르다. <코란>은 무함마드에 의해 외워져 추종자들에게 전달되었다고 하는데 <코란>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문맹자로 그는 글을 쓰거나 읽지를 못했다. 그런데도 무함마드는 알라의 계시에 의해 이를 외웠으며 그 추종자들이 <코란>을 기록했다고 하는데도 그들은 그것을 믿고 있다..
(3) 이슬람교 종파들
무함마드가 아들을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자 이슬람교는 장로 중에서 칼리프를 선출했다. 초대 칼리프는 무함마드의 부인 다음으로 첫 제자가 된 무함마드의 친구 아부바크르였다. 그는 메카에서 부유한 상인 출신으로 아내를 잃었던 무함마드에게 자신의 딸인 아이샤를 내준 인물이다. 그는 강대했던 동로마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면서 후에 거대한 이슬람 제국 건설의 기반을 닦았지만 아쉽게도 칼리프 자리에 오른지 2년 만인 634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따라서 정통성이라는 화두가 이후 이슬람교 역사를 지배하게 된다. 무함마드 사후 후계구도는 피로 얼룩졌고, 그에 따른 갈등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칼리프라는 선출제를 중요시하는 수니파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종주국이고 혈통을 중요시 하는 시아파는 이란의 종주국인데 이들 간의 갈등도 여기서 출발한다.
6 이슬람교의 진실
무슬림의 가장 큰 행사인 성지순례는 이슬람에서 만든 제도가 아니라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만들기 전부터 이교도들이 행해왔던 풍습이었다. 또 카바 신전도 처음부터 알라만의 신전이 아니라 아라비아 반도의 각 종족들이 섬기던 360개 우상들의 집합소였다.
무슬림들이 성지순례를 사모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물론 평생 한 번은 메카를 방문해야 한다는 율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 보다는 성지 순례와 메카의 카바 신전 자체를 신성시하는 이슬람의 문화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무리 비천한 신분의 무슬림일지라도 성지순례를 다녀오기만 하면 호칭이 바뀐다. 사람들은 그를 미스터 아무개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지(Haji) 아무개 라고 부른다. 이것은 성직자가 아닌 무슬림이 들을 수 있는 최고의 경칭이다. 내막을 물었더니 최근에 메카의 성지순례를 다녀온 사람이 사는 집인데 성지순례는 그 동네의 경사라서 주민들을 초청해서 성대하게 잔치를 벌인다는 것이다. 이란 뿐 아니라 중동에는 “하지아바드”라는 마을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성지순례 다녀온 사람(하지)이 사는 마을(아바드)’이라는 의미다. 그 동네의 원래 이름이 있음에도 성지순례를 다녀온 사람이 그 동네에 있으면 그 때부터 하지가 살고 있는 마을 즉 “하지아바드”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처럼 성지순례를 하는 것은 개인과 가문 뿐 아니라 마을의 명예와도 관련이 있는 행사이므로 무슬림이라면 모두가 사모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슬람들의 메카 성지순례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무함마드가 메카를 본격적으로 이슬람 성지로 인정한 것은 624년 초부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무함마드는 어려서부터 메카의 꾸라이시 족이 섬기던 알라(Allah)도 메카에 모셨던 360개 신들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어디까지나 이교도들의 풍습이었다. 무함마드가 610년 메카 주변의 히라산 동굴에서 천사를 통해 알라(Allah)신의 첫 번째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 이후에도 그가 메카에 머물렀던 12년 동안에는 이교도들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그들의 신앙전통을 따라 카바 신전을 순례했었다. 그런데 메카에서 이교도들의 핍박이 심해지자 622년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메디나로 이주한다. 이를 히즈라(Hijra)라고 하는데, 이는 이슬람의 원년이며 이슬람 달력은 이 때 부터 시작된다. 메디나에 간 무함마드는 그곳에서 유대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향해서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 무함마드는 자신도 같은 창조주를 믿는 선지자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그 증표로 그들과 같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으나 무함마드가 말하는 알라의 계시가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 말씀과 심각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 유대인들은 그가 선지자라는 것을 믿지 않고 배척했다(꾸란15:6). 성서를 가지고 있다면서 자신(무함마드)의 계시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 대한 악담과 저주가 꾸란에 많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약18개월 동안 유대인들과 같이 예루살렘 방향으로 기도하던 무함마드는 메디나의 통치권을 장악한 이후 처음 맞는 해인 624년 초부터 기도의 방향을 메카로 바꿔 버렸다. 이는 자신을 배척하는 유대인들과의 결별을 선언하며 적으로 여기겠다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 당시 메카의 카바 신전 안팎에는 360여개의 우상들이 있었다. 메카의 성지순례를 이교도들이 해오던 방식으로 그대로 유지한 것은 이교도들이 이슬람을 쉽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타협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무함마드는 이 성지순례를 처음부터 모든 무슬림들의 의무라 하지 않고 사파와 마르와 언덕을 오르내리면서 성지 순례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넌지시 묵인했다(꾸란2:158).
