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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는 꼼수다 공식 팬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산동네
2008년 둘밥을 처음 꾸린 한민성과 권성수는 순천과 여수에 다녀왔었습니다. 짐작하신 분도 계시겠지만, "여수-순천 10월 19일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교과서 한 줄로 인식되는 우리의 이야기. 이 시대가 서있는 발판에 깔린 역사. 국사교과서 한 줄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을 정리하고, 문학으로 해석 된 작품을 조사하고 분류하고 또 나열하고, 그리고 책을 발간하였었습니다.
여수로 향하기 전, 두 달의 준비 기간과 다녀오고 나서 또 넉 달의 시간 동안 마음 한 곳을 누르는 근대 라는 이야기. 아주 오래된 시간 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미국 카우보이 영화 보다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고, 같이 이 순간 숨결을 공유하는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아 온 시간이었습니다. 케케묵은 옛 이야기 같이 치부할 수 밖에 없는 현실. 분단의 문제와 정치적 갈등이 아직도 이념이 아닌, 내 피붙이 이야기로 내 삼촌의 목숨으로 엄마와 큰형의 숨결로 해석 되어 합의점이라고는 찾을 수 없고,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조심 스러운 순간들. 아마 그 때문에 우리는 나의 역사를 돌아 볼 마음도 또 여유도 허락해 주지 않는 것이 아닐까.
무엇이라 말을 하기도 전에 빨갱이라 외치고,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우익 세력이라 치부하고 귀를 닫아 버리는 오늘. 2008년 여수에서 사건을 겪고 전해들은 사람들을 만나고, 현장에서 당시의 기억을 살갗으로 끄집어 올리는 일은 찾아간 저희도 그 곳에 계셨던 분들도 무척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학살의 현장 - 구랑실재, 고립된기억을넘어, 국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2008
"그리고 그 때 당시에 자기가 살려고 허위로 상대방을 밀고해서, 억울하게 들어간 사람들이 태반이야.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친구 사이에 좀 싸웠다고 서로 밀고하기로 했단 말이여, 요새는 그럴 일 없겠지만.
친구가 친구 잡아먹는단 말도 있었어. 그래갖고 저 사람이 반란군한테 길 가르쳐 줬다,
저분이 반란군한테 신발 한개 줬다 해서 그 죄목으로 잽혀들어간 거여. 그러도 않았는디.
이북계에 동조했다고 해서 그렇게 잡혀 들어가거든. 그러고 또 경찰은 동조했다고 하니
죄로 취급해야 했거든. 그렇게 해갖고 억울하게 들어간 사람들이 태반이여.
뭐 아까 보도연맹이나 이런 지식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뭘 알고 한 경우도 있었지만, 반은 억울하게 들어갔다는 말이여."
수 만명이 학살 당하고, 아들에게 아버지 뺨을 때리게하고 죽인 사람을 대나무에 육포 처럼 묶어 쓰레기 처럼 내버리고 매장시킨,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사람 목을 베고, 뭣 도 모르는 아이를 잡아다가 아이가 향하는 손가락에 따라 발사 된 총부리, 손가락 총. 낮에는 군인이 밤에는 남로당의 괴롭힘에 치를 떨고 외지로 나가야했던 주민들.
"몇 십년간 묻혀 있던 유골들이 도로공사를 하던 중 포크레인에 무더기로 실려 나왔다.
나무뿌리와 뒤섞여 수십 구의 뼈들이 허옇게 드러났다.
당시 가족을 잃었던 자들이 유해 발굴 소식을 듣고 몰려 들었다. 하지만 찾아 가지 않은 시체,
아직도 많단다. 그날을 기억하는 그 숨 막히는 흙 속에서 빠져 나왔으니 그대들 이제 마음 좀 나아졌을까.
이제 마음 편안히 쉴 수 있는 다른 곳에서 다시 잠들어야 할텐데.
죽은 그 당사자들을 위해서 해줄 건 그것밖에 없는데 산 자들은 그것도 제대로 못한다." - 장윤미
여순사건 희생자의 묘- 여수 시립묘지
가을 햇살 아래 맞이하는 공간의 기억은 60년을 건너 이는 바람으로 그 시간을 마주하게 해 주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우는 현정이 윤하. 담배만 피워 대는 상현이. 자꾸 침이 목으로 넘어가는 저. 그렇게 학부생과 대학원생 22 명이 여수를 만났던 가을. 저는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에도 역사란 것이 있고 뿌리라는 것이 있는데, 근대에서 잘 못 끼워진 단추를 외면하고 목에있는 버튼만 가지고 자리를 되 맞추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근대에 어떤 일이 있었고, 그 부터 제대로 살피고 되잡는 일이 시행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말 할 수 있다 1편 제주 4.3사건 그리고 여수순천. 이런 방송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이 녹아 들 수 있게 해야합니다. 같이 투사로 외치자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이해하고 깨닫으며, 잊지 않는 틈을 마음에 허락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위안부로 고생하셨던 아이들을, 그 처녀들을 이제는 할머님이 되신 그 곱던 여인들을 위해 뛰는 블루밍이라는 친구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기업이란 이름으로 만난 또 같이 생활 하는 팀과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장점을 살려 블루밍이 움직이고 있는 이 문제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공부하자는 마음을 갖었고, 그 마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각기의 장점을 살려 이야기를 푸는 "영심 프로젝트" 를 진행하고자 마음을 모았습니다.
