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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문불입(過門不入)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르지 않는다는 뜻으로, 나라나 공적인 일을 위해 개인적인 일은 잊어 버리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過 : 지날 과(辶/8)
門 : 문 문(門/0)
不 : 아닐 불(一/3)
入 : 들 입(入/0)
(유의어)
토문불입(討門不入)
출전 : 맹자(孟子) 이루 하(離婁下) 外
나라의 일을 맡은 공직자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그린 말에 즐풍목우(櫛風沐雨)가 있다. 머리는 바람에 의해 빗질이 되고, 비를 맞아 몸이 절로 목욕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그만큼 객지에서 자신의 일엔 신경 쓰지 않고, 온갖 고생을 하며 일에 열중하는 모습을 나타냈는데 중국 전설상의 하(夏)나라 시조 우(禹)의 고사에서 나왔다. 수년간 대홍수가 연이어 일어날 때 치수사업에 성공하여 물길을 잡았던 바로 그 우왕이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 홍수를 막은 우임금에게 따르는 또 하나의 고사가 있다. 일에 열중하는 바람에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過門) 여러 번 집에 가지 않았다(不入)는 성어에 따르는 이야기다.
비슷한 이야기가 곳곳에 전하는데 먼저 사기(史記)의 하본기(夏本紀) 편을 보자. 태평한 시대의 대명사가 되어 있는 요순(堯舜)의 치세 때 20년 동안이나 홍수가 계속되었다.
요임금은 곤(鯀)이라는 사람을 시켜 물길을 잡게 했다. 바로 우의 아버지다. 곤은 9년 동안이나 열심히 일했지만 조금도 피해가 줄지 않아 요임금이 책임을 물어 처형했다.
요의 양위로 왕위에 오른 순임금은 곤의 아들 우에게 책임을 맡겼다. 우는 아버지의 실패를 분석하여 물길을 막지 않고 바다로 빠지게 하는 방법으로 마침내 홍수를 다스렸다.
치수에 매달린 우는 나이가 서른이 되어 겨우 여교(女嬌)라는 처녀와 혼인을 했으나 ‘13년 동안을 지내면서 자기 집 문 앞을 지나가면서도 감히 들어가지 못했다.’
居外十三年 過家門不敢入.
맹자(孟子)에는 우임금이 ‘세 번이나 집을 지났지만 한 번도 들어가지 않은 것을 공자는 어질다고 여겼다’라고 이루(離婁) 하편에 나온다.
三過其門而不入 孔子賢之.
장자(莊子)의 천하(天下)편과 열자(列子) 양주(楊朱)편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오늘날 우임금과 같이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공사 간에 없을 것이다. 만약 있다면 이혼 당하기 십상이다. 가족을 중히 여겨 함께 지내는 시간도 중요하기에, 공적인 일은 그만큼 열심히 한다는 정신으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과문불입(過門不入)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 들어가지 않았다는 뜻으로, 나랏일이나 공적인 일을 위해 개인적인 일은 잊어버리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이 성어는 맹자(孟子) 이루 하(離婁下) 등 여러 곳에 나오는데 간단히 살펴보겠다.
🔘 맹자(孟子) 이루 하(離婁下)
禹稷當平世, 三過其門而不入, 孔子賢之.
우(禹)와 직(稷)은 태평한 세상을 만났으면서도 여러 번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 집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공자(孔子)께서는 이를 어질다고 여기셨다.
顔子當亂世, 居於陋巷, 一簞食, 一瓢飮.
안자(顔子)는 난세를 만나 누추한 골목에 살면서 한 대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마실 것으로 구차한 생활을 했다.
人不堪其憂, 顔子不改其樂, 孔子賢之.
다른 사람들이라면 그 근심을 견디지 못했을 텐데 안자는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아니하였고, 공자는 그를 어질다고 여겼다.
孟子曰; 禹稷顔回同道.
맹자(孟子)가 말했다. “우와 직과 안회(顔回; 안자)는 같은 도를 가지고 있었다.”
🔘 열자(列子) 양주(楊朱)편
鯀治水土, 績用不就, 殛諸羽山。
곤(鯀)은 물과 흙을 다스렸으나, 성취하지 못하여, 우산에서 죽였다.
