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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예전에 탈퇴했던 maverick45입니다.
거창하게 인사까지 드리고 이렇게 재가입하는게 민망하긴 한데,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입씨름하고 그러는 제 자신이 보기 안 좋아서 그냥 당분간 거리를 좀 두는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농구, NBA란 평생을 같이한 친구같은 존재다보니 끊으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그리고 사실 농구 얘기같이 하면서 가끔 글쓰면 격려도 해주시고, 칭찬도 해주시고, 아재드립 같이 쳐주시는 (누군지 아실겁니다 ^^) 회원분들도 그립기도 했고요.
관심끊겠다고 해놓고 어느새 매일 알럽에 들어가서 눈팅하는 자신을 보니 그냥 안면몰수하고 재가입하는게 낫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쑥스럽습니다만 가입기념으로 인사드립니다.
(온라인 논쟁 관련해서는... 토론이 아닌 말싸움이 되겠다 싶으면 스스로 놓아버리는 태도를 몸에 익히려고 합니다 ^^)
아이디를 일일히 거론하긴 그렇지만 항상 따뜻한 댓글로 반겨주셨던 회원분들, 너무 감사하고 제 탈퇴를 아쉬워하시던 것에 정말 죄송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예전에 그랬듯이 이전 농구 썰을 한번 풀어볼까 합니다. 제가 잘 아는 90년대는 아닙니다. 대신 00년대 이야기입니다. 생각해보니 당시 영건이었던 코비가 나이 많아서 은퇴할정도로 시간이 많이 흘렀군요. (저, 저희들도 나이가;;;)
2001년으로 시간을 되돌려보죠.
당시 NBA를 지배하는 건 누가 뭐래도 LA레이커스였습니다. 명장 필 잭슨의 지도 하에 화려하게 부활한 레이커스는 스스로에게 당돌하게도 "Most Dominant Ever"이라는 별명을 붙힌 센터 샤킬 오닐의 괴물같은 위력, 어린 유망주에서 리그에서 1,2위를 다투는 가드로 성장한 코비 브라이언트의 원투펀치와 더불어 롤플레이어지만 외곽슛과 맨투맨 수비, 투지가 좋았던 릭 팍스, 많은 NBA팬들의 복장을 터뜨렸던 Big Shot Bob 로버트 오리, 화려하진 않지만 건실한 롤플레이어인데다 클러치 플레이어였던 데릭 피셔, 시카고 시절 잭슨과 영광을 함께 했던 노인네들 호레이스 그랜트와 론 하퍼 등 조연들이 뒤를 받혀주는 탄탄한 팀이었습니다.
당시 알렌 아이버슨은 NBA역사에 남을 만한 투지와 놀로운 퍼포먼스를 보이며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결승으로 올랐고, 모두의 예상을 깨고 철옹성같은 스테이플스 센터를 무너뜨리며 적지에서 1승을 거두었지만 전력상 열세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식서스는 2000-01 레이커스를 플레이오프에서 무릎꿇린 유일한 팀으로 남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 리그 최강의 선수는 센터 오닐이었지만, 2000년대 초중반 가장 빛나는 포지션은 오히려 파워포워드, 그리고 슈팅가드였습니다.
그랜트 힐이 안타깝게 99-00시즌 이후에 부상에 발목 잡히면서 그 이전부터 기미를 보이던 파워포워드 포지션의 강세가 더욱 강화됩니다. 동시에 이어진 건 슈팅가드 전성기. 사실 이 시대를 지배한 것은 "스윙맨"으로 슈팅가드와 스몰포워드를 오가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좀 애매하긴 합니다. 대표적인 슈팅가드였던 트레이시 맥그레디와 빈스 카터, 폴 피어스는 모두 스몰포워드로 올NBA팀에 오른 이력이 있습니다.
어쨌거나 2000년대 초반 당시 다재다능한 대형 파워포워드들 (팀 던컨, 케빈 가넷, 더크 노비츠키, 크리스 웨버, 저메인 오닐)들과 스윙맨들(코비, 티맥, 카터, 피어스, 레이 알렌), 그리고 물론 한명 더 언급하자면 스윙맨은 아니지만 당시 슈팅가드로 출전하고 있던 최전성기의 알렌 아이버슨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마이클 조던, 당시 리그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 널리 인정받던 선수가 돌아왔습니다. 허나 그를 보는 사람들의 모습엔 흥분보다 의구심이 많았습니다.
