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11 구천현녀(九天玄女)
구천현녀는 독립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보다 서왕모의 오른팔로 활약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일이 더 많다. 그와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중국의 전설적인 제왕 중 한 사람인 황제(黃帝)는 인간에게 오곡(五穀 : 쌀, 보리, 조 등 인간이 항상 먹는 곡물들의 총칭)을 재배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천하를 통일할 때 치우(蚩尤, '서왕모' 항목 참조)라는 괴수와 싸워 물리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치우라는 괴수는 동물의 신체를 가지고 있지만 인간의 말을 하고, 머리는 동(銅), 이마는 철로 되어 있으며, 쌀이나 보리 대신 모래와 돌을 먹었다는 기묘한 생물이다. 치우는 황제와 싸울 때 전쟁터였던 탁록(涿鹿) 지방의 들판 일대에 안개를 일으켜서 황제의 군대가 방향을 잃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황제의 부하인 풍후(風后)가 발명한 지남차(指南車)1) 덕분에 간신히 후퇴할 수 있었다.
불리한 전세를 뒤집기 위해 고민하던 황제는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다. 꿈에 서왕모가 나타나 "한 여성을 보낼 테니 전쟁에서 이기도록 하시오"라고 말하고는 사라지는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황제는 곧바로 제단을 만들고,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계속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구천현녀가 나타나 영보오부(靈寶五符) 등의 부적과 각종 병법(兵法), 『음부경(陰符經)』2)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것을 모두 동원해 다시 전투를 벌인 결과, 황제는 치우를 물리치고 천하 통일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때 황제가 받았던 『음부경』은 후세에도 전해져 도교의 중요한 경전이 되었다.
『수호전』의 영웅 송강을 도와준 구천현녀
또 하나의 이야기는 『수호전(水滸傳)』3)의 주역 중 한 사람인 송강(宋江)과 관련된 것이다. 송강이 양산박(梁山泊)으로 향하던 중 추격의 손길이 미치는 것을 알고는 오래 된 사당 안으로 몸을 숨기게 되었다. 하지만 뒤쫓던 추격군에게 발각되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고 생각한 순간, 제단 뒤에서 검은 구름이 피어오르면서 냉기가 감도는 바람이 불어왔다.
그러자 추격군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갑작스런 일에 너무나 놀라 혼비백산하여 사당 밖으로 꽁무니를 빼며 달아났다. 추격군이 모두 물러가자 안심하고 있던 송강 앞에 푸른 옷을 입은 어린 소녀가 나타나 그를 여신에게로 안내했다. 그 여신이 바로 구천현녀였다.
송강이 본 구천현녀는, 구룡비봉(九龍飛鳳)이라는 형식으로 머리를 틀어올려 묶고, 금빛 나는 의관에 푸른 구슬이 여기저기에 박혀 있는 띠를 두르고, 긴 중국풍 치마를 입고 서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린 소녀가 권한 술을 마시니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될 만큼 달고 맛있었으며, 천계에서 가지고 온 대추 맛도 아주 좋았다고 한다.
구천현녀는 송강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에게 세 권의 천서(天書 : 천계의 책)를 드리지요. 하늘을 대신해 도(道)를 행하세요.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충(忠)을 다하고, 의(義)를 관철하고, 신하가 되어서 나라를 구해 백성들을 편안케 하세요. 그리고 옳지 못한 것[邪]을 물리치고 바른 길로 돌아가서……."
그 책을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보여서는 안 되며, 뜻을 다 이룬 후에는 불태워버려야 한다며 천언(天言)을 들려주었다. 그 내용은 앞으로 펼쳐질 송강의 활약상을 예언하는 것이었다.
송강은 그후에도 다시 구천현녀를 만났다. 송나라의 총사령관이 되어 요(遼)의 군대에 맞서 고전하고 있을 때, 구천현녀가 나타나 구체적인 전투 방법을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구천현녀의 모습을 보면, 그녀는 황제나 영웅이 궁지에 몰려 있을 때 원조의 손길을 뻗는 수호신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구체적으로 전투 방법을 전수해주는 '전투신'의 역할도 맡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각주
1 지남차 : 방향을 지시하는 장치. 이륜차 위에 방향을 알려주는 인형을 설치한 것으로, 지면에 접하는 두 차바퀴의 회전 방향을 톱니바퀴와 도르래를 이용해 위쪽에 설치해둔 인형에 전달할 수 있도록 장치했다. 고대에는 평원이나 사막 같은 곳에서 방향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적들과 자주 맞닥뜨려야 했던 전장에서 지남차는 아군의 진지를 알려주는 지침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여기에서는 황제의 부하였던 풍후가 발명했다고 하지만, 후한(後漢) 시대의 발명가 장형(張衡, 72~139)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구천현녀 [九天玄女, jiutianxuannu] (도교의 신들, 2007.10.26, 들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