禹纂業事讎, 惟荒土功, 子產不字, 過門不入, 身體偏枯, 手足胼胝。
우(禹)는 아버지 곤(鯀)의 없을 이어받아 순(舜) 임금을 섬기며 오직 토목공사를 크게 성공했으나, 아들을 낳아도 가보지 못하고, 아내를 보듬어 주지도 못하면서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몸은 온통 말라 있었고, 손과 발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 사기(史記) 하본기(夏本紀)편
禹傷先人父鯀功之不成受誅, 乃勞心焦思, 居外十三年, 過家門不敢入.
우는 아버지 곤(鯀)이 공을 이루지 못하고 주벌을 당한 것을 마음 아파하여 노심초사했는데, 밖에서 13년을 지내면서 자기 집 문 앞을 지나가면서도 감히 들어가지 못했다.
요(堯)임금과 순(舜)임금 때 20년 동안이나 홍수가 지속되었다. 요임금은 곤을 시켜 홍수를 다스리게 했다. 곤은 9년 동안이나 열심히 일했지만 물길을 다스리는 데 실패했다. 요임금은 그 책임을 물어 곤을 처형했다.
요임금의 양위로 제위에 오른 순임금은 곤의 아들 우에게 치수를 맡겼다. 우는 아버지의 실패를 거울삼아, 물길을 막는 방법이 아니라 물길을 내서 물이 빠지게 하는 방법을 써서 작은 시내는 큰 강으로 흘러들게 하고, 강물은 바다로 빠지게 만들었다.
이렇게 13년의 노력 끝에 우는 마침내 홍수를 다스리게 되었고, 후에 순임금의 양위를 받아 제위에 오르고,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夏)나라를 세우게 된다.
우는 치수 사업에 여념이 없는 나머지 나이가 서른이 될 때까지 결혼을 못 하다가, 여교(女嬌)라는 아가씨를 만나 혼인을 하고 고향인 안읍으로 데려갔지만, 그 후로도 10년 동안 아내를 만나지 못했다.
그 사이 여러 차례 고향을 지나갔지만 집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이 이야기에서 과문불입, 혹은 토문불입(討門不入)이 유래했다.
우가 분투 노력하는 모습을 장자(壯子) 천하(天下)에서는 “장딴지에는 잔털이 없었고, 정강이에 털이 다 빠졌으며, 소나기에 머리를 감고, 질풍에 머리를 빗었다.(腓無胈, 脛無模, 沐甚雨, 櫛疾風.)”고 표현하고 있다.
우에 대한 이런 이야기들에서 바람에 빗질하고 비로 머리를 감는다, 즉 오랜 세월을 객지에서 방랑하며 온갖 고생을 다한다는 뜻의 ‘즐풍목우(櫛風沐雨)’, 손과 발에 굳은살이 박이다,
즉 힘겹게 노동에 종사한다는 뜻의 ‘수족변지(手足腁胝)’가 나왔다. ‘수족변지’는 ‘변지수족(腁胝手足)’, ‘수족중견(手足重繭)’이라고도 한다.
(용례)
조선왕조실록 단종 즉위년 임신(1452,경태 3) 8월10일(경오) 기사
세조가 신숙주를 불러 그 마음을 떠보다
정수충(鄭守忠)이 세조의 집에 가니, 세조가 그와 더불어 서서 이야기를 하는데, 마침 집현전 직제학 신숙주(申叔舟)가 문 앞으로 지나갔다.
세조가 부르기를, “신수찬(申修撰)!” 하니, 신숙주가 곧 말에서 내려 뵈었다.
세조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어찌 과문불입(過門不入)하는가?” 하고, 이끌고 들어가서 함께 술을 마시면서 농담으로 말하기를, “옛 친구를 어찌 찾아와 보지 않는가? 이야기하고 싶은 지 오래였다. 사람이 비록 죽지 않을지라도 사직에는 죽을 일이다.” 하니
신숙주가 대답하기를, “장부가 편안히 아녀자(兒女子)의 수중(手中)에서 죽는다면 그것은 ‘재가부지(在家不知)’라고 할 만하겠습니다.” 하므로,
세조가 즉시 말하기를, “그렇다면 중국으로나 가라.”하였다.
과문불입(過門不入)
자기 집 앞을 지나가도 들어가지 않는다
정치인들이나 공무원들은 무엇보다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자세로 직무에 임하여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인지라 사(私)에 집중하기가 쉽다. 특히 힘들고 지칠 때 공무를 제쳐두고 몸을 쉬고 가사를 돌아보는 경우가 많기도 하다. 특히 공과 사가 충돌되었을 때 사에 빠질 경우가 많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욕망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특히 나라에 위급한 일이 있을 때 자기 몸과 집안을 돌보지 않고 공무에 충실한 사람을 칭송한다. 또 자기를 희생하여 의를 행한 자들을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 하며 크게 우러러 받든다.
