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년을 죽도록 사랑했어도
일년도 안되 그 사랑을 내버릴수 있는게 사람이며,
모든걸 바쳐 사랑했다하여도
한 순간 뒤돌아서버리면 어느 순간 끝나버린게 사랑입니다.
열번의 신뢰도 단 한번의 불신으로 인해 힘없이 꺼져버리는게 사랑이며,
수천번의 사랑한다는 말도
단 한마디의 가시박힌 말로 인해 이별이 됩니다.
결국은 그렇게 되버리고 맙니다.
사랑해…
미안해…
* *
“한울아.”
“왜.”
“기억해? 벗꽃 보러간지도 2년이 지났네…이날 무지 즐거웠었는데. 벌써 3번째 겨울이 왔어.”
이상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충분히 이상한 상황이였다.
그가 변했다. 원래 표현이 서툴고 성격이 무뚝뚝한편이라, 그다지 말도 별로 없고, 과묵한 편인
그는 속 마음만은 꽤 따듯한 사람이였는데……
언제부턴가 그가 변해가고있다는걸 알았으면서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애써 부정하려
이렇게 오늘도 옛 추억이 될만한 것들은, 모조리 꺼내서 그의 앞에 펼쳐 놓는다.
담배를 입에 물고, 여전히 내 쪽엔 관심도 없는 그.
“또 어디가게?”
“응.”
“어디가는데?”
“늦을거야. 기다리지말고 자.”
“한울아.”
“늦는다고.”
“…손한울.”
쾅, 닫히는 문소리에 쿵, 하고 가슴안에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내려 앉았다.
매정하게 돌아선 그 뒷모습이 서글퍼, 어느새 눈가엔 투명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앞을 가리고…
이내 힘없이 그것을 떨궈내느라, 숨이 차오른다.
울면 안되는데……
점점 걷잡을수 없을 정도로 흐르는 눈물 사이로, 비집고 흘러나오는 신음.
그리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기분에, 서둘러 서랍안을 열어 약을 찾았다.
과호흡.
어렸을적 고아원에서부터 생긴 병이다.
내 자신은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따금씩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심장이 작아졌다 커졌다 하면서
나를 괴롭혀왔다.
그게 너무 괴로워서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 싶어, 자살기도를 여러차례 시도해봤지만 모두다 헛수고로 그쳤다.
죽는다는건 죽을만큼 괴롭게 살고있는것 만큼이나 꽤 어려운 일이였다.
지독히도 나를 괴롭혔던 그 병이 한울이를 만나, 씻은듯이 나은줄로만 알았는데
한울이로 인해 다시 괴로워 지고 있다는걸 요즘들어 자주 느낀다.
그럴수록 점점 더 죽고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지만……아니겠지, 내가 사랑한 그는. 손한울은 날 괴롭게 하지 않으니까.
띠리리링, 전화벨이 요란하게도 울려댄다.
누군지 확인하기도전에, 당연히 한울일거라고 생각하며 받아 들었다.
- 한은오?
그 기대는 무참히 깨져서 산산조각 나버린듯 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고음의 여자 음성. 익숙한 목소리에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왜?”
- 한울이 나왔니?
“그걸 왜 나한테 물어.”
- 동거인이잖아 니가. 나왔어 안나왔어?
“궁금하면 손한울한테 전화해.”
- 싫어. 손한울이라면 모를게 없는 사람이 거기 있는데, 내가 왜?
“자신없어?”
- 뭐?
“손한울에 대해 아는게 없으니까 자신 없냐고.”
- 배짱 한번 죽여주는구나 한은오? 지겹지도 않니? 늘 같은 패턴인데, 좀 바꾸지 그래?
“안서연.”
- 병신. 늘 당당하고 강한척 하더니, 꼴 좋네.
“끊어.”
- 너 아프다며? 고아원에서 그 병, 다시 재발했니?
“……”
- 한울이가 말해주더라. 그 추한 병 다시 재발해서 골치아프다고. 그러다 너 죽는건 아닌가 몰라-
“나 죽기전에 너 먼저 죽이고 죽을거니까 걱정하지마.”
- 역시 한은오 다운 대답이야. 꽤 절절한 스토리 나올거같다. 고아원 친구에게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남자를 빼앗긴것도
모잘라서, 병까지 얻어 죽게되다니.
더이상 듣고 있을수가 없어,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밀려오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손에 쥐고있던 수화기를, 현관쪽으로 던져 버렸다.
문에 부딪혀 굉장한 마찰음을 내며, 바닥으로 쏟아진 전화기 부품들.
약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조였다 당겼다 하면서 이전보다 더 큰 아픔을 느끼게 했다.
과호흡이라는 병이 불치병이긴 하지만, 죽거나 그러진 않는다.
물론 지속적으로 계속될 경우엔 다른 병이 없는지 철두철미하게 검사를 해야하고, 감시를 해야한다.
최근엔 우울증이란 쓰레기같은 병까지 겹쳐서, 내 목을 더 세게 옥죄어 왔다.
안서연, 어렸을적 고아원에서 만난 친구.
