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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목간
1. 인천 계양산성 목간(총 2점)
(1) 인천 계양산성 논어 목간 1
작자 미상
(1면)
賤君子哉若人魯
(2면)
吾斯之未能信子說
(3면)
也不知其仁也求何
(4면)
也聞一以知十賜也
(5면)
於予與改是子曰吾 <끝>
* 4~5세기경 백제 시대 한성 시대 인천 계양산성 논어 목간 1
*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일명 논어 목간이라고 한다. 국내 최초의 5각 다면 목간이다.
* 선문대 고고연구소 판독이며, 국립부여박물관/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와 윤선태 판독은 “(1면) 賤君子哉若人魯/(2면) 吾斯之未能信子說/(3면) 也不知其仁也求何/(4면) 也聞一以知十賜也/(5면) 於予與改是子曰吾”이다.
* 2006년 인천 계양산성 내부 저수 시설인 집수정에서 백제 한성 시대의 토기 ‘원저단경호’와 같이 논어 목간이 출토되었다. 같이 출토된 항아리가 4~5세기 백제 한성 시대의 전형적인 토기로 확인됨에 따라, 계양산성 목간도 백제 한성 시대로 추정되었다. 6세기 중반 계양산성이 신라의 한강 유역 점령기 신라에 의해 점유되었다는 역사적 사실로, 신라가 백제 토기에 목간을 남긴 것으로 유추하기도 한다. 그러나 백제 항아리가 1~2세기의 시대적 격차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4~5세기 백제 한성 시대 토기와 같은 시대로 목간의 연대가 추정된다. 주변에서 발굴된 나무 조각들의 연대 측정에서도 400년대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논어 목간은 400년대의 백제 한성 시대 목간이라고 할 수 있다. 논어 목간은 현재 인천계양산성박물관에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 목간의 길이는 13.8cm이며, 소나무로 만든 5각형 목간이다. 2004~2006년 3차에 걸친 선문대고고연구소의 조사에서 2006년 발굴되었으며, 당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이라고 발표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2) 인천 계양산성 논어 목간 2
작자 미상
□□子□□ <끝>
* 4~5세기경 백제 시대 한성 시대 인천 계양산성 논어 목간 2
*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일명 논어 목간이라고 한다. 국내 최초의 5각 다면 목간이다.
* 선문대 고고연구소, 국립부여박물관/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윤선태 판독
* 2006년 논어 목간과 같이 인천 계양산성 집수정에서 출토되었으며, 길이 49.3cm의 두 번째 목간은 중간에 ‘子’ 자 한 글자만 확인이 되지만, 첫 번째 목간과 유사한 논어 목간으로 논어의 내용을 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제2 목간은 상단부가 원통형이고, 하단부는 5각형 다면체로 되어 있다. 글자는 하단부에서 7자의 묵흔 사이에서 판독되었다.
* 같이 출토된 항아리가 4~5세기 백제 한성 시대의 전형적인 토기로 확인됨에 따라, 계양산성 목간 1과 2도 백제 한성 시대로 추정되었다. 4~5세기 백제 한성 시대 토기와 같은 시대로 목간의 연대가 추정된다. 주변에서 발굴된 나무 조각들의 연대 측정에서도 400년대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논어 목간은 400년대의 백제 한성 시대 목간이라고 할 수 있다. 논어 목간은 현재 인천계양산성박물관에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 2004~2006년 3차에 걸친 선문대고고연구소의 조사에서 2006년 발굴되었으며, 이 두 개의 논어 목간은 당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인 것으로 주장되었다(김태식 기자, 「“계양산성 논어 목간은 400년대 백제 작품”」, 『연합뉴스』, 2008-11-12 참조).
2. 금산 백령산성 목간(총 1점)
(3) 금산 백령산성 목간
작자 미상
去行二百
以傭 <끝>
* 538~660년 백제 시대 사비 시대 금산 백령산성 목간
* 충남 금산군 남이면 백령산성 소재
* 백제 금산 백령산성 목간은 총 1점이며, 국립부여박물관/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판독은 “長二百/以滴”이고, 윤선태 판독은 “□行二百/以□”이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3. 부여 관북리 목간(총 329점)
(4) 부여 관북리 목간 283
작자 미상
中阝
本我自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목간
* 백제 최초의 목간이며, 충남 부여 관북리에서 출토된 목간 329점은 국내 최대 규모의 목간 발굴이다.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이며, 윤선태 판독은 “攻舟嶋城 □城/ 攻負□城□□□/□/□自中□/□□久□ □城□”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5) 부여 관북리 목간 285
작자 미상
二月十二日兵与記
中方向□ □ □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목간
* 백제 최초의 목간이다.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6) 부여 관북리 목간 286
작자 미상
夷嵎
烙印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목간
* 백제 최초의 목간이다.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7) 부여 관북리 목간 288
작자 미상
下賤相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목간
* 백제 최초의 목간이다.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4. 부여 구아리 목간(총 9점)
(8) 부여 구아리 목간 31
작자 미상
(1단)
□□ □□ □□
(2단)
不戶
(3단)
□□服 □□□
(4단)
并監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목간
*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판독이며, 한국목간자전 판독은 “卅枚/幷□”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 총 9점 가운데 19번 목간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 불가로 확인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9) 부여 구아리 서신 목간
작자 미상
(앞면)
所遣信來以敬辱之於此質簿
(뒷면)
(1단)
一无所有不得仕也
(2단)
[좌]
莫睄好耶荷陰之後
[우]
永日不忘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서신 목간
* 일명 서신 목간, 청탁 목간, 사언시 목간이라고 불린다.
