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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작질
이 홍사
호작질이라고 했다.
취미라고 하지도 않았고 장난이라고 하지도 않았다. 꼭 호작질이라고 했다. 내가 자란 고장에서는 그렇게 통용이 되었다.
야, 이 녀석아! 뭔 호작질을 그렇게 하느냐?
어린 시절, 아버지는 늘 내 뒤통수에 대고 말씀하셨다. 공부를 안 하고 다른 짓거리를 하는 것은 다 싸잡아서 호작질이다. 취미라는 말은 당시에 쓰지 않았다.
취미를 영어로는 하비 hobby 라고 한다.
취미가 아니라 오늘 또 호작질을 하고 왔다고 말을 했더니 무슨 호작질을 했는지에는 관심이 없고 선배는 중국말로는 애호愛好라고 한다고 했다. 취미라는 말이다. 애호가야 우리도 그렇게 쓰지만, 본토 발음으로 아이하오란다. 결국 취미든 애호든 다 호작질이라는 말로 포괄하고 수용할 수가 있다.
“마누라 무서워 집에 못 들어가겠어요.”
“그렇겠네!”
이 양반이 왜 이렇게 무덤덤해졌어?
고개를 갸웃하는데 선배는 잔에 탁주를 채워주며 왜 그렇게 비싸게 먹히는 아이하오를 지녔느냐고 퉁을 먹였다.
새로 산 중고차를 마당에 세우고 보니 삼층 거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아마도 아내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모양이다. 집에 들어가면 큰소리가 나게 마련이다. 오늘도 비싸게 먹힌 호작질을 했다. 이럴 땐 피하는 게 상책이다. 집에 들어가서 저녁을 안 먹었다고 밥을 달라고 하면 분명 큰소리가 나온다. 등 뒤에서 날아오는 잔소리를 들으며 꾸역꾸역 밥을 먹을 자신이 없다.
“푼돈 가지고 하고 싶은 짓거리 하게 좀 내버려 둬! 새 차를 바꾸는 것도 아닌데”
이 말을 준비했지만, 오늘 당장은 먹히지 않을 거다.
오늘 또 차를 바꾸었다.
오늘 팔아버린 차는 겨우 보름 전쯤 중고로 산 차였다. 보름 전에 차를 바꾸고 그사이에 맘에 안 들어서 또 바꾼 것이다. 지난번에 날려버린 그 차도 겨우 두 달 남짓 탔을까? 결과는 석 달 만에 차를 세 대 바꾸었다는 점이다. 저지르고 생각하니 내가 생각해도 참 미쳤다. 미쳤다는 말로밖에는 형용할 수밖에 없다.
어제저녁까지는 생각지도 않고 예상하지도 못 한 일이다.
오전에 인터넷으로 중고차를 검색하다가, 이게 마땅하다 싶어 겨우 삼십 분 정도, 손해나는 금액을 산출하고, 생각하고 굽고 굽다가 마음을 굳히고 급하게 점심을 먹고 가서 한나절 만에 차를 팔고 마음에 드는 중고차를 사서 끌고 온 것이다.
그 시점을 못 넘긴다. 그게 고비인데 그 시점을 못 넘기는 게 병이다. 당시의 생각은 고민은 절대로 오래 할 것이 못 된다는 점이 지배적이었다.
올해만 네 번째 차다. 내가 생각해도 병이다. 마당에 차를 세우고 집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만만한 덕기 선배에게 전화해서 아직 저녁을 먹지 않았는데 저녁을 때울 곳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형곡동으로 오라고 했다.
안주는 오늘도 뒷고기다.
선배는 굽고 나는 먹는 게 우리 사이에 묵언의 약속이 되었다. 선배는 뒷고기를 노릇하게 잘 굽는다. 반은 설익고 반쯤 태우는 나보다는 훨씬 낫기에 고기를 뒤집는 집게는 항상 선배의 몫이다.
저녁을 먹으면 술도 마셔야 할 것이라 차를 마당에 세워두고 택시를 타고 형곡동으로 왔다. 술을 마실 일이 있으면 나는 절대로 차를 가져오지 않는다. 마당에 세워두고 택시를 타는 게 싸게 먹히고 편리하다. 차를 주차할 곳을 찾아서 헤맬 일도 없거니와 대리를 불러서 서툴게 운전을 시킬 일도 없다.