그때부터 성격이 꽤 당돌했고 앙칼졌으며, 자기것에 대한 애착과 욕심이 굉장히 강한 아이였다.
자기것보다 남의것이 더 좋을경우엔, 그것을 손에 넣기위해 물불가리지 않고 빼앗거나, 훔치곤 했다.
그것을 갖게 되면 이루 말할수 없는 쾌락을 느끼는 듯, 점점 커가면서도 그것은 더욱더 심해지기만 했다.
고아원에서 벗어나서도 쭉 연락을 지속해왔던 친구였기에, 그래 친구라 믿었던 내가 병신이겠지만…
사랑하는 사람마저 빼앗아 갈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 아닌 누군가에게, 잘해주고 사랑을 나눠줄수있는 성격이 아닌 한울인 쉽사리 넘어갈 쉬운 남자도 아니였다.
그랬는데 이렇게 상황이 바뀌어 버린건, 불과 한달 전 일이였다.
‘한은오. 너 나한테 숨기는거 없어?’
‘뭘?’
‘5년 전, 니 인생에 있어서 제일 지우고 싶은 기억이 뭔지 말해.’
늘 행복할줄만 알았던 사랑에도 불행이 찾아온건 그때였다.
5년 전, 한은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지우고 싶은 기억이라……, 믿었던 남자에게 강간을 당했던 기억 뿐.
상대는 안서연의 오빠 안서훈의 짓이였다.
함께 고아원 생활을 했고, 먼저 고아원을 나간 안서훈은 그 뒤로부터 쭉 연락이 끊겼었다.
고아원 생활의 기억마저도 잊을때 즈음에,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나서는
말도 안되게 나를 안았다.
이유가 뭘까.
내게 왜 그랬던걸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머리를 쥐어 뜯었다. 뜯겨져 나간 머리카락들이 손가락 사이에
박혀있는걸, 빼낼 생각조차 하지 않고 계속 그 생각만 반복했다.
답이라고는 머리를 쥐어 짜내고 흔들어봐도 찾아낼수 없었지만, 그 답은 생각보다 아주 쉬웠고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안서연.
전생에 나와 무슨 인연이였고, 어떤 사이였길래 이리도 지독한 인연의 끈을 이어주셨는지……
‘니가 싫어. 난 널 친구로 생각 한적 없어.’
‘내가 왜 싫어?’
‘그냥.’
‘그냥이라는게 어떤건데 그렇게 날 괴롭혀?’
‘널 죽일만큼 그냥 싫어.’
딱히 뚜렷한 이유따위는 없었다.
그냥 이라는 무섭고 잔인한 가시박힌 말 하나 였을 뿐이다.
병신처럼, 그것을 인정하고 뒤돌아섰던것부터가 잘못이였다.
애초에 사람같은건 가까이해서도, 정을 줘서도, 믿어서도 안되는 거였는데……사랑에 목말라
이사람 저사람을 믿어버렸던 내 잘못이다.
…그것만 지울수 있다면, 내 몸에 지니고 있는 이 작은 병따윈 아무것도 아닌게 될거 같았다.
하지만 잔인한 기억이란, 더 짙어졌음 짙어졌지 절대로 흐릿해지진 않았다.
나약한 여자라는게 제일 후회스러울때도 그때였고, 그것이 나라는게 제일 원망스러웠을때도 그때였다.
어차피 지워지지 않을거라면, 평생 숨기고 가두고싶은 기억이였다.
그것을 제일 사랑하는 사람에게 들켜버리고……난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5년전 니 인생에 있어서 가장 지우고 싶은 기억이 뭐냐고 물었을때.
그때, 난.
그냥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다 알고 있는 그 사람에게…모든걸 다 알고 물어오는 그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대답 해줘야 할까.
.
.
.
- 오붓한 시간 보내는 중이야. 이때만큼은 눈치없이 방해하지말아줄래?
“하나만 묻자.”
- 방해하지 말라니까 뭘 물어? 뭐가 그리 궁금하길래, 이러실까?
“5년전 안서훈이 한짓.”
- 에이씨…흘렸잖아. 아, 뭐라고? 다시말해봐. 5년전 안서훈이 너한테 한짓. 그래 그게 뭐?
“니가 시킨거라는거.”
- 그래, 그게 뭐 어쨌다구?
“…한울이도 알아?”
- 진짜 끈질기네. 알지, 그럼 모르겠니?
“정말……알아?”
- 한울아, 나 잠깐 전화 좀 받고올게. 조금만 기다려-
오붓한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는 듯이, 나와 통화를 하고 있는 도중에 한울이에게 말을 건넨다.
몇초간의 정적이 흐르고, 다시 수화기 너머로 안서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말해. 뭐라 그랬더라?
“손한울이 니가 시킨걸 알고 있는데…”
- 손한울이 내가 시킨걸 알고 있는데, 나를 만난다는게 말도 안된다는거지?
“……”
- 집착도 병이야. 한은오 손한울의 사랑은 유통기간이 지난지 오래라구, 사랑이 질리면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게 원칙 아니야?
툭,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버튼을 눌렀다.
