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 국교화 (301년):** 로마 제국보다도 앞서 국왕 티리다테스 3세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했습니다.
* **독립의 상실과 이민족의 지배:** 고대 왕국이 멸망한 후, 아르메니아는 비잔티움 제국, 아랍 이슬람 칼리파조, 셀주크 투르크, 몽골,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왕조(페르시아)**, **러시아 제국**에 의해 분할 통치를 받았습니다.
* **비극과 현대:** 제1차 세계대전 중 오스만 제국 하에서 수많은 아르메니아인이 목숨을 잃은 '아르메니아 집단학살(Genocide)'의 비극을 겪었습니다. 이후 소련의 일원이 되었다가,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현재의 '아르메니아 공화국'으로 독립했습니다.
2. 기독교 국가로 오랜 시간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
이슬람 제국(아랍, 셀주크, 오스만, 페르시아)에 둘러싸인 고립된 환경과 외세의 혹독한 지배 속에서도 아르메니아가 기독교 신앙과 민족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독자적인 '아르메니아 문자'의 발명 (종교와 민족의 결합)
서기 405년, 학자이자 성직자였던 **메스로프 마슈토츠(Mesrop Mashtots)**가 아르메니아 고유의 문자를 발명했습니다.
* 이 문자로 가장 먼저 한 작업이 바로 **성경을 아르메니아어로 번역**한 것이었습니다.
* 주변의 그리스나 라틴, 페르시아 문화에 흡수되지 않고, 자신들의 언어와 문자로 신앙을 고백하면서 기독교는 단순한 종교를 넘어 **'아르메니아 민족의 영혼'이자 정체성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② 독자적인 노선: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Armenian Apostolic Church)
아르메니아 교회는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451년 칼케돈 공의회 이후 비잔티움 제국의 정교회나 로마 가톨릭과 신학적 노선을 달리하며 **독립적인 국가 교회**로 발전했습니다.
* 외세의 침략으로 국가(왕조)가 무너졌을 때, **교회가 국가의 행정·사법·교육 기능을 대체하는 망명 정부 역할**을 했습니다.
* 왕은 사라져도 교회의 수장인 '카톨리코스(Catholicos)'가 민족의 지도자로서 구심점 역할을 했기 때문에 공동체가 와해되지 않았습니다.
③ 순교 정신과 '아바라이르 전투'의 기억
서기 451년, 사산조 페르시아(조로아스터교)가 아르메니아를 침공해 기독교를 버리라고 강요했을 때, 바르단 마미코니안 장군이 이끄는 아르메니아 군대는 **'아바라이르 전투'**에서 수적으로 압도적인 페르시아군에 맞서 싸우다 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 비록 전투에서는 졌지만, 이들의 처절한 저항에 질린 페르시아는 결국 아르메니아의 기독교 신앙을 묵인하게 됩니다.
* 이 전투는 아르메니아 역사에서 **"신앙을 위한 순교는 곧 민족을 지키는 것"**이라는 강렬한 상징으로 남았고, 이후 이슬람 지배기에도 배교하지 않고 버티는 정신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④ 밀레트(Millet) 제도와 자치 허용 (오스만 제국기)
아이러니하게도 오스만 제국의 통치 방식이 기독교 보존에 의도치 않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비이슬람교도 피지배층에게 종교 공동체별 자치권을 부여하는 **'밀레트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 아르메니아인들은 이 제도 하에서 이슬람 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자신들의 총대주교(Patriarch) 통제 아래 교회 법과 관습에 따라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세금(인두세)을 더 내야 하는 차별은 있었지만, 종교적 자치령 안에서 신앙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⑤ 강력한 결속력의 전 세계 '디아스포라(Diaspora)'
역사적 박해와 학살을 피해 수많은 아르메니아인이 전 세계(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동 등)로 흩어졌습니다. 현재 아르메니아 본국 인구(약 300만 명)보다 해외에 사는 아르메니아인(약 700만~1,000만 명)이 훨씬 많습니다.
* 이 해외 공동체(디아스포라)들은 타국에 정착할 때 **가장 먼저 아르메니아 교회와 학교**를 세웠습니다.