*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판독이며, 한국목간자전 판독은 “所違信來以敬辱之於此貧薄/一无所有不得仕也 莫睄好耶荷陰之後/永日不忘”이고, 심상육, 김영문 판독은 “所遣信來 以敬辱之 於此貧薄 一無所有 不得仕也 莫瞋好邪 荷陰之後 永日不”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 총 9점 가운데 19번 목간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 불가로 확인되었다.
(10) 부여 구아리 목간 88
작자 미상
(앞면)
□等 堪彼□牟
(뒷면)
□□□□□□□□□□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목간
*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판독이며, 한국목간자전 판독은 “□等堪波禮牟”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 총 9점 가운데 19번 목간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 불가로 확인되었다.
(11) 부여 구아리 목간 89
작자 미상
見識耳者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목간
*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판독이며, 한국목간자전 판독은 “見諸有者”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 총 9점 가운데 19번 목간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 불가로 확인되었다.
(12) 부여 구아리 목간 90
작자 미상
(앞면)
者 中卩奈率得進 下部韓牟範
(뒷면)
各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목간
*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판독이며, 한국목간자전은 “者 中卩奈率得進/下卩韓牟禮/若”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 총 9점 가운데 19번 목간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 불가로 확인되었다.
(13) 부여 구아리 목간 93
작자 미상
□□□□眞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목간
*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 총 9점 가운데 19번 목간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 불가로 확인되었다.
(14) 부여 구아리 목간 102
작자 미상
太公西美前卩赤米二石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목간
* 일명 적미(赤米, 붉은 쌀) 목간이라고 불린다.
*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판독이며, 한국목간자전 판독은 “太□□實前卩赤米二石”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 총 9점 가운데 19번 목간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 불가로 확인되었다.
(15) 부여 구아리 목간 109
작자 미상
(상단)
文 雀麻石 牟多
(하단)
鳥□□ 鳥石(渚) 鳥兮管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목간
*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판독이며, 한국목간자전 판독은 “□文烏/□省□烏石□/牟多烏兮留”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 총 9점 가운데 19번 목간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 불가로 확인되었다.
5. 부여 동남리 궁남지 목간(총 8점)
(16) 부여 동남리 궁남지 49-2번지 목간
작자 미상
(앞면)
安□敬禾田犯□□兄□□敬事
(뒷면)
□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동남리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판독이며, 윤선태 판독은 “宅敬禾田犯□兄者爲敬事”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1995~2003년 사이 6차례 조사에서 3~4세기와 6~7세기 유물이 발굴되었고, 목간은 6세기경 유적지의 인공 수로와 목조 저수조에서 발굴되었다. 부여 동남리 궁남지(사적 135호) 출토 목간은 2022년 동남리 49-2번지에서 목간 5점이 발굴되었으며, 동남리 117번지 일대에서는 서부후항 목간 등 3점의 목간이 공개되었다. 부여 동남리 궁남지 목간은 현재 총 8점이 공개되어 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17) 부여 동남리 궁남지 117번지 서부후항 목간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서부 후항에 사는 사달과 사사가 장정 의활□□□ 장정 귀인 중구 4인 하구 2인과 매라성 법리원의 논 5형을 개간했다
서부 중부 이 <끝> <2026년 7월 14일>
* 538~663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궁남지(宮南池) 117번지 서부후항 목간
* 서부후항 목간이라고 불린다.
