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체육복을 읽는 아침 3. 새로운 세상으로의 진입 240208
“여보세요?”
“이원재 선생님이시죠? 이번에 선생님이 발령받으시게 된 학교의 교무부장입니다.”
스물여덟 살, 남들보다 늦게 간 군대에서 전역하고 1년 반 동안 공부만 하다가 임용고시에 합격했으니까, 군대물이 전혀 빠지지 않았던 나였다. 교무부장이라는 단어는 웬지 ‘교장, 교감의 신임을 받는 학교의 실세일 거’라는 영화적인 인식을 갖게끔 하는 데 충분한 직함이었다. 눈앞에 그 사람이 없는데도 두 손으로 전화를 받으면서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
“8월 29일에 전 교직원이 모여서 선생님 환영회를 열기로 했어요. 교직이 처음이시니까 앞선 분하고 업무 인수인계도 받으시면서 관사에 짐도 좀 푸시고…….”
우리나라의 모든 학교에서는 똑같이 3월 1일부터 새학기가 시작된다. 자연히 학교를 옮기거나 새로 발령받는 선생님들도 그때부터 학교에 나간다. 그러나 나는 임용고시에 합격하고도 순번이 밀려 한 학기 동안 발령을 받지 못하고 대기하는 중이었다. 2학기 발령자들은 보통 9월 1일부터 근무하게 되는데 이틀 일찍 보자는 것은 집도 멀고 하니 미리 와서 준비를 좀 하라는 배려의 뜻으로 생각했다. 나의 착각이었다는 게 곧 밝혀지지만, 이 미천한 신규 선생님 하나를 위해서 환영회까지 해 준다니 고맙기도 하고 앞으로의 교직 인생은 얼마나 마음 따뜻한 감동의 대서사시로 펼쳐질지 기대도 되었다. 게다가 벌써부터 날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시다니. 역시 내 역량은 전화 통화에서도 느껴지는 건가. 하필 그날이 내 생일이라는 건 별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 생일이었다.
문제는 내가 살던 고장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학교까지 가는 일이 만만찮다는 것이었다. 집에서 나와 버스로 지하철역까지, 그리고 지하철로 종점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이동하면 하루에 네다섯 편쯤 있는 시외버스를 탈 수 있다. 그 시외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 반을 간 뒤 다시 시내버스를 한 번 갈아타면 학교에 도착하게 된다. 오전에 그 여정을 시작하면 밤중에 도착해 숙소를 잡아야만 할 테니 차라리 자정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새벽에 도착한 뒤 학교로 바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후덥지근한 늦여름의 공기가 버스들이 하루 종일 내뿜은 매연과 섞여 장롱 밑 먼지처럼 엉겨있는 터미널 대기실에 앉아 출발을 기다렸다. 처음 만나는 선배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배 나온 아저씨처럼 보이기 싫어서 저녁은 먹지 않았다. 정확히 밤 열두 시 출발한 버스는 아직 훤한 대도시의 가로등을 뒤로하고 헤드라이트 불빛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 속으로 금세 빨려 들어갔다. 승객이라고는 나 하나뿐이었다. 하필 제일 뒷자리에 앉기도 했지 이게 무슨 시내를 주행하는 택시도 아닌 다음에야 버스 기사님과 담소를 나무면서 갈 것도 아니니 잠을 좀 청해 보려 했지만,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긴장 섞인 두려움에 정신은 갈수록 말똥말똥해졌다. 그때, 억지로라도 잤어야 했다. 산 지 얼마 안 되는 스마트폰을 열었더니 ‘봉천동 귀신’이라는 웹툰이 인기라며 실시간 관련 검색어를 보여주었다. 그때라도 잤어야 했다. 오른쪽을 봐도 깜깜하고, 왼쪽을 봐도 깜깜하니 꼭 극장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실 나는 겁이 좀 많다. 놀이기구도 못 타고 공포영화도 못 본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놀이공원으로 소풍 갔다가 엉겁결에 들어간 귀신의 집에서 대성통곡하는 바람에 외삼촌이 날 어깨에 둘러메고 뛰어나오셨던 전적도 있다. 그날, 내 스마트폰에서는 어릴 적의 나 대신 피를 칠갑한 귀신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왔다는 게 그날과 다른 일이었다. 사실 웹툰의 이야기는 단순한데, 집에 가던 여학생이 길을 물어보는 귀신을 만난다. 이 대찬 여학생이 자기랑 같은 길을 가면 무서우니까 다른 방향을 알려주는데 잠시 후에 귀신이 역정을 내면서 쫓아와 여학생을 추궁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게 평평한 2차원의 만화 그림이 아니라 배경음악이 함께 나오고, 귀신이 등장하는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는 화면을 뚫고 나오듯 흉측한 얼굴이 입체적으로 뛰어나오는 것이다. 버스 엔진 소리가 컸기에 망정이니 버스 기사 아저씨가 내 비명을 들으셨다면 교통사고가 났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 만화만큼이나 무서웠던 건 기사님의 주행 방식이었다. 워낙 여정이 길기도 하지만 그 시간에도 오르내리는 승객들이 있는지 버스는 지방 소도시의 터미널 네다섯 군데에서 정차하게 되어있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이 버스의 유일한 승객인 나는 종점에 내리니까 우선 중간에 내리는 손님은 없다. 그럼 타는 사람이 있으면 태우는 건데, 기사 아저씨의 눈에 그게 승강장 진입 몇백 미터 전부터 보였나 보다. 고속으로 달리던 속력을 줄이지 않은 채 좌회전이 바로 유턴으로 이어지고, 다시 한 번 좌회전해서 원래의 도로로 진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일 분이나 채 되었을까. 이 버스의 궤적을 선으로 그으면 꼭 용수철과 닮았을 것이다. 왼쪽으로 빙글 돌아 나가고 빙글 돌아 나가고. 그렇게 달린 결과 예상보다 한 시간이나 적게 걸려 새벽 네 시 반에 종점 터미널에 나는 던져졌다. 마치 봉천동 귀신이 뒤에서 쫓아오는 양 한밤의 질주를 마치고 내린 그곳의 공기는 서늘했다.
