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주간 묵상 자료집
고난 주간에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자신의 죄를 깊이 참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에 감사하며, 영적으로 성숙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 자료는 마포제일교회 성도님들의 고난의 한 주간을 살아가시면서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전 행하신 한 주간의 사역을 묵상하면서 의미 있게 보내고자 정성껏 준비된 자료입니다. 성도님들은 요일별로 자료를 만나실 수 있으십니다. 깊이 읽고 묵상하시면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주님의 그 큰 은혜를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고난 주간에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자신의 죄를 깊이 참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에 감사하며, 영적으로 성숙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서 론 고난 주간의 의의
기독교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의 일생 중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 그리고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 생애 중심이다. 그리스도의 일생 중 십자가를 앞둔 1주간을 마지막 한 주간으로 종려주일에 시작하여 부활주일 새벽닭이 울 때까지라고 한다.
교회가 일반적으로 고난주간을 기념한 것은 3세기 중엽부터라고 한다. 이 주간에 빵과 소금과 식물성의 식물들과 물 이외 일체의 육류음식을 금하고 금요일은 금식을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고통을 당하고 죽은 후 부활하실 것을 세 번이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한 후에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실 것을 말씀하셨다(마16:21-28, 막8:25-30, 눅9:21-27).
2. 변화산상에서 변화하신 후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우리라고 하셨다(눅9:44-45, 마17:22-23, 막9:30-31).
3.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인자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며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여 침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삼일만에 살아나리라고 하셨다(막10:32-34, 마20:18-19, 눅18:31-34).
예수의 고난은 지상 생활 중 마지막 한 주간 즉 최후의 만찬과 겟세마네동산에서의 고뇌, 체포, 재판, 십자가에 못 박히심, 죽음 그리고 장사를 포함한 사건들이 고난의 절정을 이루었다. 고난 속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막19:45, 마2028)로 그의 생애를 통해 나타났으며, 그의 피는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린 것이라(막14:24)고 했다. 예수가 고난을 피할 수 없음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눅24:27, 46)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만 했다(막14:36, 마26:9, 눅22:42).
예수가 제자들에게 그가 고난받을 것을 말했을 때 제자들은 당황했으나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모든 것을 깨닫게 되었고 예수의 죽은 대속제물 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게 되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통에 동참하는 자임을 자각하고(롬8:17, 고후1:5, 빌3:10) 예수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증거하기 위해 고통을 달게 받았다. 바울은 성자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할 때 그 역시 새로운 삶으로 부활하는 것을 확인했다(골1:24, 롬8:28).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직접 목격했다고 주장하면서(벧전1:11, 4:13, 행3:18) 비록 그리스도의 종들이 불의한 고난을 당한다해도 주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벧전2:21).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는 고통을 통해 완전해졌으며(히2:10), 고통의 시험을 받으셨으며(히9:26) 자기 피로서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히11:12) 라고 했다.
누가가 사도행전 첫머리에 예수의 죽음과 고통을 통해 해를 받으신 후(행1:3) 라고 표현함으로 많은 교부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께 당하신 고통을 “고난” 또는 “수난”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3세기 중엽에는 그 용어가 일반화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사는 기독교사상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었는데 이 수난기사를 중심으로 복음이 전파되었고 복음서가 구성되었고 교회가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교회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재음미하고 오늘의 역사 속에서 조명해야 한다.
주일
예루살렘 입성
사건들 성경구절
사건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주일 예루살렘 입성 예수를 찾아온 헬라인 베다니로 돌아오심 우시는 예수님 21:1-11 11:1-11 11:11 19:28-44 19:41-44 12:12-19 12:20-36 12:36
승리의 입성(the Triumphal Entry)이 지닌 의미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이 주는 의미는
첫째로, 메시야 선언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이번 외에도 예수는 여러 차례에 걸쳐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적이 있지만 이번 방문은 여느 때와는 다른 매우 중요한 구속사적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이번 장문은 선지자 스가랴 예언한(슥9:9) 메시야 예언의 성취로서 진정 예수가 공의와 구원을 베풀며 겸손한 왕으로 이 땅에 오실 메시야이심을 만민에게 선포한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는 승리의 입성이었다.