마이클 조던은 불과 3년전, 역사상 가장 완벽한 커리어를 최고의 모습으로 마무리한 참이었습니다. 조던은 시카고 불스에서 데뷔 이후 같은 팀에서 은퇴할 때까지 모든 시즌에서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고, 단 한번을 제외한 모든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양팀 통틀어 최고득점을 올렸고, 마찬가지로 단 한번을 제외한 모든 시리즈에서 양팀 통틀어 가장 높은 Gamescore을 기록했습니다. (물론 그 각각의 시리즈에서 불스에선 최고였죠)
1984년에서 1998년으로 이어지는 그의 커리어 동안 그가 한 자리수 득점을 기록한 적은 단 한번, 2년차때 부상에서 회복중일 때 컨디션 조절차 16분만 뛴 경기에서 8점을 기록한 적 뿐이었습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커리어 통틀어 단 한번을 제외하곤 전 경기 두자리수 득점.
90년대의 조던은 완벽했습니다. 91년부터 그는 제대로 시즌을 소화했을때는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습니다. 6번의 시즌동안 6번의 퍼스트팀, 6번의 득점왕, 6번의 수비퍼스트팀, 6번의 우승, 6번의 파이널 MVP, 4번의 MVP, 심지어 MVP를 놓쳤을때조차 사람들은 칼 말론과 찰스 바클리가 더 좋은 시즌을 보냈을 뿐 리그 최고의 선수는 조던임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완벽했던 그가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만 38세가 되어서. 그것도 팔꿈치와 양 무릎이 전부 고장나서 시즌 중 여러번 무릎에 물을 빼줘야 하는 몸상태로 말이죠. 게다가 오프 시즌 도중 픽업게임을 하다 론 아테스트가 그의 갈비뼈를 부러뜨리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육안으로 봐도 티가 날 정도로 불스 시절에 비해 몸도 불어있었습니다.
당시 워싱턴 위저즈 팀은? 2000-01시즌 당시 워싱턴 위저즈는 불과 19승에 그쳤습니다. 리그 통틀어 이들보다 못한 팀은 17승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즈, 그리고 15승의 시카고 불스 뿐이었습니다. 평균 득점은 29개 팀 중 18위, 상대편 득점은 28위위였으나 페이스를 조정한 오펜스 레이팅 자체는 21위, 디펜스 레이팅은 꼴찌였습니다.
위저즈에 쓸만한 선수가 새로 들어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프시즌에 워싱턴은 역대 최악의 전체 1번픽 중 하나인 콰미 브라운을 전체 1순위로 드래프트하고, 후보가드로 뛸 타이론 루를 픽업했습니다. 그리고 9월 25일에 자유계약 선수로 마이클 조던을 데려옵니다. (여담이지만 이 때 조던은 베테랑 미니멈으로 뛰었고, 2년 연봉을 모두 9.11 테러 피해자들에게 기부합니다)
한마디로 조던은 19승팀을 거의 혼자 캐리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물론 이제 3년차가 되는 리처드 해밀턴이 있었지만 해밀턴의 기량은 아직 무르익지 않았고 팀의 절대적인 존재는 조던이었죠.
잠깐 잡설을 덧붙히자면 조던이 복귀를 결심하게 된 데에는 씁쓸한 뒷얘기가 있습니다. 당시 조던은 복귀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지 않았습니다. 1차 은퇴 당시엔 너무나 젊었고 실력도 좋았기에 복귀할 거라곤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지만 이때는 조던 본인도 늙었고, 너무나 완벽한 마무리를 한 상황이었죠.
그런데 당시 사장이자 팀지분을 갖고 있었던 조던에게 위저즈 구단이 복귀를 종용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당시 은퇴했음에도 NBA현역들은 물론 타이거 우즈까지 제치고 Harris Poll의 favorite athlete 설문에서 2005년까지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하던 조던이 뛰는 것만으로 팀의 가치가 훨씬 뛸 수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조던이 뛰는 당시 위저즈는 몇번이나 전국으로 경기가 중계방송이 되고 그가 뛰는 모든 홈경기는 매진이 되었고 원정에서도 매진행진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그가 은퇴를 하고 나서 반전이 이뤄졌습니다. NBA는 선수가 팀 지분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기에 조던은 그의 위저즈 지분을 잠시 양도하고 사장 자리도 사임하고 복귀해야했습니다. 당연히 그는 원래 자리로 복귀할 것을 의심치 않았죠.
그런데 막상 복귀하려고 보니까 위저즈가 그를 팽해버린 것입니다. 결국 조던은 나중에 인터뷰를 통해 복귀했던 걸 후회한다고 말하기도 했죠.
