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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군(丹陽郡)
대한민국 충청북도 북동부 최동단에 있는 군.
동쪽은 강원도 영월군과 경상북도 영주시, 서쪽은 제천시, 남쪽은 경상북도 문경시와 예천군, 북쪽은 강원도 영월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8°13′∼128°39′, 북위 36°47′∼37°09′에 위치한다. 행정구역으로는 단양읍·매포읍·대강면·가곡면·영춘면·어상천면·적성면·단성면 등 2개 읍 6개 면 148개 동리가 있다(행정리 기준, 법정리 기준 108개 리). 군청소재지는 충청북도 단양읍 중앙1로(별곡리)이다.
군내 산지가 많고 석회암 지대의 카르스트 지형으로 인해 자연관광지가 발달했다. 특히 고수·온달·천동동굴등의 동굴지대가 유명하다. 2012년 아쿠아리움 다누리센터가 개장하면서 단양군 관광지로 자리잡았다. 특산물로는 마늘·쏘가리·옥수수 등이 있다.
단양팔경 등 아름다운 계곡이 많으며, 시멘트 공업의 중심지로 유명하다. 면적 780.16㎢, 인구 29,239(2020).
연혁
구석기시대의 유물·유적이 군내 곳곳에서 발견되어 주목되는데, 대개가 남한강 주변을 끼고 분포되어 있다. 단성면 북하리 뒤뜰굴 유적, 매포읍 도담금굴 유적과 상시리의 바위그늘 유적, 단양읍 상진리 유적, 적성면 애곡리의 덕천리 동굴 유적, 수양개유적 등에서는 전기 구석기 시대에서 후기 구석기 시대에 걸친 많은 유물이 나와 구석기 문화 연구의 좋은 자료를 제시해주고 있다. 신석기 시대의 유물·유적 또한 남한강 유역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구석기시대 및 신석기시대의 유물·유적이 곳곳에서 발견되어 주목되고 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했다가 삼국시대에 일시 백제에 속했으나, 곧 영춘과 함께 고구려에 속해 적산현(赤山縣, 또는 赤城)이 되었다. 단양에는 고구려·백제·신라가 각축전을 전개했음을 알려 주는 크고 작은 성들이 많이 있다. 특히 영춘에는 고구려 장군 온달(溫達)이 을아단현(乙阿旦縣: 영춘의 고구려 때 지명)을 지킬 때 축조했다고 전하는 성산고성(城山古城, 일명 온달성)이 있다.
지금의 단양군은 옛 단양군에 영춘현이 병합된 곳이다. 단양읍·매포읍·대강면·적성면은 옛 단양군 지역에, 영춘면·가곡면·어상천면 일대는 옛 영춘현 지역에 해당한다.
옛 단양군은 신라의 적산현으로 757년(경덕왕 16)에 내제군 영현이 되었다. 단양은 삼국시대에 삼국이 각축을 벌였던 지역으로, 551년(신라 진흥왕 12) 백제와 신라가 공동작전을 편 결과 단양이 신라의 영토가 되었는데, 이때 진흥왕은 단양을 순시하고 적성비(赤城碑)를 세웠다. 통일신라 때 적산현은 내제군(奈堤郡: 지금의 제천시)의 속현이 되었다. 신문왕 때 을아단현은 자춘(子春)으로 개칭되어 내성군(奈城郡: 지금의 영월군)의 속현이 되었다가 후삼국시대에는 태봉의 영역이 되기도 하였다.
고려 초인 940년에 단산현(丹山縣)으로 고치고, 1018년(현종 9) 원주에, 그 뒤 충주의 속현이 되었다. 1291년(충렬왕 17) 원나라 합단(哈丹)이 침입했을 때 이곳 사람들이 일치단결해 외침을 극복하자 조정에서는 그 공을 기려 감무를 두었고, 1318년(충숙왕 5) 단양으로 이름을 바꾸고 지군사로 승격하였다. 이 단양이라는 명칭은 ‘연단조양(鍊丹調陽)’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때 자춘은 영춘으로 바뀌어 원주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도 단양군으로 있었다. 1399년(정종 1) 영춘을 충청도에 이속시켜 감무를 두었으며, 1413년(태종 13) 현감을 두고 어상천현(於上川縣)을 속현으로 하였다. 1416년에는 단양에 향교가 세워졌다. 1602년(선조 35) 단양·영춘이 모두 충주 관할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 단양과 영춘은 군이 되었고, 모두 충주부(忠州府) 관할이 되었다. 1896년 충청북도에 속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영춘군이 단양군에 통합되었다. 단양군은 1914년에 영춘군이 이 군에 병합된 것으로, 이전까지는 영춘이 더 중심적인 구실을 담당해왔으나 단양이 교통의 요충지가 되면서 중심지가 바뀌었다. 1950년 7월 12일 단양에 공비가 침입해 단양경찰서를 방화하는 등 6·25전쟁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으나 전후에 곧 복구되었다.
