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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희, 김다민 두 분 집사님 우리 교회 청년으로 쭉 여기서 자랐습니다. 지금 막세이에서 또 영국에서 교수로 오케스트라 또 김다민 집사님은 악장이죠 뭐라고 해야 돼 슈페리아 솔리스트 베가 솔리스트 그래야 되나요? 최고 아주 여기 프랑스에서 최연소 악장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 창립을 축하하기 위해서 영국에서 또 왁스에서 이렇게 와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 시간에는 우리 기드온 찬양대가 하나님 앞에 찬양으로 영광을 올려드리겠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 기드온 찬양대의 아름다운 찬양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신 줄로 믿습니다. 매주 귀한 찬양 감사합니다. 뒤에서 아멘을 크게 하신 분이 한 분 계신데 잘하셨습니다. 그 한 사람이 용기 있게 하는 아멘으로 우리 모두가 함께 참여할 수 있고 또 이 업되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 용기가 필요합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창립된 지 22주년 되는 기념 감사주일입니다. 2002년 9월 29일에 빌봉이라는 수양관에서 성인 10명과 어린이 4명이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다음 주 10월 6일에는 파리 시보구에 있는 엠베 미시옹 뽀필레카 에방젤릭이라는 프랑스 개신교 구제 기관 사무실을 빌려서 공식적인 첫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네 가지 비전, 회복의 비전, 생명 사 예배, 사명의 회복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사실은 처음에는 생명 삶 예배 그리고 한참 후에 사명의 비전을 거기다가 덧붙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예배에 큰 은혜를 주셨어요. 예배 시간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만지셨고 우리 눈에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지금도 돌아보면 꿈 같은 시간들이에요. 왜 그렇게 많은 감동과 눈물이 있었는지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그런 마음이기도 합니다. 처음 믿는 사람도 많았고 제자 훈련과 다양한 양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많은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지금은 사명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한없이 치유받고 한없이 교육만 받을 수는 없어요. 현장에 들어가서 일하면서 사역하면서 섬기면서 배우고 성장해야 합니다. 지난 22년 동안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제가 어림잡아서 계산을 해보니까 우리 22년 동안 우리 교회에 등록했다가 신앙생활하다가 들어가시거나 다른 지역으로 가신 분들이 약 3천 명 정도가 돼요. 매 주일마다 최소한 5명씩 외부 손님들이 와서 예배를 드리고 가셨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5천 명이 넘는 손님들이 우리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예배를 통해서 회심과 치유와 변화와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그대로 쭉 한국처럼 우리 교회가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 중대형 교회가 됐을 거예요.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때보다 처음보다 조금 더 성장한 정도입니다. 많은 사람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은 각자의 자리로 자리를 찾아서 떠나게 됩니다. 이것이 해외 디아스포라의 숙명이기도 해요. 우리 교회는 나그네가 모이는 교회입니다.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이 순리입니다. 그렇지만 여기 남아 있는 사람들 또 목회자인 저희들은 그게 좀 힘들 때도 있어요. 제가 첫 번째 책에도 썼지만 교회 신앙생활을 몇 년 하면서도 이렇게 대화 중에나 기도 중에 들어보면 우리 교회 우리 목사님 그러는데 가만히 그 뉘앙스를 보면 그게 제가 아니더라고요.
우리 파리 선한 교회가 아니고 마음속에는 자기가 한국에서 다니든 미국에서 다니던 그 교회가 자기 교회에 거기서 거기서 섬기는 그 목사님이 자기 목사님이고 그럼 나는 뭐야 우리 교회는 뭐야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이 허무하기도 하고 좀 서운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뭐 어쩔 수 없죠.
그래서 이걸 이제 극복하기 위해서 제가 몇 가지 목회 철학 중에 하나가 우리 교회를 규정하는 거예요. 그리고 목회를 규정해야 돼요. 그래야만 이것을 극복하고 기쁘고 즐겁게 보람 있게 목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를 정자나무 교회 그리고 나룻배 목회라고 규정을 하고 저 나름대로 마음속에 그렇게 정하고 목회를 해왔습니다.
