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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62:1-12절) 헵시바와 쁄라의 땅 여기저기 캐다가만 석탄들이 버려져 있고, 석탄을 나르던 차나 더러운 쓰레기들만 가득한 곳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데 그곳을 다시 아름답게 꾸미니까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고, 특히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된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쁄라의 땅”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쁄라”라는 말은‘결혼한 자’라는 뜻입니다. 특히 결혼 중에서 재혼이 아니고, 신혼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막 결혼한 신혼부부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아무래도‘제주도’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주도는 “쁄라의 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한창 결혼 시즌에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보면, 비행기 전체를 신혼부부들이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제주도의 경치 좋은 곳마다 아름답고 신선한 신혼부부들이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느라고 분주할 것입니다. 이제 막 결혼하는 신랑과 신부에게 신혼여행이라고 하면‘생애에 단 한 번 있는 기회’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신혼부부들은 신혼 때에 할 수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최고로 좋은 것을 하려고 합니다. 즉 신혼여행도 가장 좋은 곳에 가서 가장 좋은 호텔에서 자고, 가장 좋은 음식을 먹으려고 합니다.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게 멸망당한 후, 완전히 버려진 땅이 되었습니다. 마치 버려진 폐광(廢鑛)처럼 아무도 사는 사람도 없고, 찾는 사람도 없이 거대한 쓰레기 더미로 있다가 이제는 잡목(雜木)만 무성한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버려진 땅, 예루살렘을 다시 아름답게 꾸미고, 개발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만드실 것인데, 그때는 이 땅이“쁄라의 땅”이라고 불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될 텐데, 특히 신혼부부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이 될 것이며, 예약(豫約)을 하지 않으면, 방을 구할 수도 없는 유명한 곳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쁄라의 땅”의 이상(異常)은 신약교회를 통하여 성취됩니다.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린 신랑과 신부는 얼마나 젊고, 싱싱하고, 아름답습니까? 갓 탄생한 젊은 부부를 보면, 새벽이슬처럼 영롱(玲瓏)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교회에서 처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은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신약교회의“쁄라의 땅”은 신혼부부가 가는 땅이 아닙니다. 알코올 중독자나, 정신병 환자나, 부랑자들처럼 버려지고, 쓸모없는 인간들이 가서 신혼부부처럼 싱싱하게 변하여 새사람이 되어 나오는 곳입니다. 그 의로운 자들은 가진 것을 모두 다 빼앗기고, 그들의 거처는 버려진 땅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오직 힘으로 다른 나라들을 정복하고, 보물들을 차지한 바벨론은 모든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곧 어둠이요, 캄캄한 밤입니다. 세상에서 의로운 사람이 칭찬을 받고, 복 받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불만을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의한 자가 이 세상에서 떵떵거리면서 사는데, 의로운 자들은 억압당하고, 헐벗은 상태에서 고통을 당하며 산다면, 이것은 진리(眞理)가 감추어진 어두운 밤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 고생하고 있고, 바벨론은 부귀영화를 누리는 동안은 진리에 있어서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公義)를 회복하심으로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겠다고 말씀하십니다. 62:1절)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만약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환한 횃불이 하나 타오른다면, 멀리서도 그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시온의 의가 빛 같이”비취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랫동안 불의(不義)의 세력들이 온 세상을 지배하는 바람에 그 동안 캄캄한 밤만 지속되었는데, 유다를 회복시키심으로 방치해 두셨던 공의를 회복시키시겠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온 세계를 손아귀에 넣고, 온갖 장난을 치던 바벨론은 멸망케 함으로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고, 바벨론에 포로 되어 고생하던 유다는 해방시켜서 잃어버렸던 고토(故土), 즉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강한 횃불인지 온 세상에 다 비췰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벨론의 급작스런 멸망과 유다의 귀환으로 큰 충격을 받게 되며, 마음속으로“하나님이 아니시면 이런 일을 하실 이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1절)...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한 번만 명령을 내리셔도 모든 것이 하나님 뜻대로 움직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돌아오는 일을 위하여“잠잠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즉‘계속 말씀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들을 엄마가 뒤에서 계속 따라가면서 잔소리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벗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려면, 여러 가지 어려운 난관들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우선 바벨론이 망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 고레스가 말을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레스가 마음이 감동되어서 유다 백성들을 아무런 속전(贖錢)을 받지 않고, 풀어주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유다 백성들의 마음속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겠다는 믿음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계속 따라다니면서 모두를 설득해서 드디어 이 위대한 일이 이루어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를들어서 올림픽이라든지, 월드컵과 같은 국가적인 큰 행사를 치르려면, 절대로 한번 설명으로는 안 됩니다. 