오지였던 이곳도 1970년대 이후 풍부한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개발이 진전되었다.1970년대 이후에는 태백산 일대의 지하자원 개발 및 산업철도 개설, 충주댐 건설 등으로 많은 발전을 하였다. 특히 충주댐의 건설로 단양읍내 및 그 일부가 수몰되었으나, 도전리·별곡리에 새로이 건설한 신단양은 호반의 도시로서 자연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1976.10.1 수춘면에 별방(別芳)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1979.5.1 단양면이, 그리고 이듬해인 1980.12.1 매포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5.6.1 단양읍에 구단양출장소가, 1985.11.1 적성면에 각기(角基)출장소가 각각 설치되었다.
1985년 충주 댐 건설로 단양군의 일부가 물에 잠기게 되자 도전리·별곡리에 신단양이 새로 건설되어 행정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1987.1.1 어상천면의 자작리가 제천시에, 금산리가 매포읍에 각각 편입되었으며, 1989.1.1 대강면의 후곡리 등 9개 리가 단양읍에 편입되었고, 1992.1.1에는 단양읍의 구단양출장소가 단성면으로 승격되면서 북상리·북하리 등 14개 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98.9.23에는 영춘면 별방출장소와 적성면 각기출장소가 폐지되었다.
인구
전체적으로 볼 때 1960년대에는 전국 평균치를 상회하는 인구증가를 보였으나 1970년대 이후에는 이촌향도에 의해 인구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이는 1960년대에는 풍부한 지하자원과 대규모 시멘트 공장의 설립으로 인구유입이 활발했으나 1970년 이후에는 석탄산업의 사양화, 불경기, 가동 광산 종업원수의 감소 등으로 인구유출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1970년의 인구는 9만 2,924명으로 1965년의 8만 3,555명에 비해서 9,000명 가량이 증가하여 연평균 약 2%의 증가율을 나타냈다. 그러나 군내 인구는 1970년을 정점으로 1975년 8만 9,754명, 1980년 7만 2,946명, 1990년 5만 2,227명으로 감소했으며, 2000년 이후에도 인구감소가 지속되어 2010년 3만 1,817명, 2015년 3만 761명으로 감소했다. 2020년 2만 9,239명으로 계속 감소하고 있으며, 15년 동안의 연평균 감소율은 약 2% 정도로 높은 편이다. 2020년 기준 인구는 2만 9,239명이며 가구수는 1만 5,328가구, 가구당 인구는 1.91명이다. 군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은 단양읍(1만 641명)이며, 단양읍의 인구가 군 인구의 35.6%를 차지한다. 인구가 적은 지역은 적성면(1,540명)·어상천면(1,941명)·단성면(1,760명) 순이다.
1786년(정조 10) 이곳으로 귀양 왔던 천주교도 김범우(金範禹)가 죽어 첫 순교자가 되었다. 단양은 예로부터 제2의 외금강(外金剛)이라 불릴 만큼 경관이 아름다워 정도전(鄭道傳)·이황(李滉)·이지함(李之菡)·유성룡(柳成龍) 등 많은 인물들이 이곳에 와서 수학하였다. 단양과 영춘은 한말 의병운동의 대표적인 지역으로,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의병이 처음으로 승리한 곳이기도 하다. 근대의 인물로는 1909년 안중근(安重根)이 하얼빈(哈爾濱)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할 때 협조한 우덕순(禹德淳)과 의병운동을 한 김상태(金相台)·조병륜(趙丙倫)·김규철(金奎喆), 3·1운동 때 대한민국임시정부 연통제(聯通制: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내외 업무연락을 위한 지하비밀행정조직) 단양지부에서 활약한 원용갑(元容甲) 등이 있다.
자연환경
단양읍·매포읍·적성면·가곡면·대강면 일대에는 퇴적토의 사양질 토양과 암쇄토의 적황색 사양질 토양이 분포하고 있으나, 가곡면·매포읍 일대에는 석회암이 풍화된 적색 점토인 테라로사도 많이 분포하고 있다.
군 전체 지역이 동쪽의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에 놓여서 험준한 산악지대를 이룬다. 군을 북북동-남남서로 관류하는 남한강을 경계로 남동쪽에는 소백산맥의 두솔봉(1,314m)·국망봉(1,421m)·죽령(竹嶺:1,096m)·연화봉(蓮花峰:1,394m)·형제봉(兄弟峰, 1,178m)·용두산(龍頭山:994m) 등이 솟아 있고, 북동쪽에는 태백산맥의 설매산(雪梅山)·금수산(錦繡山:1,015m) 등 높이 1,000m 내외의 산이 중첩되어 있다.
태백산맥·소백산맥·차령산맥 등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북쪽에 삼태산(三台山, 876m)·태화산(太華山, 1,027m), 남동쪽에 형제봉(1,177m)·소백산(小白山, 1,421m)·죽령(竹嶺, 689m)·도솔산(兜率山, 1,316m)·어래산(御來山, 1,064m), 서쪽 제천시 경계에 가창산(歌唱山, 819m)·금수산(錦繡山, 1,016m) 등이 솟아 있다.
