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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경험담으로 대학원진학과 결혼의 선택, 이 두 가지를 말해보려고 한다.
1. 대학원 입학과 교육공학 수업 수강
이번학기는 교육대학원 첫 학기다. 막연히,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가르칠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문을 두드린 대학원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캠퍼스로 돌아와서 그런지 설렘 보다는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다. 입학식, 오리엔테이션 등에 참석한 주변의 학생들을 둘러보며 ‘내가 결혼을 조금만 일찍 했더라면 저만한 자식들이 있지 않을까.. ㅎㅎ’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대학원에 지원할 당시 아내는 몇 군데를 복수로 지원하라고 했다. 아내의 권유는 당연히 합리적인 것이었다. 한 군데라도 걸려야 하니까. 하지만, 나는 무슨 똥배짱인지 딱 한 곳만 지원하고 싶었다. 원서 값이 좀 비싼가... ㅎㅎ ‘떨어지면 말지 뭐, 그럼 또 어떻게 되겠지’ 하며 남의 인생 얘기하듯 그렇게 무모하게 직관에 의존하여 서강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선택하였고 지원을 하였다. 운이 따라줬는지 합격을 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입학을 하게 되었다.
기뻤다. 합격한 것도, 원서 값 아낀 것도. ㅎㅎ 그때의 선택을 생각하면 지금도 기분이 좋아진다. 뭐 여전히 주위로부터는 ‘그 나이에 대학원 가서 뭐할 건데’ 라는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말을 곧이 곧 대로 실천하면 현실에서는 칭찬이 아닌 핀잔을 받게 됨을 깨닫는다. ㅜㅜ 그러니 주의바람!!).
수강신청기간이 도래했다. 그런데 교육학에 전혀 문외한인 내가 과연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애시당초 NO! 옛말(?)에 알아야 면장을 한다고 했던가. 이게 딱 적합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면장은 고사하고 첫 학기를 무사히 잘 적응할 수 있기만을 바라며 나의 직관에 매달릴 뿐이었다.
교육심리, 교육철학 등의 타이틀은 낯설지가 않았다. 그 옛날(?) 학부 때 심리학개론과 철학개론을 수박 겉핥기식으로라도 들은 터라 그랬을 수도 있고, 제목으로 부터도 그 내용을 대충은 유추해낼 수가 있어서다. 교육심리학은 교육에 관련된 심리학을 가르치겠군, 교육철학은 교육에 대한 철학가들의 사상에 대해 배우겠군 뭐 대충 이 정도라도 감을 잡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엥 교육공학? 이건 뭐지? 교육+공학? 뭔가를 막 설계하고 그러는 건가, 교육인데 뭘? 교육과 공학이라는 이름의 조합이 매우 낯설었다. 어려운 과목이겠구나... 피할까? 그런데 그 순간 첫 학기니까 더 치열하게 해야겠다는 묘한 심리가 작용한다. ㅎㅎ 이런 말도 안 되는 순간적인 감흥에 휩싸여 수강신청을 하였다. 그 결과 교육공학을 비롯하여 낯선 과목들로만 10학점이 가득 차 있다. ㅎㅎ 스스로 해놓고도 ‘인생 참 모르겠네’ 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 인생이라는 건 어차피 계획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잖아’ 라며 애써 위로도 해본다.
교육공학 첫 수업시간이 되었다. 구름(?)같이 많은 학생들이 몰려와 있었다. 학생들이 많이 몰리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잘 선택했나 보다 하고 위안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교수님께서 겁을 주신다. 교육심리학 같은 선수과목들 안 들으신 분들은 듣기 어려우니 잘 생각하라, 교수님 전화번호를 ‘영일오빠(0158)’ 라고 소개하시는 통에 학생들이 탄식(?)하자, 그런 거 참지 못하는 분들도 나가시면 된다 라는 등등. 그러자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더니 갈대처럼 내 동공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ㅎㅎ 어쩌지? 나도 나갈까? 엄청 어려운가 보네.. 아니야 어차피 다른 것도 똑같겠지. 혹시 또 알아,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아닐지도 몰라. 갈등하며 교수님의 관상을 살피면서(? 관상 보는 법 좀 배워둘걸!) 순간적인 감에 의존하여 그냥 버티자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교육공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며 교육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고, 초전 설득(Pre-suation) 이론 등 새로운 사고를 접하는 것이 좋았다. 무엇보다도 직관의 중요성을 깨달으며 합리성에 편향되어 있었던 그 간의 내 사고방식이 와장창 깨지는 전율을 느끼기도 하면서 ‘아 이렇게도 볼 수 있겠구나, 아 그렇구나.’ 를 마음속으로 연발하였다.