여기 예수의 모습은 마치 정복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왕이 위세 당당하게 그의 성읍으로 개선하는 위용을 연상시킨다. 예수는 이제 며칠 후 십자가 형틀에 못 박혀 가장 참혹하게 죽으실 것이었고, 이는 당신을 추종했던 무리들에게 쓰디쓴 실패와 암담한 좌절을 맛보게 할 것이었다. 하지만 장사 지낸 바 되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을 정복하신 위대한 승리자요 당신을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시는 자비로우신 생명의 주이심을 입증해 보이실 것이었다(요11:25).
셋째로, 예수의 입성은 겸손하신 왕의 면모를 보여준다.
예수는 천군만마(千軍萬馬)대신 나귀를 타셨으며, 거친 창검 대신 종려가지의 흔들림 속에서, 요란한 군악대의 나팔 소리보다는 아이들의 찬양 소리의 환호를 받으며 입성하셨다. 예수는 사랑과 공의로 충만한 당신의 나라를 다스리시되 무력이나 권모술수(權謀術數)로서가 아니라 자신을 죽기까지 낮추사 그 백성들에게 참되고 영원한 복락을 선사하시는 평강의 왕이셨던 것이다(사9:6).
넷째로, 예수의 입성은 재림의 성취를 확증한다.
약 500여년 전에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바가 이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의 모습을 통해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유대인의 회복(롬11:25-29)과 세상의 불신자들에 대한 심판 그리고 택한 자들을 불러모으심(마25:31-46)등의 예언 또한 어김없이 성취될 것이다. 주님은 문자 그대로 고난을 감당하기 위해 초라한 인간의 몸을 입고 초림하셨듯이, 또한 문자 그대로 심판주로서 영광 가운데 재림하실 것이다.
생각해봅시다. 1. 예수님이 승리의 주님으로 입성한 것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2. 사람들의 “호산나”소리를 들으면서 예수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3. 오늘 우리 마음과 교회를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보신다면 무엇을 느끼시겠는가?
월요일
권위의 날
사건들 성경구절
사건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월요일 무화과나무 저주 성전청결 많은 무리를 고치심 베다니로 돌아오심 21:18-19 21:12-13 21:14-16 21:17 11:12-14 11:15-18 11:19 19:45-48
무화과나무에 대한 저주
유대인들에 대한 심판, 무화과나무는 포도나무와 더불어 이스라엘을 상징한다(호9:10). 그러므로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는 입술로는 하나님을 섬기느라고 요란하게 떠들면서 실상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였던 당시 유대인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상징한다(마15:6). 당시 유대인들은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다운 면모를 상실한 채, 선민으로서의 특권 의식에만 사로잡혀 이방인들에 대해 독선적(獨善的)이고 배타적(排他的)인 태도를 나타내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막론하고 당신을 믿는 믿음 안에서 새로이 탄생할 영적 이스라엘을 세우고자 하셨다.
여기 수록된 심판 선언은 비단 당시 유대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겉으로는 신앙인인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모든 종교적 위선자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한다. 입술로는 신앙 고백을 정확히 암송하되 그 고백에 합당한 거룩한 생활을 수반하지 않는 자들, 혹은 세례를 받고 성찬식에 참예하며 또한 주일마다 빠짐 없이 교회에 출석하되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진정한 사랑을 실천해 보이지 않고, 성령의 열매를 실제적 삶 속에서 맺지도 않는 자들은 살아 있다는 이름을 가졌지만 실상은 죽은 자들이다(계3:1).
예루살렘 성전의 의미
① 예루살렘 성의 중심.
예루살렘 성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이스라엘의 수도로서 확고한 위치에 있으며 그 중에서도 예루살렘 성전은 ‘여호와 신앙’이 생활의 근간을 이루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중심지라는 의미를 가진다.
② 이스라엘의 신앙의 중심지.
‘성전’은 항상 유대교의 중심이었으며 상징이었다. 유대교의 뿌리는 바로 이 성전이었으며 이방인을 위한 구원의 이야기도 그 시초는 성전에서 시작되었음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③ 성도의 영적 중심지.
‘성전’은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 유대교의 중심이라는 의미를 가지나 이보다 더 심오한 의미를 갖는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성전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나는 장소였다. 하지만 신약 시대에 이르러 이 만남의 장소는 어느 한 장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유대교에 있어선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의 장소가 사실상 예루살렘 성전에 국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느나, 은혜의 복음이 이방인에게까지 전파된 오늘에 있어서는 어떤 장소를 불문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모인 곳이면 어디나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가 되는 것이니, 이는 하나님의 백성은 곧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 때문이다(고전3:16, 6:19).