* 길이 35cm 소나무 목간으로, 백제 시대 도량형 기준인 영조척(길이 약 35.05cm)과 일치한다.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은 “西阝後巷巳達巳斯丁依活□□後阝/歸人中口四 小口二 邁羅城法利源 水田校勘 五形/西阝中□夷”이며, 국립청주박물관 판독은 “西阝後巷巳達巳丁 依活 丁/歸人中口四 小口二 邁羅城法利源 水田五形/西阝中 阝夷”이고, 박현숙 판독은 “西部後巷巳達巳斯部依活□□□□/歸人中口四 下口二 邁羅城法利源水田五形/西部中部□”이며, 윤선태 판독은 “西ア後巷巳達巳斯丁依舌□丁/歸人中□四小□二邁羅城法利源水田五形/西□ ア利”이고, 이용현 판독은 “西ア後巷巳達巳斯丁 依舌□□□丁/帰人中口四 小口二邁羅城法利源畓五形/西□校勘 丁 校勘 ア夷”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17번지 궁남지(사적 135호)에서 출토되어, 현재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부여 궁남지는 궁 남쪽의 연못을 뜻하며, 634년 백제 무왕 35년에 궁의 남쪽에 연못을 조성했다고 한다. 신선이 사는 섬이라고 해서 신선정원(神仙庭園)으로 불렸다고도 한다. 백제 부여 궁남지는 현재까지 우리나라 최고의 궁궐 연못이다.
* 1995~2003년 사이 6차례 조사에서 3~4세기와 6~7세기 유물이 발굴되었고, 목간은 6세기경 유적지의 인공 수로와 목조 저수조에서 발굴되었다. 부여 동남리 궁남지(사적 135호) 출토 목간은 2022년 동남리 49-2번지에서 목간 5점이 발굴되었으며, 동남리 117번지 일대에서는 서부후항 목간 등 3점의 목간이 공개되었다. 부여 동남리 궁남지 목간은 현재 총 8점이 공개되어 있다.
* 백제 시대 인명,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도량형의 기준 영조척에 대한 단서가 된다.
扶餘東南里宮南池西部後巷木簡
作者 未詳
西阝後巷巳達巳斯丁 依活□□□丁歸人中口四 下口二 邁羅城法利源水田五形
西部中部夷
* 원문 출전: 김길식, 「부여 궁남지」, 『민족백과사전』, 2026-07-14 참조
(18) 부여 동남리 궁남지 117번지 목간 궁1
작자 미상
死所可□故□□用弓閑間□
蘇君蒔守日令□白有之心□□刁 <끝>
* 538~663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궁남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17번지 궁남지(宮南池)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적 135호이며, 백제 사비기 궁원지(宮苑址) 유적지에서 발굴되었다. 1990년부터 현재까지 국립부여박물관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발굴 조사했으며, 궁남지 목간은 6세기경 인공수로와 목조 저수조 내부에서 발굴되었다.
* 1995~2003년 사이 6차례 조사에서 3~4세기와 6~7세기 유물이 발굴되었고, 목간은 6세기경 유적지의 인공 수로와 목조 저수조에서 발굴되었다. 부여 동남리 궁남지(사적 135호) 출토 목간은 2022년 동남리 49-2번지에서 목간 5점이 발굴되었으며, 동남리 117번지 일대에서는 서부후항 목간 등 3점의 목간이 공개되었다. 부여 동남리 궁남지 목간은 현재 총 8점이 공개되어 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19) 부여 궁남지 117번지 목간 궁2
작자 미상
(1면)
文文文文文文文文文
(2면)
□書文書□□文□令□□□文也文
(3면)
□文文文文文
(4면)
□道道□也也也也也 <끝>
* 538~663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궁남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17번지 궁남지(宮南池)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적 135호이며, 백제 사비기 궁원지(宮苑址) 유적지에서 발굴되었다. 1990년부터 현재까지 국립부여박물관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발굴 조사했으며, 궁남지 목간은 6세기경 인공수로와 목조 저수조 내부에서 발굴되었다.
* 1995~2003년 사이 6차례 조사에서 3~4세기와 6~7세기 유물이 발굴되었고, 목간은 6세기경 유적지의 인공 수로와 목조 저수조에서 발굴되었다. 부여 동남리 궁남지(사적 135호) 출토 목간은 2022년 동남리 49-2번지에서 목간 5점이 발굴되었으며, 동남리 117번지 일대에서는 서부후항 목간 등 3점의 목간이 공개되었다. 부여 동남리 궁남지 목간은 현재 총 8점이 공개되어 있다.
6. 부여 쌍북리 목간(총 27점)
(20) 부여 쌍북리 목간 316
작자 미상
(앞면)
□時□兄□□□□
(뒷면)
□上部 □ □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윤선태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21) 부여 쌍북리 목간 317
작자 미상
那□內連公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윤선태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부여 쌍북리 목간 총 27점 가운데 현내들 목간 현85-4번, 현내들 목간 현85-6번, 현내들 목간 현85-9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 불가이다.
(22)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85-8
작자 미상
(앞면)
□ 率牟氏丁一
□ 隆□丁一
□酒丁一
(뒷면)
□
溪□ □
□加□來之□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윤선태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부여 쌍북리 목간 총 27점 가운데 현내들 목간 현85-4번, 현내들 목간 현85-6번, 현내들 목간 현85-9번, 현내들 목간 현85-10번, 현내들 목간 현86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 불가이다.