그동안 아내가 마당에 세워둔 차를 보고 심리적으로 늦었다는 걸 인지하고 잔소리를 포기하면 그런 다행이 없을 것이고.
선배를 만나서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늘어놓았더니 선배는 취미치고는 독특하고 참 돈이 많이 드는 것이라며 취미를 중국말로 채애호라고 한다고 했다. 애호가라는 말은 들어보았는데 채애호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 선배는 호작질이나 취미, 내가 산 차에는 관심이 없고 중국어에 심취해 있다. 지난번 중국 여행을 하다가 만난 여행객들과 계속 연락 중이라 중국 사람들과 채팅을 하다가 나온 티가 역력했다.
“채애호? 어렵네요. 그냥 아이하오라고 합시다.”
“아이하오를 위하여!”
그렇게 외치며 내가 잔을 내밀었다.
차를 사서 며칠을 타보면 그 차의 좋은 점보다는 먼저 흠을 알게 된다. 그러면 못 참는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못 참는다. 기어이 바꾸어야 직성이 풀리는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바꾼 차도 또 흠결이 당장 눈에 보인다는 점이다. 중고차를 샀다가 팔면 아무리 잘 팔아도 손해가 나게 마련이다. 설령 샀던 값보다 비싸게 받는다고 해도 등록세와 취득세는 날아간다. 그게 적은 돈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아내의 말도 틀린 게 아니다.
“당신 등록세와 취득세 낸 걸 다 합치면 서울의 어지간한 아파트 한 채는 사고 남았을걸요.”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아내의 말도 틀린 소리는 아니다. 국내에서 나오는 승용차 중에서 대형으로 분류되는 차는 거의 다 타보았다. 외제도 좋다는 것은 중고로 샀지만 거의 다 타보았다. 타보지 않은 차가 있다면 캐딜락에서 나온 차체가 기다란 장의차뿐이다. 그건 나중에 죽어서 타보면 된다는 생각이다. 새 차를 사서 십오 년이 넘게 타다가 폐차를 시키는 사람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동안 지겨워서 어떻게 타나? 차 가격을 풀어서 감가상각으로 따지면 그게 그거다.
나도 새 차를 뽑아본 적이 있다.
삼십 대 시절이었다. 굴착기 기사를 그만두고 내가 직접 사업자를 내고 내 사업을 시작하면서였다. 소형차인데 이런 차에 꽁무니가 달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차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 실물도 보지 않고 영업사원이 가져온 카탈로그의 그림만 보고 덜컥, 계약했다. 당시에는 새 차를 계약하고 한 달 정도를 기다려야 차가 출고되던 시절이었다. 처음 끌고 다니니 새로 나온 모델이라 뭇사람들을 눈길을 사로잡았다. 기분이 짜릿했다. 그것도 두어 달 그랬다.
그 차를 삼 년 정도 탔다.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오래 탔던 차인데, 결국은 삼 년 정도 타다가 지겨워서 팔아버리고 더 큰 차를 중고로 샀다. 그때부터 내가 차 바꾸기는 시작이 되었다, 새 차는 평생 그 차 한 대밖에 사지 않았다. 나머지는 다 중고차였다. 어떤 차를 사서 얼마만큼 타면 가장 경제적이라는 것까지 안다. 그러나 지겨워서 못 탄다.
당시에는 아내가 차를 바꾸는데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잔소리는커녕, 심지어 차를 바꾸자고 하면 어떤 차를 사는지 따라가기까지 했다. 당시에는 집에 앉아서 차를 볼 수 있는 인터넷이라는 것이 없었다. 중고 상사에 다니면서 발품을 팔아야 했다. 구미에도 중고차 상사가 있지만, 나는 꼭 대구에 가서 사는 편이다. 차가 많아서 선택의 폭이 넓고, 비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와 같이 대구에 차를 바꾸러 갔던 기억이 있다.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당시에 내가 타던 차는 스포츠카가 아니었다. 그 차의 이름도 잊지 않고 있는데 르망 팬터파이브였다. 그 차종 중에는 빨간색이 예뻤다. 그 차에 눈이 끌려 바꾸러 가자고 했다. 아내는 순순히 옷을 갈아입고 따라나섰다. 아내는 태우고 대구에 내려가면서 이야기를 하던 중에 어느 대학 병원에 어느 의사가 복원 수술을 잘한다고 말했다.