그런 큰일에는 수많은 인원이 동원되고, 수많은 일들이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책임을 맡은 자가 아예 그 일에 전적으로 헌신해야 일이 진행되는 추이(推移)를 봐가면서 계속 명령하고, 설득해야 큰일을 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일이 쉬운 일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올림픽 경기나 월드컵 경기를 치르는 것과 비교되지 않는 아주 큰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이 다 이루어지기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명령하고, 또 설득하셔서 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2-3절)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유다 백성들이 얼마나 정정당당하게 구원을 받을 것인지, 온 세상이 다 본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직 죄도 없는데, 다른 사람의 죄를 뒤집어쓰고 재판을 받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법정에서 풀려나기는 풀려났는데, 집행유예(執行猶豫)로 풀려났다면, 공의롭게 풀려난 것이 아닙니다. 집행유예(執行猶豫)라고 하는 것은 죄는 있는데, 초범이나 정상참작이 가능한 경우에 일단 풀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석방은 떳떳하지 못한 석방입니다. 그 사람이 당당하게 무죄 선고를 받고, 풀려났을 때, 그에 대한 모든 의혹이 풀리고, 잃어버렸던 지위를 다시 회복하게 됩니다. 그럴 때 모든 사람들은 그 사람이 참으로 의로운 자였으며, 억울하게 고통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무죄(無罪)로 풀려나는 것은 바벨론이 망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이 망해버렸는데, 누가 더 이상 유다 백성들을 억압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새로운 권력자로 등장한 고레스는 바벨론을 악의 세력으로 규정했습니다. 유다는 더욱 당당하게 자신의 옛 지위를 회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은 온 세상의 포로 된 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즉‘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저렇게 유다 백성들처럼 당당하게 걸어서 자유의 몸이 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을 3절)너는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아주 아름다운 관이나 왕관이 들려져 있다면, 무엇 때문에 그렇겠습니까? 누군가의 머리에 씌워 주기 위하여 들고 계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동안 어려운 환란 가운데서 믿음을 잘 지킨 하나님 백성들은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고 계신 축복입니다. 이것은 곧 신약시대 우리들이 받을 복을 예고합니다. 옛날에는 죄와 빚을 같은 의미로 사용할 때가 많았습니다. 만일 우리가 비싼 음식점에서 음식을 많이 먹었다면, 그 음식 값을 다 내기 전에는 그곳을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돈이 많은 사람이 그날 우리가 먹은 음식 값을 대신 다 지불했다면, 우리는 당당하게 그 음식점을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큰절까지 받으면서 걸어서 나올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지은 죄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갚아야 할 빚이었습니다. 내 마음과 내 정욕대로 사는 동안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갚아야 할 빚은 산더미처럼 많아졌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지고 있는 이 엄청난 죗값을 모두 갚기 전에는 도저히 저주(咀呪)와 심판(審判)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죄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굉장한 부자(富者)가 우리의 빚을 다 값아 버렸습니다. 그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모든 죄의 빚을 갚으셨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이름으로 갚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믿음이 귀중합니다. 믿음은 영원한 지옥(地獄)의 감옥(監獄)에서 나오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의(義)롭게 합니다. 이런 우리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손에 아주 아름다운 면류관을 들고 계십니다. 우리의 머리에 씌워 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가 되지 않았더라면, 믿음을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잘난 줄 알고 살아갑니다. 모두 다 바벨론처럼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자기가 하나님 앞에 죄인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마음에 임하심으로 우리 마음은 완전히 새롭게 될 뿐만 아니라, 최고로 존귀하고, 아름다운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Ⅱ.예루살렘에 임할 축복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는 것을 통하여 예루살렘을 다시 최고로 아름다운 곳으로 변화시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4절)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바가 될 것임이라” 여기서“버림받은 자”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한 후, 철저하게 버려진 땅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 때문에 예루살렘이 버려진 땅이 되고, 황무지가 되었습니까? 그 땅에 주인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폐가(廢家)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시골에 가면, 사람들이 도회지(都會地)로 떠나는 바람에 폐가(廢家)가 된 집들이 많습니다. 