결론적으로 교육공학 선택에 대해서 조금의 후회도 없이 매우 만족해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다른 어떤 수업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신세계를 경험한 것이다. 교수님께서는 학생들의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기본가정에 의문을 던지는 임팩트있는 질문을 제시하시곤 하셨다. 그를 통해 학생들의 메타인지를 적절히 건드려주시고 자극을 주시며 결국 학생들의 태도를 바꾸어 가는데 성공하신 것 같다.
열강 중이신 교수님 한 컷!
2. 아내와의 첫 만남과 결혼
이제부터는 아내와의 만남과 결혼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직관 경험담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내가 아내를 만난 건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이다. 그 당시에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뜻이 없었다. 주위에서는 걱정이 심했다. 오죽하면, 어머니께서 결혼정보업체에 연락을 다 하셨을까. 결혼정보업체로부터 연락이 왔을 때 정중히 거절을 하였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불안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결혼을 생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한번은 공무원 동기(나중에 알고 보니 내 대학 후배였다.)와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소개팅을 시켜주겠다는 제의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평소 같으면 거절을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말이 앞섰다. 좋다고 응해버린 것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 이 점은 지금도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그 약속이 잊혀져갈 무렵 연락이 왔다. 그쪽, 그러니까 훗날의 내 아내가 나에 대해 몇 가지 신상정보를 궁금해 한다며 후배 녀석이 물어온 것이다. 그래서 답변을 해주었지만 기분이 상했다. 뭘 그런 걸 따질까... 마음만 맞으면 되지(참으로 나이브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ㅎㅎ).
다행히 그녀의 기준에 통과(?)되었는지(그런데 사실 통과될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했으니 아내가 후하게 봐준 게 틀림없다. ㅎㅎ).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2호선 을지로입구역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던 노리타가든(지금은 없어짐. 봉골레 파스타 맛있었는데.. ㅜㅜ)이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오후 1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게 되었다.
그런데, 약속날짜가 다가오면서, 만나기도 전에 나에 대해 신상정보를 먼저 물어온 것이 마음에 걸렸다(나는 그녀에 대해서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ㅜㅜ). 그 당시 나와 아내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당연히 아내가 그럴 만 했지만 그때는 내가 좀 현실감각이 없었거나 뭐 그랬던 것 같다. 나갈까 말까... 만나지 말까... 고민이 되었다. 어떻게 하지? 그런데 왠지 마음 한편에서는 끌리는 구석이 있었다. 그녀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런데 왜 끌리지? 이상하다. 만나보자!!
