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의 세계사-10】
만주국이 안정기에 들어선 1930년대 중반 홍삼 수출은 다시 활기를 띄었으며,1930년대 말에는 미쓰이물산이 미국에 백삼 3,000근과 홍삼 130근을 수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방과 더불어 미쓰이물산의 홍삼 판매는 막을 내린다.
그들은 개성에 보관했던 대량의 홍삼을 놓아둔 채 황급히 철수했다.
한국전쟁은 한반도 인삼산업 지형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피난길에 올랐던 개성의 삼업인들은 개성이 북한 땅으로 귀속되는 바람에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
이들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남한에서 우량 인삼 종자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남한에도 풍기, 금산 지역의 종자가 있었으나 이는 주로 백삼의 원료였고 당시 홍삼전문가들은 개성인삼종자를 최고로 여겼던 터였다.
당국은 북한군이 장악하고 있는 개풍군 망포에 개성인삼 종자가 다량 보관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전매지청 직원 3명과 인삼 상인 3인은 특공대를 결성해 인삼 종자 회수를 위한 작전을 계획했다.
1952년 2월의 어느 하루 이들은 강화도를 출발해 망포에 잠입했다.
다행히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이들은 무사히 귀환했다.
이들이 가져온 네 가마니의 개성인삼 종자는 강화도,인천을 거쳐 부여에 도착했다.
1498년 바스쿠 다가마가 이끄는 포르투갈의 선단이 인도 서해안의 캘리컷에 상륙한 이래 네덜란드, 영국 등이 인도양과 더 멀리는 동아시아의 바다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원했던 것은 큰 이윤을 얻을 수 있었던 동양의 향료였다.
그런데 당시 향료의 범주는 매우 넓었다.
우선 향료와 약재는 호환 가능한 범주에 속했고, 음식과 약의 구분 또한 매우 모호했다.
이 물건들은 유럽에서 구하기 어렵거나 이윤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 장거리 무역은 엄청난 이익만큼이나 커다란 위험을 동반했다.
이를 좀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영국 상인들은 1600년 동인도회사를 세웠다.
네덜란드도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차렸다.
1616년에는 덴마크, 1664년에는 프랑스에서 동인도회사가 설립되었고 스코틀랜드, 독일, 스웨덴, 프로이센 등에서도 유사한 회사가 세워졌다.
이처럼 많은 동인도회사가 세워졌지만 17세기 동인도 무역의 대표 주자는 네덜란드와 영국이었다.
설혜심의 저서 '인삼의 세계사'에서 인용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