“복원 수술? 무슨 복원 수술?”
“아들을 하나 낳고 싶다면서요?”
“아하, 그거!”
군에 가기 전에 사고를 쳐서 아이를 낳고 나는 군에 갔다. 휴가를 나와서 만들었는지 상병으로 진급하니 아이가 하나 더 생겼다. 만기 전역을 하고 오니 딸이 둘이었다. 만기 전역을 하고 오기 직전에 아내에게 편지를 받았다. 또 임신이라는 것이었다. 아이가 어떻게 그렇게 잘 들어서는지. 나는 아직 직업도 정해지지 않고 전역도 하지 않았는데 아기도 더 있으면 곤란하다. 유산을 시키는 게 어떻겠느냐고 아내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를 받은 아내는 내가 전역을 하기 전에 산부인과에 가서 유산을 시키며 배꼽 수술을 했다. 영원히 아이를 못 낳도록 하는 수술이었는데 당시의 인구정책으로 그런 수술은 의료보험이 아니고 정부에서 공짜로 해주었던 시절이었다. 생각하면 참 근시안적인 정책이었다. 지금은 제발 아이 좀 많이 낳으라고 난리였는데 당시에는 그런 수술을 공으로 해주었던 정부다.
그런데 제대하고 직장을 잡고 좀 살아보니 딸만 둘이라는 게 뭔지 모르게 썰렁했다. 마음이 슬슬 바뀌었다.
“아들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그렇지?”
지나가는 소리로 아내에게 그런 말을 했던가?
아내는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그 소리를 새겨듣고 가슴에 담아두었던 모양이다. 어떻게 알아보았는지 차를 바꾸러 가는데 그런 소리를 했다.
“그럼 우리 이 돈으로 차를 바꾸지 말고 수술을 할까?”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나 해주는 수술이 아니란다. 낳은 아이가 잘못되었거나, 특별한 경우에만 해주는 수술이라고 했다.
“한번 도전해보는 거지. 뭐! 그 유명한 의사가 누구래?”
어느 대학 병원의 어느 의사라고 했다. 아내는 그 수술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단박에 보아도 그랬다. 하여 자동차 시장에 가서 나는 차를 구경하고 아내를 병원으로 보냈다. 수술을 할 수가 있나? 수술비가 얼마나 드나? 성공 확률은 얼마나 되나? 그걸 알아보려고 아내는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고 나는 차를 구경했다. 얼마 후 아내가 돌아왔다. 여러 가지 정보를 가지고 왔는데, 아이가 잘못되었으면 수술비만 받고 수술을 해주는데 단순 변심에 의한 수술이라면 대학 병원의 연구팀 측에 기부를 조금하고 또 다음 달에 그 교수가 해외 교환교수로 나가는데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이었고 성공 확률은 80%라고 했다.
“기부?”
“그럼 이 돈으로 되나 알아보고 와. 확률상 점을 쳐보는 거지 뭐. 이 돈으로 기부가 안 된다면 말고 된다면 수술을 하자.”
차를 바꾸려고 가지고 갔던 금액에서 얼마를 뚝 잘라서 주었다. 아내는 또 군말 없이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결국은 그날 빨간색 스포츠카를 찾았지만 사지는 못했다. 아내가 병원에 가서 그 돈을 기부하고 바로 이틀 후에 수술 날짜를 잡아 왔기 때문이다.
스포츠카 대신에 아들이다.
그렇게 맘을 먹고 입술을 깨물고 올라왔는데 스포츠카는 눈에 삼삼했지만 그다지 미련이 없었다.
그래서 바로 아들을 낳았느냐?
그 물음에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성공 확률은 80%이지만 아들을 낳을지 딸을 낳을지 또 확률이 50%가 되는 것이다. 그날 거기까지는 확률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몇 달이 지나서 아내가 임신했다. 80%에는 성공이었다. 그런데 낳아보니 딸이었다. 그 아이가 셋째딸이 되었다. 실망이었다. 어지간히 서운했다. 아이를 낳고 하도 서운해서 서운이라고 부르며 한 달이 넘도록 출생신고도 하지 않았다가 결국은 과태료를 물고 출생신고를 했다.