장년기 산맥의 모습을 띤 험한 지세 때문에 인접한 경상북도와의 소통은 예로부터 죽령 고갯길을 통해서만 이루어져왔다. 경상북도 학성산(鶴城山)에서 발원한 단양천(丹陽川)을 비롯하여 죽령과 두솔봉에서 발원한 죽령천(竹嶺川), 설매산과 금수산에서 발원한 매포천(梅浦川), 연화봉에서 발원한 금곡천(金谷川) 등은 모두 단양읍에서 남한강으로 흘러들며, 국망봉에서 발원한 국망천(國望川)도 가곡면 신평리에서 남한강과 합류한다. 그밖에 동대천·임현천·남조천 등 20여 개의 하천이 산간계곡을 흐르고 있으며 하천유역의 평야는 매우 협소하다.
매포천(梅浦川)은 매포읍 금산리 호명산(虎鳴山, 475m)에서 발원해 남동쪽으로 흐르다가 매포읍의 중앙부를 흘러 안동리를 지난 다음 하시리에서 남한강으로 흘러들고 있다. 죽령천(竹嶺川)은 대강면 용부원리 죽령에서 발원해 서쪽으로 대강면을 가로질러 흘러서 장림리에서 남조천에 합류한다.
남조천(南造川)은 대강면 남조리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흐르다가 대강면의 남부를 지난 다음 황정리에 이르러 대흥천(大興川)을 합류하고 북쪽으로 흘러 장림리에서 죽령천을 합류하여 단양읍 현천리에서 남한강에 합류하고 있다.
연곡천(連谷川)은 어상천면 연곡리 가창산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흐르다가 어상천면의 서부를 뚫고 덕문곡리에 이르러 동쪽으로 꺾여 심곡리에 이르러서는 북쪽으로 오는 임현천(任縣川)을 합류해 남쪽으로 꺾여 흘러 가곡면 가대리에서 남한강으로 흘러들고 있다.
단양천(丹陽川)은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 명전리 대미산(大美山)에서 발원해 북동쪽으로 흐르다가, 벌천리에 이르러 동남쪽에서 오는 방곡천(傍谷川)과 서쪽에서 오는 내를 합해 북쪽으로 흘러 단양의 중심부를 지난 다음 단성면 하방리에서 한강으로 흘러든다.
이들 하천과 그 지류들이 산간계곡을 흐르기 때문에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경승지는 많으나 유역평야는 적은데, 그나마 충주댐의 건설로 수몰되어 더욱 줄었다. 석회암지대에는 많은 시멘트공장이 있고, 그 밖에 무연탄 등의 지하자원을 채광하고 있다.
단양팔경을 비롯한 수많은 명승지가 있으며, 석회암지대이기 때문에 도처에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되어 있다. 소백산맥·노령산맥·차령산맥으로 둘러싸인 내륙산간지대에 위치하므로 서리가 내리는 기간이 길며, 일교차와 연교차가 큰 대륙성기후를 나타낸다. 연평균기온 11.6℃ 내외, 1월평균기온 -4.7℃ 내외, 8월평균기온 26.1℃ 내외, 연평균강수량 1,072㎜ 정도이다. 강설일수가 21일 정도나 되고 있다. 식생은 침엽수림과 혼효림(混淆林)이 탁월하며, 매포읍에는 한국에서 하나뿐인 측백나무 집단자생지가 있다.
산업과 교통
농경지는 남한강 연안과 북동부의 영춘, 북서부의 매포 부근을 중심으로 약 76.4㎢ 정도가 분포하는데, 총면적의 9.8%밖에 되지 않아 군내 식량자급이 불가능하다. 밭이 논의 3배 이상이며, 주요농산물로는 식량작물 외에 마늘·고추·담배 등의 특용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특히 이 지역 마늘은 맵고 향기가 높기로 유명하며 고추와 함께 많은 양이 생산되고 있다.
임야 면적은 642.19㎢(전체 면적의 82.3%)로 그 가운데 입목지가 94.1%를 차지해 임상이 우수한 편이다. 임산물로는 밤·대추·송이버섯·약초 등이 많이 재배된다. 충주 댐의 건설로 어족이 풍부해졌으며, 준치·붕어 등이 많이 잡힌다. 가동중인 광산은이 79개소에 이르며(2006), 비금속광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주로 석회석·규석·납석·고령토 등이 채굴되고 있다. 특히 석회석의 매장량이 많아 이를 이용한 시멘트 공업이 크게 발달했다. 매포읍을 중심으로 한일시멘트·현대시멘트·성신화학 등 3개의 대단위 공장이 있다. 그러나 시멘트 공업의 발달로 매포읍 우덕리·삼곡리 등지를 중심으로 매연과 시멘트 가루로 인한 대기 오염이 심각하다. 이 부근의 블록집 지붕과 처마에는 시멘트 가루가 두껍게 가라앉아 굳어져서 고드름을 연상시킬 정도이다. 군내에는 52개소의 공장이 있는데 주로 시멘트 제조공장들이다(2006).
시장으로는 상설시장 2개소와 단양·매포·대강·영춘·어상천의 5개 정기시장이 있다. 주요거래품목은 마늘과 고추이다.
중앙선이 군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으며, 제천-영주, 단양-청주 간을 잇는 국도가 지난다.