모든 인간사에는 늘 재난이 있다. 국가는 그 재난에 잘 대처하여 국민이 피해가 없도록 하여야 하며 혹 국민이 피해를 당했을 때 구제를 신속하게 하여야 한다. 재난은 전쟁이나 기근, 무질서와 부주의에 의한 인재도 있지만, 자연 재난도 엄청나다. 자연 재난은 태풍, 홍수, 폭설, 가뭄, 등 다양하다. 재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왕은 쫓겨나는 경우가 있었으며 현대에도 그런 지도자는 쫓겨나는 경우가 많다.
고대부터 이어온 전통 농경사회에서 큰 재난 중 하나는 가뭄과 홍수였다. 가뭄과 홍수가 닥치면 농사는 지을 수 없으며 농사를 짓지 못하면 백성은 살 수가 없다. 나아가 나라의 재정이 바닥이 나서 정권을 지탱할 수 없다. 따라서 그에 대한 대책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현명한 군주는 치수(治水)에 집중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치수 사업은 근대화 과정에서 대대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지금도 중요하게 진행되어 오고 있다. 지금의 치수 사업은 단순히 홍수 피해를 줄이고 농사에 필요한 물을 이용하는 것을 넘어, 모든 산업의 근간을 이룬다.
전설의 시대라 일컫는 고대 중국에서 치수 사업에 달인이 있었다. 성군(聖君)이라 일컫는 요임금 때 큰 홍수가 났다. 이 큰 재난에 백성들은 살길이 막막했다. 그래서 요임금은 대대적인 치수 사업을 벌였다. 치수야말로 나라를 지탱하고 백성을 살리는 최선의 길이었다. 요임금은 치수에 능한 자를 추천하도록 하였다. 그때 곤이란 사람이 추천되었다. 곤은 등용되어 치수 사업을 주관하였으나 9년 동안이나 계속된 홍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요임금이 나이가 들며 후계자가 필요했다. 요임금은 자기 아들이 있었으나 불초(不肖-인품과 능력이 부족함)라 하여 능력이 있는 순을 후계자로 삼았다. 요임금이 승하하고 순이 즉위하였다. 순은 임금이 되자 선왕 때부터 해 오던 치수 사업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때 선왕 때부터 치수 사업에 실패를 거듭했던 곤의 아들인 우(禹)를 등용하려 했다. 우는 그 직을 설(契), 후직(后稷), 고요(皐陶)에게 양보하며 극구 사양했으나 순임금은 끝내 우를 등용하고 익(益), 직(后稷) 등이 우를 돕게 하였다.
우는 임금의 명을 받고 치수 사업의 총책이 되어 익(益), 직(后稷) 등과 함께 제후들과 백관들에게 인부들을 동원하여 치수 사업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산으로 직접 올라가 말뚝을 세워 위치를 표시하고, 높은 산과 강을 측정하는 것부터 하였다. 우는 부친인 곤이 치수 사업에 실패하여 처벌받았던 것(곤은 치수에 실패하여 순에 의해 우산 지방으로 추방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죽음)을 슬퍼하였으나, 아버지의 실패를 곱씹으며 치수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우가 치수 사업에 몰입한 기간은 13년이나 되었다. 우는 밤낮으로 친 이슬을 맞으며 일을 했다. 그는 입고 먹는 것을 절약하여 효를 다하였으며, 누추한 집에 살면서도 가옥을 검소하게 하고 재정을 극도로 절약하여 치수 사업에 보탰다. 이를테면 재정을 사비(私費)로 충당한 것이었다. 그는 왼손에는 수준기(水準器-수평을 재는 도구)와 먹줄을 들고, 오른손에는 그림쇠와 곡자(둥근원을 그리는 도구-각도기의 일종)를 들었다. 사계절을 측량하는 도구를 가지고 동분서주(東奔西走) 하였다.
