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호익이 영공(令公.망우당 곽재우)과 평생토록 얼굴을 마주한 것은 전란(戰亂)이 일어났을 당시 한두 번 본 것에 불과하지만, 의기투합하여 그대를 향해 쏠리는 마음은 어느 하루도 아득한 저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었네. 이것이 어찌 유독 강호(江湖)의 경치나 물고기를 낚는 즐거움이 족히 명리(名利)를 버리고 세상에서 벗어나서일 뿐이겠는가. 자리를 다투는 데에서는 장(漿)을 바치면서 덕에 귀의하였고(평소에 덕으로써 주위 사람들을 교화시켰다는 뜻), 한 근원에서 십만의 계략으로 공을 거두었으니, 공이 얻은 바를 어찌 쉽사리 말할 수 있겠는가.
늙고 졸렬한 나는 문(文)은 장막(帳幕) 아래의 아이(문장이 뛰어나지 못한 자)에게 부끄럽고, 시(詩)는 의원(醫員)을 찾는 사람(소동파를 말함)에게 부끄럽네. 그런데도 매번 그대로부터 은근하고 정성스러운 뜻을 받게 되었으므로 사양할 수가 없어서 겨우 장구(長句) 한 수를 지어 보내어 못난 나의 마음을 담았는바, 이는 감히 시다운 시라고 여겨서 보내는 것은 아니네. 구름이 낀 산이나 안개에 덮인 물이 아침저녁으로 변화하는 모습과 삿갓을 쓰고 낚싯대를 잡고 달밤에 배를 띄우는 흥취에 이르러서는 우선은 말할 겨를이 없었네.
● 오랫동안 그대의 높은 풍모를 우러르면서 매번 한 차례 만나 회포를 풀고자하는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몸이 늙고 병이 깊어져서 문 닫고 들어앉은 채 고요함만을 지키고 있었네. 그러다가 시절이 다시 돌아와 선롱(先壟.조상의 무덤)에 가서 살펴보고 오는 도중에 그만 병에 걸린 탓에 그대의 그윽한 초청을 받고서도 물외(物外)에서 노니는 그대의 맑은 의표(儀表)를 가까이 할 길이 없어서 몹시도 서운하였었네. 그러던 차에 홀연 그대가 보낸 서한을 받아 보니, 정성스러운 뜻이 담겨 있었네. 이에 황홀하기가 마치 운수(雲水) 사이에서 한번 접한 것만 같아 몹시 기분이 상쾌해졌는바, 참으로 많은 위로가 되었네.
다만 호방하고 굳건한 문장을 지을 만한 사람이 이 세상에 많이 있는데, 기문(記文)을 짓는 것을 그런 사람들에게 부탁하지 않고 거칠고 못나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에게 부탁하다니, 이는 거렁뱅이의 품속에서 보옥을 찾고 썩은 흙덩이에서 영지버섯이 자라나기를 책하는 격인바,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나 호익의 재주와 학문이 부족하고 용렬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대가 이미 여러 차례 들었을 것이네. 그런데 어찌 이것을 가지고 서로 간에 장난한단 말인가. 참으로 우습고 우습네. 몸을 잘 보중하기 바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