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안동 임청각의 고성이씨 석주 이상룡(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가문의 독립운동가 아폽 분을 언급하여 난리가 났다고한다.대형버스도 들이닥칠거고,수십대의 차량이 방문할터이다.안동 하회마을 왔다가는 분들도 방문할터이고 .8.15 경축사를 하기전에 국무총리에게 안동 임청각을 방문해보라고 하여 총리도 전에 왔었다고 한다.고관대작들이 한번씩 얼굴을 내밀고 있지만 정작 석주 이상룡의 가계나 정보를 잘 모르고 온다.잘모르고 오면 후손과 예기를 해도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알아듣지를 못한다.보학(譜學)이란 것이 있는데,자기 집안 족보도 볼줄 모르는 사람들이 오면 모든 자료를 알아듣는데 한계가 있다.
석주 이상룡의 손부인 허은 여사는 왕산 허위 선생의 종질이다.아래에 왕산 허위 의병장의 가계도를 첨부하였다.석주 가문보다 왕산 허위 가문이 더하면 더했지 못한 집안이 아니란 예기다.허은 여사는 '청포도'와 '광야'를 쓴 저항시인 이육사와는 내외종간이다.'내외종간'이란 말을 못알아듣는 것이 요즘의 보통사람들이다.10년뒤면 고종사촌과 이종사촌,종형재(4촌형제)란 말도 못알아 듣는다.이육사도 외사촌 누님인 허은여사가 살던 곳(안동댐에 수몰된 지역이다,석주가 순국한 이후 후손들은 안동으로 귀향한다)을 방문하여 국수를 맛있게 먹고 갔다고 한다.'아리랑'이란 영화를 만들었던 나운규(독립유공서훈)도 임청각을 방문하여 얼마간 체류하고 갔다고 한다.
석주 선생의 외삼촌인 봉화 닭실마을 관행당 권세연(1대 안동 을미의병장)을 알면 좋겠고,2대 안동의병장인 척암 김도화는 석주선생의 고모부이다.아래 가계표를 참조하시라.봉화 닭실마을을 모르고,구미의 왕산 허위를 모르면 보통의 남자들은 수준이하가 된다.석주와 만주에서 함께 활동한 내앞마을의 일송 김동삼 선생은 가곡 '선구자'의 주인공이라고도 한다.
석주 선생의 손위 처남되시는 '백하 김대락'은 일가 50여명을 대동하고 만주로 이주하여 석주선생과 함께 독립투쟁을 하신 분이다.경북 독립기념관이 있는 내앞마을(川前里)에 '백하구려白下舊廬 )'가 있는데 한번 방문해볼 일이다.의성김씨 동족마을인 내앞마을 한곳에서 20여명이나 독립유공서훈을 받았다.그리고 한자를 좀 아는 분이라면 경북 독립기념관을 방문하여 '국역 석주유고'와 '국역 백하일기'를 사보시고,한자를 잘모르는 분이나 여성이라면 석주의 손부인 허은 여사의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 소리가>나 ,일송 김동삼 선생의 며느리인 이해동 여사의 수기인 '난중록-만주생활 77년 '이란 책도 사볼 일이다.경북 독립기념관에 전화해서 사서 보시고 방문해도 늦지 않다.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필자는 허은여사의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란 책을 밤새도록 읽으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며느리를 보는 분들에게 이책을 사서 며느리에게,또는 시집가는 딸에게 선물하라고 조언하는 책이다.
임청각 사랑마루에 가면 임진왜란 때 활약하여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제봉 고경명 의병장이 쓴 시판이 있다.제봉집에도 빠진 것이다.임진란 직전에 사돈의 회갑연에 참석하여 시를 읊은 것이다.
호남 광주땅에 제봉 고경명 의병장이 있다.학봉 김성일은 나주목사로 유일하게 외직을 지냈는데 당시에 나주에서 경현서원을 지을 때 제봉 선생과의 협조와 교류가 있었다.김성일의 인품을 그 때 겪어 본 제봉 고경명 선생은 장자(고종후)와 차자(고인후)를 데리고 임진왜란때 의병전쟁에 나가면서,16세난 넷째아들 고용후가 따라 나설려하자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우리는 죽으러 간다.집에 어머니와 누이,할머니도 계신다 .가족들을 데리고 경상도 안동땅으로 피난가되 학봉댁으로 가거라.학봉선생은 의리가 있는 분이니까 너의 가족들을 지켜줄 것이다".그래서 고용후는 가족 50여명을 대동하고 안동 학봉댁에서 피난 생활을 3년을 했고,란이 끝난후 한양의 과거시험장에서 학봉의 아들과 반갑게 해후햇다.학봉아들은 과거에 실패하였으나 고용후는 과거를 합격햇다. 그뒤 10년뒤에 고용후가 안동부사가 되어 안동에 왔을때 학봉의 부인과 며느리와 아들을 모시고 잔치를 열어 주었다고 한다."그 때 그대들이 없었다면 오늘 어찌 내가 있으리오"하면서...
