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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예배
제목 : 참된 예배자의 바른 삶
성경 : 렘 7:1~15
찬송 : 540장
저자 : 이삼규목사
출처 : 20221016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렘 7: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이르시되
렘 7:2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렘 7: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살게 하리라
렘 7: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렘 7:5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렘 7: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렘 7:7 내가 너희를 이 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
렘 7:8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
렘 7:9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렘 7: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렘 7: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7:12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보라
렘 7: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렘 7:14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 같이 너희가 신뢰하는 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곳에 행하겠고
렘 7:15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낸 것 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중국의 전국 시대를 이끌어 가던 칠응 중 가장 강한 나라는 진(秦)나라였고,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왕은 진나라의 시황제였습니다. 시황제의 함양(咸陽) 궁에는 신기한 거울이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너비가 4척(약 120cm)이고 높이가 6척(약 180cm)되는 엄청난 거울이었는데, 앞면과 뒷면 모두가 밝게 빛나는 거울이었습니다. 이 거울 앞에 사람이 서면 거꾸로 선 모습이 나타나고,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지면 자신의 오장(五臟)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몸에 병이 있는 사람이 거울 앞에 서면 환부가 비추었고, 심지어 사람의 나쁜 마음까지도 비추었다고 합니다. 이 거울을 이용해 진시황은 궁궐 안에 있는 신하들의 충성심을 들여다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거울의 이름은 √“명경고현(明鏡高懸)-높게 매달려 있는 맑은 거울”이라는 뜻입니다. 후에 이 ‘명경고현’은 ‘시시비비를 명확하게 따져서 판단하는 공정무사한 재판관’을 비유하는 고사성어가 되었습니다.
성경학자 아더 핑크는 “성경은 거울과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우리 삶과 마음가짐, 더 나아가 우리 생각과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까지 비추어 주는 거울이기에,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말씀 앞에 스스로를 비추어 보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예레미야 2~25장은 유다를 향한 총 12편의 단편 예언집 혹은 설교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7장은 소위 ‘성전 설교’라고 불리는 예레미야의 예언인데, 당시 유다는 총체적으로 부패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요시야의 종교개혁으로 인해 어느 정도 회복된 듯 보였지만, 요시야 이후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이 차례로 왕위에 오르면서 종교 개혁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고 하면서 정작 그들은 우상을 숭배했고, 심지어 성전 안에 우상을 만들어 세우고 그것을 예배했습니다. 그러한 악을 행하면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앗수르 이후 메소포타미아의 맹주가 된 바벨론으로부터 위협을 당하면서도 성전이 있는 한, 성전 예배가 있는 한 자신들은 안전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릇된 안정감이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회개는커녕 거짓말과 도둑질을 일삼고 이기적 탐심을 채우는 데 혈안이 되었습니다. 유다의 신앙적 부패는 결국 총제적 부패의 시작이었고, 그들의 타락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불러왔습니다. 예레미야는 신앙적 부패로 시작된 총체적 부패에 대해 언급하고, 위선적인 성전 예배를 책망하며,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합니다.
√성전에 대한 거짓 예언에 속지 말라!
√렘 7: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이르시되
렘 7:2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입니다. 예레미야에게 여호와의 집, 곧 성전 문에 서서 말씀을 선포하되, 여호와께 예배하기 위해 그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에게 회개 촉구의 메시지를 선포하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어쩌면 그때는 이스라엘 군중이 예루살렘으로 몰려드는 3대 절기 중 하나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 성인들은 절기에 예루살렘 성전에 나아가서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예배하러 모여든 백성들에게 예레미야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렘 7: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살게 하리라
렘 7: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이 말씀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기는 하지만, 그들의 예배는 성전 안에만 갇혀 있고 그들의 일상은 하나님 백성다운 삶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웃에게 정의를 행하지 않았고, 약자였던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했으며,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므로 이중적이며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버리고, 예배가 삶이 되고 삶이 예배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성전 안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또 한편으로는 우상 숭배를 하는 혼합주의 신앙을 버리고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섬긴다면 결코 우상 숭배할 수 없습니다. 유다 백성은 이웃과 관계는 물론 하나님과의 관계도 바르지 않았습니다. 이는 참된 예배가 아닌 거짓된 예배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생각하는 참된 예배자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기 위해 내가 버려야 할 것과 취할 것은 무엇인가요?
참된 예배는 단지 예배당 안에만 있는 의전이 아닙니다. 예배가 하나의 의전이나 형식으로만 끝난다면 그것은 올바른 예배가 아닐 것입니다. 의전적 예배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는 외적 표현이라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실재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은 결국 삶으로 나타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하는 삶은 이웃에게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렘 7:5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렘 7: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렘 7:7 내가 너희를 이 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
예레미야는 그들이 그들의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해야만 여호와께서 그들을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성에 살 수 있게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여호와의 성전’으로 칭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성전’이라는 표현을 세 번이나 반복한 것입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이야말로 자신들의 안전과 번영을 보증해 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율법에 순종하는 삶이 부재한 채로 성전에 오는 자들에게는 성전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거룩한 곳이 아니라, 아무 의미 없는 건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성전 설교는 이처럼 잘못된 성전 신학이나 그릇된 성전 신뢰 의식을 경계하려는 의미에서 계획된 것입니다. 성전 건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의 태도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유다 백성들이 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합니다(롬 12:1). 우리의 몸(우리 삶)은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 되면 안 됩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이 줄곧 관심을 보이시며 보호자가 되신다고 자처하신(출 22:22; 신 10:18; 시68:5; 146:9) 상대적 약자들,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웃을 향한 사랑의 도구여야 합니다. 이것 역시 의전적 예배 이상으로 하나님이 받기 원하시는 삶의 예배입니다.