한참의 신호음이 가고, 끊길때쯤 연결된 전화. 그 사이로 들려오는 너무나 그리운 목소리…
“한울아……”
- ……
“나 지금 아파. 그것도 무지 많이.”
- 한은오.
“정말이야. 많이 아파서 정말 죽을거같아…”
- 끊어. 지금 갈게.
“오지마.”
- 뭐?
“오지마 한울아. 거기서 내말 들어줘.”
- 한은오.
“헤어지자…”
- ……
“내가 먼저 이말 해주길 기다렸던거지? 니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면, 내가 정말 죽어버릴거같아서 못 그랬던거잖아.
말해봐. 그렇잖아…헤어져줄게. 너랑 헤어질거야.”
- 그 말 하려고 전화했냐.
“헤어질건데, 나 너랑 헤어질건데……어떻게 그래?”
- ……
“사랑했잖아. 사랑하잖아. 앞으로도 사랑할거잖아. 그런데 왜 헤어져야해?”
눈물이 앞을가려… 목이 메어와.
“미안해. 자꾸만 추해져서 미안해…더러운 여자가 되서 미안해.”
- 울지마. 울면 안되잖아.
“우리 헤어져도 변하는건 없을거야. 그럴거야 아마. 나랑 헤어져도 다른 여자 사랑 안할거잖아. 마음주지 않을거잖아.
나 그렇게 믿을게. 그럴게…”
- 울지마. 은오야. 울지말아봐.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너무나도 그리운 목소리.
날 사랑한다고 말해주던 그 따듯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내 이름을 따듯하게 불러준다.
이제서야 내 걱정이 되는지, 이제서야 조금이나마 한은오가 들리는건지……그토록 그리워했던 목소리가
심장을 도려낸다.
“거기 있어. 여기 오지마. 나 잘지낼게.”
- 끊지마. 지금 가.
“전에 니가 물었었지.”
- ……
“5년전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지우고 싶은 기억이 뭐냐고.”
- 말하지마. 상관없으니까 말하지마.
“다시 한번만 물어봐주라 한울아…한은오 인생에 있어 가장 지우고 싶은 기억이 뭐냐고”
- 말하지말라고. 정말 죽여버릴수도 있으니까 입닫아. 제발.
“내 인생에 가장 지우고 싶은 기억이 뭐냐면…그때 니가 5년전 그일을 물었던거”
- …아프잖아. 하지마. 한은오, 제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거.”
- 잘못했어…
“그리고……널 더이상 사랑할수 없다는거.”
- 아니. 안 끝났어. 아직 안 끝났어. 사랑해. 사랑하고 있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해…
“미안해…”
.
.
.
죽도록 사랑한다는 것, 그 정의는 무엇일까요.
한사람을 죽을만큼 사랑했다는 것, 그 깊이는 얼마쯤 될까요.
사랑이라는 열병에 앓아 그 깊이를 가늠할수 없을정도로, 빠져서 다시는 헤어나오지 못할 사랑같은거 하지마세요.
조금은 남겨두세요.
모두 다 주지말고, 그 사랑…… 조금은 남겨두세요.
남은 사랑이 큰 사랑으로 자랄수 있을때까지만이라도……
지금처럼 밑도 끝도 없이 다 주고, 더이상 내줄 사랑이 없어 가슴아파하지 말아요.
…그 사랑 밑에 깔려 숨이 막혀요.
그 사랑 밑에 깔려…내가 죽어요.
첫댓글 번외 있어여? 번외 부탁드려여.. 남자가 후회 만땅 하면 조켓는디..
남자가 뭔일 있는거 같은데..아닌감ㅠㅜ 너무 슬퍼요ㅠ 번외요~
.....번외바람........헝헝..
번외부탁해요 ㅠㅠ !! 슬퍼요 ㅠㅠ
헐..불쌍하다 ㅠㅠㅠ 왠지 남자애한테 사정이 이쓸꺼 같은 예감이 파바박 !! 번외편 올려주세요~
뭘까 남자애의 숨겨진 사정이! 번외 기다릴게요~ 하트뿅뿅^*^
여주 불쌍해ㅜ 저런 친구 정말 싫을듯
남자번외요 ㅋㅋㅋ 너무 슬프다 잘 봤어요 ㅋㅋ
제목이랑 내용이 너무나 잘 어울리네요.. 지금 일하는 중인데 자꾸 눈물이 나서 창피해요.. ㅠㅠ 번외는 있죠?? 저 '안서연'인가 뭔가 하는 여자.. 지금 내 앞에 있었다면 싸다구를 그냥.. ㅡㅡ;; 잘 읽었구요, 건필하세요 ^^ 번외 기다릴께요 *^^*
진짜 진짜 부탁인데요.. 번외 좀... 해피엔딩...으로..;; 부탁드려요~
번외좀요제발~~!!!뭔ㄱㅏ이유가있는거같은데!~!
번외요 ㅜㅜ 아쉬운게 많아요 ㅜㅜ
진짜 가슴이 뭉클해져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ㅜㅜㅜ 번외 부탁해요!
번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