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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탁동철
저자 탁동철은 1968년 강원도 양양군 서면 송천리에서 태어나 같은 마을에 살며 속초 청호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글과 그림’ 동인이며 어린이 시집 《까만 손》, 산문집 《물푸레나무 그늘》을 냈다.
책을 내며
1부 생라면 - 오색초등학교(1998년~2001년)
오색 아이들 / 핫도그 / 사회 시간 / 쓰레기통 / 반장 선거 / 삼팔선 / 상 받는 날 / 가정 방문 / 책상 나르기 / 개학 날 / 오소리 똥 / 얼음과자 / 새 교실 / 생라면 / 정현이 누명 / 아름이 발 / 별님이 / 쌀농사 흉내 내기 / 수탉과 싸우기 / 남자 / 아침 / 미경이 / 난로
2부 밑변과 높이 - 공수전분교(2003년~2007년)
비 오는 날 / 점심시간 / 출장 / 우는 아이 / 두더지 / 동물 흔적 찾기 / 모심기 / 술 / 학부모님께 / 집에 가는 길 / 개학 / 메뚜기 / 마을 조사 / 밑변과 높이 / 입학식 / 마른 콩 깨트렸다 / 차례 정하기 / 우리도 체육 해요 / 스승의 날 / 하루 / 야영 갔다 / 벽실 계곡에서 꺽지 낚았다 / 소 입 냄새 나는 그 곳 / 느릅지기
3부 조르르 씨부렁거리는 새 - 상평초등학교(2008년~2010년)
새 학교 / 홍일령에게 / 혜림이 / 예은이 / 아침밥 / 놀아도 돼요? / 학교 가는 길 / 몽실 언니 / 메뚜기 먹었다 / 실험 보고서 / 누가 했나, 그 낙서 / 전기 실험 / 각서 / 담쟁이 / 금붕어 / 시험 보는 날 / 이 닦기 / 조르르르 씨부렁거리는 검은 새 / 들리지 않는 말
4부 기름진 쌀, 밥 한 공기, 자유로운 물고기
나흘 동안의 시 쓰기 공부 / 세라 글을 읽고 / 글쓰기 하며 지내 온 이야기 / 본 대로 들은 대로 쓰기 / 아이들 말 잘 들어 주기 / 4, 5학년 시 쓰기 / 기름진 쌀, 밥 한 공기, 자유로운 물고기 / 새 눈
5부 가물터
풍선 / 가물터 / 돌다리 / 오이씨 / 칭찬 / 할머니가 사 주신 짜장면 먹었다 / 곰 사냥 / 얼음 위를 절룩거리며 걷는 발 / 내가 만난 선생님
곁에서 본 탁동철
가르침의 원형, 삶의 본질을 묻는다.
탁동철 선생. 그는 참으로 요즘 보기 드문 선생, 흔치 않은 사람이다. 얼핏 책 앞자락을 읽은 누군가는 그를 학생들에게 휘둘려 뭐하나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얼뜨기 시골 선생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겉모습만 봐도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선한 눈, 수줍은 모습, 조촐한 옷차림, 꾸미지 않은 매무새에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선생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선생과 오랜 시간 함께한 동무들은 그를 “너무나 귀한 선생”이라 입을 모은다.《마당을 나온 암탉》을 그린 화가 김환영은 “그의 교실에 학생이고 싶다”고 하고,《사랑으로 매긴 성적표》의 저자이자 고등학교 교사인 이상석은 “참 희귀한, 천연기념물 같은 사람”이라 말한다. 그가 소중하고 귀한 까닭은 바로 “작고 보잘 것 없다고 여기는 것들의 힘을 알고 그것을 소중하게 키워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몸으로 부딪쳐 경험하고, 아이들과 함께 따뜻한 기억을 이어갈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선생은 운동장 귀퉁이 조그만 논을 만들어 모를 심어 가꾸고, 그 쌀로 교실에서 아이들과 밥을 지어 먹는다. 아이들과 함께 닭장을 지어 닭과 토끼도 키우고 그 과정을 글로 남긴다. 동물 발자국 관찰하러 산속으로 들어가고, 아이들과 마을 어른들 이야기를 들으러 나간다. 목청 돋궈 축척을 설명하다가 아이들이 못 알아듣자 버럭 화를 내다가도 금새 후회하며 “다음엔 사진 들고 와서 ‘봐라, 얼굴은 이만 한데 사진은 요만하다. 이렇게 줄여 놓은 게 축척이다’라고 끝내야지” 다짐 한다. ‘밑변과 높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가출한 성택이를 붙잡기 위해 뒤를 밟기도 한다. ‘온도에 따른 물고기의 호흡 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아이들과 고기를 낚고, 실험하고는 “새롭게 안 것”으로 “물고기는 얼음물에서 기절하고 사람은 열심히 가르쳐 주면 기절한다”는 재밌는 글을 남긴다. 이 닦기 싫어하는 남자 아이들과 제발 좀 이 닦으라는 여자 아이들을 서로 논쟁 붙이면서 “나는 더 재미있는 쪽이 무조건 옳다고 본다”고 능청을 떤다. 벽에 자기에 대해 욕을 남긴 아이를 찾겠다며 여기 저기 소심하기 이를 데 없는 질문들을 하고 다니는 모습에 이르면 누구나 웃음을 참기 힘들 것이다. 탁동철 선생은 끝없이 아이들과 옥신각신하고, 이야기하고, 반성하고 화해하며 성장한다. 그의 교실에는 선생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하나하나가 돋보인다.
