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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1: 10 밤에 다니면 - 요 11: 13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상)
요 11: 10 밤에 다니면 -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고로 실족하느니라. )
밤에는 빛이 없으므로 사물을 온전히 분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밤에 활동한다면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
1]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칼빈(Calvin)은, 윗절(9 절)의 "낮에 다닌다"는 말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혹은 그의 명령)대로 다님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밤"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과 말씀에 관계없는 환경과 사정을 가리킨 것이다.
곧,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 없이 인간 자신의 심사(心思)에 따름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게 행하는 인간은 실족할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인간 자체 안에는 참다운 빛(진리)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 밖에서(하나님에게서) 빛을 받아야만 된다(Grosheide). 예수님은 땅 위에서 하나님의 사명과 말씀 가운데서 행하시는 것인 만큼, 밤에 행하는 것과 같은 일은 전연 없으셨다.
요 11: 11 깨우러 가노라. -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
죽음을 잠자는 것에 비유하신 것은 죽은 사람의 영적 상태를 의미하신 것이 아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죽은 영혼도 의식을 가진다(눅 16장).
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앞에서 빛과 어둠에 대한 말씀을 하신 뒤를 말한다.
빛(light)은 하나님께서 첫째 날 만드신 창조물이다.
* 창 1: 3 -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없을 때 세상은 질서가 없는 혼돈 그 자체였지만 빛을 통해 어둠과 혼돈이 물러가고 세상에 질서가 생기게 되었다. 이 때문에 빛은 생명의 원천으로 묘사되었다.
* 전 11: 7 -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구원과 행복으로 묘사되기도 하였다.
* 시 97: 11 -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 도다.
* 사 45: 7 -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 미 7: 8-9 – 8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9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그의 진노를 당하려니와 마침내 주께서 나를 위하여 논쟁하시고 심판하시며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공의를 보리로다.
하나님의 첫번째 명령은 '빛'과 '존재'(있으라)에 관한 것이었다. '빛'은 때로 열, 불, 태양, 달빛, 별빛, 번개불 등 구체적인 발광체 혹은 발광 현상을 가리키기도 한다.
* 사 44: 16 - 그 중의 절반은 불에 사르고 그 절반으로는 고기를 구워 먹고 배불리며 또 몸을 덥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 사 31: 9 - 그의 반석은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물러가겠고 그의 고관들은 기치로 말미암아 놀라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
* 욥 31: 26 - 만일 해가 빛남과 달이 밝게 뜬 것을 보고
* 삼하 23: 4 -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 계 22: 5 -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 사 13: 10 -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
* 렘 31: 35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였고 바다를 뒤흔들어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 욥 27: 3 -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이 아직도 내 코에 있느니라.
성경에서 하나님은 빛으로 상징되었으며, 하나님은 가까이 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계시는 분으로 묘사되었다.
* 시 27: 1 -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 욥 24: 13 - 또 광명을 배반하는 사람들은 이러하니 그들은 그 도리를 알지 못하며 그 길에 머물지 아니하는 자라.
* 요일 1: 5 -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 딤전 6: 16 -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도 빛으로 표현되었다.
* 시 119: 105 -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 잠 6: 23 -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에 생명을 주시러 오신 빛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예수님도 자신을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빛으로 소개하셨다.
* 요 1: 4 -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 요 8: 12 -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요 9: 5 -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 요 12: 46 -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바울은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는 세력을 주의해야 하며, 빛들의 아버지께서 감추인 것을 드러내실 때까지 빛의 갑옷을 입고 선한 싸움을 싸우도록 권면하고 있다.
* 고후 11: 14 -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 고전 4: 5 -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 롬 13: 12 -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2]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예수께서는 후에 나사로를 ‘친구’(필로스fivlo")[사랑하는 자]라고 부르셨다(11절).
"잠들었다"는 것은 성도의 죽음을 의미한다. 죽은 자는 단지 몸의 상태가 잠자는 것과 비슷하다. 그것은 부활의 소망을 의미한다.
잠자는 자를 깨울 수 있듯이, 주께서는 마지막 날 죽은 자를 깨우실 것이다.
성도의 죽음은 슬픈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죽어 없어지는 멸절의 사건도 아니다. 성도의 죽음은 마지막 부활의 소망을 가진 채로 잠드는 것이다.