만남이 예정된 당일이 되었다. 오전에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어 연수과정입학 시험이 있었던 터라 부랴부랴 가서 시험을 치른 후 그로 인해 너덜너덜 해 진 멘탈과 배고픔을 느끼며 극강의 피로감속에서 약속장소로 향했다. 내 지금 상태로 보아 오늘 잘 되긴 틀렸어! 대충하고 집에 가야지 이런 생각과 함께 조금 일찍 도착하여 출입문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출입문을 등지고 앉은 것은 출입문으로 들어오는 그녀를 정면으로 대하는 것이 어색했기 때문이다. ㅎㅎ
그렇게 잠시 동안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한 여자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 누군가를 찾는 것 같더니... 급기야 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여자구나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랑해도 될까요>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 ~ ♬
첫 눈에 난 내 사람인걸 알았죠 ~ ♩
나는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유리상자의 「사랑해도 될까요」 라는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그녀의 실루엣을 보는 그 찰나의 순간에 나는 말도 안 되는 결심을 굳히게 된다. 이 여자가 나의 아내가 될 것임을 직감하며 결혼하겠다고 결심을 한 것이다. 아내의 외모 때문이 아님은 외모에 대한 아내 스스로의 고백에서도 알 수 있다. ㅎㅎ 참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진짜로 그랬다.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지만, 전적으로 감에 의존해서, 그동안 결혼을 계획하고 있지도 않았던 내가, 그 찰나의 순간에 결혼결심을 굳힌 것이다. 그리하여 5개월 만에 아내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신혼 초에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몸살기가 있다며 약국에 가서 약을 좀 사먹어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순간 나는 혹시... 하면서 약을 사먹지 말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누구나 다 아는 병, 즉 아내가 임신을 한 것이었다. 그때 나는 내가 순간적으로 내린 판단이 얼마나 잘한 것이었는지... 지금도 나는 내가 아니 나의 직관이 참 대견하다. 덕분에 우리 딸은 건강하게 태어나서 잘 자라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이렇게 훌쩍 커 버렸다. 미운 11살이다 ㅎㅎ
아내와의 결혼 그 선택의 결과는 어땠을까? 아내는 좋은 사람이고, 나보다 모든 면에 있어서 훨씬 나은 사람이다. 아내와의 결혼생활은 행복하다. 물론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양육문제 등을 비롯하여 이런 저런 문제로 다투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쯤에서 한 가지 드는 궁금증. 아내는 합리적 판단의 결과로 나를 만나고 결혼에 이른 것 같은데 직관적으로 아내를 선택한 나만큼 행복을 느낄까?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물어볼 자신이 없다. ㅜㅜ 이것만 보더라도 직관이 합리성을 이기는 것을 알 수 있다. ㅎㅎ
그러고 보면, 최근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선택(대학원 입학과 결혼)은 모두 직관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것저것 따지는 것 없이 한 그러한 선택에 대해 후회가 없고 만족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물건 하나를 구매할 때도 가성비를 높이기 위해 이것저것 따지며 눈이 빠지도록 검색을 하고 선택을 해야 만족을 얻을 수 있었던 내가(지금은 힘들어서 그렇게 못함 ㅎㅎ) 정작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는 오로지 감에 의존하였고, 그 선택에 후회가 없다는 것이다. 직관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직관경험담을 쓰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인간은 과연 합리적 존재인가?"
인간은 이성을 가진 합리적인 존재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직관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이 중 어느 것이 더 인간의 본성인가? 적어도 직관은 학습에 의해 길러지는 것이 아니지만,
인간의 합리성은 후천적인 학습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 이전에 직관에 의해 행동하는 존재라고 규정되어야 할 것 같다.
동물과 인간이 구별되는 것은 인간이 이성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말을 다른 관점에서 다시 써보면, 이성 외에는 동물과 인간이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같은가? 여러 면에서 같은 점을 찾을 수 있겠지만, 동물과 인간 모두 직관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동물은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의 판단에 의해서 움직인다. 이것이 바로 직관의 특성이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직관을 본성으로 하는 인간이 합리성 운운하는 것은 결국 후천적인 지독한 학습에 의한 결과가 아닐까.
직관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개념이지만, 합리성은 인위적인 개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이처럼 인위적으로 설정한 합리성에 스스로를 강하게 옭아 매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의 판단이 과연 직관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합리성에 기반한 것인지 혼동하는 지경에 까지 와있는 것 같다. 직관에 의해서 행동한 것 같은데 곰곰 생각해 보면 합리성에 의한 것인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그만큼이나 우리의 직관은 합리성에 의해 억눌려져 왔고 터부시 되어왔다. 뭐든지 근거를 대야하고, 원인을 분석해야 하고 ..... ‘그냥 감으로 했어요’ 하면 한심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
나는 이번 교육공학 수업을 계기로 위기와 선택의 순간에 합리성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직관이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그렇다고 합리성을, 그 유용성이 있는 한, 전적으로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직관을 자유롭게 발현되도록 해방시키되 상황에 따라서는 합리성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