교회는 우리 교회는 정자나무 교회입니다. 항상 문이 열려 있습니다. 사방으로 뚫려 있습니다. 저희 고향에 가면 지금은 없어졌어요. 저 어렸을 때 동네 앞에 큰 정자나무가 있었는데 500년 된 정자나무라고 그래요. 50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다녀갔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모였어요. 특별히 여름철에는 저녁 식사를 하고 거기서 모이고 또 낮에 더울 때는 거기 와서 모여서 한숨 자기도 하고 장기도 두고 바둑도 두고 또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누는 우리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렇게 모였다가 그들은 시간이 되면 훌쩍 떠나갑니다. 간다고 나무라지 않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거기에 모인다고 거부하지도 않습니다. 그게 정자나무예요.
디아스포라 한인교회, 파리 선한 장로교회는 정자나무 교회입니다. 모두를 향해서 문이 열려 있어요. 누구든지 올 수 있어요. 그리고 거기 정자나무 십자가 나무 아래 모여서 우리는 우리 인생을 논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얘기하고 내가 만난 내가 만난 주님, 내가 경험한 은혜를 나누고 또 인생의 아픔도 나누고 희로애락을 나누다가 때가 되면 또 떠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보에 보면 우리 교회 로고가 있어요. 이 로고는 우리가 공모를 해서 만든 로고인데 이게 은행나무 잎 같지만 이게 은행나무 잎이 아니고 나무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나무인데 좌우로 뚫려 있어요. 열려 있는 십자가 나무 그리고 밑에 조그만 글씨로 선한 교회 파리 선한 교회 이렇게 써 있는데 거기 모여 있는 사람들입니다. 당시에 르노자동차 디자이너였던 우리 정기현 집사님의 작품이 당선이 돼가지고 우리가 그걸 채택을 하고 여기에 의미를 담았습니다.
정자나무 같은 교회 누구나 모였다가 간증을 나누고 교제하고 흩어지는 교회 이야기 꽃이 피는 교회. 그러나 시간이 떠나면 시간이 되면 떠나야 되는 교회, 받아들여야 되는 교회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떠났고 언젠가는 저도 떠나겠죠.
목회자는 나룻배를 젓는 사공과 같습니다. 옛날에는 강 이쪽 편에서 저쪽 편까지 다리가 없기 때문에 배가 실어 날랐어요. 그러다가 이제 나중에 발전되면 이제 통통배가 이렇게 실어나르고 그전에는 뱃사공이 나루터에서 실어 날랐습니다. 뱃사공은 사람을 이쪽 건너편에서 사람을 만나면 반가이 맞이합니다. 그리고 건너편으로 가서는 기꺼이 내려줘야 됩니다. 정 들었다고 못 가게 잡으면 큰일 납니다. 다만 여기서 저기 가는 동안은 내 책임이고 내 권한입니다. 그때 마음껏 나누고 이야기하고 섬기고 훈련시키는 거예요.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라고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시는 분들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떠나실 때는 기꺼이 축복하며 환송합니다. 그러나 여기 있는 동안 우리와 함께 있는 동안 이 시스템에 의해서 훈련받고 양육되는 것입니다.
그런 이제 목회 철학을 가지고 지금까지 해왔어요. 우리는 새 가족 훈련, 제자 훈련, 사역자 훈련 내적 치유 세미나 인지 치유 세미나 공감 소통 세미나, 영성 훈련 새벽 기도 출애굽기를 비롯한 각종 말씀 세미나, 마더와이즈 결혼 준비학교 하브르타 세미나, 중보 기도 세미나, 열방 축제 단기 선교 등 정말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어떤 것은 일시적으로 중단했고 어떤 것은 대부분의 교인들이 다 했고 그래서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또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이런 과정 중에 있습니다. 또 때가 되면 잠시 멈췄던 제자 훈련이나 이런 프로그램은 다시 부활하게 될 거예요. 그때 여러분들도 열심히 참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이 제자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서 많은 변화와 또 신앙적으로 단단해지는 그런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또한 한불 선교 협정 제가 처음 파리 프랑스에 와서 한국에 있는 교회와 우리 교단과 프랑스 교단이 선교 협정을 맺고 함께 사역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무작정 프랑스 교단을 찾아갔는데 그렇게 찾아가서 결국은 마지막 사인을 한 것은 17년 후입니다.