3]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잠들었다가 깨는 것처럼, 성도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때가 온다.
벴겔(Bengel)은 말하기를, "경건한 자의 죽음은 하늘나라의 방언으로는 잠듬이다"라고 하였다.
요 11: 12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
예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나사로가 잠들었다는 말을 오해한 것 같다.
1]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일반이다.
제자들의 오해는, 결국 모든 죄인들의 습성이 어떻다는 것을 보여준다(Grosheide).
"내가 깨우러 가노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보아서도, 잠들었다는 말이 보통 수면을 의미하지 않는 사실을, 그들은 왜 몰랐을까?
보통 수면이면 다른 사람들도 깨울 수 있지 않았으랴? 하필 예수님이 그것을 깨워야 될까? (Greijdanus).
요 11: 13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생각하는지라. )
예수는 나사로의 죽음을 잠으로 표현하였지만, 제자들은 잠들어 쉬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1]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1)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
창세기 1장 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라고 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어렵게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가?"라는 문제다.
하나님이 형상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사람처럼 눈, 코, 입이 있고, 손과 발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시다.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는 분이라고 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말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하나님의 형상'도 영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육체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찾을 수 없다. 그러면 육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완전히 배제되는 것일까?
창세기 9장 6절을 보면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라고 말한다.
몸과 영적인 부분과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즉 몸이 영의 도구로서 역할을 언급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영적인 부분을 일컫는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육적인 부분이 얼마나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지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어떤 유형의 형상으로 고정하려고 부단히 애썼으며 지금도 애쓰고 있다.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성을 미리 아셨다.
둘째는 구성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을 확실히 알 수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형상의 참된 의미는 성경을 통해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은 구조적인 면이 아니라 관계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부분은 인간에 관해 말하기보다는 인간 창조에 관해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을 자신의 형상에 따라 만들기로 결심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의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하나님의 결의("∼하자")와 상세한 규정(하나님의 형상에 따른 창조), 이 두 특징적인 요소는 창조주 하나님이 자기 자신과 관계되는 그 무엇을 만들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즉 창조주 하나님이 자신과 상응하는 피조물, 그분이 말씀할 수 있는 피조물, 말씀에 귀 기울이는 피조물을 창조했다는 데에 하나님의 형상의 근본적인 본질이 있다.
즉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자신과 상응하도록, 다시 말하면,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에서 무엇인가 일어날 수 있도록 창조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찬양을 부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성경의 진리에 근거하고 있다. 삶의 고통이 너무 커 보이거나 남들과 비교해 볼 때 나의 존재가 무가치해 보인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는 것은 아닌가 여겨진다.
당신의 존재 가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만든 존재이기에 자신을 사랑할 가치가 충분하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써 인간을 마지막으로 고찰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느냐? 라는 것이다. 아담의 타락 이후에 인간을 하나님께서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 10)라고 한탄하고 있다. 타락 이후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인격적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담고 있다. 이것은 영혼의 단순성과 영성, 불가견성, 불사성 등의 성질들과 지, 정, 의의 심력 그리고 사람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을 말한다. 인격적인 부분을 일컫는다. 아담의 타락 후 이러한 것들이 온전하지 못하지만, 그 능력이 온전치 못할 뿐이지 그 영역이 완전히 소멸된 것이 아니다.
고전 11:7에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놀라운 지적이다. 타락 이후의 인간을 향하여 남자를 하나님의 형상이라 일컬으며 여자의 순종을 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온전치 못하더라도 그 형상의 모습은 담고 있으며 그 힘이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들을 향하여 손가락을 드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타락으로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들을 향하여 손바닥을 들을 때이다. 회복하며 바로 세워지기 위하여 교회 공동체 안에서 축복하고 격려하며 서로 돌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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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인생길에는 꽃길이 따로 없습니다. 건강 하면 꽃길 입니다. 오늘도 줄겁고 신나게
화이팅 하세요. 인연 이란 산길 같아서 매일 오고 가지 않으면 잡초가 무성 해진 답니다.
오늘도 서로 안부를주고 받으며 건강 잘 챙기시 고요 향기로운 하루 보내세요
사랑 합니다. 가는곳 마다 예쁜 사랑 가슴에 담고 행복 넘치는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