그 딸이 지금은 시집을 가서 한 달 전에 딸을 낳았다. 그러니 그게 거의 삼십 년 전의 일이다.
그럼 아들은?
누구라도 그 말을 하면 그렇게 되묻는다.
아이를 워낙 일찍 낳았으니 오십이 되기 전에 다 시집을 보낼 것이다. 그러면 버는 대로 여행을 다니자고 했던 아내와의 옹골찬 약속이 셋째딸이 태어남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이왕 조진 거 아들을 낳을 때까지 열이고 스물이고 낳아보자.”
아내에게 대놓고 그렇게 말했다.
아내도 웃으면서 그러자고 했다.
아내가 젊고 자궁이 튼실해서 그런지 바로 또 임신했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당시에는 태아의 성별 구별은 불법이었다. 그런데 소문에 소문을 듣고 찾아가서 태아 성별 검사를 했는데 아들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 소식을 듣고 고향 친구의 계 모임에 가서 그 얘기를 했더니 한 녀석이 말했다.
원시인이가? 미개인이가? 우째 키울라카노?
들으니 갑자기 기분이 팍 상했다.
야, 이 자식아! 너한테 키워달라는 소리 안 해. 걱정을 접어.
그 자식은 정부 시책을 따르느라고 딸 하나를 낳고 예비군 훈련 가서 정관수술을 받은 놈이었다. 당시에는 산아제한 정책을 펴느라 그런 수술을 하면 예비군 훈련을 면제시켜 주던 시절이었다. 그 생각을 하면 우리나라 정책이나 행정이 참 근시안적이다. 원시인을 운운했던 그 자식은 지금 딸 하나를 시집 보내고, 명절이면 썰렁한 집에서 손가락을 빨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렇게 낳은 아들 녀석이 지금 스물여덟이다. 내 후계자가 되겠다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벌써 그렇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아이를 한 두엇 더 낳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러나 이제는 늦었다. 나는 짬이 나면 아이들에게 무조건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한다. 아이들이 듣기 싫어하는 줄을 알면서도 그 말을 한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부터 나는 차를 줄기차게 바꾸었다. 오래 탄 차는 일 년 남짓이고 심하면 일주일을 못 타고 바꾸었으니, 아내의 말대로 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태까지 갈아치운 차를 따지면 몇 대나 될까?
삼십 년이니 아마도 백 대는 훨씬 넘을 것이다. 한국에서만 그랬나? 아니다. 몽골에서 칠 년간 사업을 할 적에도 그랬고 지금도 미얀마의 차도 자주 갈아치우는 형편이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나가면 안 샐까?
“이번엔 비싼 취미로 차는 어떤 차로 바꾸었어?”
옛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애호, 아이하오를 들먹이며 막걸릿잔을 기울이던 선배가 좀 비꼬는 투로 물었다.
“검은색 최고급 세단으로 바꾸었습니다. 기다란 리무진이죠. 기사를 두고 타는 차입니다.”
“집에 못 들어갈 짓을 했네. 상당히 비싸겠는데?”
모르는 말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차는 중고로 나올 정도면 비싸지 않다. 찾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기름을 많이 먹고 세금과 보험료가 많이 나오고 관리하기가 나쁘기에 그냥 줘도 못 탄다며 중고로 나오면 찾는 사람이 드물어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다.
“왜 하필이면 검은색이야. 관리하기 상당히 불편할 터인데?”
역시 모르는 말씀. 그런 차는 흰색이나 다른 색상의 차가 나오지 않는다. 중후한 색상, 검은색만 출고되는 차다. 기사를 두고 타는 차이기에 뒷좌석에 탄 차주가 볼일을 보는 시간이면 기사가 줄기차게 닦는 차다. 검은색 차는 관리하기가 불편하다. 때를 많이 탄다. 먼지가 조금만 앉아도 금세 표시가 난다. 기사를 두고 매일 닦아야 하는 차다. 그런데 기사를 둘 형편이 되지 않으면 직접 닦아야 한다. 보통 부지런한 사람은 못 타는 차다. 그래서 늘 흰색이나 은색 차를 샀는데 이번엔 어쩔 수가 없었다. 이번에 산 차종은 그런 색깔이 나오지 않는 차다.
차의 색깔에 관해서 얘기를 꺼내니 몽골 생각이 났다.