밭과 도랑 사이에 물줄기를 내어 바로 잡았으며 전국을 개척하고 도로를 내었다. 연못에는 제방을 쌓아 물이 넘치지 않도록 하였으며, 필요한 곳에는 제방을 쌓아 저수지를 만들어 홍수를 막고 물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도록 했다. 이렇게 그는 전국의 아홉 개의 산을 개간하고, 아홉 개의 호수를 통하게 하였으며, 아홉 개의 강줄기를 통하게 하여 구주(九州-기주, 연주, 청주, 서주, 양주楊州, 형주, 예주, 양주梁州, 옹주 등)를 확정 지었다. 우는 그렇게 치수에 몰입하는 동안 자기 집 대문 앞을 지날 때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과문불입過門不入)
순은 재위에 오른지 39년 만에 창오의 들판을 순행하다가 죽었다. 그는 죽기 전에 자기의 선왕 요가 그랬듯이 아들이 불초인 것을 알고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고 다방면으로 능력과 덕성을 검증한 우를 후계로 임명했다. 그렇게 해서 우는 순처럼 왕위에 올라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여기서 과문불입(過門不入)을 다시 생각해 보자. 한편으로는 집안 가솔(家率)이나 주변 사람들이 생각할 때 우를 매우 매정한 사람이라 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급한 공무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집 앞을 지나다 집에 들르면 쉬고 싶기도 하고 집안에 살필 일들이 산적하게 쌓인 것을 보게 되면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특히 일에 지친 모습을 보면 가족들은 그에 잠시라도 쉴 것을 권고할 수 있다. 그러면 마음이 느긋해지고 공무의 시급함을 잊을 수 있다. 그래서 우는 집 앞을 지날 때에도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과문불입(過門不入)은 시급한 공무를 책임진 자의 책임감을 강조한 말이다.
며칠 전 태풍 힌남노가 제주도를 비롯한 한반도 전역을 덮쳤다. 특히 제주와 부산 포항을 비롯한 남해안에 들이닥친 태풍의 위력은 참으로 다단했다. 피해도 엄청났다. 그러나 그 피해는 예전보다는 적었던 모양이다. 사전 대비가 어느 때보다 철저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대통령을 비롯한 전국의 지방 자치단체의 장까지 잠을 자지 않고 현장을 진두지휘하여 피해를 줄였다는 평가가 크다. 물 폭탄을 맞은 포항의 아파트 현장에서 대통령은 몸소 그 안에 들어가 실종된 사람을 구할 것을 진두지휘했으며 곧바로 특별 재난 구역으로 선포했다. 전국의 태풍 피해 파악과 복구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당부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며칠간을 집무실에서 지내다시피 하였다고 한다. 태풍 힌남노의 대처 과정에서 보인 대통령과 불철주야 현장을 지휘했던 지방 자치단체장들의 행적도 과문불입(過門不入)의 한 류형에 속하지 않을까?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 때 늘 문제가 되었던 일이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이었다. 그것을 사람들은 대통령의 잃어버린 7시간이라고 말한다. 배가 침몰 되어가고 아이들이 바다에 수장되는 와중에도 대통령은 7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였는가의 문제는 세상을 달궜고 국민을 분노하게 하였으며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출발점이 되었다. 최고 통치자의 재난에 임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 주는 역사적 사례가 되었다.
지난 대선 때 어느 후보가 재난 상황에서도 지인하고 식사를 하였다고 문제를 삼았다. 당사자는 이미 모든 상황을 보고 받고 지휘한 후라고 말했지만, 우 임금이 치수를 할 때 몸소 산에 올라가 살피고 측정하며 진두지휘했듯이 현장에 찾아가 살피고 대처하였느냐 아니었느냐의 문제로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창일 때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 영국 총리는 2020년 5월 20일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열린 술 파티에 참석했고 4월 16일에는 총리실 직원들이 충리실에서 두 차례나 시끌벅적한 파티를 벌인 것이 밝혀져 분노를 일으켰고 유사한 일들이 겹쳐 결국 사임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보리스 존슨의 ‘파티게이트’라고도 부른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총리가 된 핀란드의 산나 마린(Sanna Marin) 총리가 가수, 방송인 등 유명인사들과 여당 의원 등 약 20명과 함께 한 가정집에 모여 격정적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는데 영상이 발표되자 마약인 코카인을 사용했다는 의혹까지 겹치면서 나라 안과 밖이 들끓었다. 그녀는 ‘단지 술을 마시고 놀았을 뿐 마약 복용을 하지 않았고 관련해서 본 것도 없다. 이는 완벽히 합법적인 일’이라며 ‘또래들이 그러듯이 친구들과 여가 시간을 즐긴 것 뿐이고 총리라고 해서 다른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하며, 이것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그녀의 총리로서의 도덕성과 자질에 엄청나게 금이 가고 신뢰가 떨어진 것만은 사실이다.