배우기만 하는 곳은 학교가 아니다. 아이들은 가르치러 학교에 와야 한다. 자기 말을 하러 와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피어난다. - ‘새 학교’, 219쪽
이 모든 과정에서 눈여겨 볼 것은 “함께 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아이들을 설득하고, 아이들에게 설득당하며 소통하는 법을 알고 있다. 몸으로 부딪혀 겪고,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해야 비로소 성장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실천한다. 타고난 이야기꾼 같은 그의 글에 빠져 신나게 읽다보면, 문득 우리가 놓치며 사는 진정한 삶의 본질과 교육이 뭘까 고민하게 된다.
규칙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부터 만들어 가는 약속만 있을 뿐이다. 양말 벗고 한 발 올려놓고 공부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면 그 의견을 꺼내라. 그게 더 공부가 되고 우리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결론이 나면 거기에 따르겠다. 하지만 결정 나기 전, 의논하는 자리에서는 나도 한 표를 가진 사람으로서 내 권리를 위해,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싸우겠다. 그거 안 좋다고. 어쨌든 결정이 나면 따르겠다. 이 교실은 너희들이 움직여라. - ‘입학식’, 172쪽
탁동철 선생은 아이들이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세상”을 살 길 바란다. 어른이 쉽게 가르쳐준 이름을 외워 세상의 것들을 배우고, 어른이 강요하는 권위에 길들여 머리 숙이지 않기를 원한다. 그렇기에 선생 또한 아이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강요하지 않는다.
아까 송예은은 속상한 거 맞아. 울고 싶은 일이기도 했지. 하지만 더 당당하게 나와야 했어. 울며 엎드리지 말고 네 말을 해. 네 주장을 해. 그러면 내가 사과할게.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빌게. 하지만 울고 있으면 반성 안 할 거야. 그냥 얕잡아 볼 거야. 목을 길게 빼고 넙죽 엎드리는 건 밟으라는 뜻이야. 눈물만으로는, 남이 봐주길 바라는 것만으로는 안 돼. 네가 참을 수 없는 일을 만나면 따져. 주먹을 쥐어. 이 땅의 주인은 너, 이 교실의 주인은 너, 네 몸의 주인도 너. - ‘예은이’, 234쪽
탁 선생은 학급 운영을 할 때도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이 아이들 의견이다. 학생도 많지 않은 작은 분교에서 급식 운영 여부를 결정할 때도 그는 급식을 반대하는 아이들과 찬성하는 부모님 사이에서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학부모들에게 아이들 의견을 전하고, 함께 모여 의논하고, 설득하면서 그들의 논쟁은 다시 급식을 하지 않았던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선생은 이런 편지를 학부모들에게 보낸다.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 버렸네요. 아무것도 한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학교 사람들이 아닌, 남들이 우리의 이런 회의를 알면 혀를 찰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시하다, 참 할 일 없다.” 시시해서 참 다행입니다. 자그마한 목소리에 다 귀 기울이며 우물쭈물 늦어지는 것이 옳습니다. 늦더라도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어울리며 다 함께 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학교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까지 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1학기에는 밥은 교실에서 하고 도시락 반찬은 집에서 싸 오는 걸로 하겠습니다. 도시락 반찬 담는 일은 아이들 손으로 하게 해 주세요. 빈 도시락 반찬 통은 스스로 씻게 하세요. 반찬은 한 가지만 싸는 게 좋겠습니다. 한 가지 반찬만 있어야 서로 나누어 먹게 됩니다. - ‘학부모님께’, 128-129쪽