* 타지에서도 교회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모국의 신앙과 문화를 지켰고, 경제적·정치적 지원을 통해 본국이 기독교 국가로 생존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요약하자면**
> 아르메니아에게 기독교는 단순한 종교 체계가 아니라, **'아르메니아 문자'라는 그릇에 담긴 민족의 정체성이자, 국가가 사라졌을 때 나라를 대신해 준 울타리**였습니다. 이 강력한 문화적·정신적 응집력이 수천 년의 침략과 핍박 속에서도 그들이 십자가를 내려놓지 않은 이유입니다.
. . . . .
**유라르투 왕국(Urartu)**은 아르메니아 역사와 문화의 뿌리가 되는 고대 국가이자, 고대 근동사(특히 철기 시대)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했던 영웅적인 왕국입니다.
오늘날 **아르메니아 고원(현재의 아르메니아, 튀르키예 동부, 이란 북서부)**을 무대로 기원전 9세기부터 6세기까지 번영했으며, 당대 최고의 초강대국이었던 **아시리아(Assyria)**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라이벌이었습니다.
유라르투 왕국의 핵심적인 특징과 역사적 의의를 정리해 드립니다.
1. 명칭의 유래: '아라라트'의 기원
* **유라르투(Urartu):** 이 이름은 숙적이었던 아시리아인들이 이 지역을 부르던 명칭에서 유래했습니다.
* **아라라트(Ararat):** 유라르투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아라라트'**의 히브리어 표기와 어원이 같습니다. 즉, 노아의 방주가 방주를 멈추었다는 아라라트산의 이름이 바로 이 유라르투 왕국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라트산은 현재 튀르키예 영토 내에 있다.
* **비아이니리(Biainili):** 유라르투인들 스스로는 자신의 나라를 '비아이니리'라고 불렀습니다. 이 단어는 오늘날 튀르키예 동부의 거대한 호수인 **'반(Van)호'**의 이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아르메니아의 종교 (2011년 인구 조사)[1][2]
아르메니아 사도교회(92.5%)
그 외 기독교(2.3%)
야지디교(0.8%)
그 외(0.4%)
비신자(4.0%)
2011년 기준으로, 아르메니아 내 대부분의 아르메니아인들은 기독교인 (97%)들이고[1] 가장 오래된 기독교 종파 중 하나인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신자들이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서기 1세기에 처음 세워져, 301년에 국교가 된 첫 기독교 종파이다.
퓨 연구센터의 2018년 12월 출판물에 따르면 아르메니아는 유럽 국가 34개국 중 두 번째로 종교적인 국가이며 응답자 중 80%가 신에 대한 확신을 갖고 믿는다고 답하였다.[3]
21세기에 들어, 아제르바이잔 내 가장 큰 소수 기독교 교회는 개신교와 반삼위일체론 교회들로 개종한 자들이며, 모두 합하여 38,989명(1.3%)을 이룬다. 아르메니아의 민족적 동질성 때문에, 야지디교와 이슬람교 등 비기독교 종교들은 아주 적은 소수에 불과하다.[4]
종교 인구
티리다테스 3세의 세례
아르메니아인의 대략 98.1%가 민족적으로도 아르메니아인들이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와 매우 강력한 문화적 유대를 갖고 있다. . 아르메니아 시민권자의 약 97%가 다른 오리엔트 정교회들과 상호 인정 관계에 있는 동방 정교회 교파인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신자들이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에치미아진 대성당을 그 중심지로 두고 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수장은 가톨리코스 카레킨 2세이다.
201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종교 정체성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기독교인 2,862,366명 (99%) 중 아르메니아 정교회 2,797,187명 (97%), 복음주의 교회 29,280명, 가톨릭교회 (아르메니아 가톨릭교회와 라틴 교회) 13,996명, 여호와의 증인 8,695명, 동방 정교회 (러시아, 우크라이나, 조지아, 그리스 등) 7,587명, 몰로칸 (비정교회 러시아인) 2,874명, 아시리아 동방교회 (네스토리우스) 1,733명, 개신교 733명,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241명 등으로 구성되고, 야지디교 23,374명 (0.8%), 아르메니아 전통 신앙 5,146명 (0.2%), 이슬람교 812명, 그 외 종교 5,299명 (0.2%), 미응답자 121,587명 (4.0%) 등이었다.[1]
2020년경, 기독교인들은 인구의 94.72% (정교회 83.59%, 가톨릭 8.44%, 개신교 2.36%)를 이루고 있다.[5]
야지디인들은 수도 예레반 북서쪽에 있는 아라가트산 주변 농촌 지역에 주로 집중되어 있다. 이들은 아라가초튼주에 마을 19곳, 아르마비르주 마을 두 곳, 아라라트주 마을 한 곳에 거주한다.