(23)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87
작자 미상
(앞면)
水不 好記 上不□
(뒷면)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윤선태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24)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91
작자 미상
德率首此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윤선태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25)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94
작자 미상
(앞면)
爲丸□月□ □
(뒷면)
天□之□ □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윤선태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26)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95
작자 미상
□ 上ア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윤선태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27)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96
작자 미상
(1면)
□春□ □春 □秋□ □□官當津□
(2면)
□□□丘□ □
(3면)
當兩正經正□ □
(4면)
□ □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윤선태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28)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105
작자 미상
漢 □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윤선태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29) 부여 쌍북리 소작 장부 목간
작자 미상
(앞면)
戊寅六月中 固淳夢三石 佃麻那二石
上夫三石上四石 比至二石上一石未二石
佐官貸食記 佃目之二石上二石未一石 習利一石五斗上一石未一
(뒷면)
素麻一石五斗上一石五斗未七斗半 佃首門一石三斗半上石未石甲 幷十九石 今沽一石三斗半上一石未一石甲 刀己邑佐三石与 得十一石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소작 장부 목간
* 윤선태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30) 부여 쌍북리 목간 173-8번지-122
작자 미상
(앞면)
□部兮礼至文奴利□□
(뒷면)
□□利□去背□卄斗□□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동방문화재연구원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31) 부여 쌍북리 목간 173-8번지-194
작자 미상
五石□十斤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동방문화재연구원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32) 부여 쌍북리 목간 173-8번지-197
작자 미상
部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동방문화재연구원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33) 부여 쌍북리 173-8번지-223
작자 미상
(앞면)
□官□一□
□五斤四□
(뒷면)
丁卅四
婦十三
洦一□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동방문화재연구원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173-8번지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34) 부여 쌍북리 목간 184-11-71
작자 미상
斤止 受子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35) 부여 쌍북리 목간 201-4번지-1
작자 미상
恍時予丁 彡□□
□□□丁 □珎久丁
□真相丁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정훈진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36) 부여 쌍북리 목간 201-4번지-2
작자 미상
兄習利丁
□諸之□□臣丁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정훈진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37) 부여 쌍북리 328-2번지-목간A
작자 미상
中□□子 三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정훈진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38) 부여 쌍북리 328-2번지-목간B
작자 미상
上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정훈진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39) 부여 쌍북리 구구단 목간
작자 미상
(1단)
九〃八十一 八九七□□ 七九六十三
(2단)
八〃六十四 七八五十六 六八卌八 五八卌
(3단)
七〃卌九 六七卌二 五□卅五 四七卄八
(4단)
六〃卅六 五□卅 四六卄□
(5단)
五〃卄五 四五卄 三五十五
(6단)
四〃十六 三四十二 二四八
(7단) 二三六
(8단) 二〃四
(9단)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구구단 목간
* 일명 구구단 목간
* 정훈진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40) 부여 쌍북리 목간 뒷개-112
작자 미상
(1면) □慧草而開覺
(2면) 人□□道□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정훈진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7.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총 29점)
(41) 부여 능산리 사지 남근형 목간
작자 미상
(앞면)
无奉儀□ 道□立十二□
(뒷면)
无奉 天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남근형 목간
* 속칭 남근형 목간이라고 불린다(길이 22cm).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이며, 다른 판독자에 따라서는 “道□立立立”(길에 서라! 서라! 서라!)라고 판독 및 해석하기도 한다. 박중환 판독은 “(앞면) 奉儀□ 道□立十二□/(뒷면) 无奉 天”이며, 윤선태 판독은 “(1면) 大天 天泰義 道緣立立立/(2면) 緣道□/(3면) 奉无 天/(4면) 泰无”이고, 일본인 근등호일(近藤浩一) 판독은 “(앞면) (男根모양) 无奉義□ 道□立 十二□/(뒷면) (男根모양) 无奉 天”이다. 뒷면의 “天” 자는 거꾸로 쓰여 있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42) 부여 능산리 사지 296
작자 미상
(앞면)
三月十二日梨田□之□□□□
(뒷면)
渼淸麥靑用□□□□□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이며, 박중환 판독은 “(앞면) 三月十二日梨田□之□□□□/(뒷면) 渼淸麥靑耳□□□□□”이고, 윤선태 판독은 “(앞면) 三月十二日梨田□ 之□□□□□□□/(뒷면) 广淸麥靑耳 用□□麻□□”이며, 근등호일 판독은 “(앞면) 广淸麥靑耳□□□□□/(뒷면) 三月十二日梨田□之□□□□”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43)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297
작자 미상