몽골은 검은색 차를 선호한다. 눈밭에 있어도 단박에 표시가 나기 때문이다.
몽골에서는 흰색 차량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흰색 차를 선호한다. 관리하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몽골에서도 처음에는 흰색 차를 샀다. 나중에 팔려고 보니 다른 차에 비해서 가격이 상당히 낮게 책정되고 차량 색상에 트집을 잡는 것이었다. 몽골에서 흰색 차는 죽음의 차라고 한다. 왜 그런가? 시월부터 이듬해 사월까지는 몽골의 초원은 온통 눈밭이다. 초원의 눈밭에 나갔다가 차량이 고장이 나면 흰색 차는 초원을 지나가는 다른 차의 눈에 뜨이지 않고 구조를 받지 못한다. 얼어서 죽을 수밖에는 없다. 그렇게 흰색 차를 타다가 죽은 사람에 매년에 몇 건씩 발생한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몽골 사람들은 초원의 눈밭에 차가 서 있으면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무슨 일인가 가서 꼭 확인하고 지나간다. 만약 차가 고장이라면 구조를 하고 기름이 떨어졌다면 자신의 차에서 기름을 빼서 공급하고 지나간다. 그게 상부상조다. 자신도 초원에 나갔다가 그런 수혜를 누구에겐가 입을 수가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싸게 먹히는 취미인데 아이하호를 바꾸는 게 어때? 차는 샀다가 금세 팔면 무조건 손해잖아?”
선배에게 몽골의 차 색상에 관해서 얘기하려는데 비싸게 먹히는 취미를 바꾸라고 먼저 운을 뗐다. 선배는 내 마음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고 했지만, 아니다.
차를 자주 바꾸는 것에 관해서 알아주는 사람은 바로 차를 만지는 사람이다. 바로 옆집의 택시 미터기를 달아주는 계량공사의 한 사장이다. 담을 낮추고 살아서 한 사장은 잘 안다. 거의 이십 년이 넘게 옆집으로 살았으니 내가 차를 얼마나 자주 바꾸는지 알고 있다.
차를 바꾸면 귀신같이 알고 마당에 와서 차를 살핀다.
이번에 차를 좋은 걸로 바꾸었네, 이런 차는 비싸지요? 알면서 묻는다. 차를 자주 바꾸는 일에 대해서 결코 나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언젠가 내가 스스로 미쳤다고 했더니 아니란다. 마니아들이야 이 차, 저 차, 좋은 거라면 다 타보고 싶은 마음이지. 한 사장은 나를 두고 승용차 마니아라고 치부하면서 이해를 했다. 중장비 차주가 차를 아끼는 마음이 없었으면 벌써 망했지. 한 사장의 말이었다. 아내가 그런 심정으로 이해를 했으면 좋겠는데.
“형님 아무래도 오늘 집에 들어가면 큰 싸움이 날 것 같은 기분입니다.”
갑자기 아내가 생각나서 막걸릿잔을 기울이며 선배에게 말했다.
“비싸게 먹히는 아이하오를 바꿔!”
“취미를 바꾸라구요? 호작질을 그만하라고 하세요.”
“호작질? 호작질이라, 그 말이 더 적합하구만.”
“제가 좋아서 하는 호작질이죠. 바꾸라고 하지 마셔요. 이대로 살다가 죽을래요.”
“아주 비싸고 독특한 호작질이구만. 지금 생각이 난 건데, 내가 아는 놈 중에는 더 독특한 호작질을 하는 놈이 있어.”
선배의 고향 후배인데 공구, 즉 연장을 사는 게 취미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대뜸 김창호 씨를 떠올렸다.
“혹시 김창호 아니세요?”
“알고 있는 사이야?”
“잘 알죠.”
“바닥이 좁네. 설명이 필요 없구만, 그런 친구도 있어.”
“그 양반에 비하면 저는 병도 아니죠?”
선배는 대답 없이 막걸릿잔을 들었다.
김창호 씨는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사람이다. 건설업이나 설비업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군대 동기가 하는 타이어 가게에 그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동기의 타이어 가게는 내가 참새 방앗간 드나들 듯이 매일 출근부에 도장을 찍는 곳이다. 현장에 나가면서 들러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들어오면서 들러 노닥거리다가 오는 곳이다. 내일도 날이 밝으면 가장 먼저 들를 곳이기도 하다.
