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시편은 다윗의 저주시로 분류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더 이상 침묵하지 마시고 악이 대적자들을 판결하도록 허가해달라고 간곡히 기도합니다.
1-5절 포악한 맹수가 삼키려고 달려드는 것같이 대적들이 입을 벌려 혐오의 말을 퍼부으며 시인에게 싸움을 걸어옵니다. 시인의 선대를 악함으로, 사랑을 미움으로 갚습니다. 까닭 없이 비방을 일삼는 경박한 자들과 비교할 때, 주님의 침묵은 무겁고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사면 초가의 두려움 속에서도 시인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결단합니다. 하나님의 함구가 진실을 은폐하려는 비겁한 침묵, 거짓 평화를 제안하는 위장된 침묵과 다르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절망을 만난 자들에게 침묵의 밤이 아침을 기다리는 희망인 것처럼, 주님의 침묵은 울림이 깊은 큰 사랑입니다.
6,7절 시인은 대적들이 재판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무고한 사람을 정죄하고 죄인을 만들었으니, 이제 그들이 죄인이 될 차례입니다. 시인은 그들이 결백하다고 맹세하는 탄원의 기도도 거짓임이 밝혀져 죄가 되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우리 사회도 법치가 정의로운 모습으로 회복되어 하나님의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도록 기도합시다(암 5:24).
8-15절 시인은 하나님께 저주의 기도를 드립니다. 대적들의 생명 단축과 사회적 지위 상실, 그 가족의 불행, 부당한 소유의 탈취, 후손의 단절을 구하며, 결국 그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허무하고 무의미한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저주이지만, 이 역시 기도입니다. 이러한 저주는 죄의 심각성과 그 결과의 파멸성을 일깨워주고 시인과 하나님의 관계가 피상적이고 의례적이지 않으며,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친밀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시인은 여기서 개인적 복수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공의를 청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고(4,5절) 대적의 공격에도 묵묵히 기도하던 온유한 사람이지만 (5절), 사회구조 자체가 불의하여 억울한 사람이 양산되는 상황이 되자 하나님께 공적 정의를 구현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매일성경, 2024.11/12, p.154-155, 침묵하지 마소서!, 시편 109-:1-15에서 인용).
① 본 시편은 다윗의 저주시로 분류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더 이상 침묵하지 마시고 악이 대적자들을 판결하도록 허가해달라고 간곡히 기도합니다. 포악한 맹수가 삼키려고 달려드는 것같이 대적들이 입을 벌려 혐오의 말을 퍼부으며 시인에게 싸움을 걸어옵니다. 시인의 선대를 악함으로, 사랑을 미움으로 갚습니다. 까닭 없이 비방을 일삼는 경박한 자들과 비교할 때, 주님의 침묵은 무겁고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사면 초가의 두려움 속에서도 시인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결단합니다. 하나님의 함구가 진실을 은폐하려는 비겁한 침묵, 거짓 평화를 제안하는 위장된 침묵과 다르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절망을 만난 자들에게 침묵의 밤이 아침을 기다리는 희망인 것처럼, 주님의 침묵은 울림이 깊은 큰 사랑입니다.
② 시인은 대적들이 재판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무고한 사람을 정죄하고 죄인을 만들었으니, 이제 그들이 죄인이 될 차례입니다. 시인은 그들이 결백하다고 맹세하는 탄원의 기도도 거짓임이 밝혀져 죄가 되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우리 사회도 법치가 정의로운 모습으로 회복되어 하나님의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도록 기도합시다(암 5:24).
③ 시인은 하나님께 저주의 기도를 드립니다. 대적들의 생명 단축과 사회적 지위 상실, 그 가족의 불행, 부당한 소유의 탈취, 후손의 단절을 구하며, 결국 그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허무하고 무의미한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저주이지만, 이 역시 기도입니다. 이러한 저주는 죄의 심각성과 그 결과의 파멸성을 일깨워주고 시인과 하나님의 관계가 피상적이고 의례적이지 않으며,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친밀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시인은 여기서 개인적 복수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공의를 청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고(4,5절) 대적의 공격에도 묵묵히 기도하던 온유한 사람이지만 (5절), 사회구조 자체가 불의하여 억울한 사람이 양산되는 상황이 되자 하나님께 공적 정의를 구현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