즉 누가 살지도 않고, 수리도 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버려진 곳이 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신선하고, 생기가 넘쳤던 것은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고, 하나님 백성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없는 곳은 버려진 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곳은 결국 범죄의 소굴(巢窟)이 되어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사람들이 다 붙들려가고 나면, 버려진 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새 이름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 하나는“헵시바”이며, 다른 하나는“쁄라의 땅”입니다. 여기서“헵시바”는 히스기야 왕의 아내 이름이기도 했는데,‘내 기쁨이 너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히스기야 왕은 헵시바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모든 기쁨은 헵시바 왕비에게 있었습니다. 왕비자체만 해도 참으로 아름답고 존귀한데, 왕이 이토록 사랑한다면, 그 왕비는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또“쁄라”라는 말은‘결혼을 했다’는 뜻입니다. 결혼한 사람은 독신과는 다릅니다. 우리나라도 경제적 어려움이 오고 난 후에 혼자 사는 분들이 많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냥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집을 나와서 노숙하는 분들이 많이 생긴 것입니다.“뿔라”는 노숙자와 같은 독신과 비교되는 개념입니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면, 많은 자식을 낳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풍성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므로“쁄라의 땅”은 다산(多産)과 풍요와 번성의 땅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쁄라”를‘신혼’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5절)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우리 주변을 보면, 참 재미있게 사는 부부들이 있습니다. 좀 오래 산 부부들 가운데에는 거의 대화가 없는 부부들도 있습니다. 즉 각자 신문을 보든지, 텔레비전을 보든지 하기 때문에 같이 있어도 아무런 재미가 없습니다. 여기서“쁄라”는 이런 오래된 부부의 사랑이 아닙니다. 본문은 청년이 처녀와 결혼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막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부부는 그렇게 싱싱할 수 없습니다. 젊은 신랑과 신부가 하는 일은 모두 다 신선하고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마치 신선한 아침 이슬과 같습니다. 예루살렘이“쁄라의 땅”이 된다고 하는 것은, 이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고 성령의 능력이 임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새 신랑과 새 신부처럼 젊고 아름답게 변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여기에 있기만 하면, 신랑이 될 수 있고, 신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들을 모두 완전한 새 사람으로 변화시키시기 때문입니다. “쁄라의 땅”은 신약 교회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교회에는 신랑과 신부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노인들도 있고, 장년들도 있고, 청소년들이나 청년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완전히 신혼의 기분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신혼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신혼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첫사랑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 교회에 올 때는 어떤 모습으로 옵니까? 완전히 파김치가 되어서 옵니다. 험한 세상에서 방황하고, 죄짓고, 상처받은 만신창이의 모습으로 들어옵니다. 즉 사랑을 잃어버렸고,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으며, 부모로부터 버림당한 인생, 즉 패잔병의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사업도 실패했으며, 결혼에도 실패했고, 이 세상에서 아무도 나를 용납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교회를 찾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듣는 가운데,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불러주십니다.‘나의 헵시바야!’그러고는 엄청난 사랑으로 우리에게 쏟아 부어 주시는데, 이것이 곧 성령의 부으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나의 기쁨이 오직 너에게 있다’우리는 이 세상의 헛된 영광을 찾아서 방황하고, 죄짓다가 이제 도저히 다른 살길이 없어서 하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하나님은 나를 끈질기게 기다리고 계셨으며, 이제 하나님의 모든 기쁨은 내가 잘되고, 내가 은혜를 받고, 내가 올바른 신앙을 가지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 내가 있는 그곳은“쁄라의 땅”으로 변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앞으로 사람을 통하여 신앙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이 사람의‘빼나이크’이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며, 그의 도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은 하나님 말씀이 있으며,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곳입니다. 여기에 신선함과 새로운 정신이 늘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Ⅲ.파수꾼의 사명 6-7절)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를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새로 세워질 예루살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시는데, 이 파수꾼은 주야로 쉬지 않고 떠들어댑니다. 원래 파수꾼들이 하는 일은 도둑들이 몰래 들어와서 건축 자재 같은 것을 훔쳐서 달아나지 못하게 막는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 적(敵)들이 쳐들어오면, 백성들을 깨워서 적(敵)을 물리치게 하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벽에 있는 파수꾼들은 도둑이 오거나, 적(敵)이 쳐들어올 때만 소리를 치는 것이 아니라, 주야로 잠잠하지 않고, 소리를 내게 되어 있습니다. 