죽령은 예로부터 중요한 교통의 요지이며, 우리나라에서 2개뿐인 루프식 철도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지형적인 제약으로 간선교통로 주변지역 외에는 교통이 불편한 곳이 많다. 충주 댐 건설 이후 충주와 뱃길이 통하게 되어 관광개발에 이용되고 있으며, 중부고속도로 개통으로 서울까지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도로총길이는 390.84㎞, 도로포장률은 81.7%이다(2006).
-산업·교통
단양군은 총면적 781.06㎢ 중 논 13.41㎢, 밭 61.27㎢, 목장용지 2.33㎢, 임야 641.82㎢이며, 밭이 월등하게 많으나 경지면적이 좁아 영세농을 면치 못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옥수수·콩·고구마·무·배추·사과 등을 생산하며 특용작물의 재배가 매우 활발하다. 요즘에는 어상천면에서 생산되는 수박이 유명하다. 특용작물로는 전국 제일의 마늘과 고추 외에 송이버섯·표고버섯·약초 등을 들 수 있다. 가축으로는 한우·닭·개·산양 등을 많이 사육하고, 젖소는 대강면에서 거의 대부분을 사육하고 있다.
충주댐의 건설로 내수면 어업이 발달하고 있고, 남한강 상류에는 쏘가리·잉어·누치·메기 등이 많은데 민물매운탕은 관광객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총 227개의 광구 중 95개의 광구가 가행되고 있으나, 주로 비금속광물로서 연간 납석 29만 9509M/T, 규석 6만 1350M/T, 석회석 1925만 3412M/T, 고령토 1만 3106M/T를 생산한다. 석탄은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다.
관내에는 대강농공단지와 적성농공단지가 있는데 둘 다 가동되고 있다.
매포지구는 석회석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고 점토를 쉽게 얻을 수 있으며, 석탄산지와 인접해 있고 철도교통이 편리하여 시멘트공업이 매우 발달해 있다. 대규모의 시멘트공장으로 현대시멘트·한일시멘트·성신양회 등이 있는데, 시멘트 생산량은 1984년 전국 생산량의 26%에서 1989년 28.1%, 2006년에는 30%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매포에는 시멘트공장과 관련된 많은 업체들이 입지하고 있는데, 시멘트의 원자료 공급과 관련된 업체와 그 외에 일반도매·소매·음식·숙박업·금융·보험·부동산업, 사회 및 개인 서비스업 등이 광업체와 공업업체들과 관련해 발달해 있다.
매포지구의 신단양은 충주댐의 건설로 수몰된 많은 지역의 이주민을 위하여 집단주거지로 개발되었다. 1983년 단양읍 도전리·상진리·별곡리 일원에 주택단지 0.96㎢, 공업단지 0.04㎢의 신단양 도시계획을 수립하고 같은 해 7월 20일 이주단지 조성공사를 착공하였으며, 1985년 5월 13일에 주요 기관이 신단양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신단양 건설의 목표는 충주호반의 관광도시 건설이다. 많은 관광시설과 관광지의 개발, 서비스 시설의 확충으로 신단양은 관광·휴양의 호반도시가 되면서 서비스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시장으로는 6개의 정기시장이 있었으나 요즈음에는 인구의 감소로 단양읍 단양장이 1·6일, 매포읍 매포장이 4·9일, 영춘면 영춘장이 3·8일에 열리고 있으며, 주요 거래품목은 생활필수품과 마늘, 산나물 등의 농산물 이다.
교통은 단양읍을 중심으로 국도 5호선이 매포읍∼대강면으로 연결되고, 36호 국도선이 단양읍에서 만나고 있으며, 2001년 12월 14일 제천과 풍기 구간을 잇는 중앙고속도로가 전구간 개통되었다.
또 충북선 철도가 국도 5호선과 나란히 통과해 있으나, 산지와 하천이 많아 교통은 불편한 편이지만 영남 지방과의 교통의 요지가 되고 있다.
유물·유적·관광
군내에는 국가지정문화재 22점(국보 3, 보물 1, 천연기념물 5, 사적 3, 중요민속자료 1), 도지정문화재 36점(유형문화재 29, 기념물 5, 민속자료 1, 무형문화재 1) 등이 있다.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의 유적이 도당리 금굴, 애곡리 수양개, 북하리 뒤뜰굴 등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그밖에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는 적성면 각기리의 선돌, 매포읍 안동리의 돌널무덤이 있다.
매포읍 도담리의 단양 금굴 유적(충청북도 기념물 제102호), 상시리의 바위그늘유적, 가곡면 여천리의 단양 구낭굴 유적(충청북도 기념물 제103호), 적성면 애곡리의 단양 수양개 유적(사적 제398호), 적성면 각기리의 단양 각기리 입석(충청북도 기념물 127호) 등을 비롯해, 단양읍 상진리, 가곡면 덕천리, 단성면 북하리 뒤뜰굴 등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었다.
