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나중이 잘되는 삶
10/28토(土)갈 6:6-10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Nearing Home(홈을 앞두고)’이라는 저서가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죽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집, 천국을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지금 현재도 중요하지만 미래가 잘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승리의 삶이 아닙니다. 세상은 변하고 육신은 늙어가도 인간은 영적으로 영원히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그런데 인간의 미래는 지금 무엇을 심느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과거의 삶의 결과이고 미래는 오늘을 심은 결과입니다. 그래서 힘들어도 오늘을 열심히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나중이 잘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어야 합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 아브람과 롯이 헤어질 때 롯은 육신적인 삶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눈에 보기에 좋은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합니다. 그러나 그곳이 죄악의 온상이 되어 유황불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재산을 잃고 사위들도 다 죽었고 결국은 자기 부인도 소금 기둥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살았던 아브라함은 비록 사막의 계곡으로 갔지만 그곳에서 축복을 받았고 믿음의 조상, 복의 씨가 되었습니다. 일을 많이 하고 출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오늘 심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생을 얻어 나중이 잘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선한 일,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여러 가지 시험에 들고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나중에 선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요셉은 누명을 쓰고지하 감옥에 들어갔지만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선한 일을 할 때 결국 애굽의 국무총리가 됩니다. 욥은 의인이지만 사단의 사주로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끝까지 인내하여 믿음으로 시련을 이기고 선을 행함으로 배가의 복을 받게 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끝까지 선을 행하면 배가의 복을 받게 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끝까지 선을 행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처음에는 미약하나 나중이 창대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믿음의 가정에 더욱 선을 행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10) 어려운 이웃이나 소외된 사람, 북한 동포를 위해 선한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중이 잘되고 복을 받으려면 선의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는 것이 나중이 잘되고 천국에서도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연세대학 총장을 지낸 백낙준 박사의 아버지는 머슴이며 무당의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교사를 통해 은혜를 받았습니다. 재산을 다 팔아 교회를 짓고 자신이 교회를 지키는 사찰의 일을 하였습니다. 그의 집안에서 박사와 목사가 수 십 명이 나왔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선을 행하면 노년이 아름답고 나중이 잘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And...
갑자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사고로 머리를 부딪친 뒤로 그는 아무것도 기억을 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집, 친한 사람들, 이름과 나이같은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지갑이나 신분증, 자신의 단서를 찾을만한 그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의사는 그 남자를 진찰한 뒤 말했습니다. “뇌에 손상이 가서 생긴 기억상실증 같습니다. 수술을 한다면 기억을 다시 찾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칫하면 시력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당신의 과거에 대해서 아는바가 전혀 없습니다. 결정은 당신의 몫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남자는 잠시 고민한 뒤 대답했습니다. “수술을 받지 않겠습니다. 미래를 바라볼 시력을 잃느니 이미 살아온 과거를 버리겠습니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곧 미래를 볼 시야를 잃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지나온 경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에 의해 미래를 위한 행동이 제약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모든 실패는 성공을 위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이미 지나버린 것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준비하는 현재를 살아내야 합니다.
기독교는 나중이 잘되는 종교입니다. 이런 신앙관을 갖지 않으면 도중에 시험 들고 실패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죽음이 가장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기 때문에 죽어도 소망이 있습니다. 이 땅의 삶을 마치면 우리에겐 부활의 천국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나중이 잘 되며 소망의 종교라고 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승리는 문제에 대한 긍정적 해석입니다. 아들의 병이 낫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이 병만 낫는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만큼 간절히 병 낫기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 구하여도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은 내 생각을 바꾸어주셨습니다. ‘이것만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에서 ‘이것 때문에 참 감사하다’란 생각으로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내 눈 앞에 놓인 이 문제가 무엇 때문에 온 것인지 잘 모른다 할지라도 적어도 그 문제 때문에 날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문제가 적어도 왜 왔는지는 모를지라도 그 문제 때문에 하나님나라를 위한 기도를 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그 문제는 내 문제가 아니라 진실로 하나님의 문제가 된 것입니다. 이제껏 나를 짓누르던 문제가 한 방에 해결된 것입니다. 그것은 환경이 바뀐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믿음, 큰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믿음으로 그 문제를 바라보니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 축복의 씨앗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문제에 대한 긍정의 해석으로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