가로등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터미널 맞은편엔 의자 하나 없는 편의점이 달랑 하나. 새벽 버스야 좀 있으면 나오겠지만 아침에 선생님들이 출근하실 시간까진 기다려야 하니 어디든 눕고 싶었다. 어린이 하나쯤 넉넉히 들어갈 만한 캐리어를 질질 끌며 편의점을 돌아 나오는데 터미널 뒤편으로 빨간 불빛이 빼꼼히 보였다. 하얀 플라스틱판에 빨간 네온으로 써진 여관의 이름은 그나마 첫 글자는 깨졌고 두 번째 글자 하나만 살아남아 있었다. 그래, 좀 꺼림칙하기는 해도 겨우 두세 시간 묵을 건데 일단 대충 있어 보자.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가운데는 어두워서 끝이 보이지 않는 복도가 있었고 양편으로 객실이 늘어서 있었다. 비어 있는 카운터 위엔 어떤 색채표의 색깔 이름보다도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 ‘정육점색’이었을 알전구 하나만 켜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무도 안 계세요?”
같은 인사를 두세 번 허공에 외치자, 왼편 계단에서 머리에 휴지심 같은 롤을 잔뜩 달고 핑크색 꽃무늬 원피스 잠옷을 입은 아주머니가 내려오며 대답했다.
“왜요”
아아, 왜요라. 나는 왜 여기에 들어왔던가.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오는 대로 대답했다.
“아 저는 그러니까, 내일, 아니다 정확히는 9월 1일이지만 오늘 발령 인사를 온 신규 교사입니다. 잠시 묵을 방이 필요해서…….”
“얼마 줄 건데요.”
얼마를 주어야 하나. 허를 찔리는 질문에 이상함을 느끼기보다는 ‘음, 직업을 가진 어른의 세계란 이렇게 시작부터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군.’하는 마음이 되었다.
“이만 원이요.”
그래도 침대도 욕실도 있을 테니 한 시간에 오천 원씩 쳐서 이만 원을 불렀는데 흥정의 과정도 없이 아주머니는 두말없이 카운터 입구에 있는 열쇠 –그게 창문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에 그냥 놓여있었다는 걸 그때 보았다- 중 아무거나 하나 집어 들더니 역시 말없이 2층으로 올라갔다. 캐리어를 낑낑거리며 들고 따라 올라가 아주머니가 열어 둔 방에 들어섰다.
뒤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꽝 닫는 소리에 놀라 전등 스위치를 눌렀는데 이 집의 조명은 어찌나 일관성이 있는지 객실의 조명도 카운터의 조명과 똑같은 ‘정육점색’이었다. 그것보다 놀라운 것은 일반적인 모양 대신 동그란, 너무나 360도스럽게 동그란 침대가 방 정중앙에 덩그러니 놓여있고 천정은 45도로 기울어져서 ‘여기가 대체 어디지?’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는 점이다. 정육점 불빛 아래 기울어진 천장, 그리고 방 정중앙에 놓인 침대 위에 누운 나는 고기인가 사람인가. 의식이 있는 채로 제단에서 산 제물로 바쳐지는 옛사람들의 기분이 이랬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지우고 세수라도 하려 욕실로 들어가는데 욕실은 그나마 불도 들어오지 않았다. 욕실 문을 열어놓고 ‘정육점’에 의지해 수도꼭지를 돌린 순간 거기서 쏟아지는 시뻘건 물, 아마도 녹물이었을 그 시뻘건 물과 함께 버스 안에서 튀어나왔던 봉천동 귀신이 다시 떠올랐다. 때맞춰 지붕 위에선 고양이들의 야습이 시작되었는지 분명히 쥐로 추정되는 수십 개의 발자국 소리가 천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다시 생각할 틈도 없이 시뻘건 물에 젖은 손으로 캐리어를 끌고 후다닥 여관 밖으로 나와서는 무작정 불빛이 있는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왠지 그 방 창문에서 롤을 만 아주머니가 정육점색에 물든 얼굴로 웃으면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에 차마 뒤를 돌아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비일상적인 일들이 일어나면서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신고식을 치르는 것만 같은 밤이었다.
다음 날 이어진 환영회에서, 나는 정확하게 교직원 수와 같은 마흔여섯 잔의 소주를 흔쾌히 받아 마시고 8월 31일 오후까지, 일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