잡설이 길었는데 이 상황에서 조던은 복귀하게 됐습니다.
즉, 완벽한 그의 커리어가 완벽하지 못하게 마무리 될 것은 명확했습니다. 위저즈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더라도 이들은 1라운드가 한계일 겁니다. 기적적으로 2라운드에 진출하더라도 그게 다겠지요. 위저즈는 너무나 로스터가 얕았고 예전처럼 40분 가까이 뛰면서 공수를 책임지기에 조던은 너무 늙고 몸이 망가졌습니다.
당연히 시카고 시절보다 너무나 못한 그의 모습에 실망이 이어졌습니다.
앞서 조던이 시카고 커리어를 통틀어 한자리 수 득점을 단 한번 기록했다고 했죠? 워싱턴 시절 그는 무려 12번이나 한자리수 득점에 그칩니다. 게다가 3년차부터 불스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12년동안 (공백은 있었지만) 결장 경기수가 불과 7경기, 심지어 그 중 한 경기는 심판과 몸싸움하다 징계로 결장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위저즈에서 첫 복귀 시즌에 무려 22경기를 결장합니다.
스탯만 봐도 형편없었(?)습니다. 22.9점 5.7리바운드 5.2어시스트 1.4스틸 0.4블럭 필드골 41.6% 자유투 79%. 득점, 리바운드,스틸, 블럭은 2년차 부상 시즌을 제외하면 커리어 로우, 필드골은 복귀 시즌을 제외하면 커리어로우, 자유투는 98시즌을 제외하면 커리어 로우였습니다.
34.9분에 불과한 출장시간과 60경기란 출장경기 역시 부상 시즌을 빼면 가장 낮았죠.
물론 당시는 필드골 성공률이 전체적으로 낮았고, 평균득점도 지금만큼 높지 않았기에 그렇게까지 형편없는 스탯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코비, 티맥, 아이버슨이나 피어스보다는 훨씬 못했지만 카터나 알렌과는 얼추 비슷한 스탯을 기록했죠. 두 시즌 스탯을 통합해보면.
조던: 142경기 출장 평균 36.1분을 뛰며 21.2점 5.9리바운드 4.4어시스트 1.5스틸 0.5블럭, 필드골 성공률 43.1% 3점슛 24.1% 자유투 80.5%
카터: 103경기출장 평균 37.4분을 뛰며 23점 4.9리바운드 3.7어시스트 1.4스틸 0.8블럭, 필드골 성공률 44.2% 3점슛 47.4% 자유투 80.1%.
알렌: 145경기 출장, 평균 37.3분을 뛰며 22.2점 4.8리바운드 4.2어시스트 1.3스틸 0.2블럭 필드골 44.9% 3점슛 40.5% 자유투 89.8%
였습니다.
또한 팀성적면에서 위저즈는 37승 45패를 기록하며 승수가 거의 두배로 늘었습니다. 그 다음 시즌에도 37승을 기록했으나 조던의 은퇴 이후 바로 25승으로 추락하죠. 심지어 이때는 조던 말고 별다른 전력누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오히려 길버트 아레나스가 합류했음에도 말이죠.
그래도 "조던이기에"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무력한 모습은 GOAT에게 기대한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2001-02시즌 당시 조던의 모습을 생각보다 굉장히 뛰어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실망스럽더라도 3년동안이나 쉰 조던이 감을 찾을때 모습을 보면 생각보다 놀랍습니다.
일단 시즌 초에 위저즈는 별로 인상깊은 모습을 보이지 못합니다. 약체 애틀란타 호크스를 꺾고 강팀인 식서스를 꺾었으나 무려 8연패를 당하며 시즌을 2승 9패로 시작합니다. 이 기간동안 조던은 38분을 뛰며 26.8점 6.2리바운드 4.5어시스트 야투율 41.4%를 기록하죠.
그런데 이후 9연승을 포함해 15경기동안 12승 3패를 기록합니다. 이동안 조던은 20.7점 6리바운드 6어시스트에 야투 39.4%를 기록하니 개인기록상으론 별로 좋진 않았죠.
그러다가 사건이 터집니다. 2001년 12월 27일,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조던은 25분동안 야투 10개를 던져 두개 성공, 6점에 그치고 팀은 27점차로 대패하고 맙니다. 조던 개인으로선 그가 1986년 3월 22일부터 15년하고도 9개월 만에 처음으로 한 자리수 득점을 기록하는 굴욕적인 순간이었죠.
