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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영적 건강의 좌표입니다.
<단락 1>추석은 본래 음력 8월 15일이며, 한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농작물을 수확하는 시기를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 민족에게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기쁨의 명절입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께 추수의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날이 두 번 있는데, 이는 오순절과 장막절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감사의 절기를 만들어 놓으신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감사의 결단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감사보다는 불평을 많이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감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언제부터 불평이 많아졌을까요?
1) 창 3: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고 난 이후부터 하와에 대해서 불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범죄 이전에는 하나님 앞에서 감사와 찬양의 조건이었던 하와가 어느새 불평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결단해야 하는 신앙 결단의 행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의학박사 하루야마가 쓴 <뇌내 혁명> 에서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단순히 생각으로 머물지를 아니하고, 구체적인 화학물질로 분비되어 건강에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불평불만 할 때 | 노르 아드레날린 호르몬 분비 | 노화 촉진, 각종 병을 유발 |
감사할 때 | 베타 엔돌핀 호르몬 분비 | 병을 치유케 하고 건강을 주는 역할 |
노르 아드레날린 안에는 독성이 있는데, 그것은 자연계의 뱀의 독 다음으로 강한 독성이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길 원하십니까? 그 열쇠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선, 감사의 헬라어는 ‘유 카리스 테오’이며, 헬라어 ‘카리스’의 뜻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값 없이 주신 예슈아의 십자가 은혜를 알면 알수록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 이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알면 알수록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란? 믿음의 눈을 들어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어로 감사는 ‘토다’이며, 이 단어는 감사의 대상에 대한 신뢰와 인정을 하게 되어졌을 때 사용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감사를 돌려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시며, 그 분의 주권 (하나님은 항상 옳습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을 선포하는 것이 곧 감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시간의 주관이시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과거와 현재에 대한 감사뿐만 아니라, 아직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은 미래의 일까지도 감사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앞으로도 인도하실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신앙의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가 인내 (기다림)입니다. 인내라는 것은 단순히 참고 견디는 고통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벅찬 기대감과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때가 되면 아름답게 이루어주실 것에 대한 감사를 범사에 드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삶입니다.
(1) 계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재림 예슈아는 예리한 낫을 가지고 곡식을 추수하는 분이십니다. 이 때 예슈아의 예리한 낫으로 추수되어지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환란의 시기를 믿음으로 통과한 사람입니다 (계13장). 그래서 어린양 예슈아께서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간 이들의 결과는 복된 죽음입니다. 우리의 죽음이 복된 이유는 우리의 모든 수고가 끝나고 진정한 쉼을 허락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복된 죽음을 경험하는 것은 교회를 다녀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과 내 뜻과 생각을 비우고 어린양 예슈아께서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삶을 살며, 예슈아의 멍에를 매는 자들이 복된 죽음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이 땅에서의 삶은 나그네의 삶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완성되어질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영원한 처소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보다는 세상 나라에 관심이 많다보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자는 범사에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99.9%의 걱정과 근심은 무엇 때문에 나옵니까?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약해지면서 많아지는 것은 불평 불만이며, 이 때부터 육체의 눈으로 환경과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욕심을 따라 사는 사람은 항상 부족한 것 투성이고, 하나님의 은혜 (카리스)를 따라 사는 사람은 늘 감사함이 넘칩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감사의 조건과 대상이 없기 때문에 감사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마지막 때의 삶과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2) 딤후 3: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말세 (예슈아의 지램의 때)의 특징은 고통하는 때라고 말씀합니다. 고통의 헬라어는 ‘칼레포스’이며, 그 뜻은 ‘믿음을 지키는 힘을 잃어버리다’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믿음을 지키는 힘을 잃어버리게 될까요?
(3) 신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고 현재 우리에게 일어난 문제에 집중하고 있을 때, 우리의 믿음은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다음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단락 2> 하나님에 대한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전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살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고백을 가진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은 소원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십자가의 구속을 이루시어 나를 지옥에서 건져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것으로 자신의 믿음을 만족스럽게 여기는 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표현되어져야 합니다.