파수꾼이 맡은 사명이 무엇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항상 기억하시게 하라는 것입니다. 즉‘하나님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상태에 있습니다’라는 것을 계속 말씀을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잠시도 너희를 잊지 못하시게 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구원하시고, 다시 회복시키시는 일을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하시도록 기도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도대체 이 성벽위에 있는 파수꾼이 누구냐? 는 것입니다. 원래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선지자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언제나 하나님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서 깨어 있게 했습니다. 백성들이 말씀을 소홀히 하면, 어김없이 적(敵)들이 쳐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선지자들은 적(敵)이 쳐들어오는 것도 주시해야 하겠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지켜보는 것이 더욱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예루살렘 성벽의 파수꾼은 선지자라기보다는 일반 백성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말씀을 먼저 깨닫는 자가 파수꾼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먼저 읽고, 먼저 깨달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그 약속을 붙들고 쉬지 않고 소리 내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것은 기도하지 않아도 잘 채워 주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더욱이 간절하게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지 못하시도록 항상 기도하며, 그분이 하시는 일이 힘들어서 중단하시는 일이 없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의 관심을 끌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설득하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시고, 쉬지 않고, 구원의 일을 이루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축복을 주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세상을 향하여 나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울타리를 치워 버리셨습니다. 그들을 더이상 지켜주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간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다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바보들과 같습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으로 자족하면 되는데, 더 가지려고 하는 바람에 울타리가 무너져 있는 것마저 빼앗긴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구하면, 다른 모든 것들을 더하여 주십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세상 욕심에 빠져서 하나님 말씀을 팽개치고, 세상을 더 가지려고 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이 한 해 동안 열심히 가꾼 곡식을 원수들이 다 가져가게 하시고, 그들이 짠 포도주를 이방인들이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튼튼한 팔로 지켜주겠다고 약속(約束)하십니다. 즉 이제는 그들이 다시 헛된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지켜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자기가 뿌린 것을 자기가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가 수확한 포도주를 하나님의 성소의 뜰에서 마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그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적응을 잘 못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내쫓길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는 자들의 모든 생활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은 아직도 포로 된 곳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자들에게 담대하게 하나님을 향하여 출발하라고 명령을 내리십니다. 10-11절)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의 올 길을 닦으라 큰 길을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라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여기서‘성문으로 나아가라’는 것은 그들의 진로(進路)를 방해하고 있는 거대한 장애물을 돌파하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위대한 하나님의 진격 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에 더 이상 그들을 붙잡아 둘 수 있는 세력이 아무도 없습니다. 유다 백성들의 일부가 바벨론에서 돌아온 것은 앞으로 전 세계의 하나님 백성들이 대규모로 죄에서 탈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올 역사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백성들의 길을 예비한데, 대로를 수축하고, 돌을 치우고, 기치를 높이 들어서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시온으로 올 수 있게 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시온으로 온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찾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교만하여 불순종하는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아첨(阿諂)을 하거나, 이상한 짓을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복음(福音)을 전하기만 하면, 놀랍게도 그 재미없는 복음을 듣고, 전심으로 감격해 하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이방인들을 다르게 부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찬송가 495장 *익은 곡식 거둘 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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