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위를 알면 자연과 사회가 보인다 - (5) '한 줌'은 넓이의 단위일까, 부피의 단위일까?
우리말에 ‘한 줌의 재’, ‘한 줌의 흙’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 말은 한주먹으로 쥘 수 있을 만큼 적은 분량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줌이란 게 우리나라 고유의 단위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우리나라는 중국 도량형 제도의 영향을 받았지만, 우리만의 독자적인 도량형도 사용해 왔다. 우리나라는 단군조선 때부터 고유의 도량형 체계를 발전시켜 왔다. 그리고 약 4000년 동안 ‘결부속파법(結負束巴法)’이라는 고유의 단위체계를 사용했다. 줌이란 단위도 결부속파법에서 비롯됐다.
한 줌은 적은 분량을 의미해 부피의 단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넓이의 단위였다. 결부속파법에 따르면 우리나라만의 전통 면적 단위에는 먹, 짐, 단을 비롯해 줌이 있었다. 그런데 왜 넓이의 단위인 줌이 부피의 단위처럼 오인된 걸까?
1430년 조선 시대 세종대왕은 지역마다 달랐던 길이, 넓이, 부피, 무게에 대한 전통 단위들을 정비했다. 이 외에도 시간을 재기 위한 해시계와 강수량을 측정하기 위한 측우기와 같은 도량형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당시 1줌은 가로 1자, 세로 1자의 넓이라고 정리했다. 당시 1자에 해당하는 길이는 38.86cm. 따라서 1줌의 넓이는 0.15㎡였다. 그러니까 한 줌은 상당히 작은 넓이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한 줌의 땅에서 나온 곡식의 양은 얼마쯤 될까? 한 주먹 수준밖에 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옛날 사람들 처지에선 줌이라는 면적 단위를 이해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일정 면적에서 수확한 곡식의 양으로 설명했다고 한다. 줌이 부피의 단위로 오해받는 건 여기에서 출발했다.
‘한 짐 지고 간다’라는 우리말이 있다. 한 줌과 달리 한 짐은 등에 짊어지기에는 꽤 무거운 양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 짐도 한 줌과 마찬가지로 부피 단위가 아니라 넓이의 단위이다. 세종대왕 때 재정비한 전통단위 체계에 따르면 10줌은 한 단, 100줌은 한 짐, 10,000줌은 1먹이었다. 이렇게 정한 뒤 백성들에게 토지를 1 먹씩 나눠주었다. 한 짐, 곧 100줌의 땅에서 수확된 곡식의 양은 등에 한 짐 지고 갈 수 있을 만큼의 양이었다.
출처 : 박미용(구성), 임성훈(일러스트), 동아사이언스(편집). 단위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 KRISS (한국표준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