삼국시대 유적으로는 단성면 하방리에 단양신라적성비(丹陽新羅赤城碑:국보 제198호)와 단양 탁오대 암각자(濯吾臺巖刻字,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1호)·단양 복도별업 암각자(復道別業巖刻字,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2호)가 있다. 또한 대강면 사인암리에 우탁기적비(禹倬記蹟碑), 단성면 상방리의 옛 군청 자리에 우화교신사비(羽化橋新事碑,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0호) 등이 있다.
산성, 성터로는 단성면 하방리의 단양적성(丹陽赤城, 사적 제265호)·영춘면 하리의 단양 온달산성(丹陽溫達山城, 사적 제264호) 등이 있다. 대강면 두음리의 공문성(貢文城), 직치리의 독락산성(獨樂山城), 용부원리의 죽령토성(竹嶺土城), 남천리의 성재, 적성면 성곡리의 가은암산성(加恩巖山城)이 있다. 또 단양읍 덕상리, 단성면 가산리·하방리, 적성면 현곡리, 가곡면 가대리·어의곡리, 대강면 사동리에는 고려장터라 불리는 옛 무덤터가 있다.
불교 문화재로는 가곡면의 단양향산리3층석탑(보물 제405호), 단성면 고평리 절터의 석불좌상, 상방리의 석탑부재(石塔部材), 하방리 사리탑, 대강면 용부원리의 보국사지 장육불상(輔國寺址丈六佛像), 영춘면 사지원리의 비마라사지(毗摩羅寺址)와 탑터, 오사리의 화장암불상(華藏庵佛像), 하리의 석불 등이 있으며, 단성면의 중방리 절터에서는 ‘大德精舍(대덕정사)’라는 명문이 나왔다. 영춘면 구인사에는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국보 제257호),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국보 제279호), 대방광불화엄경소 권68(보물 제1013호), 진실주집(보물 제1014호), 인천안목(보물 제1015호), 대방광원각약소주경 권상의2(보물 제1016호), 대방광불화엄경진본 권15, 주본 권38, 정원본 권2(보물 제1017호),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권6(보물 제1049호), 불설아미타경(언해)(보물 제1050호), 묘법연화경삼매참법 권하(보물 제1162호), 묘법연화경 권3~4(보물 제1164-1호), 단양 구인사 금동구층소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9호), 단양 구인사 아미타회상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10호), 단양 구인사 청자발우(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11호) 등이 있다.
유교 문화재로는 단성면 상방리의 단양향교(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07호), 북하리의 도계서원(道溪書院), 영춘면 상리의 영춘향교(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등이 있다.
이 밖에 대강면 용부원리에 죽령산신당(竹嶺山神堂, 충청북도 민속문화재 제3호), 가곡면 덕천리에 단양 조자형 가옥(丹陽趙子衡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145호), 매포읍 도담삼봉(嶋潭三峰)의 중봉에 삼도정(三島亭)이 있다.
삼도정은 1766년(영조 42) 단양군수 조정세(趙靖世)가 창건한 능영정(凌瀛亭)이 있던 곳에 1976년 10월 육각정으로 신축한 것으로, 도담삼봉의 경승이 이 정자로 인해 운치를 더하고 있다.
그밖에 황쏘가리(천연기념물 제190호) 서식지, 영천리의 측백수림(천연기념물 제62호), 소백산의 주목군락(천연기념물 제244호) 등과 고수굴(천연기념물 제256호)·온달굴(천연기념물 제261호)·노동굴(천연기념물 제262호)·천동굴 등의 석회암 동굴이 유명하다. 이 지역은 한강 상류지역이라 한강의 황쏘가리(천연기념물 제190호)가 서식하고 있으며, 매포읍 영천리의 측백수림(천연기념물 제62호), 가곡면 어의곡리의 소백산의 주목군락(朱木群落, 천연기념물 제244호) 등 중요한 보호수가 있다.
또 영춘면 하리의 온달동굴(溫達洞窟, 천연기념물 제261호), 단양읍의 단양 고수동굴(천연기념물 제256호), 대강면 노동리의 노동동굴(蘆洞洞窟, 천연기념물 제262호), 단양읍 천동리의 단양 천동동굴(丹陽泉洞洞窟, 충청북도 기념물 제19호)을 비롯해 어상천면 임현리의 일광굴(日光窟), 매포읍 영천리의 흰곰동굴, 단성면 북하리의 뒤뜰굴과 양당리의 박달굴, 가곡면 어의곡리 동굴과 보발리 동굴 등 동굴이 많다.
-관광
이 군에는 단성면 대잠리의 대선암공원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제일가는 천혜의 관광지가 많다. 단양팔경(丹陽八景)은 단양을 중심으로 남한강 상류를 끼고 주위 20㎞ 내외에 산재해 있는 하선암(下仙巖)·중선암(中仙巖)·상선암(上仙巖)·옥순봉(玉筍峰)·구담봉(龜潭峰)·석문(石門)·도담삼봉(嶋潭三峰)·사인암(舍人巖)을 말하고 있는데, 부근 일대는 산악이 중첩하고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크고 작은 군봉이 늘어서 있어 여러 가지 경승을 나타내고 있다.