모든 지도자는 공인(公人)이지만 사인(私人)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적인 생활과 사적인 즐김도 필요하다. 물론 그들도 인간인지라 사생활을 즐길 권리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와 연결되면 평가가 달라진다. 국민이 문제 삼는 것은 바로 그런 점들이다. 재난이 닥쳐 국민은 고통 속에 허덕이는데 그 현장에 나타나지도 않거나 안일하게 대처하거나 심지어는 나 몰라라 한다면 이는 분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신속하지 않고 자기의 할 일을 다하고 난 후 나타나 어물쩡하게 대처한다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지도자로서의 직무유기이며 탄핵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지도자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 모든 일의 우선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물가는 오르고 민생경제는 수렁에 빠지고 있다. 추석이 다가온다. 많은 정치인이 민생을 살핀다면 현장을 찾기도 할 것이다. 그런 경우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라 진심이길 바라며 몸으로 대처하였으면 좋겠다. 특히 이 어려운 기간에도 기득권 확보를 위한 정쟁에 몰입한다면 국민은 그들을 외면할 것이다. 이 시점에 정치인과 단체장 등 지도자들이 그 옛날 우임금이 취했던 과문불입(過門不入)의 고사를 가슴에 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 過(지날 과, 재앙 화)는 ❶형성문자로 过(과)는 간자이다.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咼(와, 과; 입이 삐뚤어짐)의 뜻이 합(合)하여 바른 길을 지나쳤다는 데서 지나다를 뜻한다. ❷형성문자로 過자는 ‘지나다’나 ‘경과하다’, ‘지나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過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咼(가를 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咼자는 ‘뼈’를 뜻하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過자는 어떠한 상황이나 상태가 지나갔음을 뜻하기 때문에 길을 걷는 모습을 그린 辶자가 ‘지나가다’라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다만 지금의 過자는 ‘초과하다’나 ‘넘치다’와 같이 한계를 넘어선다는 뜻이 확대되어 있다. 그래서 過(과)는 지나치는 일, 통과하다, 도를 넘치다, 과오(過誤) 따위의 뜻으로 ①지나다 ②지나는 길에 들르다 ③경과하다 ④왕래하다, 교제하다 ⑤초과하다 ⑥지나치다 ⑦분수에 넘치다 ⑧넘다 ⑨나무라다 ⑩보다, 돌이켜 보다 ⑪옮기다 ⑫허물 ⑬잘못 ⑭괘(卦)의 이름 ⑮예전 그리고 ⓐ재앙(災殃)(화)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지날 력/역(歷), 지날 경(經), 그릇될 와(訛), 그르칠 오(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공 공(功)이다. 용례로는 일이 되어 가는 경로를 과정(過程), 지나간 때를 과거(過去), 예정한 수량이나 필요한 수량보다 많음을 과잉(過剩), 지나치게 격렬함을 과격(過激),정도에 넘침을 과도(過度),지나치게 뜨거워지는 것을 과열(過熱), 잘못이나 그릇된 짓을 과오(過誤), 지나간 일을 과거사(過去事), 조심을 하지 않거나 부주의로 저지른 잘못이나 실수를 과실(過失), 잘못에 대하여 용서를 빎을 사과(謝過), 통하여 지나가거나 옴을 통과(通過),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사물의 한도를 넘어섬을 초과(超過), 공로와 과오를 공과(功過), 대강 보아 넘기다 빠뜨림을 간과(看過), 때의 지나감이나 시간이 지나감을 경과(經過), 모르는 체 넘겨 버림을 묵과(默過), 모든 사물이 정도를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 구부러진 것을 바로 잡으려다가 너무 곧게 한다는 교왕과직(矯枉過直), 지난날의 잘못을 고치어 착하게 됨을 개과천선(改過遷善), 인과 불인은 곧 알 수 있다는 관과지인(觀過知仁), 공로와 허물이 반반이라는 공과상반(功過相半) 등에 쓰인다.