김창호 씨는 타이어 가게에 가끔 온다. 동기 녀석이 옛날에 다니던 회사의 동료이기에 시간이 나면 커피를 마시러 가끔 오는데 그의 독특한 취향을 알게 되었다. 차를 승용차를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승합차를 끌고 온다. 승합차도 일반 승합차가 아니라 화물로 분류되어 영업용 번호판이 달린 차다. 전자 회사의 사무직으로 일하는 사람이 왜 그런 차가 필요한지 이해를 못 하겠지만 차에 뭐가 실렸는지는 알고 있다.
전부가 공구다.
손으로 쓰는 공구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전동공구가 실려있다. 사각 쇠 파이프로 공구를 넣을 진열대를 차에 맞게 손수 제작해서 설치하고 작은 것은 쇠로 만든 서랍에 들어있는데 차가 묵직할 정도로 싣고 다닌다. 언젠가 그 공구의 가격이 전부 얼마쯤 되느냐고 묻고는 깜짝 놀랐다. 기천만 원 어치는 된다는 대답이었다. 어디에 쓰는지 몰라도 마이크로 전자 현미경부터 쇠를 자르는 커터까지 없는 게 없다. 그래도 틈만 나면 인터넷으로 새로운 연장을 검색하고, 그 용도를 연구하며 새로 나온 연장을 구매하러 다니는 것이다. 공구는 승합차 적재함에만 있는 게 아니다. 보지는 못했지만, 아파트에 방 하나를 공구 창고 용도로 쓰며 방에도 진열대를 만들어 가득 있다고 했다. 들어보니 빈말은 아닌 듯했다.
그 양반은 틈만 나면 연장을 닦고, 남이 좀 빌려달라고 하면 마누라를 쉽게 빌려주지만, 연장은 절대로 빌려주지 않는단다. 떼를 써서 공구를 빌려달라고 하면 가서 직접 공구를 쓰는 작업을 해주고 돌아오는데 그 많은 공구 중에서 어느 공구가 어느 쪽 몇 번째 서랍에 들었는지 정확하게 외우고 있단다. 사무직인데 출근하면서 그 승합차를 끌고 간단다.
공구가 없으면 심리적으로 불안해서 일이 안 된다고 하는 아주 독특한 아이하오를 지닌 양반이다. 그런 걸 두고 아이하오, 즉 취미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 양반의 공구에 대한 애착에 비하면 나는 병도 아니다.
“들추어보면 세상에는 희한한 데 아이하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다양하게 많아. 도저히 취미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지.”
선배도 김창호 씨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한두 가지에 남다르게 미치게 되어 있는 동물인 모양입니다. 형님께서 난초를 가꾸는 것도 그렇지요. 그런 취미야 보편적이라서 티가 안 나는 것이지. 그것도 호작질로 분류가 됩니다.”
선배는 난초에 살짝 미쳐 있다. 아파트의 방 하나는 온실이다. 난초 중에서 비싼 것은 기백만 원쯤 한단다. 그런 난초를 키우고 있는데 매일 온도를 체크하고 겨울이면 방한에 신경을 쓰며 난초가 얼지 않도록 온도 조절에 신경을 쓰는 실정이다.
생각하니 내가 미친 듯이 차를 자주 바꾼 것은 한참 되었다.
누가 신형 모델의 차를 뽑으면 그냥 눈으로 보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 꼭 운전해보아야 직성이 풀린다. 옛날의 일이지만 건설경기가 한창 좋을 적에는 굴착기와 덤프를 열댓 대 가지고 사업을 했다. 당시에 데리고 있는 기사가 열댓 명이었다. 그때 승용차를 바꾸어서 사무실 마당에 세워두면 기사들끼리 내기를 하곤 했다.
우리 오너가 이 차를 육 개월 이상 타느냐? 아니면 그 전에 바꾸느냐?
내가 모르게 두 패로 나뉘어, 내기하는 정도였으니 어지간히 자주 바꾼 모양이다. 그때부터 중고차를 사도 등록세와 취득세를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내가 잔소리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대가리가 굵었다고 아들 녀석까지 가세한다. 아내의 잔소리는 차를 자주 바꾸어서 세금을 날린다는 데 있고 아들 녀석은 차종에 관해서 단점을 지적하고 퉁을 먹인다.