이런 기록들은 지금의 이슬람 성지순례가 유일신 종교를 자칭하는 이슬람 고유의 종교 의식도 아니고 무함마드가 새롭게 만든 의식도 아니며 오히려 이슬람이 배척하고 있는 이교도들과 우상숭배자들의 풍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1) 이슬람교 조상인 아브라함과 성경의 아브라함은 전혀 다르다
메카 성지순례의 모든 행위들은 아브라함과 관련된 이야기로 만들어 놓아서 신앙생활을 오래 한 기독교인들조차 이슬람들이 말하는 아브라함과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동일하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러나 꾸란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은 성경의 아브라함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성경의 아브라함은 데라의 아들로서 99세 때부터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바꿔주셨는데(창17:5), 꾸란의 아브라함은 아자르의 아들(꾸란6:74)로서 어려서부터 아브라함으로 불렸다(꾸란21:60).
성경의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예루살렘)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렸던 사람이었으나, 꾸란의 아브라함은 메카 부근에서 이스마엘을 번제로 드리려던 사람이었다(꾸란37:102-106). 성경의 아브라함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부근을 방문한 일도 없었는데, 꾸란의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함께 메카에서 카바 신전을 건축했다고 한다(꾸란2:127).
성경의 아브라함은 경전을 받은 일이 없는데, 꾸란의 아브라함은 모세처럼 경전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한다(꾸란87:18). 꾸란의 아브라함은 이교도들이 죽이려고 불속에 던졌는데 알라께서 건지셨다고 한다(꾸란21:68-69). 심지어는 양을 잡는 풍습도 아브라함이 아들을 번제로 드리려던 일과 관련시켜 놓았고, 사탄에게 돌을 던지는 풍습도 아브라함과 관련시켜 이야기를 만들어 놓았다. 이는 꾸라이시 종족이 섬기던 알라신을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의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로 믿게 하려고 예루살렘의 아브라함을 메카에 적용시킨 것으로,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사파와 마르와 언덕을 일곱 번 왕래하는 것은 성지순례에서 매우 중요한 헹사로서, 그곳은 무슬림들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이스마엘과 그의 모친 하갈이 물을 구하기 위해서 방황했던 언덕이라고 하지만, 성경은 하갈과 이스마엘이 사해바다 남서쪽에 있는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했다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창21:14).
이슬람의 역사에는 젖먹이 이스마엘이 사막에서 목말라 하자 하갈이 물을 찾아 사파와 마르와 언덕을 일곱 번 왕래하면서 헤매고 있을 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발꿈치 혹은 날개로 땅을 파니 샘이 솟아 나왔다고 한다. 이를 잠잠(Zam zam) 우물이라고 부르는데, 카바 신전 동쪽 20미터 지점에 있으며 무슬림들은 이를 거룩한 물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성경은 아브라함이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았고(창16:16), 그를 내쫓은 것은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이 젖을 뗀 후이니(창21:8), 당시 이스마엘은 15세쯤 되었을 큰 아이를 젖먹이라고 부를 리가 없다. 성경에는 천사가 ‘없던’ 우물을 새로 팠다는 기록도 없으며, “주께서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이미 있었던’ 샘이 보였다고 말씀하고 있다.(창21:19). 성경의 이스마엘은 바란 광야에 살았으며 애굽 여인을 아내로 삼았다고 기록되었는데(창21:21), 이슬람의 이스마엘은 메카 부근에 살았으며 주르훔 족의 아랍 여인을 아내로 삼았다고 한다(Sahih Bukhari volume4, Book55, Number584).
성경의 아브라함은 메카 쪽으로 간 일이 없고 가나안 땅에서 이스마엘을 추방한 후 죽을 때까지 그를 다시 만나지 않았으나 이슬람의 역사에 보면 아브라함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최소한 다섯 차례나 방문한 것으로 나와 있다.