아르메니아 가톨릭교도들은 북쪽 지방인 시라크주에 마을 7곳, 로리주에 마을 6곳에 주로 거주한다.
몰로칸들은 로리주의 마을 10곳, 시라크주의 마을 두 곳, 게가르쿠니크주의 마을 두 곳에 거주한다.
대부분의 유대인, 모르몬교도, 바하이교도, 동방 정교도, 라틴 가톨릭교도 등은 수도 예레반에 거주한다. 예레반은 또한 쿠르드족, 이란인, 중동에서 온 임시 거주자들로 이뤄진 소규모 이슬람교 공동체 역시 존재한다. 외국의 선교 단체들이 이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다.
유럽 내 종교 중요성 정도 (2008/2009년 갤럽 조사 결과)
종교의 자유
이 부분의 본문은 아르메니아의 종교의 자유입니다.
2005년에 수정된 아르메니아 헌법은 종교의 자유와 종교를 따르고, 택하고, 바꿀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또한 '아르메니아인들의 영적인 삶, 민족문화의 발전, 민족정체성의 보존에 있어서 민족교회로서의 아르메니아 교회의 독점적 사명'을 인정하고 있다. 아르메니아 법률은 아르메니아 교회보다 다른 종교 집단들에 대한 종교의 자유를 어느 정도 제한을 두고 있다. 양심의 자유에 관한 법은 정교 분리를 확고히 하고 있으나 아르메니아 교회에 민족 교회라는 공식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전통 아르메니아 종교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이 부분의 본문은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입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성직자들의 행렬.
전승에 의하면, 기독교는 서기 1세기에 사도 바르톨로메오와 유다 타대오를 통해 이 지역에 처음 전래되었다고 한다.[6] 아르메니아는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최초의 국가가 되었는데 이 시기는 전통적으로 계몽자 그레고리오가 아르메니아의 군주이던 티리다테스 3세를 기독교로 개종하도록 설득한 때인, 서기 301년으로 추정한다. 이 이전에 우세 종교는 조로아스터교의 신학적 영향력 하에 있던 아르메니아 전통 신앙이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아르메니아인들의 국민교회이다. 오리엔트 정교회의 일부인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가장 오래된 기독교 종파 중 하나이다.[7] 그리고 '아르메니아 민족 정체성의 보호자'로 많은 이들에게 여겨진다.[8] "종교 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넘어,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신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이들이라는 아르메니아 국민 정체성의 발전에 있어 기초적인 핵심으로 전통적으로 여겨진다."[9]
아르메니아 신이교
이 부분의 본문은 아르메니아 신이교입니다.
아르메니아 신이교 혹은 헤타니즘 (Hetanism, Հեթանոսություն, Hetanosutyun)은 아르메니아 내 신이교 운동이다. 신자들은 스스로를 "헤탄" (Hetanos հեթանոս, 그리스어로 '비유대인'을 뜻하는 에트니코스 ἐθνικός 에서 차용한 옛 아르메니아의 교회 용어)이라 부른다. 이 운동은 20세기 초 정치 철학자이자 혁명가인 가레긴 느주데흐의 저서와 그의 신조 '체가크론 (민족 종교를 통한 회복) 등에서 그 기원을 찾아 올라간다. 1991년, 아르메니아학자 슬라크 카코스얀에 의해 '아리의 자손단'(Arordineri Ukht)이라는 이름으로 체제가 갖춰졌다. 아르메니아 신이교는 아르메니아 민족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띤다. 아르메니아의 민족주의 정당들 그 중에서도 특히 아르메니아 공화당과 아르메니아 아리아인 연맹 등에서 일부 지원을 얻고 있다.[10]
그 외 기독교와 그 외 종교
기독교 종파
유럽의 기독교 수치 (2010년)
가톨릭교회
이 부분의 본문은 아르메니아 가톨릭교회입니다.
아르메니아의 가톨릭교회는 라틴 교회 (캅카스 교황청 관리구 소속)와 아르메니아 가톨릭교회로 나뉜다. 2011년 인구 조사에서 가톨릭교도는 13,996명으로 잡혔다.
개신교
아르메니아 복음교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진 이래로, 아르메니아의 개신교 선교사들은 선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1년 인구 조사에서 복음주의자 29,280명 (인구의 1%)과 개신교 주류파 773명이 있었다.