漢城下部對德刀加鹵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이며, 박중환 판독은 “韓城下部對德刀加鹵”이고, 윤선태 판독은 “□漢城下部對德疏加鹵”이며, 근등호일 판독은 “韓城下部對德䟽刀加鹵”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44)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298
작자 미상
(앞면)
奈率
(뒷면)
慧朋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이며, 윤선태 판독은 “(앞면) 奈率 加姐白劦之意□淨/(뒷면) 急明靜□□□師□□”이고, 근등호일 판독은 “(앞면) (구멍) 奈率 □□□□ □ □/(뒷면) (구멍) 慧朋 □□□□ □ □”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45)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299
작자 미상
三貴 至女 今母 兄父
□□ 至父 女貴 □□
□□ 大貴 □□ □□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이며, 박중환 판독은 “三貴 至女 今母 兄父/□幸 至父 女貴 □文/□ □ 貴 □ □”이고, 윤선태 판독은 “(앞면) 三貴 至丈 今毋 兄久/ 文牟 至攵 安貴 □文/□丁 大貴/(뒷면) 乙 乙乙乙 乙/乙 乙 乙/ 乙 乙 乙乙乙 乙/乙 乙 乙/乙乙 乙”이고, 근등호일 판독은 “三貴 至女 今母 兄父/□幸 至父 女貴 □文/□□ 大貴 □□”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46)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0
작자 미상
三月□枾山□□□□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이며, 윤선태 판독은 “(앞면) 三月□椋內上田/(뒷면) □□□”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47) 부여능산리사지 육부오방 목간(扶餘陵山里寺址人行木簡)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앞면)
글 또한 이에 법을 좇으니 육부 5방에 무릇
(뒷면)
인간이 가노라니 또한 기와 굽는 형상 속에 기구가 있다 <끝> <2026년 8월 2일>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육부오방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이며, 박중환 판독은 “(앞면) 書亦從此法爲之凡六部五方/(뒷면) 人行色也凡作形之中□具”이고, 윤선태 판독은 “(앞면) 又行色也凡作形之中了其/(뒷면) 書亦從此法爲之凡六ア五方”이며, 근등호일 판독은 “(앞면) □ □ 書亦從此法爲之凡六ア五方 □ □/(뒷면) □ □ 人行色也凡作形之中□具 □ □”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扶餘陵山里寺址六部五方木簡
作者 未詳
(前面)
書亦從此法爲之凡六阝五方
(後面)
人行之也瓦作形之中□具 <끝>
* 원문 출전: 부여 능산리 목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31.
(48)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2
작자 미상
大家貳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이며, 박중환, 윤선태, 근등호일 판독은 “大大家貳”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49)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3
작자미상
竹山六
□□六日□□□ □□四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이고, 박중환 판독은 “竹山六/二十六日□□□ 服庫四”이며, 윤선태 판독은 “竹山六/月卄六日上來□ 眼岸四”이고, 근등호일 판독은 “□ □ 廿六日□□□ 服庫四 □ □/竹山六”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50)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4
작자 미상
(앞면)
智眞
四月七日 寶憙寺
慧
(뒷면)
送朴一石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과 박중환 판독이고, 윤선태 판독은 “(앞면) 智眞/ 四月七日 寶憙寺/乘/(뒷면) □送塩二石”이며, 근등호일 판독은 “(앞면) 智眞/四月七日 寶憙寺/慧 □ □/(뒷면) □ □ □送塩二石”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51) 부여 능산리 사지 숙세가 목간
작자 미상
(앞면)
宿世結業同生一處是
非相問上拜白事
(뒷면)
慧量□前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숙세가」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 박중환 판독이며, 윤선태 판독은 “(앞면) 慧暉 前/(뒷면) 宿世結業同生一處是/非 相 問 上拜白來”이고, 근등호일 판독은 “(앞면) 우행 宿世結業同生一處是/좌행 非相問上拜白 事/(뒷면) 慧量□前”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52)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6
작자 미상
(1면)
斗之末米□□
(2면)
□当也
(3면)
(4면)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53)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7
작자 미상
(앞면)
德干尔
(뒷면)
无資丁
□□□□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이며, 박중환 판독은 “(앞면) □ □ 德干□ □ □/(뒷면) □ □ 爲資丁 □ □”이고, 윤선태 판독은 “(앞면) 德干尔/(뒷면) □为資丁”이며, 근등호일 판독은 “(앞면) □ □ 德干 □ □/(뒷면)/(우행) □ □ 爲資丁 □ □/(좌행) □□□”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54)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8
작자 미상
(앞면)
□二百十五□
(뒷면)
疑□□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55)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9
작자 미상
(앞면)
□七定□死□
(뒷면)
□再拜□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56)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10
작자 미상
(앞면)
□立卄□斑綿
(뒷면)
己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57)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11
작자 미상
百者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58)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12
작자 미상
(앞면)
此
(뒷면)
□ □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59)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13
작자 미상
子基寺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 박중환, 윤선태, 근등호일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능산리사지 목간 총 29점 가운데 314번, 능8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 불가이다.
