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노년(老年)이 아름답다]
노인'이라고 하면 어릴 적 동화책에서 등장하던
고목나무 밑에 지팡이 짚고 서 있는
산신령을 연상하게 된다.
하얀 머리에 하얀 수염, 기품 있는
얼굴엔 웃음 띤 환한 모습이다.
노인임에도 힘이 있어 보이고
그러면서도 인생을 달관한 도인의 자세이다.
‘이어령씨’에 의하면 원래 한자 노(老)는
허리 굽은 늙은이가
지팡이를 짚고 있는 모습을 본뜬
상형문자(象形文字)라고 한다.
몇 천 년을 두고 내려오는 동안에
그 자형(字形)이 많이 변해서인지
아무리 보아도 초라한 늙은이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원로(元老)니, 노숙(老熟)이니
하는 말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글자의 인상은 매우 기품이 있어 보인다.
실제로 노인이란 말이 꼭 늙어 꼬부라진
사람만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편, ‘고자(孤子)’도 ‘노자(老子)’와 마찬가지로
허리가 굽은 노인을 가리키는 문자였다고 한다.
돌아가신 분을 고자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매사를 신중하게 생각하고
사려 깊게 행동하는 노인을 뜻했던 고자는
오늘날 ‘생각하고 헤아린다.’는 뜻으로 변하게 되었다.
많이 변하기는 했지만 우리는 노인이라는 말이
아직도 점잖게 그리고 권위 있게 들리는 나라이다.
노인이라는 말이 가지는 권위와 기품은
영어의 '올드맨'과는 또 다르다.
말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의 경우처럼
그렇게 위엄이 있고
당당한 풍모를 한 노인들은 아마도
이 지상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처럼 초현대식 고층 빌딩이 늘어선 거리를
효도관광의 띠를 두른 버스가 질주하고 있는
그런 도시도 세계에 없을 것이다.
역대 화폐 속에 나타나는 인물도
대개 노인이었음을 볼 수 있다.
구한말인 지난 1878년 우리나라에
근대식 은행업무가 개시된
이후 지금까지 100여종의 은행권이 발행됐는데
대부분의 주요 화폐엔 인물상이 들어가 있다.
등장한 주요인물로는 수로인상과 대흑천상을 비롯하여
초대대통령 이승만,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조선조의 대학자인 율곡과 퇴계 등으로
존경하며 기릴만한 분들이다.
이와 같이 노인은 우리생활에 모든 주요한 일을
관장하는 어른으로서 존경의 대상이 되어 왔다.
젊었을 때는 모양도 내고 깔끔하던 사람들도 늙어지면
아무래도 달라지게 된다. 주름살이 지고 동작이 느려지고
아름다운 피부가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목욕이나 이발로
몸을 단정히 하고 옷도 깨끗하게 입고
소지품도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생활하면
늙음 그 자체가 누추하고 보기 싫은 것은 아니다.
몸가짐은 나이 들어갈수록 잘 해야 한다.
젊었을 때는 아무렇게나 해도 추(醜)하고
지저분하다는 말은 듣지 않지만 늙으면
조금만 몸가짐을 흐트러뜨려도 흉(凶)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오리려 늙어 갈수록 몸을 항상 청결하게 하고,
안 쓰는 물건은 잘 정리해 놓고,
주변을 깨끗이 해야 한다.
특히, 남자보다 여자가 더 몸가짐을 잘 해야 한다.
옷을 입는 것보다는 깔끔하고 정갈하며
몸 전체와의 조화에 신경 써야 한다.
노인은 노인으로서 풍기는 기품이 있어야 한다.
못 되도 화폐까지 못나온다 하더라도,
한 세대를 살아가는 생활인으로서
어른스러움 정도는 간직해야 한다.
그래야 '어르신'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사외의 뒷전으로 물러 설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전면에 나서서 설쳐 댈 필요도 없다.
자연스러운 곳에 스스로를 지켜 가면 된다.
불평불만을 남에게 늘어놓으며 감정을 앞세워 말하는
모습은 아름답지 못하다. 느긋한 맛이 없이
서두르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변명을 늘어놓으려 하지 말고
되도록 천천히 침착하게 말하고,
말수도 가급적 줄이는 것이 좋다.
또한 늙을수록 표정을 잃기 쉬운 점에 유의해야 한다.
표정을 잃은 노인의 얼굴은 삶의 의욕을 잃은 모습과 같다.
항상 여유 있고 부드러운 표정을 가지며
밝은 웃음을 웃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어린이에게 맞는 옷이 있고 언어가 있듯이
노년에 어울리는 삶의 방법이 있다.
젊은이와 꼭 같은 방법으로 미(美)를 추구할 필요는 없다.
노인으로서의 아름다움, 노인이 간직하고 있는
문화, 그것을 어떻게 하면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60대는 인생의 종말이 아니다.
아직도 갈 길이 아득하게 남아 있는 '과정'이다.
“노령을 인생의 황혼으로만 인식해서 석양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진리를 모르거나,
외면하는 사람도 있다.”
노령화를 필사적으로 피하기 위해
노화를 전면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반면 우리가 지금 추측하는 것보다
더 길어질지도 모를 노년에 순응해 더 건전하고
건설적인 노년에 대한 비전을 형성하는 사람도 있다.
모든 세대들은 노년에 이르러 죽는 날까지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해야 하며
바로 그것이 그들의 가장 오래 지속되는 유산이 돼야 할 것이다.
이제 오랫동안 우리들의 사고방식을 지배해온 경직된
'인생의 세 가지 틀‘을 깨고 나올 필요가 있다.
청년기(靑年期)에는 공부, 중년기(中年期)에는 일과 자녀양육,
노년기(老年期)에는 퇴직으로 삶의 형태를
못 박는 것은 점차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노년기에 있는 사람들이 진짜 공헌을 할 수 있는 역할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사회에서도
은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
당당하고도 겸허하며, 조용하면서도 활력 있고,
너그러우면서도 근엄한 존경받는 노인이 되자.
머지않아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변하게 될 것이다.
노인은 인생의 완숙(完熟)함을 보여주는 세대다.
깨끗하고 너그럽고 그러면서도
여유가 넘치는 당당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
. 흔히 노인이 되면 어린아이와 같아진다고 한다.
사람이 사색을 하지 않으면 본능만 남게 된다
. 생각하는 노인이 되자. 그래야 늙어도 아름답다.
<생각하는 노년이 아름답다/김성순著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