당시 감독이었던 덕 칼린스의 회고에 따르면 패배 이후 버스에서 조던이 그에게 "감독님은 아직 제가 뛸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라고 믿고 칼린스가 그렇다고 답하자 "절 코치하려면 절 믿으시고, 제가 아직 뛸 수 있다고 믿으셔야 합니다 (You know, to be my coach, you have to believe in me. And believe I can still play)"라고 했다고 합니다.
워싱턴으로 돌아와서 위저즈는 샬럿 호네츠와의 홈경기를 치르게 됩니다. 당시 시작하자마자 3연속 필드골을 넣은 조던은 칼린스에게 "경기 내내 공을 바로 여기 (내 손)에 놓으시고 제가 얘기하기 전까진 교체하지 마십시오"라고 공언을 합니다.
그 경기에서 조던은 51점 7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3스틸을 기록합니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 최고령 50+득점으로 남아있죠.
이로 인해 조던은 80년대, 90년대, 00년대까지 세 decade에 걸쳐 50득점을 한 유일한 선수가 됩니다.
그 다음 경기, 당시 동부 최고팀이던 뉴져지 네츠전에서 그는 45점 10리바운드 7어시스트 3스틸을 기록합니다. 만 38세, 양 무릎이 고장나고 은퇴하고 무려 3년이나 골프나 치고 놀러다니던 선수가 복귀하자마자 그 시즌에 백투백 45+득점을 기록한 겁니다.
이후 조던은 또한번 백투백 40+ 경기를 기록합니다. 이번에는 클리브랜드와 피닉스를 상대로 나왔죠.
참고로 위에 언급된 조던이 51점, 45점, 40점, 41점을 기록할때는 야투율이 55.3%, 50%, 62.1%, 56.7%입니다.
41점 경기 이후, 두 경기 지나 조던은 악연이 가득한 캐브스를 상대로 26점을 기록했는데, 버저비터 점프슛으로 팀의 1점차 승리를 이끕니다. 리처드 해밀턴과 나란히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가운데 해설자가 격앙된 목소리로 "Michael Jordan, the greatest player of all time!"이라고 외친 바로 그 경기입니다."
2월 5일 피닉스 선즈와의 원정경기에서 그는 22점, 야투율 36.8%로 안 좋은 모습을 보이지만 또한번 버저비터 게임위닝샷을 터뜨리죠.
2월 7일까지 46경기를 치른 위저즈는 26승 20패로 여유있게 플레이오프권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비극이 닥치고 맙니다.
경기 중반에 조던은 득점을 하고 백코트를 하다가 동료와 부딫혀서 쓰러집니다. 그의 고질적 문제가 된 무릎 부상이었는데, 반월상연골 파열(torn meniscus)이었죠.
놀라운 것은 부상을 당했음에도 조던은 41분을 뛰었고 팀은 승리합니다. 그러나 이후 위저즈는 날개없는 추락을 계속하죠. 이후 조던은 7경기동안 퉁퉁 부은 무릎을 안고 뛰면서 35.9분, 19점 6.3어시스트 4.7리바운드를 기록하지만팀은 고작 1승 6패에 그칩니다.
결국 마이애미 전에서는 극심한 무릎통증으로 4쿼터 후반엔 아예 나오지도 못한 조던은 수술을 받기로 결정합니다.
2월 27일 수술 이후 3월 20일에 복귀해 7경기를 더 뛰긴 했지만 모두 벤치에서만 뛰었고 결국 막판 8경기를 남겨두고 시즌아웃되고 맙니다. 7경기동안 조던의 기록은 12.4점 3.3어시스트 2.9리바운드 야투율 37.5%였죠.
위에서 언급된 스탯은 무릎부상을 안고 억지로 뛰면서 깎아먹은 스탯인 셈입니다. 조던은 무릎 부상을 입던 킹스전까지 평균 36.8분을 뛰며 평균 25.1점 6.2리바운드 5.3어시스트 1.5스틸 0.5블럭 야투율 42.1%를 기록합니다.
게다가 위에 언급됐듯이 조던은 복귀 이후 점점 감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시즌 초반에 44점을 기록하고 스탯은 높았지만 야투율이 낮았고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부상을 입은 경기까지 20경기동안 무려 27.5점 6.4리바운드 5.2어시스트 1.3스틸 0.5블럭 야투율은 44.2%를 기록합니다. 이 기간동안 위저즈는 12승 8패를 기록하죠.
부상 경기까지 10경기로 범위를 좁히면 29.7점 6.6리바운드 6.1어시스트 1.2스틸 0.3블럭 야투율은 무려 47.2%를 기록하죠. 이 기간동안 7승 3패를 기록하고요.