(60)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1
작자 미상
(앞면)
二裏民雙行
(뒷면)
□知矣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61) 부여 능산리 사지 사면 목간
작자 미상
(1면)
지락아의 식사 일기 첫날 4두 작은 되로 밥을 먹다 1주 3일 4두 밥을 먹다
(2면)
5일 3두 큰 되로 밥을 먹다 1주 6일 3두 큰 되로 밥을 먹다 2주 7일 3두 큰 되로 밥을 먹다 2주 8일 4두 밥을 먹다
(3면)
밥을 먹고 길을 조금 걷다 사관을 만남이니 조금 걷는 사관 도치의 몸이 검었다 길 위의 관리는 뒤로 활의 탄환을 칼의 방향으로 모모 씨의 창 창검을 겨누고
(4면)
석 22석 또 10 또 석 또 12석 또 12석 또 10 목구멍 석 12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사면 목간
* 윤선태 판독이며, 근등호일 판본은 “(앞면) 五日食米三斗大升壬日食三斗大二七日食三斗大升二□□□ □ □/(뒷면) □道使□次如逢火吏 猪耳其身者如黑也道使浚□彈耶方□□□□ □ □”이다.
* 원문의 4면은 거꾸로 쓰여 있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61) 扶餘陵山里寺址四面木簡
作者 未詳
(一面)
支藥兒食米記初日食米四斗小升一三日食米四
(二面)
五日食米三斗大升一六日食三斗大二七日食三斗大升二八日食米四斗
(三面)
食道彳史□□次如逢彳史猪耳其身者如黑世道使後彈耶方 牟 牟 氏 祋祋耶
(四面)
石二十二石又十又石又十二石又十二石又十口石十二 <끝>
* 원문 출전: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31.
부여 능산리 사지 사면 목간 3면 이두문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하급 관리 도치의 몸이 검었다. <끝> <2026년 7월 13일>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사면 목간 왼쪽 옆면 이두문
* 이두문 목간이라고도 불린다.
* 536년경 신라 이두문보다 31년 뒤인 567년 백제 이두문으로서, 백제 최초의 이두문이다. 신라 최초의 이두문인 「영천청제비 병진명」이 최초 연대를 536년경으로 추정하므로, 사면 목간은 그보다 31년 이후의 연대로 추정된다.
* 소재지는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이며, 부여 능산리 고분군이라고 불린다. 능산리 절터에서 백제 금동 대향로, 백제 창왕명 석조 사리감, 백제 능산리 사지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백제 능산리 사지 고분군 목간에서는 현전 최고의 향가계 백제 시가 「숙세가」가 발견되기도 했다.
* 능산리 사지는 567년 조성된 백제 왕실 사찰의 터이다. 이 사찰은 백제 창왕이 부왕인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고, 660년 백제 멸망과 함께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능사(陵寺)라고도 불리며, 2001년 9월 29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본 고분군은 1992년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조사를 시작해서 1995년 4차 발굴 조사를 했고, 2002년 조사에서 목간 30여 점이 발견되어, 백제 유적 가운데 가장 많은 목간 발굴지로 기록되었다. 여기서 발굴된 목간에는 숙세명 목간, 보희사명 목간, 꼬리표 목간, 삼귀명 목간, 이전명 목간, 육부오방명 목간, 지약아식미기명 목간, 남근형 목간, 기타 목간 및 목간 껍질 등이 있다.
* 2009년 9월 28일자 『동아일보』 보도에서 서울시립대 국문학과 김영욱 교수가 한국목간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논문 「고대 한국 목간에 보이는 석독표기(釋讀表記)」에서 2002년 충남 부여 능산리 출토 백제 목간의 이두문에 대해 보고했다. 목간 원문 “猪耳”가 돼지라는 뜻이며, 이를 석독(釋讀)하면 돼지를 뜻하는 옛말 ‘돝’+‘이’가 되고, 이는 곧 ‘도치’로 해석된다. 고슴도치의 옛말이 ‘고솜돝’이거나 ‘고슴돛’이었다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김영욱 교수는 우리나라 이두문이 8세기 신라에서 6세기 백제로 소급되며, 이두문의 기원이 신라에서 백제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유성운 기자, 「향찰, 6세기 백제인들도 사용」, 『동아일보』, 2009년 9월 28일자).
扶餘陵山里寺址斜面木簡三面吏讀文
作者 未詳
小吏猪耳其身者如黑也 <끝>
* 유성운 기자, 「향찰, 6세기 백제인들도 사용」, 『동아일보』, 2009년 9월 28일 자 참조
(62)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3
작자 미상
(1면)
牟□□前□□□
(2면)
□ □
(3면)
□□□□ □ □
(4면)
□ □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63)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4
작자 미상
(1면)
前憙拜而受伏願常□此時□ □
(2면)
□□浩□□□□言□□ □
(3면)
□□□辛租貢木□□灼□□□□□□四□
(4면)
道和□□□□□死□□禾禾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64)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5
작자미상
(1면)
永春□□
(2면)
一□江
(3면)
□□□
(4면)
□□ □□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65)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6
작자 미상
(1면)
馳馬辛□處階憲懷□□□
(2면)
□ □
(3면)
(4면)
□ □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66)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7
작자미상
(1면)
□覺
(2면)
□□
(3면)
苦
(4면)
□□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 능산리사지 목간 총 29점 가운데 314번, 능8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 불가이다.