▶️ 門(문 문)은 ❶상형문자로 门(문)은 간자(簡字), 閅(문)은 동자(同字)이다. 두 개의 문짝이 있는 문의 모양으로 문짝을 맞추어 닫는 출입구를 말한다. ❷상형문자로 門자는 ‘문’이나 ‘집안’, ‘전문’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門자를 보면 양쪽으로 여닫는 큰 대문이 그려져 있었다. 戶(지게 호)자가 방으로 들어가는 외닫이 문을 그린 것이라면 門자는 집으로 들어가기 위한 큰 대문을 그린 것이다. 門자는 대문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문’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이외에도 ‘집안’이나 ‘문벌’과 같이 혈연적으로 나뉜 집안을 일컫기도 한다. 다만 門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주로 문과 관련된 행위나 동작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門(문)은 (1)담이나 판장 따위로 둘린 안팎을 연결하기 위하여 드나들거나 통할 수 있도록 틔워 놓은 곳. 또는 그곳에 달아 놓고 여닫게 만든 구조물. 판자문, 골판문, 띠살문, 완자문, 정자살문, 빗살문 따위가 있음 (2)생물의 분류학(分類學) 상 단위의 한 가지. 강(綱)의 위 계(界)의 아래임. 동식물을 합하여 10여 개의 문으로 나뉨 (3)칠사(七祀)의 하나로 출입(出入)을 맡아 본다는 신 (4)성씨(姓氏)를 함께 하며 혈연적으로 나뉜 그 집안을 가리키는 말 (5)성(姓)의 하나 (6)포나 기관총 따위를 세는 단위 등의 뜻으로 ①문(門) ②집안 ③문벌(門閥) ④동문(同門) ⑤전문 ⑥방법(方法) ⑦방도(方道) ⑧가지 ⑨과목(科目) ⑩부문(部門) ⑪종류(種類) ⑫분류(分類) ⑬비결(祕訣) ⑭요령(要領: 가장 긴요하고 으뜸이 되는 골자나 줄거리)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을 문도(門徒), 집으로 드나드는 문을 문호(門戶), 성과 본이 같은 가까운 집안을 문중(門中), 대대로 이어 내려오는 집안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를 문벌(門閥), 문의 안이나 성과 본이 같은 가까운 집안을 문내(門內), 문 앞이나 대문 앞을 문전(門前), 문하에서 배우는 제자를 문인(門人), 문객이 드나드는 권세가 있는 집이나 가르침을 받는 스승의 아래를 문하(門下), 문을 여닫을 때 나는 소리를 문성(門聲), 대문 또는 중문이 있는 곳을 문간(門間), 세력이 있는 대가의 식객 또는 덕을 보려고 날마다 정성껏 문안을 드리며 드나드는 손님을 문객(門客), 문지기를 문사(門士), 한 집안의 가족들의 일반적 품성을 문품(門品), 문벌이 좋은 집안이나 이름 있는 학교 또는 훌륭한 학교를 명문(名門), 갈라 놓은 분류를 부문(部門), 한 가지의 학문이나 사업에만 전적으로 전심함을 전문(專門), 공기나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벽에 만들어 놓은 작은 문을 창문(窓門), 집안과 문중 대대로 내려오는 그 집안의 신분을 가문(家門), 큰 문이나 집의 정문을 대문(大門), 정면의 문이나 본문을 정문(正門), 성의 출입구에 있는 문을 성문(城門), 어떤 일에 바로 관계가 없는 사람을 문외한(門外漢), 대문 앞이 저자를 이룬다는 뜻으로 세도가나 부잣집 문 앞이 방문객으로 저자를 이루다시피 함을 문전성시(門前成市),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빌어 먹음을 문전걸식(門前乞食), 집에 사람이 많이 찾아 온다는 말을 문정여시(門庭如市), 문 밖에 새 그물을 쳐놓을 만큼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짐을 뜻하는 말을 문전작라(門前雀羅),집 앞 가까이에 있는 좋은 논이라는 뜻으로 곧 많은 재산을 일컫는 말을 문전옥답(門前沃畓)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부적절(不適切), 부당한 일을 부당지사(不當之事),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부정부패(不正腐敗),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다는 부달시변(不達時變) 등에 쓰인다.