이와 같이 성전의 깊은 의의를 염두에 두면, 성도는 모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성전’을 각자의 믿음 깊은 곳에 지니고 있는 셈이다. 즉 ‘성전’은 나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징한다. 따라서 성도는 그 관계를 아름답고 신뢰성있는 것이 되게 하기위해 각자의 성전을 정결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생각해봅시다. 1. 혹시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우리를 쫓아내시려 할 때는 없었는가? 2.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는데 무슨 뜻일까? 3. 나의 신앙이 저주 받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같아서 열매 없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지는 않는가?
화요일
충돌의 날
사건들 성경구절
사건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화요일 무화과나무 마름 예수의 권위에 대한 도전 예루살렘 성전 멸망 예언 그리스도 재림의 표적 유대인들의 공모 가룟유다의 반역 과부의 두 렙돈 21:18-22 21:23-27 24:1-2 24:3-42 26:1-5 26:14-16 11:20-26 11:23-27 13:1-2 13:3-33 14:1-2 14:10-11 12:41-44 20:1-8 21:5-6 21:7-36 22:1-2 22:3-6 12:1-4
악한 농부의 비유가 지닌 영적 의미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의 하나님을 향한 적극적 반역을 질타하고 있는 악한 농부 비유를 통해 다음과 같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① 하나님의 은혜와 심판.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상징한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해치는 야생 동물을 막기 위해 가시나무 울타리로 ‘산울’을 두르고 즙짜는 구유와 망대를 갖추어 주었다는 것은(마21:33), 하나님이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백성들의 영적 성숙을 인도할 수 있는 각양 여건들을 마련해 주셨음을 가리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얻은 기회와 은사를 도외시하는 자들에게는 진멸의 심판이 임하게 되다는 뜻이 담겨 있다(마21:4).
②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
이 비유에서 농부들은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을 상징한다. 그들은 포도원을 자유로이 경작할 수 있는 기회와 특권을 보장받았으며 다만 일정한 세(稅)만 바치면 되었다. 하지만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망각하고 특권을 남용하여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에만 급급하였다. 그리하여 백성들의 고혈을 빨며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이 아들이신 그리스도 마저 없애버리려 하였다(마21:39-43).
③ 예수의 수난과 승리.
악한 농부의 비유에서는 주인의 아들로 상징된 예수께서 죽임을 당하는 내용으로 끝났다. 하지만 곧이어 전개되는 두 종류의 ‘돌’의 비유는 첫째로,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의미한다(마21:44). 그리고 둘째로는, 예수를 떠나서는 그 어디에도 구원이 없으며 예수를 거역하고 배척하는 자에게는 오직 멸망만 주어질 뿐임을 시사한다(마21:44). 요컨대 예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 수난이 임박하였음을 절감하고 있었으되, 당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완수한 후 저 영광의 승리로 나아가기 위해 자발적으로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셨던 것이다.
생각해 봅시다. 1. 악한 농부는 왜 아들을 주였는가? 2.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망각하고 있지는 안는가? 3.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사명으로 사욕을 채우고 있지는 않는가?