(67)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9
작자 미상
見 公 進 德 道 <끝>
* 6세기 567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능산리사지 목간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8. 나주 복암리 목간(총 31점)
작자 미상
(68) 나주 복암리 목간 1
작자 미상
年三月中監數肆人
出背者得捉得安城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이며, 국립부여박물관/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판독은 “□三月中監數肆人/□出背者得捉得□奴”이다.
* 총 31점의 나주 복암리 목간은 부여 이외의 지역에서 발견된 백제 최초의 지방 목간이며, 발견된 목간들 가운데 길이 60.8cm의 우리나라 최장(最長) 문서 목간이 발견되었다. 문서 목간 외에 꼬리표 목간, 봉함 목간, 다면 목간, 습자 목간 등 다양한 목간이 발견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여)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69) 나주 복암리 목간 2
작자 미상
(앞면)
□兄將除公丁 婦中口二 小口四
定
□兄定文丁 妹中口一
前口 手決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이며, 국립부여박물관/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판독은 “□兄將□立□□如□ □四二中□四 □二/定/□定文丁□□一女 □□□二巴四入”이다.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70) 나주 복암리 모라 목간
작자 미상
(앞면)
□年自七月十七日至八月卄三日
□毛羅
半那比高墻人等若□□
(뒷면)
尤戶智次 前巷奈率烏胡留
夜之間徒 釰非頭扞率麻進
□將法戶匊次 又德率□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모라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나주 모라 목간으로 알려져 있다.
* 윤선태 판독이며, 국립부여박물관/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판독은 “(앞면) □年自七月十七日至八月卄三□/□ 毛羅/半那水校勘 高滴人□□□/(뒷면) 尤戶智次 前巷奈率烏胡留/夜之閒徒 劍釰非須扞率麻進/□得□戶匊次 又徒□□”이다.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71) 나주 복암리 목간 4
작자미상
(앞면)
郡佐□□
(뒷면)
受米之及八月八日高嵯支□記遺□之好二□□又及告日□□
䝴之□□ 一 □□□ □八月六日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72) 나주 복암리 목간 5
작자 미상
(앞면)
丁一 中四
大祀 村 戶弥首上 作□二
傭丁一 牛一
(뒷면)
涇水田二形得七十二石 右月三十日者
畠一形得六十二石
得耕麥田一形半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73) 나주 복암리 목간 6
작자 미상
(앞면)
上
(뒷면)
十一□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74) 나주 복암리 목간 7
작자 미상
(앞면)
竹悅
竹遠 竹□
竹麻
□□道
(뒷면)
幷五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75) 나주 복암리 목간 8
작자 미상
上去三石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76) 나주 복암리 목간 9
작자 미상
麻中練六四斤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77) 나주 복암리 목간 10
작자미상
(앞면)
郡得分
(뒷면)
□子□州久川米付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78) 나주 복암리 목간 11
작자미상
庚午年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79) 나주 복암리 목간 12
작자 미상
軍那德率至安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80) 나주 복암리 목간 13
작자미상
(앞면)
德德德德德
衣 衣衣衣
道道道道道
(뒷면)
道 衣率
道道 率率率 <끝>
* 7세기 초 61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나주 복암리 목간
*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윤선태 판독
* 총 31점의 나주 복암리 목간은 부여 이외의 지역에서 발견된 백제 최초의 지방 목간이며, 발견된 목간들 가운데 길이 60.8cm의 우리나라 최장(最長) 문서 목간이 발견되었다. 문서 목간 외에 꼬리표 목간, 봉함 목간, 다면 목간, 습자 목간 등 다양한 목간이 발견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여)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나주 복암리 목간1,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17.
9. 익산 미륵사지 목간(총 2점)
(81) 익산 미륵사지 목간 318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사듭
이듭
하읍
여듭 <끝> <2026년 7월 14일>
* 716년경 백제 시대 이후 익산 미륵사지 수사 목간
* 우리말 수사를 이두문으로 표기
* 수사 목간이라고도 불린다.