사실 돌아보면 황당한 일이기도 하죠. 30대 초반에 선교사가 와서 밑도 끝도 없이 교단 본부 500년 된 역사를 가진 교단 본부를 찾아가서 우리 선교 협정하고 같이 사역합시다 이렇게 말했으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17년 후에 결국은 사인을 하게 됐고 그 결과 이제 양 교단 또 신학교 간의 여러 가지 다양한 교류들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교인들도 참 훌륭하다고 생각을 해요. 17년 동안 이걸 해야 된다고 제가 만나고 그분들하고 식사하고 밥 사고 이렇게 할 때 우리 목사님이 도대체 뭐 하는 건가 이렇게 생각을 한 분들이 많았겠지만 거기에 대해서 따지거나 못하게 한 분이 없어요.
위에서 기도해 주셨습니다. 유럽과 아프리카 불어권 선교 또 한국과 세계 선교를 네트워킹하는 플랫폼의 역할을 우리 교회가 감당하게 됐습니다.
또 우리가 이제 이번에 두 번째 교회 자매 결연을 했는데 처음에는 두바이 한인교회 그 교회는 원래 한 100여 명 되는 교회였었는데 선교에 헌신하면서 1500명까지 부응하고 50개국에 이슬람 선교사들을 파송한 놀라운 교회입니다. 그 교회와 우리가 자매 결혼을 하면서 실제로 특별한 것이 오고 간 건 아니지만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그 선교적 열정이 우리에게 왔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자매 결연을 했어요.
그리고 지지난주에는 한국에 있는 서울에 있는 소망교회와 우리 교회가 자매결연을 하고 제가 그 서류와 그리고 사진들을 이번에 다녀온 사진들을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제가 어젯밤에 2주간 정말 정말 바쁘게 지내다가 어젯밤에 도착을 하니까 어떻게 준비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다음 주에 가능하면 한번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 교회는 사실 북한 선교와 연변과학기술대학을 세우면서 거기에 올인을 했는데 이제 사실 그게 이제 실체가 없어지는 거예요. 중국이 가져가고 또 북한에 들어갈 수가 없고 그런 상황에서 이제 유럽 아프리카 불어권 또 남미 이런 지역으로 선교를 다시 세팅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러면서 우리 유럽과 아프리카 불어권을 이제 생각하면서 교회를 찾던 중에 우리 교회와 함께 협력하면서 이제 선교적 역할을 하기로 결심을 하고 이번에 양 교회 간에 자매 결연식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앞으로 이제 그다음 프로세스는 또 진행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우리 교회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정 이런 것들은 사실 우리가 아프리카를 어떻게 다 커버를 하겠어요 그러나 우리 교회와 더불어 우리가 또 한국교회와 미국 교회와 더불어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역할을 하는 교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더불어 유럽과 불어권 아프리카 또 이슬람권 선교를 도모하고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유럽이 선교지라고 하는 사실 한국에서는 이 황당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유럽이 선교지다 아이고 평생 나 파리에 가서 하룻밤만 자도 소원인데 그런 곳이 무슨 선교지냐 지금도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수십 년 저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사역자들이 그것을 외치고 또 소개하면서 유럽이 복음을 상실해가는 유럽이 선교지라는 사실을 인식해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지난 22년 동안의 보람 중에 하나입니다.