요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구원에 대한 거짓 교훈에 속지 말라
경고 메시지에 추가된 약속은 현실성이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들의 변화를 도무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예레미야 선지자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심판을 자초한 유다 백성의 죄악을 낱낱이 고발합니다.
그들은 성전이 안전과 번영을 보증한다는 무익한 거짓말을 신뢰했습니다.
√렘 7:8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은 십계명의 규범들을 고의적으로 무시했습니다.
√렘 7:9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은 십계명의 후반부를, 거짓 맹세와 바알을 향한 분향,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긴 것은 십계명의 전반부를 상기시킵니다. 한 마디로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규정들을 철저하게 멸시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삶에서 이처럼 큰 죄를 범했으면서도 “여호와의 이름을 일컬음을 받는”(10,11,14절; 32:34; 34:15; 왕상 8:3) 성전에 오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상한 논리에 빠져 있었습니다.
√렘 7: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이것은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매우 가증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렘 7: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성전 만능주의의 거짓된 믿음에 사로잡힌 그들의 행동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성전 밖에서는 도둑처럼 악하게 행동하고 성전에 들어오면 마치 도피성에 있는 것처럼 죄 용서와 구원을 받을 거라 생각하는 태도야말로 성전을 도둑들의 소굴로 만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그들의 생각과 삶을 꿰뚫어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외식적인 유대인들의 거짓된 신앙을 책망하실 때 이 말씀을 인용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마 21: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고백하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아니라 성전 건물이 자기들을 구원하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런 무익한 거짓말은 저들을 멸망으로 몰고 갔습니다. 지금도 자기 삶은 변화되지 않으면서 예배당에 오면 복을 받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런 거짓말에 흔들리는 자들을 깨우치고 바른 신앙을 붙잡아야 합니다.
√거짓말을 믿은 자들의 결국
여호와께서는 잘못된 것들을 결코 그대로 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당신이 보신 것에 상응하는 징계를 계획하시고 실천에 옮기시는 분이십니다.
√렘 7:12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보라
렘 7: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렘 7:14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 같이 너희가 신뢰하는 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곳에 행하겠고
렘 7:15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낸 것 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이 단락의 심판 선고가 그 점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먼저 범죄한 유다 백성에게 제일 처음 당신의 이름을 두셨던 실로 성소(삼상 1:3)로 순례 여행을 떠날 것을 명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죄악을 어떻게 벌하셨는지를 자세히 살펴보라고 명하십니다(12절). 실로는 한 때 언약궤가 있던 곳으로, 이스라엘 공동체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 엘리의 가족이 범죄함으로 언약궤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탈취를 당했고, 여호와께서는 실로를 버리셨습니다(삼상 4장).
시 78:60 사람 가운데 세우신 장막 곧 실로의 성막을 떠나시고
여호와의 임재 공간, 특히 예루살렘 성전이라고 해서 절대적으로 안정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이 그때의 죄악을 그대로 본받아 행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씀하셔도 듣지 않았고, 부르셔도 성실하게 응답한 적이 없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변화되기를 더 이상 기다리실 수 없었습니다. 실로에서 행하셨던 것처럼 당신의 이름으로 일컬음 받는 예루살렘 성전을 버리실 것이고, 유다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의 땅 역시 버리실 것입니다.
심판은 성전이라는 예배 공간과 땅이라는 주거 공간을 버리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안에 있는 자들에게도 임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북왕국 이스라엘(에브라임)을 완전히 쫓아내신 것처럼 유다 백성도 당신 앞에서 쫓아내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거 역사에서 교훈을 받고 내 삶에 반면교사로 삼은 일이 있습니까? 오늘 내 삶에 말씀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과거에 일어난 성경의 사건들을 현재 내 삶에 비추어 봄으로써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바르게 설정하고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 말씀은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 말씀을 읽는 우리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무엇을 따라가야 할지를 비추어 주는 거울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역사이면서 동시에 현재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가나안에서 처음 제사를 드리던 성소인 실로가 파괴된 이유, 에브라임이라 일컫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한 이유, 그리고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하여 성전과 궁궐과 예루살렘의 집들이 불탄 이유가 나의 삶의 모습에도 그대로 있지 않은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이킬 수 있는지를 말씀을 통해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성경이 보여 주는 역사적 멸망의 전철을 그대로 밟지 않고 바른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가 삶이 된 사람, 삶이 예배인 사람을 찾으십니다. 바른 예배는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를 넘어 삶의 현장에서 이웃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몸으로 드리는 거룩한 산제사입니다. 예배와 삶을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참된 예배자는 삶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구원에 대한 그릇된 안정감에 도취되어 위선적으로 예배하던 유다의 모습이, 일주일에 한 번 드리고 모든 것을 해결하려하는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봅시다. 날마다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위선과 죄악을 살필 때 바른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