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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병사와 일꾼이 되라!
참고말씀: 잠23:2; 25:16; 전4:12; 12:12; 마14:31; 막4:40; 눅8:25; 22:32; 롬13:14; 고전6:18; 갈5:26; 엡6:10; 빌1:12,13; 딤전1:4; 6:20; 딛3:9; 히12:2,3; 13:9
읽을말씀: 딤후2:1-26
주제말씀: 딤후2: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가 되어야 합니다(1-13절).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2:3)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떻게 되라고 권면합니까? 예수 안에 있는 은혜로 강해질 것입니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1절) 이로 보건대 우리는 무엇으로 강해질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입니다. 즉 은혜로서 마음이 굳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히13:9 상)
그러나 반대로 은혜가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약해지게 됩니다. 즉 우리의 마음이 약해지고 우리의 믿음이 작아지거나 떨어지게 되며, 또한 그것과 비례하여서 걱정이 많아지고 의심과 두려움이 커지게 됩니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마14:31) / “...너희가 어찌 믿음이(어떤 사본에, 어찌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막4:40 하) /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눅8:25 상) /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눅22:32 상)
그러니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여지고 또한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해져야 할 것입니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1절) /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엡6:10)
또 디모데에게 무엇을 부탁했습니까? 받은 복음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할 것입니다. 어째서입니까? 그리하여야만 복음의 재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2절)
그러면서 이를 위해서 무엇이 되라고 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입니다. 즉 예수님의 좋은 병사로써 자신과 함께 고난받을 것을 명한 것입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3절) 이왕에 받는 고난, 하나님 나라의 정예 병사로써 받도록 권면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①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군인으로 복무하는 사람 중에서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4절)
② 말씀대로 신앙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경기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않으면 상을 받을 수 없듯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가 되려면 하나님의 법, 곧 말씀대로 신앙생활을 잘 해야 할 것입니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5절)
③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얻을 수 있듯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부지런히 수고하는 자가 그 나라에서 상급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되려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6절)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도 무엇을 받을 수 있습니까? 고난입니다. 단순한 고난입니까? 아닙니다. 복음으로 말미암는 고난입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9절 상)
하지만 이 같은 고난 가운데서 낙심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①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 고난으로 말미암아 낙심하지 않기 위해서 예수님을 기억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고 온갖 부끄러움도 개의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8절) /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시니 이를 생각하라.”(히12:2,3)
② 매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왜 고난으로 말미암아 낙심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단코 매이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넘어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혹 매일 수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로 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9절 하) /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빌1:12,13)
③ 항상 미쁘시는 하나님입니다.
왜 고난으로 말미암아 낙심하지 않으려면 항상 미쁘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까?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항상 미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계속 일하시고 성취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13절)
참고로, 우리는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해 모든 것을 참아야 합니까? 그들도 구원을 받아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10절)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로 훈련받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로 지금 복음과 함께 고난받고 있습니까?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인정 받은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14-26절).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2:15)
바울은 또 디모데에게 자신을 하나님 앞에 어떤 자로 드리기를 힘쓰라고 권면합니까?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인정 받는 일꾼입니다.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15절 하)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①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해야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아무리 은사가 많고 봉사를 많이 해도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그 어떤 인정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진리의 말씀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면서 어찌 하나님의 인정을 기대할 수 있단 말입니까?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15절 상)
②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려야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이런 것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으로 점점 더 나아가게 하며,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더 나아가나니.”(16절) 악성종양처럼 펴져 나가 여러 사람의 믿음을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말은 악성종양이 펴져 나감과 같은데...”(17절 상) /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18절 하)
당시 에베소 교회에 있던 영지주의 이단 교사들은 누구였습니까? 후메내오와 빌레도입니다.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17절 하) 또한 그들의 대표적인 이단 사상은 무엇이었습니까?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함, 곧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육체의 실제적인 부활의 부정입니다.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18절 상)
어째서입니까? 그들은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영적인 것은 선하나 물질 및 육체는 무조건 악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구원은 육체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며, 악한 몸의 부활은 있을 수 없으며 있어서도 안 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③ 하나님의 견고한 터 위에 바로 서야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진리에 관하여 그릇되지 않으려면 견고히 서 있는 하나님의 터, 즉 기독교 복음과 그 기본 진리 위에 자신을 바로 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19절 상) 성령님께서는 이와 관련하여 항상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시므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마땅히 불의에서 떠나야 할 것입니다.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19절 하)
④ 자기를 깨끗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주인이 귀히 쓰는 그릇은 비싼 그릇이 아니라 깨끗하게 준비된 그릇이므로, 그리스도의 일꾼은 마땅히 자기를 깨끗하게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를 깨끗하게 준비함으로써 하나님의 모든 선한 일에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 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20,21절)
자신을 깨끗하게 하려면 특히 무엇을 피해야 합니까? 청년의 정욕입니다.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22절 상) 즉 불건전한 성적 욕망을 비롯하여 지나친 식욕, 지식욕, 명예욕 등을 피해야 합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고전6:18) / “네가 만일 음식을 탐하는 자이거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잠23:2) / “너는 꿀을 보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함으로 토할까 두려우니라.”(잠25:16) /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4 하) /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전12:12 하) /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5:26)
단순히 피하기만 하면 됩니까? 아닙니다. 이와 동시에 적극적으로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라야 합니다.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22절 하) 물론 혼자서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럿이 하면 어떻습니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12) 누구와 함께 하면 훨씬 쉬워집니까?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입니다.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22절 중)
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려야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은 다툼만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23절) 참고로, 여기서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복음의 진리를 나타내는 것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지적 수준을 자랑하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에서 나온 것으로 거짓 교사 및 이단자들의 가장 큰 특징들 중 하나입니다.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딤전1:4) /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딤전6:20) /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딛3:9)
⑥ 다투지 말고 온유함으로 훈계해야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않아야 하고, 또한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고 인내로써 가르치되, 특별히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24,25절)
왜 거역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온유함을 잃지 않아야 합니까?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어서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25,26절)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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