수요일
휴식의 날
사건들 성경구절
사건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수요일 기록이 없음 * 복음서에는 아무런 사건도 기록되지 않았음. * 아마도 예수님과 제자들은 휴식과 가르침으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 아마도 적들은 예수를 죽이려는 모의를 더 깊이 진행시켰을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
어느 날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를 이리저리 거닐고 계시다가 죄인들을 가득 담은 새장을 가지고 있는 사탄에게 이르렀다. “루시퍼, 거기에 무엇이 들어 있지?” “세상이 들어 있습니다. 온 인류를 이 새장 속에 집어넣었지요.” “그래, 그러면 그들을 어떻게 하려고 하지?” 사탄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이들에게 모든 것을 약속해줄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들의 가슴을 쪼개고 이들의 영혼을 파멸시켜 그들을 하나님 없는 지옥으로 보낼 겁니다.” “사탄아, 내가 그들을 갖고 싶은데.” “예수님, 당신은 이들이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이들은 당신의 약속을 깨뜨리고 당신이 흘린 피 안에서 춤을 추며 당신의 가슴을 찢어버릴 겁니다. 당신은 그들이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원한다면 당신은 그들을 위해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네게 금을 주겠다. 이 우주의 모든 금을 말이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안돼요,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를 네게 주겠다. 땅 위의 모든 산들과 바다들을 주겠다.” “그것도 충분치 않아요” “그렇다면 육지와 섬들까지도 주겠다. 이 모든 것들을 네게 주고 내 백성들과 바꾸고 싶다.” “그것도 안돼요. 어림도 없어요.” “그렇다면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나는 당신의 심장이라는 금을 원해요. 나는 당신을 원합니다. 난 당신이 십자가에 달리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런 값을 치르고 싶지 않을 걸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없이 그의 왕복을 벗기 시작하셨다. 그분은 이 땅에 오셔서 완전한 삶을 사시고는 험한 십자가로 가셔서 피흘리시고 죽으셨다. 그분은 십자가를 통하여 천국에 이르는 길을 놓으셨다.
생각해 봅시다. 1. 예수님은 이 날 제자들과 무엇을 하였을까? 2. 예수님의 피흘리심이 나와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 3. 내가 사탄에게 공격당할 가장 약한 부분은 무엇인가?
목요일
준비의 날
사건들 성경구절
사건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목요일 최후의 만찬 제자들의 발을 씻김 베드로의 부인 예고 중보의 기도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26:20-29 26:31-35 26:36-46 14:17-25 14:27-31 14:32-42 22:14-23 22:24-27 22:28-34 22:39-46 13:1-38 13:2-17 13:36-38 17:1-26 18:1
최후의 만찬
주께서 제자들과 더불어 가지신 최후의 만찬(마26:26-29)은 성찬식(聖餐式)의 기원이 되었다(고전11:23-26). 이 성찬식은 세상 죄를 지시기 위해 유월절 어린 양으로(막14:22-26)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신 주님의 대속의 은혜를 기념하고 감사하기 위한 예식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성찬 예식을 통해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랑을 깨닫고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성도가 하나라고 하는 지체의식을 체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범하는 죄에 빠지게 되며 또한 자기 죄를 먹고 마시는 격이 되고 만다(고전12:23-34). 이 성찬 예식은 초대 교회 당시만 해도 함께 떡을 나누며 주의 대속의 은혜에 감사하고 헌신을 다짐하며 또한 성도 상호간의 결속을 곤고히 하기 위한 하나의 애찬(愛餐)의 형식으로 지켜졌다.
성만찬과 성찬식
기독교 사전을 살펴보면 ‘성만찬’과 ‘성찬식’이 동일한 단어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 때 재정하신 성만찬을 오늘날 개혁 교회가 계승, 발전시켜온 성찬식의 실제적인 측면과 관련시켜 살펴보며, 특히 성찬식이 지니고 있는 신앙적 의의, 목적, 자격을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① 성찬식의 의의
성찬식은 예수께서 친히 명하시고, 사도들이 전한 것으로 예수의 피로 구속함을 얻은 성도들이 구속의 은혜를 경험하기 위하여 참여하는 은총의 성례전이라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더 나아가 성찬식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나눔으로써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교회를 이루며 성도와 성도간의 떡을 떼는 교제를 통하여 서로 하나가 된다는 데에도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② 성찬식의 목적
성찬식을 행하는 목적은 ‘기념’과 ‘전도’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바, 우리를 죄악과 멸망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속죄의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을 재림하실 때까지 기념하며(고전11:26)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러한 기념과 전도의 목적 이외에도 성찬식을 거행하는 것은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말미암아 정욕으로 인하여 썩어질 세상으로부터 해방되고 그대신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의 서품을 소유케 된다는 깊은 영적 의미를 갖는다.
③ 성찬식의 참여 자격
기본적인 자격은 세례를 받고 중생한 성도들로 제한한다. 더 나아가 세례를 받았더라도 양심에 가책이 될만한 죄를 지니고 있는 사람은 자발적인 불참을 요구받는다(고전11:29). 모든 죄를 회개하고 용서와 안위를 받은 이후에 참례 할 수 있다.
