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서부터 티비의 보급화가 대중화 되었따. 한 노동자의 말에 의하면 티비는 사람들의 시간을 빨아들이는 스펀지였다고 한다. 텔레비전은 아이의 미래를 빨아들였고, 직장인들의 주말을 송두리쨰 빨아들였다. 티비가 대중의 마취제로 기능하는 강한 문제 제기에 1982년~1984년까지 티비 시청료 거부운동이 일어났다. 재야 운동단체와 종교단체들이 농민들의 티비 시청료 거부운동에 호응하면서, 시청료 거부 운동은 기독교방송뉴스 부활투쟁으로 옮겨갔다. 1986년 9월, 정권은 3대 복지정책(지역의료 보험 확대 실시, 국민 연금제도 실시, 최저임금제 도입)으 발표하였고 합동 재개발을 끌어들였다. 합동재개발은 무허가 불량주거 재개발사업에도 대규모 건설업체의 근 손을 끌어들임으로서 대규모의 능률적인 재개발사업을 전개한다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후 정권은 서울시에 토지공영개발방식을 시도해 신정동, 목동에 신시가지 140만평을 조성한다고 발표하였다. 10여 년 이상을 그 지역에서 살아 온 4천여 빈민 세대들은 70년대에 아현동 등에서 철거되어 그곳으로 쫓겨갔던 사람들인, 이제 또 한번 내쫓길 위기에 처한 것 이다. 이에 주민들이 거세게 반대시위를 펼쳤지만 정부는 그저 빈민에 아무런 대책 없이 서울시의 목동 공영개발을 실시하였고 이후 2년간 백여 차례의 크코 작은 주민 시위를 발생케 하는 파국을 초래했다. 그러나 결국 당한 건 빈민들이었다. 이처럼 당국의 재개발정책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가장 큰 볼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86년 10월 31일 신당 6동 강제철거시 2명이 분신을 기도하였고 철거민 1명이 자살하는 일이 벌여졌다. 강제 철거는 대단히 폭력적이어서 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심지어 사망하기까지 했다. 1986년 9월 20일부터 10월 5일까지 열린 86년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은 우승한 중국의 금메달 94개에 1개가 모자라는 93개를 획득함으로서 2위를 차지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5공정권의 입장에선 그 누구보다 좋아 죽을 일이었다. 전두환의 예찬은 멈추지 않았다. 86 아시안 게임과 86올림픽 게임의 유치는 광주 학살을 저지른 5공 정권이 그 원죄를 덮기 위한 최상의 카드였을 것 이다. 조선일보가 열을 내고 떠들어낸 이른바 민족적금지와 자부심으로 모든 걸 감출 수 있을 것이라 믿었을 것 이다. 5고오 정권은 스포츠 공화국답게 두 게임의 여론 조작의 주무기로 활용하였다. 언론은 말하 것도 없고 교과서도 그러한 여론 조작에서 비켜 갈 순 없었다. 81년 교과 과정의 개설과 함께 교과서가 전면적으로 개편되었는데, 체육 교과서는 모든 포커스를 86 아시안 게임과 88서울 올림픽에 맞추었다. 전두환은 자신의 후계자로 민정당 대표위원 노태우를 택하였으며, 그 작업의 가시화 1단계로 3월 25일 청와대에 민정당 주요 당직자들을 불러 자신의 메세지를 전하였다. 1987년 6월 2일 전두환은 민정당의 중앙집행위원회 간부들을 청와대 만찬에 초청해 노태우를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많은 시민들이 독제정치는 물러가라며 전국적인 시위가 잇따르자 민정당 대표위원 노태우는 6월 29닐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6.29선언을 하였다. 노태우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외에 김대중 사면, 복권 및 극소수를 제외한 시국관력 사범의 석방, 대통령 선거법 개정, 국민 기본권 신장, 언론자유 창달, 지방자치제 실시 등의 8개할을 제시했다. 노태우는 6.29 선언을 발표하면서 이를 청와대에 건의해 만약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대통령 후보는 물론이고 당 대표직을 포함은 모든 공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전두환은 7월 1일 특별담화를 통해 노태우의 6.29 선언을 대폭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건 잘 꾸며진 한 편의 쇼였다. 6.29선언은 전두환이 만든 각본에 따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전두환이 직선제 수용을 결정한 뒤 노태우로 하여금 발표하도록 조치를 취해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계산을 했던 것 이다. 6.29 선언은 전국을 축제 분위기로 몰아갔다. 1987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위해 전두환은 노태우를 지원사격했다. 끝내 노태우는 전두환을 이어 대통령 당선에 성공하였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나 영화가 많다. 특히 엄청난 히트를 쳤던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88올림픽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드라마에서 비춰지는 그림은 그저 밝은 이미지엿기에, 그 뒤에 숨겨져 있던 그림자를 보지 못 했다. 그런데 또 다시 이 책을 읽으면서 뒷 이야기를 알 수 있었다.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을 위해 고통을 받아야 했던 수 많은 국민들이 있었다. 86 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도 국가를 위해 정부가 선택한 방법이었을 것 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고통을 받아야 했던 국민들이 있었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결국 국가는 국민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이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대통령이기 전에 한 나라의 국민이다. 이걸 항상 마음에 새기며 대한민국을 잘 이끌어 줄 지도자가 생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