첫째 방문: 하갈 모자를 추방할 때 메카까지 데리고 와서 버리고 갔다고 한다(Sahih Bukhari Volume4, Book55 Number584).
두번째 방문: 이스마엘을 번제로 드릴 때 메카 부근에 와서 번제로 드렸다고 한다(꾸란37:102-106).
세번째 방문: 카바 신전을 지을 때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같이 지었다고 한다(꾸란2:127).
네번째 방문: 이스마엘이 처음 결혼한 여자가 마음에 안 든다며 아브라함이 이혼을 명했다고 한다(Sahih Bukhari volume4, Book55, Number584).
다섯째 방문: 아브라함의 명령에 따라 이스마엘이 첫 번째 아내를 버리고 다른 아랍 여인과 결혼을 했더니 아브라함이 다시 와서 그녀를 보고 만족해하면서 축복했다고 한다(Sahih Bukhari volume4, Book55, Number584).
아브라함이 성경말씀대로 가나안 땅에 살았다면 직선거리로 1,000Km도 넘는 거리를 100세가 넘는 노구를 이끌고 어떻게 다섯 번이나 왕래하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을 진리로 믿고 있는 무슬림들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그들은 결코 우리가 미워하거나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 그저 그 땅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속아왔던 피해자들이다.
오랜 세월 속아왔던 무슬림들에게, 죄 사함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방문함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얻어지는 것임을 알려줘야 한다.
세상사람들이 보기에는 하루에 다섯 번이나 메카를 향해 기도하고 일년중 라마단 한달중에는 해가 뜬 중에는 금식하며 메카에 성지순례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종교적이고 너무나 경건하고 열정적인 신앙생활을 한다고 보는 무슬림들이야말로 정말 거짓 종교를 진리처럼 믿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그들이 믿는 알라는 전혀 다른 신이라는 것을 기독교인들이 먼저 알아야 하겠다.
(2)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
마태복음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그리스도라는 말로 시작을 한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마지막 예루살렘에 입성하였을 때부터 십자가의 죽음까지 성경에 기록한 대로 재구성해보자. 우선 예루살렘 입성하실 때 수많은 사람들이 외치기를
(마21:10) 9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그분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도시가 소동하여 이르되 이분이 누구시냐? 하거늘.
(마26:3-5) 3 그때에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저에 함께 모여 4 예수님을 교묘히 붙잡아 죽이려고 협의하였으나. 5 말하기를 백성 가운데 소동이 있을까 염려되니 명절날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산헤드린 공회의원들은 예수를 죽이기 위한 불법적인 공모가 이루어 졌으며 가롯 유다의 배신이 예수님의 죽음을 결정적으로 확정했다.
(마26:14-15) 14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롯 유다라 하는 자가 수제사장들에게 가서(마귀가 가롯유다에게 들어가니 예수님의 제자가 자기 스승을 팔고자 대적들에게 찾아갑니다). 15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를 너희에게 넘겨주면 너희가 무엇을 내게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서른 개로 그와 언약을 맺거늘
가롯유다가 예수를 넘겨주고 받았던 돈이 은 30세겔 이었던 것은
슥11:12의 예언의 성취라고 볼 수 있다. 스가랴서는 예수님 오시기 500년전 기록된 예언서로
(슥11:12)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값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하매 그들이 곧 은 삼십개를 달아 내 값으로 삼으니라.
이처럼 예수님에 관련된 행위는 이미 예언된 말씀을 이루어 나가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이 땅에서 마지막 유월절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합니다.
(마26:20) 이제 저녁이 되매 그분께서 그 열둘과 함께 앉으시니라.
이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갖는 예수님의 감회가 어떻했을까요?
이 일을 위해 가롯 유다는 이미 은 삼십을 받아둔 상태인데 여기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시41:9) 참으로 내가 신뢰한 나의 친한 친구 곧 내 빵을 먹은 자가 자기 발꿈치를 들어 나를 대적하였나이다.
(마26:24)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사람의 아들을 배반하여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장차 유다가 처하게 될 영원한 고통을 생각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제 만찬의 핵심인 예수님의 피와 살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마26:26-28)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집으사 축복하시고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집으사 감사를 드리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다 그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린 나의 피 곧 새 상속 언약의 피니라.