고등학교 교사 구자행은 추천사에 이런 글을 남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 한다. 말썽 피우는 아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 아이를 지도한다고 자기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거나,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이들은 뒷전이고 교사 자신을 먼저 드러내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마음을 되짚어 보게 되었다. 탁 선생은 아이들보다 더 낮은 곳에서 아이들을 올려다본다. 아이들이 하는 짤막한 말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어주고, 거기 담긴 아이들의 진실을 읽어 준다. 아이들을 하늘같이 섬기는 마음이다. (중략) 교육 전문가들은 우리 교육 모델을 핀란드나 독일 같은 외국에서 찾고 있지만, 멀리 갈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다. 앞개울에 나가 버들강아지 보고, 물고기 잡고, 시 쓰고, 그림 그리고, 노래 부르는 교실. 자기들 문제를 연극 놀이로 풀어가는 교실, 아이들도 가르치고 교사도 배우는 교실. - 구자행(교사) 추천사
기록의 힘은 강하다. 이것은 아이들과 탁 선생의 성장의 기록이다.
탁동철 선생은 교직을 지낸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일기를 썼다. 이 책도 그렇게 쌓인 기록들을 추려 만들었다. 그의 기록은 그동안 〈창비어린이〉,〈개똥이네〉,〈고래가 그랬어〉등의 잡지와 〈글과그림〉,〈동시마중〉같은 동인지에 발표되어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은 바 있었으나 그의 삶을 모두 톺아보기에 아쉬운 점이 많았다. 이 책은 그 아쉬움을 해결하고 나아가 선생이 교사로서,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한다. 구성은 다섯 부로 나뉜다. 1~3부는 시간 흐름으로 분류한 교실 이야기, 4부는 글쓰기 수업, 5부는 생활글을 담았다.
기록의 힘은 강하다. 그는 혼자 쓰는 일기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학급일기도 썼고, 매년 학급문집도 발행했다. 학급일기만 해도 한 권을 만들어 하루에 한 명씩 돌아가며 쓰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한 권씩 각자의 학급일기장을 만들어줬다. 한 반에 학생이 7명이라면 탁 선생까지 포함해서 모두 8권의 학급일기장이 있는 셈이다. 그 일기장들을 서로 돌려가며 썼다. 그렇게 하면 모두가 매일 일기를 쓸 수 있고, 학년이 끝날 때 각자의 학급일기를 가지게 되며, 한 사건을 여러 가지 시선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탁동철 선생은 믿었기 때문이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그는 각자 솔직하게 쓴 일기들을 읽으며 대화를 시작했고, 서로의 입장을 연극으로 표현해보기도 하며 대안을 함께 찾아 교실 문제를 해결해왔다.
3부에 실린 ‘전기 실험’(269쪽)이 좋은 예이다. 이른 아침, 아이들만 있는 교실에서 전기 실험을 하던 성민이를 학교 아저씨가 발견하고는 전기로 위험하게 장난한다고 생각하여 큰소리 낸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성민이와 아저씨의 싸움을 목격한 아이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로 왁자지껄 떠들어대자 탁 선생은 각자가 목격한 것을 일기로 표현하게 한다. 그리고 둥그렇게 둘러앉아 일기를 읽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 다음, 성민이와 아저씨의 성격을 바꾸어가며 상황을 재현하여 연극을 한다. 그는 그렇게 교실에서의 갈등을 해결한다.(274쪽~277쪽)
“둘이 똑같다. 그러니까 싸웠다”는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틀렸다. 부딪히는 게 나쁘다는 것 아니다. 부딪히는 게 나쁘면 안 부딪히는 건 더 나쁘다. 아저씨가 쓸데없는 짓 한다고 야단쳤을 때, “그래, 나 같은 건 안 돼” 하며 자기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마는 사람이라면 성민이한테 배워라. 거친 말에 굴복하는 것보다는 나도 인간이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름답다.