오늘 산 차는 이미 내 앞으로 이전등록을 마쳤다.
보통은 계약하고 이전등록에 필요한 비용을 주면, 다음날 이전을 해서 우편으로 부쳐주는 게 관례인데 계약서를 쓰자 자동차 상사 부근에 등록사업소가 있다고 이전을 해서 우편으로 부쳐주는 것보다 등록증을 바로 가지고 가라고 해서 기다렸더니 직원이 가더니 삼십 분 내로 이전을 해왔다. 이 정도의 가격에 차를 사면 이전등록에 경비가 얼마쯤 든다는 것을 대충 알고 있다.
그 등록증을 받아서 오느라 조금 늦었다.
“이제 차는 그만 바꾸고 골동품 경매장에나 다녀! 그게 훨씬 경제적이야.”
술판이 어지간히 끝나가는데 선배가 골동품을 들먹였다. 선배에게 골동품은 많이 선물했다.
“예, 그러죠. 마누라의 잔소릴 피해서 왔는데 형님의 잔소리를 듣는군요.”
내일이 수요일이라 골동품 경매를 하는 날이다.
아마도 내일은 새로 산 차를 끌고 골동품 경매장에 갈 것이다.
골동품에 취미를 붙인 건 지난 봄이었다. 김천의 후배 시인이 하는 커피집에 갔다가 장식해놓은 진기한 도자기를 보았다. 상당히 오래된 도자기인 것 같은데 어디서 났느냐고 물으니 골동품 경매장에서 낙찰받았다고 했다.
이런 걸 어디서 경매하느냐?
바로 이웃 마을이라고 했다. 그날이 경매하는 날이라며 구경을 가라고 해서 갔는데 그것도 재미가 보통이 아니었다. 진귀한 물건을 보는 것도 재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맘에 드는 점은 거래가 깔끔했다. 현금 거래인데 샀다가 맘에 안 든다고 물려주는 것은 없다. 매주 커피도 마실 겸 경매장엘 갔다. 이젠 경매장에 오는 장사치들을 어지간히 다 안다.
처음에는 나오는 물건마다 다 사고 싶었지만, 지금은 눈이 높아져서 저건 얼마쯤에 낙찰이 될 것이다, 물건이 경매에 올라오면 대충 감이 잡히고 어지간한 물건은 눈에 차질 않는다. 그만큼 안목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그렇게 산 물건을 사무실에 진열해놓고 보다가 싫증이 나면 남에게 선물을 한다. 그렇게 선물을 받는 사람은 뜻밖의 진귀한 물건이라 농도가 짙은 고마움을 표한다. 선배에게 준 것도 도자기랑 장식품 등 몇 번에 걸쳐 여러 점을 주었다. 그것을 선배는 아파트에 장식해놓으니 눈이 즐거운 모양이다.
술판이 어지간히 끝나간다.
석쇠 위에는 타다가 만 고기가 서너 점이 남았다.
밥은 먹지 않았지만, 뒷고기와 막걸리를 마셨으니 곡기가 충분하다.
아내는 마당에 서 있는 차를 보았을까?
술을 마시는 내내 그게 나의 관심사였다.
이 상태로 들어가면 아내가 절대 잔소리를 하지 않을 것이다. 술을 마셨다는 걸 알면 아내가 잔소리해서 시비를 걸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이다. 오늘 저녁은 그냥 넘어갈 것이다. 후딱 씻고 내 방에 들어가 자면 된다. 그러나 내일 아침이 문제다.
무릇 성현은 지나간 일을 들추지 말라고 했느니.
내일은 능청스레 이 말을 하면 될 것이다. 마음속에 단단히 박아두어야지.
야! 이 녀석아 뭔 호작질을 그렇게 하느냐?
아버지의 목소리가 귀에서 풀어지고 있었다. 영판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아니다. 분명히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나는 주위를 살폈다. 저쪽 구석에서 아이를 데려와 뒷고기를 먹는 가족뿐이다. 가게 안에 어디에도 아버지는 없었다. 돌아가신 지 삼십 년이 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이곳에서 들릴 리가 만무다. 나는 귀를 후볐다.
야! 이 녀석아 뭔 호작질을 그리 자주 하느냐?
다시 돌아보았다. 아버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분명히 들었는데, 어디에서 나는 소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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