죄사함을 받기위해 예수님이 흘리신 피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게 될 새로운 언약의 피라는 말씀입니다.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성취되는 것인데 이 새 언약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새 언약이란 믿음으로 말미암은 죄사함으로 얻는 구원이 새언약인데 가치면이나 효력면에서 볼 때 구약의 옛 언약과는 비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옛 언약은 불완전한 짐승의 피에 근거한 반면 새 언약은 하나님의 아들의 피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로 예수님은 새 언약을 말씀하시면서 성만찬을 마치셨습니다. 이 만찬이 끝난 후 감람산으로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마26:31) 그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 밤에 너희가 다 나로 인하여 실족하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떼의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감람산에서 십자가를 지시고자 마지막 기도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마26:39) 얼굴을 대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오 내 아버지여 가능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는 이러한 기도를 세 번씩 드린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셔서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체포되어서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집으로 호송되어 가서 서기관과 장로들은 재판하기도 전 예수의 죄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정하고 거기에 맞는 죄 값을 찾기 위해 거짓증인들을 세웁니다. 어떤 거짓증인은 그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삼일동안에 지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이었는데 거짓 증인들은 마치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릴 계획을 갖고 계시기라도 한 듯 왜곡된 증인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짓증인들의 말에 일일이 대꾸하지 않으시고 묵비권을 행하시는 예수님의 침묵에 가야바인 대제사장이 묻습니다. 내가 너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맹세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
(마26:64)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할지라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아들이 권능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이후에 너희가 보리라 하시더라. 이 말을 들은 대제사장이 흥분하며 분노합니다.
(마26:65)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모독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우리에게 증인이 더 필요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그의 신성모독하는 말을 들었도다..
(마27:28-30) 28 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군인들이 예수의 옷을 벗기고 주홍색의 겉옷을 입힙니다. 홍포는 왕이나 지도자들이 입던 옷이다. 예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두른 것은 순전히 예수를 유대인의 왕으로 조롱하기 위한 것이다.
29 머리엔 왕관대신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이런 모욕적인 언행을 통하여 그들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칭하는데서 절정을 이룬다. 군병들이 사형수인 예수께 평화를 기원하였다.
30 그에게 침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예수께서도 그들의 조롱을 피하려고 얼굴을 돌리지 아니하였습니다. 군병들은 예수께 침을 밷으며 모욕을 한 후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쳤다. 정말 만왕의 왕이신 예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계획하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온갖 수욕을 견디시며 참으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사50:6-8) 6 모욕과 침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깍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온갖 희롱을 당한 후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를 향해 예루살렘 거리를 한발작씩 힘들게 가십니다. 십자가의 무게는 채찍질을 당한 사형수가 지기에는 너무 너무 힘들고 무거워 때로는 쓰러지십니다. 마침 시몬이란 구례네 사람이 우연히 그 곁을 지나다가 로마 군병의 요청으로
구레네 시몬은 십자가를 대신 지고 십자가가 세워질 골고다까지 왔다.
골고다로 불리는 곳 해골이라는 이곳에서 예수님은 못 박히십니다
(마27:35)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병사들이 그 옷을 제비뽑아 나누었다는 것도 예언의 말씀을 이루고자 함입니다.
(시22: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를 성취한 것이다. 이는 군사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행위조차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이며 예수의 수난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27:37-38) 37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이는 예수께서 처형당하신 이유를 말하는 것이다. 요한복음에 보면 이 말은 히브리 로마 헬라말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죄패를 읽을 수 있도록 하였지만 그들의 말대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만왕의 왕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죄인을 위한 대속물로 내놓으셨다. 그가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능을 포기하고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기 때문이다.
(마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이르시되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마27:50) 예수님께서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숨을 거두시니라.
예수께서는 인간의 성정을 가지신 분창21:14-21으로서 모진 고통을 당한 그의 죽음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고(막10:45) 한 특별한 죽음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 일어나는 이적의 사건들을 지켜본 백부장과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입을 모아 고백한 것은 예수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2000년전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저와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고자 이렇게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분의 십자가 죽으심이 우리를 천국에서 영생하게 하는 은총을 주신 것입니다. 이 은혜를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도바울은 이 십자가의 은혜를 갈라디아서 6:14에 그는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 내게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 할 것이 없다고 했다. 당시 세상 사람들은 율법을 자랑하고 할례 받은 것을 자랑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십자가를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고 전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죄사함은 예수그리스도의 피흘림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슬람교와는 비교자체가 될 수 없습니다. 거짓에 속지 말고 진리에 굳게 서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