비난도, 설득도, 교훈도, 그럴듯한 감동도 필요 없다. 우리는 서로를 보아주고 있고, 우리들 중 한 사람한테 일어난 일은 세상의 중심이라는 표시를 했을 뿐, 그 끝은 모른다. 끝없이 진실에 가까워지기를 바랄 뿐이다. - ‘전기실험’, 277-278쪽
탁 선생과 아이들의 교실에서는 모두가 글을 쓰고, 동등하게 앞에서 자신의 글을 읽는다.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선생님에게 일기 읽기를 요구한다. 그와 아이들에게 학급일기는 ‘소통’이다.
“선생님도 써 왔어요?”
“오늘은 써 왔다야.”
“읽어 봐요” 해서 읽었다.
“제목 연선이 아버지. 마을 사람, 아버지들이 술 마시는 자리에 나도 끼었다. 누가 ‘탁 선생!’ 하니 옆에 앉은 연선이 아버지 벌컥 화를 낸다. ‘선생님이라고 해야지!’ 딸만 셋인 연선이 아버지. 여름에는 나무 베러 산에 가고, 눈 오는 겨울에는 한계령에 가서 체인 팔아 돈을 버는 연선이 아버지. ‘우리 연선이, 연선이 잘 가르쳐 주십시오.’ 꾸벅꾸벅 술잔을 건넨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할게요. 곱셈도 잘하게 하고 글씨도 예쁘게 쓰게 하겠습니다.’ 연선이 아버지는 ‘선생님, 선생님’ 하며 술을 권하고 나는 ‘아이고, 이거’ 하며 술을 마셨다.”
“에이, 또 술 얘기야.” - ‘아침’, 82쪽
함께 읽고,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고, 그렇게 그들은 함께 성장한다. 탁 선생도 또한 처음 교직 생활을 시작했을 1992년 즈음에는 그저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이 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하자, 이렇게 살아야한다’ 등을 설파하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한 인간’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믿게 된 것은 ‘아이들 내면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선생의 집 빽빽하게 쌓인 손때 묻은 아이들 글과 그림, 삐뚤빼뚤 쓰인 시와 낙서, 종이쪽지, 학급문고, 학급일기들……. 이 책을 내기로 결정하고 자료조사 차 선생의 집에 처음 갔을 때 나는 그 양에 놀랐다. 하루 종일 울고 웃으며 읽고 또 읽었던 아이들 글을 쉽게 잊을 수 없다. 20년의 기록을 추리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 번을 넣고 빼기를 반복했다. 소중하고 재미난 기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면에 다 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탁동철의 뿌리
이오덕 선생님, 황시백 선생님, 초등학교 선생님, <글과 그림>동인, 그리고 할머니
탁동철 선생의 교육관의 근원을 살펴보면, 몇 가지 뿌리들을 찾을 수 있는데 제일 처음 단서는 아마도 초등학교 때 선생님과 낚시하러 갔을 때 들었던 칭찬이다.
선생님이 저만큼에서 뒤돌아보고는 “와, 동철이는 역시 끈기가 있어” 그 말을 못 잊는다. 내가 좀 끈기 있는 인간이 되려고 노력한 것도 같고. 그로부터 28년쯤 세월이 흘렀다. 나는 그때의 선생님보다 더 나이가 들었고, 뒤를 이어 동네 아이들의 선생 노릇을 하고 있고, 그 선생님처럼 기억에 남는 선생이 돼 봐야지, 욕심을 부리고 있다. - ‘벽실 계곡에서 꺽지 낚았다’, 193쪽
그는 가슴에 남는 칭찬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때의 선생님처럼 ‘기억에 남는 선생’이 되고 싶다고 욕심을 부린다. 그 다음은 ‘고(故) 황시백 선생과의 인연’이다. 이 책의 마지막 5부 ‘내가 만난 선생님’에서 그는 황시백 선생에 대한 애뜻한 마음을 담았다. 황시백 선생은 전교조 해직교사로 있다 92년 삼척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 복직해 2005년 그만둘 때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다 2010년 암으로 돌아가셨다. 94년 첫 만남에서부터 황시백 선생은 ‘젊을 때 뭐든 열심히 하라고 하는데 정작 뭘 열심히 해야 하는지 몰랐다’(437쪽)는 탁 선생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해준 좋은 형이자, 따르고 배우고 싶은 스승이었다. 그 덕분에 탁 선생은 글쓰기회 활동을 시작했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단순히 좋은 선생에서 무언가 운동의 구심점을 갖게 한 이가 바로 황시백 선생이었다.
