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을 허하노라 / 이미옥
'늘어지는 혀를 잘라 넥타이를 만들었다.' 박성우 시인의 '넥타이'라는 시의 첫 행이다. 하, 어쩜 이런 표현을 생각해 낼까? 강사의 설명은 희미해지고 이 문장만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돈다. 4월부터 도서관 시 수업을 듣고 있다. 세 번째 수강이다. 1년에 한 번 개설하는 12주 수업이다. 글쓰기에 도움이 될까 싶어 등록한 첫해는 암담했다. 읽어 내기도 힘든 시를 쓰기까지 해야 했다. 다들 몇 편씩 써서 만든 문집에 난 단 한 편의 시를 실었다. 30년이 지나서 마주한 시는 참 어려웠다. 그 긴 시간 동안 내 책장에는 시집 서너 권만이 꽂혔으니 시를 읽었다 할 수 없었다.
강사가 인쇄해 온 여러 편의 시를 읽고 감상을 얘기하는 이들 사이에서 나는 한글을 해득하느라 혼자 애를 먹었다. 온통 뒤집힌 세상 같았다. 시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찾고자 발버둥쳤다. 그러다 수업이 끝났다. 강사의 제안으로 소규모 그룹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김수영부터 황인찬까지 읽으며 시를 다시 만났다. 두 번째 수강에서 내가 왜 그토록 시를 쓰는 것을 힘들어했는지 알았다. 나는 사실에 바탕을 둔 에세이를 써 왔기 때문에 거짓으로 뭔가를 쓴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시인과 화자를 동일하게 여기지 말고 구별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라는 형식이 하나의 허구임을 전제로 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문학 교과서는 '소설은 허구'라는 명제를 강조하면서도 '시는 허구'라는 말을 기술하는 데 인색하다. 모든 시가 허구가 아니라면 시가 예술로서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가 없다. (안도현,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한겨레출판, 2023, 113쪽.)
안도현 시인은 이 책에서 시의 메시지를 구체화하고자 수박 농사를 짓는 자신의 아버지를 어부나 뱃사공으로 묘사했다고 한다. 그랬다. 나는 시적 허구를 쓰는 법을 몰랐다. 사실적인 상황만을 서술하다 보니 시는 밋밋해지고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없었다. 거짓을 내 시에 만들어 내야 했다. 인도에 사는 친구가 없는데 그녀에게 편지를 썼고 뻐꾸기가 아파트 뒷산에 알을 낳아서 여름이 온 것처럼 썼다. 거짓 세상, 시적 허구에 한 발 들여놓게 되었다.
허구가 시를 완성하는 건 아니다. 시인과 화자를 동일시하지 말라고 했지만 여전히 내 시에는 내가 있다. 수업을 몇 년째 같이 듣는 동갑내기 학생 둘과 점심을 먹으며 얘기한다. ㄱ은 "난 시는 연기 같아요. 내가 다른 무언가를 연기하는 느낌이랄까?"라고, ㅅ은 "난 시는 내 마음 가는 대로 쓰면 되는 것 같아요."라고 한다. 나는 "시는 그림 같아요. 존재하는 것을 지우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기도 하잖아요. 어느 순간을 포착하는 것도 닮았어요."라고 한다. 그리고 밥을 오물거리며 동시에 말한다. "시는 진짜 어려워요."
나는 여전히 시를 모른다. 그러나 시를 쓴다. 맘껏 거짓을 섞어 가며. 위대한 시인들이 허(許)하였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