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인의 무사(13太保)
최용현(수필가)
중국무협영화의 인기가 절정에 달하던 1970년, 홍콩 쇼브라더스의 장철 감독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스케일의 스펙터클 무협인 ‘13인의 무사’를 연출했다. 장철 감독의 무협영화로는 아주 드물게 러닝 타임이 120분이나 되는 이 영화는 쇼브라더스의 자본과 기술, 그동안 무협영화를 제작하면서 얻은 노하우까지 집대성하여 사운(社運)을 걸고 만든 대작이다.
‘13인의 무사’는 홍콩에서 만든 영화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신 필름이 ‘13인의 검객’이라는 제목으로 제작 신고를 했기 때문에 한홍합작영화로 개봉되었다. 이 영화에 한국배우 남궁훈과 진봉진이 출연한 것은 이들이 쇼브라더스에 초빙된 전속배우였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이런 위장 한홍합작영화는 계속 제작되었다.
1970년 9월 15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부산의 대영, 태화, 삼성 3개 극장에서 ‘13인의 무사’가 추석특선으로 동시 개봉을 했다. 그런데, 입석까지 매진되는 돌풍을 일으키면서 3일 만에 10만 관객을 돌파하여 당시 부산 영화사상 최고기록을 세웠다. 서울에서는 다음 달인 10월 9일 개봉되어 흥행기록을 이어갔다.
당나라 말기, 대규모의 농민반란인 황소의 난으로 수도 장안이 함락되자, 황제는 군웅(群雄) 이극용(곡봉 扮)을 진왕으로 봉하여 반란을 평정하게 한다. 그에게는 10만 대군과 5백 명의 호위대가 있었고, 그 외에도 아들과 같은 13명의 용맹한 무사들이 있었으니, 사람들은 그들을 13태보(太保)라 불렀다.
야심가인 변량태수 주 대인(진성 扮)이 찾아오자, 진왕은 연회자리에서 13태보를 자랑한다. 그러자 주 대인은 이 난국에 태보들이 술만 마시고 있다고 흉을 본다. 이때 반란군의 한 장수가 성 앞에서 난동을 부리자, 진왕은 태보 한 명을 지명하면 ‘저놈을 잡아오게 하겠다.’고 말한다. 주 대인은 13번째 태보인 춘자오(강대위 扮)를 지명하면서 ‘잡아오면 황제의 하사품인 옥대(玉帶)를 주겠다.’고 말한다. 춘자오는 ‘내 목을 걸겠다.’면서 내려가 격전 끝에 그 장수를 잡아서 묶어온다. 그리고 주 대인의 옥대를 잘라버린다.
진왕은 13태보 중 9명에게 장안성에 침투하여 반란군 진영을 교란하고 오라고 지시하고, 막내 춘자오에게 대장 직을 맡긴다. 이들은 장안성에 잠입하여 반란군을 한껏 유린하고, 전각 위에 서있는 수괴(首魁) 황소에게 활을 쏘아 상투를 맞히는 등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그리고 한 민가에 들어가 주인 처자(이려려 扮)의 숙식 협조를 받는다.
그날 밤, 춘자오에게 불만을 품은 4번째(남궁훈 扮)와 12번째 태보(왕종 扮)가 주인 처자를 겁탈하려다가 춘자오의 제지를 받자, 임무를 망각하고 도망친다. 나중에 두 태보는 진왕에 의해 참형이 내려졌으나 춘자오의 건의로 곤장 30대로 감형된다. 그 후, 진왕 군사들의 눈부신 분전으로 장안성을 탈환한다.
한편, 혼란기를 틈 타 황제의 자리를 노리던 변량태수 주 대인은 걸림돌인 진왕을 제거하기 위해 초대장을 보낸다. 진왕은 그런 줄도 모르고 11번째 태보인 진시(적룡 扮)를 대동하고 변량성에 간다. 진왕의 호위무사 진시가 과음으로 쓰러지자, 주 대인의 병사들이 공격을 시작한다. 잠에서 깬 진시가 눈부신 투혼으로 무용(武勇)을 발휘하지만 역부족으로 숨지고 만다. 그 사이 춘자오가 군사를 이끌고 달려와서 진왕을 구해낸다.
진시의 죽음으로 비탄에 빠진 진왕이 술에 취해 잠들자, 4번째와 12번째 태보는 진왕의 검을 훔쳐서 왕명이라고 속이고 춘자오를 끌고 가서 오마분시(五馬分屍)로 죽이고 변량성으로 도망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태보들이 추격하여 죽고 죽이는 혈전 끝에 다섯 태보만 남게 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13인의 무사’에 반란군의 장수로 출연했던 우리나라 배우 진봉진은 한 인터뷰에서, 홍콩 쇼브라더스는 이 영화를 위해 호화궁전과 성곽을 세트장으로 짓고, 성곽 앞에는 전투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조성하였다. 또 많은 엑스트라를 선발하여 조련했다고 증언하였다. 이 영화의 성공에 고무된 쇼브라더스는 다시 ‘14인의 여걸’(1972년) 제작을 추진한다.
영화 초반에 9명의 태보를 숨겨주는 민가의 처자가 다음날 아침 헤어질 때 마음의 징표인 수건을 춘자오에게 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장안성을 탈환한 후에 춘자오가 찾아갔을 때 그 처자는 보이지 않는다. 로맨스를 넣었으면 어떻게든 마무리도 해야 하는데 흐지부지 끝난 것 같아서 아쉽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변량성의 태평교에서 벌어지는 적룡과 주 대인의 정예병들 간의 20분 정도 이어지는 결전 장면으로, 장철 감독의 연출력이 한껏 빛을 발한다. 수백 명의 적들과 처절하게 사투를 벌이다가 서서 죽는 적룡의 비장미 넘치는 앳된 모습은 ‘영웅본색’(1986년)에서의 앞머리가 벗겨진 적룡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적잖은 충격이 될 것 같다.
강대위 역시 대역 없이 성벽에서 뛰어내리고 결전 중에 코뼈를 다치기도 하지만, 발군의 무용으로 실감나는 액션을 보여준다. 또, 비록 천막으로 가리기는 했지만, 그의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장면이 화면에 시현됨으로써 장철 영화의 잔혹성의 끝을 보여준다. 이 오마분시 장면은 일부가 삭제된 채 우리나라에서 개봉되었는데, 당시 ‘주인공을 저렇게 잔인하게 죽일 수가 있느냐?’며 원성이 자자했었다.
‘13인의 무사’는 당나라 말기의 실존인물인 진왕 이극용과 무사 이존효(영화에서는 춘자오)의 행적을 바탕으로 픽션을 가미해서 만든 영화이다. 이존효는 만 명의 적이 두려워서 피할 정도의 맹장이라고 사서에 기록되어 있지만, 그의 출중한 능력을 시기하던 두 태보에 의해 참혹한 최후를 맞고 만다. 13태보를 와해시킨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균열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