동방 정교회
아르메니아의 조지아 교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아르메니아 내 동방 정교회 신자 7,587명이 있으며 주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조지아, 그리스 정교회이었다고 한다.[1] 러시아 정교회 공동체는 1912년에 축성된 예레반의 하느님의 거룩한 성모 전구 교회 주변으로 집중되어 있다.
몰로칸
201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아르메니아 내 몰로칸은 2,874명이라고 한다.
네스토리우스 교회
201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아르메니아 내 네스토리우스교도는 1,733명이라고 한다.
기독교 원시주의
여호와의 증인은 아르메니아 내 자신들 교인이 11,500명이라 추측하며, 2011년 인구 조사 당시에는 8,695명이었.[1]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2011년 말 아르메니아에 신자 대략 3,000명이 있었다고 주장했으며 2011년 인구 조사 당시에 241명이 밝혀졌다.[1][11]
야지디교
이 부분의 본문은 아르메니아의 야지디인입니다.
'아크날리츠'라는 마을에 있는 야지디 신전 지아라트
아르메니아 서부 지역에 거주하는 민족종교 집단인 야지디인들로 주로 이뤄진 아르메니아 인구의 대략 1% (201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23,374명)가 야즈단 종교 중 하나인 야지디교를 따른다. 여러 야지디인들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19세기와 20세기 동안 아르메니아와 조지아로 왔다. 야지디인과 아르메니아인 사이의 유대는 강한 편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야지디교 신전이 아크날리츠라는 작은 마을에 세워졌다.[12]
유대교
이 부분의 본문은 아르메니아의 유대인 역사입니다.
최근 아르메니아 내에는 한때 컸던 유대 공동체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는 750명이 존재한다. 유대인 대부분은 소련 붕괴 후 더 나은 생활 환경을 찾아 이스라엘로 떠났다.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높은 통혼 비율과 상대적 고립, 큰 신앙심 등이 지역사회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13]
이슬람교
이 부분의 본문은 아르메니아의 이슬람교입니다.
오늘날 아르메니아 국경 내 이슬람교도 분포 (1886년–1890년).
시아파
수니파
예레반의 도심 모스크 미나레트
아르메니아에 거주하는 아제르바이잔인 그리고 쿠르드인 등은 전통적으로 이슬람교를 따랐고, 한때 아르메니아 내 가장 큰 소수 집단이었던 아제르바이잔인의 대부분은 제1차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당시에 이 나라를 떠났다.[14][15] 2009년, 퓨 연구센터는 아르메니아 인구의 0.1%가 안 되는 대략 1,000명이 이슬람교도라고 추측했다.
18세기에 지어진 블루 모스크는 금요일 신자들을 위해 개방된다.
역사 기간 내내, 아르메니아인들은 긴 이슬람교의 지배가 있었음에도 많은 수가 이슬람교로 개종하지 않았다. 아랍의 정복 기간, 이슬람교가 아르메니아인들에 전파되었으나 아주 소수만이 개종을 했는데 기독교인들은 이슬람법에 따라 개종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헴신인이라 알려진 아르메니아계 이슬람교도 소수가 존재하며 대부분 아르메니아 밖인 터키와 러시아에 많다.
바하이교
이 부분의 본문은 아르메니아의 바하이교입니다.
아르메니아의 바하이교는 바하이교가 보기에 전신 종교인 바브교의 창시자 바압의 추방과 사형과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는 것에서 시작한다.[16] 바압의 처형이 벌어진 같은 해 아르메니아에 바하이교가 전래됐다.[17] 소련의 종교 탄압 정책 시대 동안, 아르메니아의 바하이교는 다른 바하이교 신자들과 교류가 끊어지고 말았다.[18] 하지만, 1963년 바하이 공동체들이 예레반[19]과 아르테즈에서 확인되었다.[20] 페레트로이카 이후, 아르메니아 내 첫 지역 단체 (Local Spiritual Assemblies)가 1991년에 형태를 갖췄고[21] 아르메니아의 바하이 신자들은 1995년에 첫 아르메니아 대표 단체 (National Spiritual Assembly)를 선출해냈다.[20] 2010년 기준, 아르메니아 내 바하이 신자들이 대략 1,200명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22]
종파
1990년대 초 이래로, 외국인의 선교사, 소수 종파 단체들이 아르메니아에 들어왔다.
힌두교
이 부분의 본문은 아르메니아의 힌두교입니다.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