▶️ 入(들 입)은 ❶지사문자로 入(입)은 토담집 따위에 들어가는 것으로, 나중에 대궐 같은 건물에 들어가는 것을 內(내)라 일컫지만 본디 入(입), 內(내), 納(납)은 음도 뜻도 관계가 깊은 말이었다. ❷지사문자로 入자는 '들다'나 '빠지다', '간여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그동안은 入자를 사람이 입구로 들어가는 모습으로 해석했었다. 사람을 뜻하는 人(사람 인)자를 반대로 그린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入자의 갑골문을 보면 본래는 뾰족한 삼각형을 그렸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무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入자가 '들어가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을 보면 나무를 끼워 맞추기 위해 끝을 뾰족하게 다듬은 형태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入(입)은 ①들다, 들이다 ②간여하다 ③빠지다, 지나치게 정신이 쏠려 헤어나지 못하다 ④시집보내다, 받아들이다 ⑤떨어지다, 떨어뜨리다 ⑥투신하다 ⑦섬기다, 벼슬하다 ⑧공략하다 ⑨죽다 ⑩담그다 ⑪수입(收入) ⑫입성(入聲: 사성(四聲)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들일 납(納),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날 출(出), 떨어질 락/낙(落)이다. 용례로는 서울로 들어가거나 들어오거나 함을 입경(入京), 새로 들어가 삶을 입주(入住), 들어가는 어귀를 입구(入口), 타국에 들어감을 입국(入國), 어떤 단체에 가입함을 입단(入團), 장내로 들어감을 입장(入場), 학교에 들어감을 입학(入學), 물건을 창고에 넣음을 입고(入庫), 산에 들어감을 입산(入山), 훈련소나 연구소 등에 들어감을 입소(入所), 외국으로부터 물품을 사 들임을 수입(輸入), 끌어들임이나 인도하여 들임을 도입(導入), 물건을 사들임을 구입(購入), 어떠한 사건에 관계하게 됨을 개입(介入), 돈이나 물품 따위를 거두어 들이는 것을 수입(收入), 조직이나 단체 등에 구성원으로 되기 위하여 듦을 가입(加入), 어떤 곳이나 상태에 기세 있게 뛰어드는 것을 돌입(突入), 정한 인원 외의 사람을 더 넣음을 투입(投入), 물건 따위를 사들임을 매입(買入), 산에 들어가 놓고 범 잡기를 꺼린다는 뜻으로 막상 일을 당하면 처음과 달리 뒤로 꽁무니를 뺌을 이르는 말을 입산기호(入山忌虎), 귀로 들어온 것을 마음속에 붙인다라는 뜻으로 들은 것을 마음속에 간직하여 잊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입이저심(入耳著心), 어떤 고장에 가면 그곳의 풍속을 따르고 지킴을 일컫는 말을 입향순속(入鄕循俗), 들은 바를 곧장 남에게 말함 또는 남의 말을 제 주견인 양 그대로 옮김을 일컫는 말을 입이출구(入耳出口), 들은 것을 마음속에 간직해 잊지 아니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입이착심(入耳着心), 국경에 들어서면 그 나라에서 금하는 것을 물어 보라는 말을 입경문금(入境問禁), 귀로 듣기에 싫지 않다는 뜻으로 아첨함을 이르는 말을 입이불번(入耳不煩), 불 속에 들어가 밤을 줍는다는 뜻으로 사소한 이익을 얻으려고 큰 모험을 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말을 입화습률(入火拾栗), 집에 들어서는 어머니를 받들어 종사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입봉모의(入奉母儀), 타향에 가면 그 고을 풍속을 물어서 그에 따르는 일을 일컫는 말을 입경문속(入境問俗), 특별히 가까운 손님이나 기밀을 상의할 수 있는 상대를 일컫는 말을 입막지빈(入幕之賓), 남의 방안에 들어가 창을 휘두른다는 뜻으로 그 사람의 학설을 가지고 그 사람을 공격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입실조과(入室操戈), 가면 갈수록 경치가 더해진다는 뜻으로 일이 점점 더 재미있는 지경으로 돌아가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점입가경(漸入佳境), 도끼를 들고 못에 들어간다는 뜻으로 물건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전연 쓸데없고 상관없는 것을 가지고 옴을 이르는 말을 게부입연(揭斧入淵), 남의 대청을 빌려 쓰다가 안방까지 들어간다는 뜻으로 남에게 의지하다가 차차 그의 권리까지 침범함을 이르는 말을 차청입실(借廳入室), 먼저 들은 이야기에 따른 고정관념으로 새로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이르는 말을 선입지어(先入之語), 쫓기던 새가 사람의 품안으로 날아든다는 뜻으로 사람이 궁하면 적에게도 의지한다는 말을 궁조입회(窮鳥入懷)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