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5월이다.
넘실대는 잎사귀들이 점점 진하게 온 산하를 덮고 있다.
신록의 계절로 산과 들이 온통 초록 물감이다. 방금 그린 수채화처럼 줄줄 흘러내린다.
5월은 유난히 어머니가 그리운 달이다.
예전에 어머니는 5월만 되면 송화열매를 틈틈이 채취하시곤 했다.
소나무 가지 끝에 맺힌 송화 열매들을 따다가 양지 바른 곳에 양푼 그릇 채로 말리셨다. 그것도 다른 곳보다 실한 송이들이 알알이 여문 살구골이란 골짜기로 가서 종다래끼에 몇 번씩이나 따오시곤 했다.
한 개 따서 입에 넣으면 초록 물이 한 입 가득하다.
쌉싸드름한 솔 향이 풍기는 송화 열매- 말린 송화 열매들은 날을 잡아 양푼이나 고무 다라에 넣고 가는 막대로 다독여가며 조심스럽게 털기 시작하셨다.
노란 가루는 자연의 색깔이다. 송화 가루가 양푼에 쌓인다.
전혀 인공미가 가미되지 않은 완전 식품이다. 유난히 살구골에서 송화를 채취하시던 그 해는 반드시 집안에 경사가 있었다. 누나가 여섯이었다.
결혼일자를 받아놓으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랫목에 시루를 담요로 덮어 콩나물을 기르는 일이었고, 그 다음이 누룩으로 술을 담그거나 전을 부치기 위해 이것저것 감을 준비하는 일이다.
예전엔 거의 집에서 혼사를 치르곤 했다.
아랫집에 신랑이 미리 사모관대를 쓰고 있다가, 식이 가까워지면 신부집으로 오는데, 그 때 동네 꼬마들이 준비한 잿봉지 세례가 한창이었다. 신랑께 마구 달려가 정통으로 얼굴을 가격하면 큰 공적을 세운 것처럼 또래들한테 박수를 받고 우쭐하던 유년기 때가 새롭다.
그리고 온동네 사람들이 모인 안 마당에다 포장을 치고 전통 혼례를 치뤘다. 그 날은 아무리 바쁜 사람들도 자기네 혼사처럼 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
요즘은 당일로 예식장에 나타났다가 그날로 사라져 대화마저 할 시간이 없지만,예전에 친척들은 잔치를 전후로 며칠 씩 미리 오시어 묵어 가셨다. 백여호가 되는 동네 사람들 근황을 며칠 씩 두고 물어보고 답하신다. 면장집 머슴이 왜 집을 나갔으며 길 건너 나그네는 왜 서울을 다녀왔는지-. 이웃집 봉순이 형님이 창복이네 누나하고 눈이 맞아 밤이면 어디로 쏘다니는지-.그리고 시집살이 이야기로 밤 늦게까지 얘기 꽃을 피우시던 어머니-.어쩜 그리도 출가한 딸들하고 얘기가 많으신지 끝이 없다. 나물먹고 양식이 부족했던 당시 마음만은 너무나 풍년이었던 그 시절이었다.
같이 전도 부치고 같이 시장도 보러가시던 친척들이 대사를 치루고도 며칠 계셨다. 누나가 출가하고 텅빈 집안을 친척들이 채워주시어 허전함이 덜했다. 그리고 며칠후 가시는 분 모두에게 봉송을 일일이 싸 주셨다. 송화가루을 묻힌 굳은 가래 찰떡이며 메밀 적, 심지어 대추, 밤에 잡채, 부침까지 싸 보내셨다.
오늘도 결혼식 몇군데를 다녀왔다.
피로연이 예식장에 딸린 식당이고 차린 음식도 대동소이하다. 획일적이다. 천편일률적인 메뉴에 자연산인 송화 찰떡같은 것은 어디서곤 감히 찾아 볼 수가 없어 안타까왔다.
산에서 멀리 떨어진 도심의 길, 고인 물가에 어느새 송화가루가 노오랗게 날아와 반기고 있었다. 그래-. 이번 주말에는 내자를 채근해 살구골로 달려 가리라. 헛간에 종다래끼를 찾고 잘 드는 갈비집 가위를 준비하리. 그리고 어머니가 없는 고향으로 가서 대신 그 골짜기에서 송화덩이를 채취하며 어머니를 노래하리라. (끝)
첫댓글 德田님!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처음 진부령에 오실 때처럼 열정이 식지않은 바램입니다. 이만큼 발전도 德田님의 사랑도 한 몫이였습니다. 항상 잊지않습니다.건강하시구요...
님의 좋은글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가슴에닿아오는 추억를 회상하며 고개끄덕여 봅니다 그옛날 대사날를 생각하며 건강하시고 좋은글 부탁합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