그는 세상을 끝까지 물고 뜯는 한 인간이 되기를 바랐다. 나는 반했다. 그가 내민 손을 부끄럽게 잡았다. 그리고 그의 거울에 비추어 세상과 사람을 보게 되었다. (중략) 98년부터는 달마다 충청도 무너미에 있는 글쓰기 공부방에 같이 갔다. 그 일은 우리가 글쓰기회에서 나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형과 아우로 지냈다. 형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진실을 보았고, 초라한 것에서 진정을 찾아냈다. 자기 안에 비겁이 있었을까 괴로워했다. 하지만 아우의 비겁함은 따뜻하게 보아주었다. (중략) 언젠가 사마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선생님은 자기가 그렇게 갔으면 좋겠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그렇게 갔다. 자기가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했던 이들에게 다 주고 가 버리는 것. 사랑하다가 가 버리는 것.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인간 황시백, 그가 갔다. 소주 삼키던 소리가 가슴을 울린다. - ‘내가 만난 선생님’, 437-440쪽
그 다음이 ‘이오덕 선생과의 만남’이다. 탁 선생은 글쓰기 연구회에서 활동하며 오랫동안 ‘삶을 가꾸는 글쓰기’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해 왔다.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은 탁동철이 바로 ‘이오덕 선생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오덕 선생은 글쓰기 교육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글을 쓰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인간 교육이 있는지를 나는 모른다. 글쓰기보다 더 나은, 아이들을 지키고 가꾸는 교육이 있는지를 모른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머리말
이오덕 선생은 생전에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강조했다.《우리 문장 쓰기》,《우리글 바로쓰기》글쓰기에서 가장 바탕이 되는 건 자세히 보는 것이다. 그냥 저절로 보이는 것 말고, 마음을 담아 보는 것. 보려고 하고 들으려고 하는 순간에 ‘내’가 있다. 그러면 대상이 또렷하게 보이고, 안 보이던 게 보인다. 그리고 마음이 움직인다. 본 게 있고, 마음이 움직였으니 글을 쓸 수 있는 것이고, 내 마음이 움직였으니 다른 사람 마음까지 움직이는 것이다. 탁 선생은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말한다. “길들여지지 말고 주먹 쥐고 할 말 하라”고. 그러니까 자세히 보고 살피는 공부가 자존감을 키우는 바탕이 된다. 겪은 일을 바탕으로 한 순간의 느낌을 잘 살려 내는 건 정신이 깨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바로 ‘삶을 가꾸는 글쓰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수업에 늘 등장하는 것은 관찰하기, 경험하기, 글로 쓰기, 이야기 나누기, 표현하고 토론하기이며, 그 중에서 으뜸으로 강조하는 것이 글쓰기인 것이다. 책 전체를 관통하면서 동시에 4장에서 무게 있게 다루는 것이 글쓰기이다.
새롭거나 재미있거나 감동이 있으면 좋은 글이라고 하지. ‘벌레’는 생각만으로 쓴 글이 아니라 세라가 겪은 일을 바탕으로 썼으니까 글이 되었다. 남들이 흔히 하는 말이 아닌 세라만이 가진 느낌, 벌레를 통해 자기를 말할 수 있다면 감동이 있는 글이 될 거야. (중략) 겪은 일을 바탕으로 한순간의 느낌을 잘 살려 내는 일. 정신이 반짝 깨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겠지. 사람다운 마음, 삶이 있는 사람이라야 글을 쓸 수 있다. - ‘세라 글을 읽고’, 330-331쪽
