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딸기, 블루베리, 라즈베리 등 베리류에 관한 조금 걱정스러운 뉴스가 전해졌다. 일부 베리에서 농약 잔류허용기준(MRL)을 초과하는 농약이 검출됐다는 내용이다.
평소 블루베리, 딸기, 라즈베리와 바나나를 무가당 그릭요거트와 함께 즐겨 먹는 사람이라면 이런 뉴스를 보고 “계속 먹어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MRL 초과 = 건강에 위험’이라고 단순하게 해석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농약의 실제 건강 위험과 베리가 제공하는 건강상의 이점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MRL
MRL(Maximum Residue Level)은 ‘농약 잔류허용기준’이다. 식품에 농약이 어느 정도까지 남아 있을 수 있는지를 정한 기준이다.
여기서 중요한 오해가 하나 있다. MRL을 넘었다고 해서 그 식품이 곧바로 ‘독성이 있는 식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MRL은 농약이 농작물에 허가된 방법과 적정량으로 사용됐는지를 관리하기 위한 기준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실제 건강상 안전성을 판단할 때는 ADI(일일섭취허용량)를 함께 봐야 한다. ADI는 특정 농약을 매일 평생 섭취하더라도 건강에 유해한 영향이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는 양이다.
ADI에는 상당한 안전 여유가 들어 있다
그렇다면 ADI는 어떻게 정할까?
먼저 동물실험을 통해 특정 농약을 얼마나 많이 투여했을 때 유해한 영향이 나타나는지 조사한다.
여기서 NOAEL, 즉 ‘유해한 영향이 관찰되지 않는 최대 용량’을 찾는다.
그리고 사람에게 적용할 때는 훨씬 낮은 수준으로 기준을 설정한다.
일반적으로 동물과 사람의 차이, 사람마다의 민감도 차이 등을 고려해 100배의 안전계수를 적용한다.
쉽게 말하면, 동물실험에서 문제가 없었던 양보다 훨씬 낮은 수준을 사람의 평생 섭취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따라서 ADI에는 상당한 안전 여유가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MRL은 어떻게 정할까?
농약을 작물에 허가된 방법으로 사용했을 때 수확물에 실제로 얼마나 남는지를 조사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식품을 실제 식생활에서 얼마나 먹는지를 고려해 하루 동안 섭취하게 될 농약의 양을 계산한다.
이렇게 계산한 값이 ADI를 넘지 않도록 MRL을 설정한다. MRL은 임의로 정한 숫자가 아니다.
농약 사용량 → 식품에 남는 잔류량 → 실제 섭취량 → ADI와 비교 라는 과학적인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MRL을 34배 초과한 사례도 있었다
캐나다의 조사에서 블랙베리에서 살균제 캡탄(captan)이 잔류허용기준보다 약 34배 높은 수준으로 검출된 사례가 있었다. 숫자만 보면 상당히 무섭게 느껴진다.
“기준보다 34배나 높다면 당연히 위험한 것 아닌가?”
하지만 실제 섭취량을 계산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계산에 따르면 체중 70kg인 성인이 이 정도 수준의 잔류농약이 있는 블랙베리를 매일 약 2kg씩 먹어야 ADI를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됐다.
즉, MRL을 초과했다는 사실과 실제 건강에 위험한 수준의 농약을 섭취했다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물론 MRL 초과를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MRL을 초과했다면 농약이 허가된 방법과 다르게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당국의 조사와 관리가 필요하다.
베리는 왜 건강식품으로 꼽힐까?
농약 이야기만 듣다 보면 베리의 장점은 잊기 쉽다. 하지만 베리는 영양학적으로 상당히 좋은 식품이다. 딸기, 블루베리, 라즈베리 등에는 폴리페놀을 비롯한 다양한 생리활성 물질이 들어 있다.
이들 성분은 우리 몸에서 산화 스트레스와 염증과 관련된 여러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들을 종합하면 베리 섭취는
- 산화 스트레스 감소
- 염증 관련 작용 조절
- 혈관 기능 개선
- 제2형 당뇨병 위험 감소와 관련
- 식이섬유 섭취 증가
등과 연관되어 있다.
특히 베리는 칼로리가 비교적 낮으면서 식이섬유와 다양한 식물성 영양성분을 함께 섭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 사람들의 건강에서도 차이가 나타날까?
미국 국민건강영양조사(NHANES)의 약 3만7,000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연구에서는 베리를 정기적으로 먹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전체 사망 위험이 약 21%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것만으로 “베리를 먹으면 사망 위험이 21% 줄어든다”고 단정해서는 안된다. 베리를 먹는 사람들은 운동을 더 많이 하거나 전체적인 식습관이 더 좋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요인을 보정한 뒤에도 이런 연관성이 관찰됐다는 점은 베리를 건강한 식단의 일부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중요한 것은 ‘위험과 이익’을 함께 보는 것
농약 잔류 문제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농약이 허가된 기준을 초과해 사용됐다면 당국의 관리와 생산자의 책임이 필요하다.
그러나 소비자가 뉴스 제목만 보고 “MRL 초과 → 위험한 식품 → 먹으면 안 된다” 라고 결론 내리는 것도 올바른 접근은 아니다.
식품의 안전성을 판단하려면 실제 잔류량, 섭취량, ADI, 노출 기간 등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 식품이 제공하는 건강상의 이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베리를 계속 먹어도 될까?
현재까지 알려진 과학적 근거를 종합하면 베리를 건강한 식단에서 제외할 이유는 크지 않다.
오히려 지나친 불안 때문에 과일과 채소 섭취를 줄이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소비자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간단하다.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을 선택하고, 먹기 전에 흐르는 물에 충분히 씻어 먹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식품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고 다양한 과일과 채소를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다.
건강한 식생활은 ‘위험이 전혀 없는 음식’을 찾는 것이 아니다. 가능한 위험은 합리적으로 줄이고, 건강상의 이점은 충분히 얻는 것에 가깝다.
그러니 농약 잔류허용기준을 초과했다는 뉴스 하나만 보고 베리를 식탁에서 퇴출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잘 씻은 딸기와 블루베리, 라즈베리를 맛있게 먹으면서 다양한 식품을 균형 있게 섭취하는 것. 이것이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