또 개신교의 역사 위그노의 역사를 연구 정리해서 책을 내면서 세미나와 집회를 하면서 너무나 소중하지만 사람들에게 잊혀진 이야기를 통해서 한국교회와 세계 교회가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각성하고 깨어나는 그런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우리 여기 실제로 우리 교인들은 잘 몰라 여기서 책 이렇게 얘기를 해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이걸 실제로 읽고 접하고 세미나를 경험한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코로나 이후에 중요한 우리 재부응하고 교회가 새롭게 일어나는 데 중요한 그 본질인지를 인식하고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에요. 그러는 동안 22년이 흘렀고 저도 이제 60을 넘어서 나이가 좀 들어가는 거예요. 이제 앞으로 10년 남았습니다. 10년 동안 열심히 살아야 되겠다. 그래서 팍 뛰니까 어떤 분들은 그러다가 쓰러진다고 이번에 한국에서도 몇 번 그래요 그러다가 쓰러진다고 그런데 나중에 정신이 흐려졌을 때 몸이 약해졌을 때 그때 열심히 하겠다고 뛰면 어떡하겠어 그러니까 지금 정신이 맑고 내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열심히 뛰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시간이 계속 짧아지는 거예요. 저와 우리 교회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해야 될 일들이 물밀 듯 밀려옵니다. 나 하나 편해지자고 나 한 사람 편해지자고 피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주님 오시는 그날 땅 끝에서 우리 주님을 영광스럽게 맞이한다면 그 교회는 성공한 교회고 그 인생은 정말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요즘 전 세계가 전쟁에 전쟁의 전쟁 속으로 들어갔어요. 특별히 이스라엘의 전쟁은 이 복원 신학을 하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신학을 펼치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사건 으로 지금 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게 종말적 사건이 될지도 모른다. 주님이 우리 시대에 오실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물론 100년 후에 200년 후에 오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종말론적인 생각으로 이런 시대를 읽어가면서 주님이 이 시대에 오신다면, 주님이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오신다면 나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주님을 만날 것인가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주의 복음을 열심히 전하면서 주님을 열심히 섬기면서 살아가다가 그 현장에서 주님을 만난다면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은 참으로 축복받은 인생이 될 것입니다.
지난 22년간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여기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어요. 위기도 많았어요. 예배당을 쫓겨날 위기도 있었어요. 그러나 벼랑 끝에 섰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아슬아슬하게 하시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꼭 길을 여셨어요. 거기에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어요. 내가 하는 거다. 니가 하는 게 아니고 내가 하는 거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고 수고의 땀을 흘리고 눈물을 아끼지 않은 사랑하는 성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눈물과 땀을 하나님의 병에 담으실 줄로 믿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병을 가지고 계시대. 그래서 성도들의 눈물을 담는 병 또 하나의 병 이것은 이제 성경에 나와 있지 않는데 성도들의 땀을 담는 병을 하나 가지고 계시지 않을까?
하나님은 우리의 수고를, 우리의 눈물을 하나도 잊지 않으십니다. 하늘 생명록에 기록하시며 언젠가는 우리에게 상급으로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우리가 매주 매 창립 주일마다 제가 읽는 본문들이 있는데 오늘은 특별히 다른 본문을 읽었어요. 교회와 사역자, 성도들이 감당해야 될 사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가 가슴에 담고 앞으로 살아가야 될 말씀이기도 합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니 너희들은 세상과 하나님을 화목하게 하라. 화목하게 하는 사명 그것이 앞으로 우리가 감당해야 될 사명입니다. 22주년 늘 맞이해서 우리는 이 사명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왜 화목해야 되는가?
하나님과 세상이 원수지간이 됐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고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부터 세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됐습니다. 인류는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어요. 하나님 없이 살기를 선택했어요. 하나님을 마음에서 몰아냈어요. 하나님을 등졌어요. 그리고 하나님을 미워하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하나님 소리만 나와도 부르르 떠는 하나님과 철천지원수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모습이고 과거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 결과 불행과 심판, 저주와 사망이 우리의 삶을 삶의 그림자로 드리웠습니다.
하나님과 거리를 둔 세상, 하나님께 등돌린 세상 행복했나요? 정의로웠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행복할 것 같았지만 하나님과 거리를 두고는 인간이 행복할 수 없어요. 어거스틴의 고백처럼 하나님 품에 갈 때, 하나님 품에 거할 때 비로소 우리는 안정을 누리고 행복을 누리는 거예요.
정말 정의로웠습니까?