탁 선생은 자신의 목소리로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것이 나아가 성찰하고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고 믿는다. “도망가는 뱀을 향해 내 팔만한 돌을 집어 던졌다. 그 땐 너무 놀라서 그랬다. 맞으면 아파할 생각을 하니 너무 미안하다. 그 뱀이 내가 던진 돌에 안 맞고 잘 도망가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쓴 5학년 단희의 글을 보고 아이들이 “거짓말. 맞아 죽으라고 던졌으면서” 하면서 꾸며 쓴 글이라고 술렁일 때 탁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아니야, 이건 꾸며 쓴 글이 아니야. 그때는 놀라고 무서워서 돌을 던졌지만 좀 뒤에 뱀을 걱정하는 마음이 들었을 거야. 그래서 글을 썼겠지. 글을 쓰다 보니 걱정하는 마음이 더 많이 들었을 것이고. 사람이 조용히 앉아서 글을 쓰는 순간과 같은 정신 상태를 늘 갖고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글을 쓰면서 그때 일을 다시 짚게 되고, 그러면서 앞으로 나갈 길을 보겠지. 그래서 글쓰기는 한 사람을 바꾸는 거야. 또 정직하고 바른 글을 써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거나, 살아가면서 쓸거리를 찾는 사람은 바르게 살아갈 수밖에 없겠지.” - ‘글쓰기 하며 지내 온 이야기’ 345쪽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분이 탁동철 선생의 할머니이다. “남보다 뒤처지고 어둡고 잘나지 못해 남들이 개량 오이 심어 먹을 때 아무거나 집에 있던 거 심은 게 70년”이라 지키게 된 토종 오이씨로 아직도 오이를 심고, “죽기 전에 알쿼 줘야”한다며 탁 선생을 데리고 송이 버섯이 자라는 곳을 가르쳐주는 분이다. 언제나 따뜻하게 그를 품어주는 사람이다. 고성 삼척에 불난리가 났을 때 “내가 필요 없는 걸 주면 그것도 죄여, 내가 아까워하는 걸 줘야지”라며 아껴둔 옷가지와 편지를 곱게 싸 보내는 사람이다. 탁동철 선생은 할머니로부터 남을 배려하고 진정으로 대하는 자세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배웠다.
할머니의 칭찬은 이것과 비슷하다. 만약 내가 곰을 잡기 위해서 박달나무 몽둥이를 낫으로 잘 다듬어 깎았고, 그 몽둥이를 들고 설악산에 들어가 곰을 만나 죽도록 곰과 치고받고 싸워서 결국 곰을 한 마리 잡아서 집에까지 끌고 왔다고 치자. 할머니는 문을 열고 뛰쳐나오며 이렇게 칭찬하실 거다.
“아이고, 얼매나 고생이 많았너. 이 단단한 박달나무를 이렇게 이쁘게 깎았네. 깎느라 힘들었제. 얼른 들어가 밥 먹자. 곰 절루 치우고.” - ‘칭찬’, 412-413쪽
교실 이야기로 시작해 삶의 이야기로 나오다
이 책은 단순히 교단 일기가 아니다. 그의 글을 먼저 읽었던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읽히는 글이 바로 탁동철의 글이라고. 그의 글은 곱씹어 보면 어느 한 부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그의 교육의 핵심은 스스로를 찾는 것이자 함께 하는 법을 깨치는 것이다. 그렇기에 교실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다. 스승과 제자가 분리되지 않는다. 아이들도 가르치고 교사도 배우는 교실이다. 그래서 이 책은 어떤 이에게는 교육이란 무엇인지, 어떤 이에게는 삶이란 무엇인지 성찰하게 하고, 어떤 이에게는 향수를 주게 될 것이다.
부디 천천히 곱씹어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새해를 여는 첫 책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잔잔하고 진솔한 글 속에서도 허를 찌르는 유머와 울고 웃게 하는, 보기 드문 글솜씨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모두에게 삶의 방향을 고민하고, 희망을 갖게 하는 뜻 깊은 책이길 바란다.
추천사
1) 김환영(화가,《마당을 나온 암탉》그린이)
그의 반 아이가 되고 싶은 적이 많았다.
요즘도 이런 귀한 선생과 아이들이 있단 말인가!
나는 언제나 탁동철과 아이들을 응원할 것이다.
탁샘, 달려!
2) 이상석(교사,《사랑으로 매긴 성적표》저자)
그가 선생 노릇 하는 모습, 모임에서 벗을 대하는 모습, 식구들과 사는 모습을 본 사람들 생각은 한결같다. ‘참 희귀한 사람이구나, 천연기념물 같은 사람이야.’ 탁동철은 이만큼 소중한 사람이다.