제2단양팔경은 단양팔경에 준하는 경승지로서 대강면의 죽령폭포, 단양읍의 다리안산·장회탄(長淮灘), 영춘면의 북벽(北壁)·온달산(溫達城), 가곡면의 구봉팔문(九峰八門), 어상천면의 일광굴(日光窟), 적성면의 강선대(降仙臺)·금수산(錦繡山) 등을 말하고 있다.
군내에는 석회암지대가 널리 분포하고 있어 단양읍 고수리의 고수동굴, 노동리의 노동동굴, 천동리의 천동굴, 영춘면 하리의 온달동굴, 백자리의 남굴(南窟) 등 많은 동굴들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또한 소백산국립공원과 월악산국립공원 등이 있고 소백산의 국망봉·주목군락·철쭉제는 많은 등산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 외에도 도처에 사찰·산성·명승지가 있는데, 특히 영춘면 백자리에는 대한불교태고종의 총본산인 구인사(求仁寺)가 있다. 이들 경승지와 명승고적지가 새로이 조성된 충주댐 호반과 조화를 이루어 신단양은 내륙호반의 관광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신단양은 인근의 수안보온천, 청풍문화단지 등과 연계되어 있고, 충주호 유람선이 충주에서 신단양까지 왕래하고 있으며, 중앙고속도로의 개통으로 교통이 편리해진다면 국제적인 관광지로서도 손색이 없게 될 것이다.
관광객 유치를 위하여 단양읍 고수리에 관광안내소를 설치하고 단양읍 천동리의 천동국민관광지, 다리안폭포 주변의 다리안국민관광지, 고수동굴 주변지역의 정비와 영춘면 하리의 온달동굴 주변지역의 개발 등을 통하여 그동안의 1일 관광에서 묶고 쉬어가는 체류형 관광으로 탈바꿈하기 위하여 민간자본의 적극적인 유치로 관광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산과 하천의 아름다운 조화로 명승지가 많아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이곳의 관광자원은 단양팔경, 제2단양팔경, 충주 댐, 석회암지형 등 주로 자연경관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1985년에 완공된 충주 댐의 영향으로 군내의 많은 지역이 수몰되었으나 뱃길과 낚시터가 이루어져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단양팔경은 매포읍에 있는 도담삼봉·석문, 단양읍에 있는 옥순봉, 단양천 골짜기의 하천암·중선암·상선암·사인암·구담봉(제천시에 위치)을 말하며, 제2단양팔경은 대강면의 죽령폭포·칠성암·다리안산, 영춘면의 북벽·온달성, 가곡면의 구봉팔문, 어상천면의 일광굴, 적성면의 금수산을 일컫는다.
영춘면에는 천태종의 본산인 구인사가 있어 해마다 많은 불교신자들이 찾고 있다. 충주 댐의 완공으로 새롭게 조성된 신단양은 관광도시로서의 기대가 크며, 명승지를 연결하는 도로망의 정비로 더욱 많은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간 관광객수는 657만 8,000여 명(2006)으로 4~5월에 가장 많다.
교육·문화·의료·복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으로는 단양향교와 영춘향교가 있다. 단양향교는 1415년 단양군수 이작(李作)이 설립했고, 명종 초에 단양군수 이황이 지금의 장소인 단성면 상방리로 옮겼다. 영춘향교는 1399년(정종 1) 이 현의 북쪽에 건립된 것으로, 1614년(광해군 6)과 1659년(효종 10)에 중수되었다가 1791년에 현감 정해래(鄭海來)가 현 위치인 영춘면 상리로 옮겼다.
1971년에 복원된 단성면 북하리의 도계서원은 춘천 소양강변에 있던 도포서원(道浦書院)과 지하리에 있던 단계서원(丹溪書院)을 합쳐 도계서원이라 명명한 것이다. 한편, 1662년(현종 3) 단양군수 한명원(韓命遠)이 설립하고 1692년(숙종 18)에 사액된 적성면 현곡리의 단암서원(丹巖書院)과 1673년영춘면 하리에 설립된 송파서원(松坡書院), 그리고 설립연대 미상인 영춘면 별방리의 금곡서원(琴谷書院) 등이 있었으나 1871년에 모두 철폐되었다.
최초의 근대교육기관은 1906.6.1에 개교한 사립 홍명학교(弘明學校, 지금의 영춘초등학교)가 개교했으며, 1907년 정미병란으로 건물이 소실되어 일시 휴교했다가 1908년 현재의 사선루(四仙樓)에서 다시 개교하였다. 이것이 1911년 4월 사립 영춘보통학교(永春普通學校)로 바뀌었고, 이듬해 4월 1일 다시 영춘공립보통학교로 바뀌었으며, 지금의 영춘초등학교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이어서 1909.2.23 사립 익명학교(益明學校, 지금의 단양초등학교)가 설립 개교해 1910.3.3 단양공립보통학교로 바뀌었는데, 이것이 지금의 단양초등학교이다. 교육기관으로 2016년 기준 유치원 10개소, 초등학교 11개교, 중학교 7개교, 고등학교 2개교가 있다.
이 밖에 군립단양도서관이 있어 군민들의 교육·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1971년에 개원한 단양문화원은 지역사회의 문화계발 및 소백산철쭉제 등의 지방문화행사를 주관, 향토문화의 발굴과 계승에 공헌하고 있다.