기억의 끈
팝콘 냄새. 그래 팝콘냄새. 구수한 뻥튀기 향도 좋지만, 극장 가판대에서 파는 캐러멜 향 짙은 팝콘냄새. 그 냄새를 맡을 적이면 십 년도 더 지난 일이 생각난다. 생각만으로 웃음 짓게 되는 기억. 향으로 기억되는 그 시간은 사진이나 일기 속에 있는 장면과는 다르다. 봄이 올 적이면 울리는 거리의 노래, 지붕을 두들기는 빗방울 소리, 창틀의 나무 향, 온 방 안을 붉게 태우는 저녁놀 기억은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간, 장소, 소리, 음성, 때로는 빛까지 매일 마주하는 수많은 대상은 과거와 이어져 있다.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사물과 형상 그리고 장소.
1948년 여순사건, 60년을 묵은 기억과 이어진 것들을 찾아야 했다. 단 몇 줄의 텍스트로만은 그 시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건의 기억을 품고 지내온 장소. 우리는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알고자 하는 욕구는 강했지만, 무엇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3박 4일이라는 주어진 시간. 앎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한 학부생 18명과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정선태 선생님, 여러모로 지도와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대학원 선생님들까지 스물여섯 명의 안전을 책임져야 했다. 인원들의 시선을 충족시켜 줘야 했고, 장소라는 매개물이 기억과 닿을 수 있도록 방향을 가늠하고 계획해야 했다.
주어진 한 달이라는 시간, 무엇을 준비하는 데에서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었지만 시간에 쫓기어 기억을 좇는 일은 생각만큼 단순한 작업이 아니었다. 가장 갈피를 잡지 못한 것은 ‘어디서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는가?’였다. 여수‧순천‧보성에서 전남 동부 지역이라 일컫는 고흥‧광양‧구례‧곡성까지, 그렇게 읍사무소와 이장님 댁까지, 이름도 낯선 시청의 여러 부서와 유족회까지 수십 통의 전화를 돌렸지만, 딱히 이렇다 할 수확은 없었다. 여순사건 관련 신문기사와 자료들을 모았고, 기자와 인터뷰에 응했던 분에게까지 접촉을 시도했다. 처음부터 여행 패키지 상품처럼 쉽게 다녀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에서 열까지 무엇 하나 마음 놓이는 것이 없었고 일정 전체가 막막했다.
안녕하세요. 한민성입니다!
‘구하면 길이 열리노라’라고 했던가? 딱히 종교를 믿는 것은 않지만, 그 순간만큼은 종교를 가져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고 저러한 방법으로 돌고 돌아 연락이 닿은 김천우 유족회 회장님과 14연대에서 근무하셨던 곽상국 목사님께서 흔쾌히 증언해주겠노라 말씀하셨을 때, 그 순간의 내 감정이란 프러포즈한 연인에게 응답을 받은 기분이었다고 할까? 몇 번의 통화를 시도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순천시 관광과를 통해 소개받은 선휘성주사님. 주사님이 건네주신 자료는 그 어느 책보다 자세히 장소에 대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했던 그날. 여담이지만 자료를 손에 쥐고 기뻐한 조상현군의 얼굴과 증언자 섭외에 힘을 많이 보태준 이경민군의 수고를 잊을 수 없다. 우린 건네받은 자료로 일정의 큰 틀을 잡을 수 있었다. 의문이 날 때마다 강의만큼, 지역 답사 때의 설명만큼 시원시원한 응답을 해주셨던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선생님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번 답사는 가능하지 못했으리라.
전남 동부 지역 중에서 여순사건에 관련하여 중요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정해진 시간 안에 답사를 다녀와야 했던 우리에게 순천은 정말 중요한 곳이었다. 순천대학교에서 특강을 해주신 홍영기 교수님. 홍영기 교수님의 소개로 순천이라는 지역에 대해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진인호 선생님.
사건을 제대로 아는 것과 사건을 기억하는 방법 그리고 문학으로 옮기는 작업에 대한 고찰은 이번 답사의 가장 큰 줄기였다. 개관을 앞두고 있다는 신문기사 하나만 들고 연락처를 수소문하여 문을 두드린 태백산맥 문학관.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 뵌 두 분. 지역과 문학이라는 텍스트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을 엿보게 해주신 송영호 소장님과 맛깔스런 해설로 고되었던 이동시간을 잊게 해주신 허경림 지역해설가 선생님. 두 분과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문학이 현실에 녹아드는 모습을 어찌 볼 수 있었으랴. 단순히 사건을 텍스트로 옮기는 작업에만 눈을 두고 있었을 것이다.