탁 선생은 이 책 내는 일을 부끄러워했다. 지난 10월 만났을 때, 책 내는 일 순조롭게 돼 가냐고 내가 물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차 문을 열다 말고 그대로 멈춰 버린다. 부끄러워 몸을 비틀며 머리카락만 쥐어뜯는다. “알았어, 알았어.” 물은 내가 먼저 물러서고 말았다. 잘난 것 하나 없는데 책을 내게 되어서 부끄러운가? 그러나 탁동철의 부끄러움은 따로 있는 듯하다. 자연은 자꾸만 파헤쳐지고 인정도 사라져 버리는 세상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하는 일이 부끄럽다. 이런 세상에서 선생 노릇 하노라 아이들 앞에 서는 것이 부끄럽다. 탁동철의 부끄러움은 자기 성찰에서 나왔을 것이고, 그 부끄러움은 다시 義, 不義를 가린다. 그리고 불의를 향하여 짱돌을 던지는 사람이 탁동철이다. 그렇게 살아왔다.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친다. 선생이 잘못하면 선생한테 대들어야 한다고.
3) 구자행(교사)
‘이 책의 주인공은 바로 아이들이구나.’ 내가 이 책을 다 읽고서 받은 느낌이다. 책에 실린 여러 교실 일기 가운데 어느 글을 읽어도 아이들이 먼저 보인다. 글을 쓴 탁 선생은 아이들의 배경이고 관찰자다. 아파서 집에 있는 동생 주려고 급식으로 나온 핫도그 하나를 더 챙기는 아름이가 주인공이고, 비 오는 날 생라면 하나를 선생님한테 건네주고는 버스 타러 달려가는 연실이가 주인공이고, ‘밑변과 높이’라고 하면 알 것이라고 말하고는 당당하게 가출하는 성택이가 주인공이다.
1) 아이가 울고 있을 때 달려가서 우는 까닭을 묻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아이 버릇을 망치는 일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해두자. 아이가 울고 있을 때 모른 척 무시해야 여린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져서 험한 세상 적응할 수 있다고 치자. 울 때마다 사연을 들어주면 아이가 남한테 의지하는 버릇이 들어 결국 자기 혼자 살아갈 길을 못 찾고 헤매게 될 게 분명하다고 해 두자. 그렇더라도 나는 우는 아이 달랠 것이다. 우는 버릇 못 고쳐서 20년 뒤에도 여전히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어도 좋다. 눈물 닦던 손을 내밀어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 줄 수는 있겠지. 적어도 아프고 힘든 사람 더욱 쪼아대는 일은 안 하고 살겠지. (‘우는 아이’, 101-102쪽)
2) 맨 처음 했던 피켓 글씨를 정리해서 써 보는 걸로 토론을 정리했다. 이 안 닦는 사람한테 이 닦으라는 요구를 하는 여학생과, 이 안 닦을 자유를 밟지 말라는 남자들과 정택이의 주장. 나는 더 재미있는 쪽이 무조건 옳다고 본다.
남학생이 만든 피켓
- 충치 균은 나의 친구. 사람만 생물이 아니다. 여자들은 나의 친구를 사형시키고 있다.
- 이빨 하나 없어져도 내 이빨은 내가 책임진다.
- 여자들 치사하게 인권 침해하지 마라. 내 이빨 냄새보다 너네 얼굴이 더 드럽다.
여학생이 만든 피켓
- 이○택, 염○민, 홍○령!!! 니 이는 네 마음이지만 입은 열지 마라.
- 남자들이 이빨 안 닦으면 우리가 인권 침해받는다.
- 드러운 것을 보고 있는 나도 괴롭다.
- 썩은 너의 이빨, 너의 몸도 썩어 간다.
- 양치 안 하면 젊었을 땐 썩은 이빨이고 늙었을 땐 이빨 없다.
- 너희의 자유만 있냐. 우리의 자유도 있다. (‘이 닦기’, 299쪽)
할머니의 칭찬은 이것과 비슷하다. 만약 내가 곰을 잡기 위해서 박달나무 몽둥이를 낫으로 잘 다듬어 깎았고, 그 몽둥이를 들고 설악산에 들어가 곰을 만나 죽도록 곰과 치고받고 싸워서 결국 곰을 한 마리 잡아서 집에까지 끌고 왔다고 치자. 할머니는 문을 열고 뛰쳐나오며 이렇게 칭찬하실 거다.
“아이고, 얼매나 고생이 많았너. 이 단단한 박달나무를 이렇게 이쁘게 깎았네. 깎느라 힘들었제. 얼른 들어가 밥 먹자. 곰 절루 치우고.” (‘칭찬’, 412-413쪽)
첫댓글 탁동철 지음 / 출판사 양철북 | 2012.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