제봉 고경명의 동생은 제주도에 군마를 구하러 갔다가 풍랑을 만나서 순절했고,고경명과 장자,차자가 금산전투에 유정대사와 같이 참전하였다.관군이 먼저 무너지고 의병과 승군은 금산전투에서 전멸을 했고 '칠백의총'에 붇혔다.금산에서 억지로 살아나온 장남인 고종후는 남은 전답을 팔아서 '복수의 의병'을 다시 일으켜서 진주성으로 간다. 호남을 지킬려면 남으로 후퇴한 왜놈들을 진주성에서 막아야 하는 때문이었다.권율장군은 진주성을 비우라고 햇으나 ,의리가 있는 최경회,고종후 ,김천일 장군등은 왜군과의 7일간의 혈투끝에 분하게도 전멸한다.그 원혼을 달래려고 진주 유등축제가 생긴 것이다.(제봉종택과 기념관을 검색해보시라)
석주 선생의 동서(백하 김대락의 또다른 매부)가 유명한 향산 이만도 예안의병장이다.경술국치때 단식순절하신 분이다.향산 이만도와 봉화 다실마을의 권세연은 예천의병장인 박주대(필자의 고조부)와는 친구사이다.박주대의 종질녀는 권세연 의병장의 며느리가 된다.생질이 백하 김대락이고 생질서가 석주 이상룡 선생이다.
안동은 삐까번쩍한 볼거리는 하나도 없다.그러나 위의 내용이 바로 '안동정신'이다.충과 효를 실천한 곳이고 예의를 지키고 법도를 존중하고 지켜온 고장이 바로 경북 북부권(안동권이다.. 안동은 볼거리는 하나도 없는데,안동정신을 알고 가면 몇번을 다시가서 둘러봐야 할 곳이다.퇴계선생 이후 수령들의 공덕비가 한개도 없는 곳이 바로 안동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말씀 드리고 싶다.현대 정치인들이나 광주분들이 망월동은 알아도 제봉 고경명 의병장과 종택,기념관을 모른다.언제 거기도 방문해보시고 언급을 해주시라.구미의 왕산 허위 선생과 백두대간 고갯마루에서 처절한 전투와 눈내린 고갯길을 엎어지고 자빠지며 행군했던 의병들도 언급해주시라.의병과 독립운동가들이 미친 놈은 아니지 않습니까?
<백두대간 의병전쟁 답사회>
<영남 이순신연구소>
예천 박갑로 010-2799-5670



위의 파란색 둥근 원 안의 이육사 시인의 딸이 이옥비 여사이다.안동의 이육사 문학관에서 강의를 하고 계신다.
안동 임청각을 방문하기전에 고향의 독립동동하신 분들,의병장의 이름하나는 알고가면 아니좋을까?
고향의 의병장이나 독립운동가들 이름하나 모르면 친일파도 욕하지 마시고 공무원이나 고관대작들이 도둑질을 해도 욕하지 마시라.
친일하면 어떻고 고관대작들이나 공무원들이 도둑질하면 어떻습니까?국민이 1년에 책한권 안보고 무식한데요...뭘...
첫댓글 나는 누가 스크렙해갔나하고 궁금했었는데 범인이 이장희 선생님이군요.ㅎ
다른 분의 카페에 스크랩 되 있는 글을 박갑로씨 글인 줄 알고 재스크랩 해왔습니다.
스크랩한 글은 아무리 재스크랩해도 원본의 출처만 남으니까요.
저는 본인이 직접 쓴 글이라 생각되는 글은 스크랩하거나 복사를 하더라도 출처를 반드시 남깁니다.
그러나 공공적인 성격의 신문이나 잡지의 내용은 출처를 안남깁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은 직접 신문이나 잡지를 찾아들어가서 직접 복사를 합니다.
저도 제가 올린 글은 다 스크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장희 예.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