민속
이 지방의 민속놀이로는 줄다리기와 조조(曹操)잡기가 있다. 줄다리기를 위해서는, 정월 초순에 아이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짚을 모아 줄을 꼬기 시작해 웬만큼 굵어지면 어른들이 줄을 만드는데, 한 아름 굵기의 암줄과 수줄을 20∼30m 길이로 만들고 이 본줄에 쥐고 당길 수 있는 가지줄을 매단다.
정월보름에 동네사람들이 편을 갈라 편장을 뽑아 줄 위에 태우고 농악의 응원을 받으며 줄을 세 번 당겨 두 번 이기는 쪽이 승리하는 집단놀이인데, 여자는 줄을 당길 수 없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진편에서 이긴 편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줄은 태워 그 재를 거름으로 썼다고 한다. 지금은 거의 전승되지 않으며 학교 운동회 때 재현되고 있다.
조조잡기는 방안에서 하는 놀이인데, 종이에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 이름을 적은 다음 접어서 여러 사람에게 돌리면, 그 종이를 받은 사람은 혼자만 본다. 이때 ‘유현덕(劉玄德)’의 쪽지를 가진 사람이 나서서 “관우야, 조조를 잡아오너라.” 하면 ‘관우’ 쪽지를 가진 사람이 ‘조조’ 쪽지를 가진 사람을 찾아내는 놀이이다.
쉽게 찾으면 벌을 안 받지만 못 찾으면 ‘유현덕’ 쪽지를 가진 사람이 시키는 대로 벌을 받는데, 이 놀이는 『삼국지』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전승되지 않고 있다.
이 지방에는 산신제와 서낭제가 분포되어 있다. 대강면 괴평리 산신제는 매년 정월 초순에 택일해 생기복덕한 제관이 동굴제당에서 메와 술만 차려 놓고 유교식으로 제사하며, 제기(祭期) 동안에는 제주나 동민이 모두 근신한다.
용부원리 서낭제는 산신제를 올린 뒤에 지내는데, 산신제는 용부원리의 여러 마을이 공동으로 지내지만 서낭제는 마을 단위로 따로 지낸다. 매년 정월 14일 밤에 생기복덕한 제주가 서낭당에 고기·술·떡·과일을 차려 놓고 유교식 제사를 지낸 다음, 동네를 위한 대동소지(大同燒紙), 제주를 위한 제주소지(祭主燒紙), 그리고 각호소지(各戶燒紙)를 차례로 올리는데, 소지가 잘 타면 감응을 잘한 것이라고 한다. 서낭제 때는 마을마다 따로 금줄을 치고 근신한다.
1971년에 개원한 단양문화원은 지역사회의 문화개발 및 소백산 철쭉제 등의 지방문화행사를 주관하여 향토문화의 발굴과 계승에 힘쓰고 있다.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줄다리기와 조조잡기, 부락제로는 산신제와 서낭제가 전해온다.
설화·민요
이 지방의 설화로는 단양의 지명과 관련된 전설, 우탁(禹倬)·정도전·이황 등 이 지역과 관련된 역사적 인물의 출생담이나 일화, 풍수설화 및 효자이야기 등이 많이 전승되고 있다.
고려의 우탁과 조선의 유척기(兪拓基)가 태어난 적성면 금수산 아래의 품달촌은 십승지지 중 하나이며, 구인종어양백(求人種於兩白)이라는 명당인데 아직도 한 사람의 큰 인물이 더 날 것이라는 전설이 있고, 강선대에는 단양군수인 이황을 사모했던 기생 두향(杜香)의 무덤과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가 전한다.
그리고 두악산(斗嶽山)이 소금무지산으로 불리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단양(丹陽)’의 두 글자가 모두 불과 관계있어 단양에 불이 자주 났다. 그런데 어떤 지관(地官)이 읍내에 연못을 파고 두악산에 소금과 물을 담은 항아리를 묻으면 불기운을 누를 수 있다고 일러 주자 그렇게 했더니 불이 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두악산이 소금무지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 이 항아리에 아기 못 낳는 사람이 소금과 물을 가져다 넣으면 아기를 낳는다고 한다.
도담삼봉의 전설은 남봉(男峰)과 처봉(妻峰)이 사이좋게 살다가 아이가 없어 첩봉(妾峰)을 두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삼봉이 처음에 강원도 정선 땅에 있다가 어느 해 장마로 떠내려왔다. 그래서 해마다 강원도에서 세금을 받아갔는데, 한번은 어린아이가 세금을 받으러 온 사람에게 도로 가져가라고 해서 세금을 안 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영춘면 온달성과 관련된 전설로는 「선돌[立石]·쉰돌[休石]전설」이 있다. 고구려의 온달이 마고할멈으로 하여금 온달성을 쌓는 데 쓰일 돌을 나르도록 했는데, 온달이 신라군에 패해 후퇴했다는 소식을 들은 마고할멈이 가지고 가던 돌을 팽개치고 말았다. 이 돌이 영춘면 장발리의 선돌이라는 것이다.