생각해 봅시다. 1. 대속의 은혜에 감사하며 헌신을 다짐해 보자. 2. 나는 십자가 대속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가? 3. 제자들의 발을 씻긴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해 보자
금요일
고통의 날
사건들 성경구절
사건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금요일 체포 베드로의 부인 가롯유다의 자살 로마 병정의 희롱 골고다로 끌려가심 십자가 처형 백부장의 고백 예수를 장사지냄 26:47-56 26:58-75 27:3-10 27:27-30 27:31-34 27:35-50 27:51-56 27:57-61 14:43-52 14:54-72 15:16-19 15:20-23 15:24-37 15:38-41 15:42-47 22:47-53 22:54-62 23:26-32 23:33-46 23:47-49 23:50-56 18:2-12 18:15-27 19:17-30 19:38-42
십자가형
① 십자가형의 시행 과정
죄수가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그 죄수는 여러 단계의 참혹한 형 집행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 십자가형에 언도된 죄수를 빈사 상태에 이를 정도로 채찍질한다(막15:15).
㉡ 다음에 죄수는 십자가를 지고 형장까지 운반한다(마27:31-32).
㉢ 형장에서 죄수의 옷을 벗기고 죄패를 머리위에 붙인다(마27:37).
㉣ 십자가에 못박는다.
십자가에 달린 사형수들은 대개 사흘 정도 버텼으나 일주일을 버틴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형수를 십자가에서 내리기 전에는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뼈를 꺾기도 했다.
② 십자가의 의미(상징)
로마인들이 십자가형을 가장 참혹하고 수치스러운 형벌로 혐오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유대인들도 그렇게 생각했다(고전1:23, 갈3:13).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나무에 매달린 자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라고 간주하였기 때문이다(신21:22-23).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인류에게 미칠 저주를 대신 감당하시기 위함이었으며, 이 점에 관해서는 모세가 장대 위에 매단 ‘놋뱀’을 통해 예표된 바 있다(민21:9). 정통 유대인에게 있어 예수의 십자가는 분명 거침돌이었으며 수치의 대상이었을 것이다(갈5:11). 하지만 성도에게 있어 예수의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모든 죄가 사함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골1:20).
따라서 바울은 유일한 자랑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고백한 바 있다(갈6:14). 예수의 십자가가 성도의 구원과 모든 소망이 근거라는 사실은 세상의 지혜로는 이해할 길 없는 역설(Paradox)이며(고전1:17-18), 오직 성령의 계시로써만 깨달을 수 있는 비밀일 하겠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서 세례를 받은 성도가 신앙을 저버리는 생활을 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보이는’격이 되고 만다(히6:6). 한편 이 십자가는 예수의 대속의 은혜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뒤를 좇으려는 모든 성도가 감당해야 할 고난을 상징한다(막8:34, 마10:38, 16:24, 눅14:27).
생각해 봅시다. 1. 바울과 같이 십자가가 나의 유일한 자랑거리인가? 2. 나는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3. 골고다를 향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는 예수님은 무슨 생각으로 가셨을까?
생각해 봅시다. 1. 바울과 같이 십자가가 나의 유일한 자랑거리인가? 2. 나는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3. 골고다를 향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는 예수님은 무슨 생각으로 가셨을까?
토요일
슬픔의 날
사건들 성경구절
사건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토요일 무덤에 파수꾼을 세움 27:62-66
예수님의 가상 칠언(架上七言)
① 사죄의 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원수마저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의 극치를 보여준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주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이다(롬5:8).
② 구원의 도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인간의 선행이나 공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음으로써만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엡2:9). 아울러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주의 손길을 느끼게 한다(마16:26.
③ 헌신의 도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요19:26-27)
예수는 인간이 도리를 존중하셨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이 결속된 영적 공동체의 상호 의존성을 강조하셨다(고전12:27).
④ 공의의 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을 버리셨나이까”(마27:46).
인류의 죄를 홀로 대신 감당하기 위해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철저히 외면 당하시는 모습(갈3:13), 죄의 심각성을 살펴 볼 수 있다.
⑤ 갈모의 도
“내가 목마르다”(요19:28).
우리와 동일한 육체와 성정(性情)을 지니신(마8:24) 예수는 십자가상의 극한 고통을 남김 없이 담당하셨다. 당신의 지독한 갈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생수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⑥ 완성의 도
“다 이루었다”(요19:30).