답사 첫날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그곳에서 나는 사건과 이어진 기억의 끈들을 쉬이 잡을 수 있었다. 신전마을과 오산마을 그리고 구랑실재에서 만난 기억은 텍스트 몇 줄로 아우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건을 겪었고 그 여파와 살아간 사람들. 그곳에서 서서 무언가 묵직한 둔기로 맞은 듯 멍하니 그 시간을 바라보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상처, 아픔, 고통이란 단어로는 도무지 채울 수 없는 그날의 이야기. 그날의 기억은 빛으로 불어 내 온몸을 훑고 지났다.
하루 열 시간을 넘게 운전대를 잡으시면서 인원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셨던 최기권 기사님. 반찬 하나 부족하진 않을까? 신경 쓰고 배려해주신 그린티하우스와 화이트하우스 사장님. 도로변 슈퍼에서 뵈었던 어르신부터 햇살보다 맑게 웃던 아이들까지. 4일의 일정 동안 만난 인연 모두가 참으로 소중했고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어떤 마술사가 어찌 그런 요술을 부릴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4일이란 시간은 단순히 잠시 스친 몇 일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났고, 고마웠던 사람을 더욱 고맙게 했으며, 든든한 동반자를 얻었다.
성북 청년 사회적기업가 연합 프로젝트 영심 - Young Social lssue Makers
초대, 고 심달연 할머님의 작품
청년 사회적기업 창업팀 팀프로젝트 Young SIM(Young Social lssue Makers)은 2011년 사회적기업진흥원 주최로 청년 등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된 1기 창업팀과 올해 새롭게 선정된 2기 창업팀 중 (사)사회연대은행이 인큐베이팅하고 있는 창업팀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Young SIM 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 중 제반 사유로 이슈(쟁점화) 되지 못하거나 문제의 본질과는 다르게 왜곡되어지는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된 이슈를 만들어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 전반의 관심과 동참을 이끌어 내는데 그 목적이 있는데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그들만의 방식’ 첫 발 걸음으로 위안부 할머니 역사관 기금모금을 위해 발로 뛰어 보려 합니다. 센터에 같이 둥지를 튼 블루밍( http://joinblooming.com ) 이란 청년 등 사회적기업은 팔지와 소셜아이템으로 위안부할머님들의 이야기를 끊기지 않게 전달 할 역사관 건립을 위해 뛰고 있는데요. 센터에 있는 12개의 입주팀이 모여 위안부 할머님들의 아픔을 잊지 않도록, 씻을 수는 없겠지만, 그 슬픈 기억 지우는게 낫지 않냐 하겠지만, 단절된 우리 근대의 역사를 되집고 하나씩 하나씩 되집어 풀 수 있는 단초가 되도록 뛰어 보려 합니다.
고 심달연 할머님
힘을 모으기 먼저, 멤버 중 위노베이션(한부모가정 지원)과 가이드 온(청소년 진로상담 및 멘토링)이 총괄기획을 맡고 (주)오마이컴퍼니의 소셜펀딩 플랫폼에서 100명의 기부자들을 모아 기념 후드티 제작을 위한 종자돈(seed money)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후드티 디자인과 제작은 블루밍(위안부 할머니 권익)과 소셜 클로즈(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의류디자인)에서 맡게 되구요.
많은 분들의 공감이 전달 될 수 있도록 둘러앉은밥상(친환경 농산물 유통전문)이 이야기를 꾸리고 다듬기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제작된 후드티 중 100벌은 특별 한정판으로 소셜펀딩에 참여한 기부자들에게 무료 지급되고 나머지는 판매하여 제작비를 제외한 모든 수익금은 위안부 할머니 역사관 건립사업에 사용 됩니다.
사회적 가치를 위해 기부와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Young SIM의 이러한 시도는 기부자를 이슈메이커로서 참여하게 함으로써 사회문제 해결, 사회적경제 생태계 구축이 화두인 우리사회에게 사회적기업간 연계모델로서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 기념관 건립 기금모금 프로젝트에 참여 하시려 할 때, 오마이컴퍼니(www.ohmycompany.com)에 접속하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본 기부펀딩 금액은 5만원이며 참여시 특별 한정판 후드티 1벌이 제공되며, 위안부 역사관 건립 기부자 명단에도 등재해 드립니다.
참여방법
1) 오마이컴퍼니 회원으로 가입하기 www.ohmycompany.com
2) 부여받은 본인 가상계좌에 입금하기 50000원+330원(입금수수료)
3) 후드티 사이즈/색상 선택 후 투자하기 클릭
4) 후드티 입고 이벤트 참여하기
5) 이벤트 안내 : 소셜펀딩에 참여한 100명의 기부자들이 제공된 후드티를 입고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할머니 수요집회에 다함께 참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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