즉, 당시 부상전까지 그의 기록을 구간별로 보면 (일단 득점과 야투율만)
1~10경기 27,4점 42.5% 2승 8패
11~20경기 20.3점 37.2% 7승 3패
21~30경기 26점 43.7% 8승 2패
31~40경기 26.1점 43.3% 4승 6패
41~46경기(부상경기) 26.2점 44.4% 6승 1패
이 됩니다. 득점 자체만 보면 극초반이 가장 앞서지지만 경기당 기록을 보면 기복이 점점 적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조던이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26점 이상, 야투율은 44%이상으로 올렸을 것이라고 봅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한 구간을 빼고는 전부 26점 이상을 기록했고, 야투율도 점점 올라가 앞서 언급한대로 부상 직전 10경기동안은 무려 47%를 기록했죠. 게다가 이 시점에 부상으로 한달 이상 결장했던 리처드 해밀턴이 돌아온 것도 호재였습니다. 저 높은 야투율도 여기서 기인합니다. 경기당 20점을 올릴 수 있는 해밀턴이 있으니 수비가 분산될 수 있었죠.
실제로 해밀턴의 복귀 이후 위저즈는 5연승을 달리죠. 조던의 부상 전까지...
부상 전까지 위저즈는 위에 언급한대로 26승 20패, 풀 시즌 환산시 47승 페이스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됐다면 동부컨퍼런스에선 4번 시드를 받았겠군요.
그러나 조던의 무릎 부상 이후 35경기동안 위저즈는 11승 24패에 그치면서 플레이오프를 간발의 차이로 놓치고 맙니다. 조던이 아예 안 뛴 경기에선 7승 14패였죠. 어쨌거나 초반 부진 이후 잘 나가던 위저즈가 아예 고꾸라진 건 조던의 부상 때문이었습니다.
이 부상의 여파로 다음 시즌 조던은 초반에 벤치에서 출장하며 출장시간을 관리받습니다. 이 때문에 02-03시즌은 그 전 시즌에 비해서도 기량적 하락세가 더욱 두드러지죠.
다만 이 시즌에도 후반부에 가면 더욱 경기력이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 시즌에 다른 어떤 선수도 범접하지 못한 대기록을 세우죠. 바로 역사상 유일하게 40점을 넘긴 40대 선수가 된 겁니다.
조던은 만 40세가 된 이후 43점, 39점, 35점, 30점을 기록했는데 조던을 제외하고는 40세를 넘겨서 30점을 넘긴 선수조차 역사상 단 한명도 없습니다.
* 정리하다보니 저도 스스로 놀랐는데, 워싱턴 시절 조던은 최소한 첫 시즌에는 그 경기력만으로 당대 최고의 스윙맨들과 대등하게 맞설 정도의 선수였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제가 깜빡하고 언급한 것이 수비인데, 조던의 합류로 위저즈는 상대팀의 경기당 득점이 전 시즌 28위에서 02시즌 11위, 03시즌 10위가 되었습니다. 페이스 조정을 한 디펜스 레이팅은 각각 21위와 18위였고요. 당시 조던이 빈스 카터를 후반 무득점으로 봉쇄한 것에 대해서는 제가 예전에 올린 글이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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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잘 돌아오셨습니다 !!!
어여 오셔요~
환영합니다. 잘 오셨어요.(__)
잘 돌아오셨어요 ^^ 환영합니다~
우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멋진글이네요
생각없이 클릭했다가 글 보고 눈을 의심했네요 ㅎㅎㅎㅎㅎ
정말 조던이 복귀 했을 때 만큼이나 기뻐요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어쩐지 조던관련 글에 maverick45라는 닉네임이 안보인다 싶었는데 ㅎㅎ 웰컴백입니다!
다시 뵙게되서 좋기만 하네요^^
어떤이들은 위저즈 시절의 조던이 기록을 깍아먹어서 아쉽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론 부상이 아쉬울 뿐입니다. 정말 대단한 업적을 추가할 수 있었을텐데..
스탯을 보면 올스타급은 되네요. 이름 가리고 보면 괜찮은 스윙맨이라고 느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웰컴백입니다.
환영합니다~앞으로도 양질의 좋은 글 부탁드려요^^
반가운 닉넴봐서 좋네요, 좋은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
진심으로 컴백 환영합니다 :) 이제 은퇴하지 말아주세요 ㅎㅎ
웰컴백~~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매머릭님 글뿐만 아니라 댓글도 항상 좋게 보고 있었는데 다시 돌아오셔서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