사단의 모든 궤계와 능력을 파하시고 인류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해내는 구속 사업을 완성시키셨다는 뜻(롬5:19, 21, 히10:14).
⑦ 영생의 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일생은 성부 하나님께 대한 전적 의탁, 전적 순종 그 자체였다(히5:8).
생각해 봅시다. 1.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 중에 나에게 와 닿는 것은 무엇인가? 2.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신 것이 내 마음에 느낌이 오는가?
부활주일
살아나신 예수님
예수님의 부활 제자들에게 나타나심(40일간) 예수님의 승천
빈 무덤의 광경 열린무덤 마29:2-4 여인들 마28:5-8 막16:2-8 누24:1-8 요20:1-2 베드로와 요한 눅24:12 요20:3-10 여자들에게 나타나심 마28:9-10 막16:9-11 눅24:9-11 요20:11-18 행1:3 주일오후 1.베드로에게 눅24:34 고전15:5 2.두 제자에게 막16:12-13 눅24:13-32 3.도마를 제외한 제자들에게 막16:14 눅24:36-43 요20:19-25 주일 다음날 도마를 포함한 제자들에게 요20:26-29 그 후의 4-5주간동안 1.갈릴리 바다에서 제자들에게 요21:1-23 2.갈릴리의 동산에서 제자들과 마28:16-20 500명의 믿는 자들에게 막16:15-18 3. 야고보에게 고전15:7 4.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행1:3-8 막16:19-20 눅24:50-53 행1:9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
① 예수의 여타 가르침들의 진정성에 대한 증거.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동안 누차에 걸쳐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셨으며, 대다수 사람들의 불신이나 조롱에도 불구하고 그 예고하신 바가 그래도 실현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의 다른 모든 말씀과 약속들도 문자 그대로 실현되리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 말씀들 중에는 인간의 합리적인 생각으로는 납득하기 힘든 내용도 많이 있지만, 부활하신 주를 믿는 믿음 안에서는 납득되지 못할 내용이 하나도 없다. 예컨대, 예수와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말씀이나(요10:30), 예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므로 그를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그리고 그를 배척하는 자에게는 영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과 경고(마25:46) 혹은 주께서 성도들의 거할 처소를 예배하러 가셨다가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시리라는 약속(요14:3) 등도 확고부동(確固不動)한 진실인 것이다.
② 예수의 신분과 사역에 대한 증거.
예수께서는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롬1:4).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의 신성(神性)은 공생애 당시의 여러 초자연적 권능들을 통해서도 입증되었지만 이 부활이야말로 당신의 신성을 증거하는 가장 확실한 기적인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은 당신이 죄와 사망에 얽매인 인생들을 의와 생명으로 인도해 낼 능력을 지니신 분임을 밝히 증거한다.
③ 성도들의 부활 예시.
예수의 부활은 곧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이다(고전15:20). 예수는 성도들을 거듭나게 하사 썩지 않고 더럽니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을 잇게 하시려고 부활하셨다(벧전1:3-4). 그리고 우리가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죽고 부활한 새 생명을 소유했다는 말로 이해될 수도 있다. 따라서 만일 예수께서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우리의 믿음도 거짓이며 우리는 여전히 죄와 사망 가운데 처해 있을 것이다(고전15:17).
④ 성도의 현재의 삶을 위한 활력소.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또한 함께 부활하였다는 믿음은, 죄에서 벗어나 우리의 지체를 의의 병기(instruments of righteousness, NIV)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한다(롬6:13). 불의가 창궐하고 경건하게 사는 자가 핍박을 당하는 부조리한 현실에 직면하여 성도들도 자칫 세상적인 방법에 의존하여 죄악의 세력과 타협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현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부활의 소망이 앞에 기다리고 있을 것을 확신하는 자는 이 모든 일시적인 위협과 유혹을 능히 극복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초대 교회의 터를 닦았던 예수의 제자들도 주께서 체포당하시자 두려움에 떨며 숨어 있었지만, 부활하신 예를 직접 목격한 이후는 온갖 박해와 심지어 순교까지 당해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수행하였다(고전15:30). 예수의 부활이야말로 당시 제자들이 증거했던 메시지의 핵심이었다(눅24:46-47, 행2:32, 3:15 5:32).