또 온달을 도우러 산성으로 달려가던 온달의 누이동생이 장발리에 이르러 온달이 패주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한이 맺혀 죽어서는 돌이 되고 말았는데, 이것이 그 선돌이라고도 한다. 쉰돌은 온달이 성이 함락된 뒤 후퇴하다가 바위에 윷판을 그려 놓고 군사들과 윷놀이를 하면서 쉬었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인데, 지금 영춘면 상리에 있다.
장회리 길목의 「용소전설(龍沼傳說)」은 아기장수설화 유형에 속하는 것이다. 임진왜란 후 적성면 하진리의 장씨문중에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이 아이가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선반 위에 올라가 앉아 있는 등 점점 장수의 기상을 나타내자, 역모로 인한 후환을 두려워한 부모가 송판과 맷돌로 눌러 죽이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그런데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양쪽 겨드랑이 밑의 비늘을 떼면 된다고 말해 그렇게 했더니 죽었다. 이때 늪에서 용마 한 필이 울부짖다 죽었는데, 이 때문에 용소라고 불리게 되었다.
「뱀굴전설」은 한 가난한 사람이 어느 날 뱀굴에서 구렁이가 입을 벌리고 있어 배가 고픈 줄 알고 조왕(竈王: 부엌의 길흉화복을 맡아보는 신) 단지의 쌀을 꺼내 밥을 해주었더니 그 뒤로 부자가 되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집안에 있는 구렁이를 업이라 해 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밖에 우탁이 사인(舍人) 벼슬을 할 때 놀았다는 「사인암전설」, 죽령 도둑떼를 물리쳐 주었다는 「다자구할머니전설」 등이 있다.
강원도와 경상북도에 인접한 이 고장에 구전되는 민요는 강원도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으며, 들보다 산이 많아 나무꾼노래가 많다. 또 남한강 상류가 흘러 곳곳에 도선장이 있어 뱃노래가 있는 것도 흥미롭다.
「나무꾼노래」는 “……장작발인 소에 실고/ 단을 묶어 지게 하고/ 석양산 굽은 질로/ 주춤주춤 내려오다/ 개사청천 흐르는 물을/ 젙에 두고 고이 앉어/ 곰방대를 툭툭털며/ 허허탄식 하는 말이…….”와 같이 신세한탄을 읊조리듯이 혼자 부르는 것이 있으며, 나무를 여럿이 베고 나르면서 부르는 선후창 형식의 노래도 있다.
여럿이 부르는 노래는 대개 느린 중중모리 두 장단으로 “여보소 일꾼들아/ 내말 들어보소.”라는 사설로 앞소리를 메기면, 여럿이 같은 가락으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날 데려가소.”라는 아리랑 여음으로 뒷소리를 받는다.
뱃노래는 장마철에 배를 강둑에 올려놓거나 강둑에 있던 배를 물가로 끌고 갈 때 부르는 「배끄는 노래」와 「배젓는 노래」로 나눌 수 있는데, 「배끄는 노래」는 자진모리 두 장단으로 “어야 어허야 사공들아”라는 사설로 앞소리를 메기면 여럿이 한 장단으로 “어이차 어이차”라는 뒷소리로 받는다.
「배젓는 노래」는 느린 두 장단으로 노를 저으며 혼자 부르는데, “영월에 영춘에/ 흐르고 내리는 물은/ 도담삼봉 안고돌고/ 도담삼봉 흐르는 물은/ 만학천봉 안고도네…….”라는 구성진 가락이다.
동요로는 「진드기타령」이라고도 하는 「진드기노래」가 있는데, “진득아 진득아(입술타령)/ 무얼먹고 살어니/ 오뉴월 염천에/ 쇠부랄 밑에/ 대롱대롱 달렸다가/ 뚝 떨어지니/ 길도 가는 행인이/ 질겅 밟어/ 시꺼먼 피가/ 찔금났네.”로 두 개의 음으로 구성된 단순한 가락에 입술타령(놀리는 口音)을 삽입해 익살스러운 몸짓과 함께 부르는 노래이다. 이 노래의 사설은 아이들이 진드기의 생태를 소박하나 다소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밖에도 말뚝박기·터다지기·풀베기·나물캐기 등에 부르는 노래가 있으며, 「노랫가락」·「각설이타령」 등이 여러 가지 형태의 사설과 가락으로 많이 불린다.
구전되는 설화로는 〈단양우씨시조전설〉·〈도담삼봉전설〉·〈온달성과 관련된 선돌·쉰돌 전설〉 등이 있으며, 민요로는 〈나무꾼노래〉·〈뱃노래〉·〈찐드기노래〉 등이 알려져 있다.
2015년 기준 의료기관으로는 병원 1개소, 의원 7개소, 요양병원 1개소, 치과병원 5개소, 한의원 4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23개소가 있다. 사회복지시설로는 노인여가복지시설 161개소, 노인주거복지시설 3개소, 노인의료복지시설 8개소, 재가노인복지시설 2개소, 아동복지시설 1개소, 장애인복지생활시설 36개소, 보육시설 14개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