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7.27 20:00분 올림픽 최조경기장은 밥딜런 내한 공연을 보기위한 행렬로 무더위를 무색하게 했다. 아내와 큰 아들이 함께 했다.
밥 딜런..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 되었을 때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그 중에 한 명이다. 그 많은 문학인을 제치고 어떻게 가수가 문학상을 받나? 그러나 밥딜런 자서전을 읽어본 후 생각이 바뀌었다.
문학적 감수성이 엄청날 뿐 아니라, 그는 훌륭한 시인이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창문이 없고 문에 페인트를
칠한 그 방은 어두운 동굴처럼 바닥에서 천장까지 책장이 들어선 서재였다. 그곳에서 나를 압도하는 문학이 존재했고, 입을 다물 수 없는 곳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내 마음을 검게 만든 문학의 스펙트럼에서 자라왔다. 말론브란도, 제임스 딘, 밀턴 벌리, 마릴린 먼로, 루시, 얼 위렌과
흐루시초프, 카스트로, 리틀 록과 페이턴 플레이스, 테네시 월리엄즈와 조 디마지오, 에드거 후버와 웨스팅하우스, 넬슨, 홀리데이 인과 엔진을
개조한 시보레, 미키 스필레인과 조 멕카시, 레비트타운 등이 어우러진 문화였다'
'나는 시집을 주로 읽었다. 바이런과 쉘리와 롱펠로우, 포우의 시를 읽었다..' 책은 그에게 실제로 가슴 설레는 꿈을 꿀 수 있는 도구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세상에 대해 느낀 것을 정의하기 위해 노래하고 있다'
여유 있게 올리픽 체조경기장으로 들어갔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좌석은 텅 비어 있었고 서서히 사람들이 들어서고 있다. 좌석 수는 2만여석이라고 한다. 공연시작 시간이 가까워 오자 자리가
차기 시작했다. 10여분 쯤 늦어진다는 양해 방송이 나온다.
'워치타워(Watchtower)'와 '트와이스(Twice)'로 공연의
포문을 열며 폭염을 뚫고 공연장을 찾은 이들을 자신만의 음악 세계로 초대했다. 관객을 향한 인사말은 없었다. 5인조 밴드와 어우러지며 77세의
노익장은 관중들을 향하여 힘찬 시동을 걸었다.
시작 인사도 없고, 대형 스크린 조차 없는 먼 무대에서 울려 퍼지는 밥딜런의 노래는 변함 없이 진행되었다. 언제쯤 인사라도 하겠지? 아니면
누군가 찬조출연이아도 할 거라는 생각은 빗나갔다. 변함 없는 그의 노래는 계속 되었다. 변화가 있다면 5인조 밴드 위치와 밥딜런의 위치가 조금
바뀌었다는 것뿐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나로서는 조금 지루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1941년 5.24일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가수, 작곡가, 시인, 화가로 명성을 얻고 있다. 1960년대 정치적 주제를 담은 시적인 가사와 간결한 포크 음악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밥 딜런.. 10살부터 시를 썼으며 10대 시절 음악에 심취 밴드를 결성했다.
1959년 미네소타 대학 입학 후 자퇴하고
포크 음악에 빠져 음악적 우상 '우드 거스리'를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간 것이 20살때다. 1994년 이후 드로잉과 회화를 담은 6권의 책을
출판했고 2007년 공개 전시회를 갖는다. 1971년 시와 소설을 결합한 실험적 작품 '파란 툴라'를 출판했다. 그래미상을 11번 수상했다.
2008년에 팝음악과 미국문화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는 이유로 플리처 상을 받았다.
우드 거스리, 로버트 존슨, 행크 월리엄스의 작곡에 영향을 받으며 음악가로서 1억장이 넘게 음반이 판매 되는 거장이다. 마침내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2시간이 넘는 공연무대는 변함이 없다. 앙콜송으로 대표곡 중 한 곡인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로 화답했다. 국내 팬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인 '낙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g on
Heaven's Door)'는 끝내 부르지 않았다.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봐야/ 진정한 인생을 깨닫게 될까...전쟁의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나서야 /영원한 평화가 찾아오게 될까/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밤 10시가 훌쩍 넘어서 끝난 공연.. 밥딜런의 앞날에 건강이 함께 하길
10.26(금). 20:00분 잠실체육관은 플라시도 도밍고의 내한 공연을 보기 위한 물결로 혼잡하다.
한 달 반 전쯤 예약을 했다. 세계
3대 테너 하면 늘,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이스, 플라시도 도밍고를 꼽는다. 이 세상에 남은자는 도밍고 뿐이다. 그의 나이도 어느덧
77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다.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살아 있는 전설 도밍고의 노래를 듣기 위해 7천여석이 넘는 잠실체육관을 가득
메우고 있다.
도밍고는 미남이다. 헤밍웨이를 연상시킬만큼 멋진 턱수염도 백발이다. 도밍고가 무대에 올라오자 우렁찬 박수소리가
체육관을 흔들정도다.
도밍고는 오페라 아리아를 비롯 뮤지컬 넘버, 한국의 가곡 등을 선사했다. 제 1부에서 바그너 오페라 '발퀴레' 중 '겨울폭풍은 달빛에
사라지고', 지오르다노의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중 '조국의 적', 베르디의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의 '울어라 눈물들이여',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부드럽게 말씀해주세요'를 불렀다.
모두가 그의 노래에 숨죽이다 끝나자마자 우뢰같은 박수로 답했다.
1부가 끝나고 20여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지고 2부가 시작되었다. 제 2부에는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중 '투나잇', 스툴로 이
베르트의 오페라 '사랑의 속삭임' 중 '이제 행복한 시간들', 카발레로의 오페라 '아프리카의 듀오' 중 '내 상황의 심각함을 이해해주세요',
소로자발의 오페라 '장미꽃다발' 중 '나는 일터에 오랫동안 있었어요', 모레노 토로바의 오페라 '놀라운 일' 중 '사랑, 내 삶의 모든 것'을
선곡했다.
지칠줄 모르는 도밍고의 노래는 청중을 압도 했다. 노래가 끝나고 그의 코믹하고 익살스러운 표정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순박한 천진난만했다.
그의 연기력이 발군이었다. 함께 공연을 한 게스트 아나 마리아 마르티네즈와의 '케미'도 볼거리였다. 둘의 환상적인 화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도밍고는 눈빛부터 몸짓까지 한없이 다정했고, 사랑스러웠다. 정말 사랑에 빠진 듯한 발군의 연기력이었다.
여러 번의 앙콜송으로
화답했고 '베사메 무초'를 부를 때는 청중과 하나 되었다. 우리나라 공연만 7 번째라는 도밍고, 그가 다시 한국 땅을 밟아 또 한 번 그의
노래에 빠져 보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