하나님 없이 정의로운 거 세상의 정의를 추구하고 머리에 띠를 두르고 정의를 외치던 사람들. 그 인생을 까보면 다 외치는 사람이나 외치지 않는 사람이나 정의롭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하나님 없이 축복을 받았나요? 하나님 없이 생명이 있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시작하면 점점 우리에게서 생명이 고갈됩니다. 인류는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져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잘될 것 같았지만 스스로는 어찌 할 수 없는 나갈 수도 없고 물러설 수도 없는 수렁에 빠진 배와 같이 됐어요.
이번에 한국에 가서 오랜 친구들을 만나게 됐어요. 참 하나님이 어떨 때는 이렇게 한국을 방문할 때 그렇게 만나고 싶은 사람을 그렇게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나게 못 만날 상황이 되는데 이번에는 정말 어떻게 무슨 자로 잰 듯이 사람을 만나게 하시더라고요. 그게 40년 전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고 40년 만에 만나는 거예요. 그것도 우연히 대전에 있는 두 교회 집회를 갔는데 토요일날 도착해서 그다음 날 이제 집회를 해야 되는데 토요일날 저녁에 도착해서 저녁 먹고 묵은 호텔 바로 앞에 장례식장이 있는데 내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른다는 거예요.
근데 그 친구가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고향까지 서천까지 내려온 거예요. 깜짝 놀랐는데 늘 빚진 마음이 있었는데 그날 밤에 내가 그 앞에 묵은 거예요. 그래가지고 갔더니 40년 동안 못 만났던 그 친구들이 거기에 있었어요.
그리고 꼭 보고 싶었던 친구 하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세월이 그렇게 많이 흐른 거예요. 그래서 참 이번 한국 방문이 다른 일도 많았지만 그런 오랜 친구들을 만나는 기쁨이 있었어.
또 한 친구는 우리나라 정상에 오르다가 나락으로 떨어진 친구가 있었어요. 통화를 했더니 보고 싶다고 나왔어요. 그래서 이런저런 얘기 몇 시간 식사도 함께 나누면서
물고기가 물에서 살아야 행복한데 다시 그 길을 가야 될 마음이 가야 되지 않겠니
그랬더니
원영아 나는 늪에 빠진 배 같아.
지금 농사 짓고 있더라고. 이게 늪에 빠진 배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는 배 그게 자기 신세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이게 도인의 경지에 들어갔더라고요. 그래서
야 너 이 도통했구나. 이 도의 경지에 들어갔구나.
몇 번 내가 그렇게 얘기를 하고 스스로 헤어나올 수 없어서 안타까운 현실. 그 언젠가 이 늪에 빠진 배가 헤어나올 수 있는 길은 딱 한 가지입니다.
물이 들어와야 돼요. 물이 들어오면 배를 띄웁니다. 그때만을 기다려야 되는 그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서 목사니까 기도해 줬습니다. 잘 회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면서 그 말 한마디 늪에 빠진 배 그리고 물이 들어와야 뜬다. 물이 들어오면 쪽배도 뜨지만 항공모함도 뜹니다. 그게 물의 힘입니다.
오면서 계속 생각을 했어요.
야 물에 빠진 배. 그게 이 세상이고 그게 우리 인생이 아닌가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 살아가는 인생은 마치 늪에 빠진 배와 같아요. 그것이 인류의 모습입니다. 스스로 해결할 길이 없어요. 거기서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절망과 저주와 심판과 사망의 늪에 더 빠져들어갑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세상의 운명이에요. 유일한 길은 물이 들어와야 돼 어떤 물입니까?
은혜의 물입니다. 구원의 물입니다. 하나님이 그 물을 쏟아부어주셔야 됩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서 아들을 보내셨어. 로마서 5장 10절에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는지, 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예수님은 화목제물로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멸하시고 용서와 생명의 길을 열어놓으셔서 은혜의 문을 이 세상에 쏟아부으셨어요. 그 은혜의 물이 들어오면 우리는 삽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구원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이루어 놓으신 그 은혜의 불이 우리 인생에 들어왔기 때문이에요.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사람도, 아무리 큰 절망에 빠진 사람도 은혜의 물이 들어오면 우리를 띄웁니다. 항공모함도 띄웁니다. 그게 은혜의 능력입니다.