결 론 예수의 지상 명령에서 얻는 교훈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에 앞서 그의 제자들에게 주신(행1:8-9) 말씀을 가리켜 흔히 지상 명령(the Great Commission)이라 한다. 이는 곧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좇아 함께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엡4:4)에게 주시는 명령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의 뒤를 따라야 할 성도들에게 맡겨진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닫게 된다. 한편 예수께서 주신 명령은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가라, 제자 삼으라, 세례를 주라, 가르치라) 이 4대 명령을 통해 그 각각의 교훈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① ‘가라’(Go)
이것은 성도가 사회 생활을 함에 있어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명령이다. 성도들이 처한 가정, 학교, 직장, 교회당, 선교지 등은 모두 천국 대사의 부임지가 된다. 가정, 학교, 직장, 교회 선교지로 ‘가라!’ 결코 머뭇거리거나 소극적 도피적인 생활을 하지 말라.
② ‘제자를 삼으라’(Make disciples)
예수의 지상 명령 중 가장 궁극적인 내용으로서 복음을 전하여 죽어 가는 영혼을 살리라는 명령이다. 피전도자에게 대하여 전도자는 영적 부모요 스승이 된다(고전4:15). 전도의 대상은 ‘모든 족속’ - 모든 인종, 모든 민족, 모든 계층의 사람들 - 이다. 각자 처한 생활의 일터에서 말과 행동과 인격과 삶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삼으라.
③ ‘세례를 주라(Baptize)
외형적이 면에서 교회의 회원이 되게 하라는 뜻이다. 예수를 믿는 자는 주께서 피로 세우신 공동체로서의 교회에 소속되어 학습, 세례, 임직(任職)을 받아야 한다(참조, 행20:27). 이 외형적인 교회 제도를 무시하는 무교회주의(無敎會主義)는 성경적이 아니다. 교회의 모든 신앙적 의식과 사업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즉 3위 1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목회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지켜져야 할 하나님 중심주의를 말한다.
④ ‘가르치라’(Teach)
3의 명령이 외형적인 신앙 목표를 말한다면 이 명령은 내면적인 신앙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즉 복음을 듣고 교회의 일원이 된 초신자는 구원 받은데서 그치지 말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엡4:13-15)신앙 인격이 성숙해야만 한다. 이 신앙 인격의 성숙은 ‘주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 즉 그의 말씀을 배우고 ‘지킴으로서’, 즉 주의 말씀을 생활에 적용하고 실천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계1:3).
이러한 지상 명령의 4대 강령은 성도들의 생활에 있어서 실제적인 기준을 제공하는 매우 중요한 원리가 된다. 이러한 원리가 보다 강력하게 실천될 때 그만큼 이 시대 교회들의 숙원이라 할 수 있는 ‘세계복음화'는 앞당겨 이루어질 것이다(참조, 행1:8).
그런데 이러한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자신이 영적으로 철저히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최선의 영적 무기는 하나님을 경외하며(요9:31), 기도로써 그분과 대회, 교제하는 것(막9:29),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서 항상 그분의 선하신 뜻을 분변(分辨)하는 것(시119:9, 97-100)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부어주시는 큰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실로 예수의 제자된 우리는 ‘세계는 나의 교구(敎區)’라고 외쳤던 존 웨슬레(John Wesley)처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모든 족속’을 대상으로 삼는 활발한 선교 활동을 통해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막4:20)을 맺게 하여야 할 것이다.
고난의 한주간을 보내며------ (주일오후에 함께 나눠 봅니다)
목 차 고난의 한주간
1 권두언
2 고난주간의 의의
종려주일 4 4 예루살렘입성 승리의 입성이 지닌 의미
월요일 6 6 7 권위의 날 무화과나무에 대한 저주 예루살렘 성전의 의미
화요일 8 8 충돌의 날 악한 농부의 비유가 지닌 영적 의미
수요일 10 10 휴식의 날 주님의 십자가
목요일 12 12 12 준비의 날 최후의 만찬 성만찬과 성찬식
금요일 14 14 고통의 날 십자가 형
토요일 16 16 슬픔의 날 예수님의 가상칠언
부활주일 18 18 살아나신 예수님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
20 예수님의 지상 명령에서 얻는 교훈
예 수 님 과 함 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