* 백제 시대 미륵사지 서쪽 연못지 출토 목간 2점으로, 전북 익산시 미륵사지 서연못지 동남쪽 호안 뻘층에서 발굴되었으며, 현재 국립익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판독은 “(1면) □ □ 央以山五月二日 □ □/(2면) 新台𢀳□□𢀳善/𢀳𢀳/□伽□𢀳/(3면) 𢀳□ □ □/(4면) □ 𢀳毛 長”이며, 윤선태 판독은 “(1면) □光山五月二日人/(2면) 新台𢀳□□𢀳一雨/ 矣毛𢀳 /□□□𢀳/(3면) 𢀳□□𢀳/(4면) □𢀳今毛𢀳□”이고, 전경목 판독은 “(1면) □ □ 央以山五月二日人 □ □/(2면) □ □ 新台𢀳□□𢀳一雨三十/矣毛己/□ □ □伽□𢀳/(3면) 艮 □□/(4면) □艮今包己長”이다.
* 발굴된 목간에 기록된 총 39개 문자 가운데 백제어 이두문 수사가 포함되었고, 백제어의 수사는 이두문으로 표기했으며, 그 예는 다음과 같다. 하읍(伽第邑, 하나), 이듭(矣毛邑, 둘), 사듭(新台邑, 셋), 다습(刀士邑, 다섯), 닐곱(日古邑, 일곱), 여듭(今毛邑) 총 6개 수사(1, 2, 3, 5, 7, 8).
*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지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2가 900 국립전주박물관과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104-1 국립익산박물관에 소재한다.
* 익산 미륵사지는 사적 150호이다. 미륵사지는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백제 최대 사찰의 절터이다. 601년 백제 무왕 2년 사찰이 창건되었다고 한다. 922년 후백제 시대에 혜거국사비문(惠居國師碑文)에 미륵사의 개탑(改塔)에 대한 기록이 있다.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되어 17세기 조선 중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에 대한 발굴은 1970년대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와 1980년~1994년 사이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실시되어, 다양한 유적, 유물과 함께 목간 2점이 발굴되었다. 목간은 사지 궁남지 서쪽 연못 안에서 사면 목간과 묵흔 목간으로 발견되었다(미륵사지 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4 참조).
益山彌勒寺址數詞木簡
作者 未詳
新台邑
矣毛𢀳
伽第邑
今毛𢀳 <끝>
* 원문 출전: 박상현 기자, 「미륵사지 목간서 수사(數詞) 확인... 백제어와 신라어는 유사」, 『연합뉴스』, 2017년 10월 12일자 참조
(82) 익산 미륵사지 목간 319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부 <끝> <2026년 7월 14일>
* 716년경 백제 시대 이후 익산 미륵사지 목간
* 우리말 수사를 이두문으로 표기한 수사 목간 총 2점의 두 번째 목간으로 추정한다.
* 백제 시대 미륵사지 서쪽 연못지 출토 목간 2점으로, 전북 익산시 미륵사지 서연못지 동남쪽 호안 뻘층에서 발굴되었으며, 현재 국립익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판독은 “(1면) □ □ 央以山五月二日 □ □/(2면) 新台𢀳□□𢀳善/𢀳𢀳/□伽□𢀳/(3면) 𢀳□ □ □/(4면) □ 𢀳毛 長”이며, 윤선태 판독은 “(1면) □光山五月二日人/(2면) 新台𢀳□□𢀳一雨/ 矣毛𢀳 /□□□𢀳/(3면) 𢀳□□𢀳/(4면) □𢀳今毛𢀳□”이고, 전경목 판독은 “(1면) □ □ 央以山五月二日人 □ □/(2면) □ □ 新台𢀳□□𢀳一雨三十/矣毛己/□ □ □伽□𢀳/(3면) 艮 □□/(4면) □艮今包己長”이다.
* 발굴된 목간에 기록된 총 39개 문자 가운데 백제어 이두문 수사가 포함되었고, 백제어의 수사는 이두문으로 표기했으며, 그 예는 다음과 같다. 하읍(伽第邑, 하나), 이듭(矣毛邑, 둘), 사듭(新台邑, 셋), 다습(刀士邑, 다섯), 닐곱(日古邑, 일곱), 여듭(今毛邑) 총 6개 수사(1, 2, 3, 5, 7, 8).
*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지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2가 900 국립전주박물관과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104-1 국립익산박물관에 소재한다.
* 익산 미륵사지는 사적 150호이다. 미륵사지는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백제 최대 사찰의 절터이다. 601년 백제 무왕 2년 사찰이 창건되었다고 한다. 922년 후백제 시대에 혜거국사비문(惠居國師碑文)에 미륵사의 개탑(改塔)에 대한 기록이 있다.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되어 17세기 조선 중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에 대한 발굴은 1970년대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와 1980년~1994년 사이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실시되어, 다양한 유적, 유물과 함께 목간 2점이 발굴되었다. 목간은 사지 궁남지 서쪽 연못 안에서 사면 목간과 묵흔 목간으로 발견되었다(미륵사지 출토 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4 참조).
益山彌勒寺址數詞木簡
作者 未詳
□不 <끝>
* 원문 출전: 익산미륵사지-319,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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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연 소장
2026년 8월 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