한 번 깨진 관계는 저절로 복원되지 않아요.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래서 화목제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는 대가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되게 하는 길이 열렸어요. 하나님은 그것을 위해서 예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그 은혜의 물로 우리를 띄워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원수 된 것을 멸하시고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막힌 담을 허무시고 하나님과 화목되는 길 생명의 길을 열어놓으셨어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람입니다. 옛날에는 원수였는데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람 그걸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웃과도 화목해야 돼요. 하나님하고 화목한데 이웃하고 화목 못할 이유가 어디 있어요? 화목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고 그리고 사명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이웃과 화목하게 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그리스도인 가운데는 쌈닭이 많아요. 내놓으라는 쌈닭들이 교회로 많이 들어온 것 같아요. 우리 교회는 참 좋은 교회예요. 그런 분이 없어요. 그런데 여기저기 다녀보면 아주 정말 스펙터클한 무슨 무협지 찍는 듯한 얘기들이 많아요. 그게 다 교회에서 벌어지는 일이에요. 깜짝 놀랄 일들이 많습니다.
언젠가 말씀드렸지만 예배 잘 드리고 나서 점심 먹으러 내려가서 주방에서 승질난다고 막 칼을 던져요. 칼이 왔다 갔다 하는 교회도 있어요. 주방 칼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밥 먹다가 접시가 날아다니고 막 당회를 하다가 막 뛰어올라가가지고 거기를 막 구두발로 뛰어올라가고 교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교회 안에 있어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뭔지를 몰라서 그래요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했고, 또 이웃과도 화목한 사람들이어야 돼요. 그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에요,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입니다. 이웃과도 화목해야 됩니다. 그리고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만드는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고린도후서 오늘 본문 19절에 보면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우리가 해야 되는 일은 이 화목의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거예요. 하나님과 당신들이 화목하게 되는 길이 열렸다. 원수로 살지 마라. 그렇게 살면 저주받고 심판받고 절망에 빠진다. 그러나 하나님과 화목하면 하늘의 생명 축복이 흘러 들어온다. 용서의 길, 생명의 길 그 길이 열렸다는 소식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그걸 우리에게 맡기셨어요. 교회에게 맡기셨어요. 우리가 해야 되는 일은 이것을 세상에 부지런히 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의외로 몰라요. 사람들이 교회를 알고 복음을 아는 것 같지만 교회 다니는 사람도 복음이 뭔지를 몰라 하물며 세상 사람들이 저 사람들이 교회 가서 뭐 하나 이런 정도만 생각을 하지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놀라운 사실을 몰라요.
그래서 믿지 못하는 거예요. 이 복음을 정확하게 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들이 구원의 길로 들어오게 돼 있어요. 중요한 건 우리가 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도하고 선교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제자들에게 유언으로 말씀하셨어요. 마가복음 16장 15절에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것이 22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교회가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기고 감당해야 될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그 삶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과 친해지시라. 이거예요.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거리끼는 모든 걸 제거하셨어요. 우리가 마음만 열면 하나님하고 진짜 친하게 지낼 수 있어요. 하나님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 관계를 누리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요. 우리 말에도 이런 말이 있어요. 화통하면 형통한다. 여기서 화통이라는 것은 이게 이제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삶에도 적용되는 얘기예요. 화통은 화목한 관계가 잘 열리면 그 화통은 그런 뜻이에요. 형통한다는 일이 잘 풀린다. 여러분 세상에서도 관계가 좋으면 일들이 잘 풀리는 거예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절대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하면 그 그 관계가 좋으면 우리 인생이 잘 풀리게 돼 있어요. 그건 원리입니다. 그것을 누리시라 이거예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 놓으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길이 열렸으니 그것을 잘 누리셔야 돼요.
뿐만 아니라 아직 그 길을 모르고 있는 세상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서 세상 사람들도 구원받고 그 화목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그 축복을 누리도록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이 사명을 감당해야 됩니다.
그런 은혜와 역사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