2. 신 16:10 ...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물을 가지고 와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께 오순절을 지키십시오
하나님은 오순절에 당신에게 주신 복을 따라 우러나오는 감사의 예물을 준비하고,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빈손 (히 : 레캄)의 뜻은 ‘공허하다, 헛되다’ 입니다. 즉, 빈 손은 돈의 액수와 양을 의미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정성이 담긴 마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 마 26: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마리아의 오빠 나사로가 죽음에서 살아난 이후 베다니 동네는 축제의 분위기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 예슈아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마리아는 예슈아를 위해 마지막으로 해 드릴 수 있는 일을 찾고 또 찾게 됩니다. 즉, 어떠한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주님께 사랑의 고백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방에서 발견한 것이 있는데, 그녀의 전 재산인 나드 한 옥합이었습니다. 결혼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눈물과 함께 주님을 위해 부어드린 것입니다. 참고로 옥합은 순전한 나드 (향유)를 담고 있는 그릇을 말합니다. 그런데 옥합이 깨어지지 않는다면, 순전한 나드는 흘러나오지 못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옥합 (겉 사람)이 깨져야지, 우리 안에 계신 예슈아께서 흘러나올 수 있습니다 (속 사람).
(1) 요 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우리의 자아는 날이 갈수록 작아져야 하며, 그리스도는 날이 갈수록 커져야 합니다. 그리고 예슈아를 통하여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다면, 내가 주인 된 나라가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즉,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왕과 주인 노릇하지 않을 때, 그때에야 비로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의 왕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참된 회개를 통해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자아 중심적 삶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점검해 봐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둘째, 예슈아를 믿고 증거하기 위해 나는 날마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 있는가?’ 왜 이러한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해야 합니까? 마태복음 24장 12절에 ‘불법이 성행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반응합니다.
‘저의 꿈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저의 꿈은 중요하지도 않은 것입니까?, 그리고 저는 제 방식대로 일하는 것이 익숙해진 사람입니다. 제게 익숙한 것을 버려야 합니까?, 그리고 제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면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당신이 만약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면, 거룩한 하나님의 도성 새 예루샬라임이 당신에게 주어집니다. 즉, 자기를 부인하고 예슈아를 좇는 자에게 하늘의 영광이 임할 것입니다. 영원하고 은혜로운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바라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Christ)의 뜻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예슈아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전에 누군가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 일에 베다니의 마리아가 쓰임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을 위해 자기 자신도 기꺼이 바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감사와 헌신에 찬물을 끼얹은 자들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예슈아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화를 낸 이유는 구제할 돈도 부족한데, 그 귀한 향유를 예슈아께 부었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그들을 책망하시고, ‘구제는 앞으로도 할 수 있다’ 라고 말씀하시며, 마리아의 감사와 헌신을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물론, 구제하고 선교하는 일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2) 눅 10:42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르다는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어서 바쁩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그 일이 지치게 되어졌고, 동생 마리아를 미워합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이 사라지게 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져 예슈아의 발 아래 있으며, 그 분의 음성을 듣길 좋아합니다. 흥미롭게도 마리아는 성경에 등장할 때마다 예슈아의 발치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예슈아께서 배가 고프다고 말씀하시면, 마리아는 즉시, 온전히, 기쁜 마음으로 순종했을 것입니다. 즉, 마르다의 육신적인 자아는 예슈아를 사랑하는 연인이기 전에 먼저 일꾼이 되도록 만든 것입니다 (우순순위의 문제). 물론,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일꾼이 되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부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감사로 헌신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보상이 넘치게 주어집니다. 예슈아는 마리아의 헌신의 모습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영원히 그의 이름이 기념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리아처럼 감사의 향기가 넘쳐서 우리의 인생에도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이 충만해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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