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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리 물길을 달려 온 한강과 임진강이 몸을 섞은 후 서해바다의 품에 안기는 경기 김포와 강화일대. 이곳의 생태계도 이제는 거센 개발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 둘 허물어져 간다. 인천 강화군 선두리에서 바라 본 서해 갯벌의 모습. 김포/이상훈기자 |
국내 4대강 가운데 군사분계선에 걸친 관계로 유일하게 남은 한강 하구가 위협 받고 있다. 조력발전소 및 신도시 건설계획과 대교·도로건설, 골재채취 등 잇따른 개발압력으로 하구생태계가 훼손될 위기다. 문제는 한강하구의 개발과 보존을 조율할 주무부처가 없이 개발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는 점이다. “강화남단 갯벌 일대가 조력발전소 부지로 거론되고 있다고 합니다. 해마다 동남아·호주와 시베리아를 오가는 수십만마리 철새가 먹고 쉬는 곳인데, 생태계 재앙이 될까 걱정입니다.”
한강 해안하구인 강화 남쪽 선두리 갯벌을 둘러보던 이기섭 박사(한국환경생태연구소)가 말했다. 망원렌즈 속에 비친 갯벌 위 각시바위에서는 다 자란 저어새(천연기념물 205호) 새끼가 고개를 까딱이며 어미에게 먹이를 달라고 졸라댔다. 칡게를 찾아 진흙벌판을 종종거리는 알락꼬리마도요와 붉은칠면초 군락에서 갯지렁이를 찾는 갈매기떼, 배부른 가마우지로 이달 초순 갯벌은 분주했다.
이박사는 “이미 김포갯벌은 쓰레기매립장이 됐고, 송도갯벌과 시화갯벌도 매립됐다”면서 “한강하구 갯벌 중 유일하게 남은 이곳이라도 지켜야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생태계 파괴를 우려한 반대여론으로 수년전 잠복했던 조력발전소안이 올해 다시 떠오르는 것은 에너지난 때문이다.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산하 해양연구원에서 올해 사업타당성을 조사 중이라고 시인했다.
그는 “2013년부터 교토의정서에 따라 온실가스를 의무적으로 감축하라는 국제사회 압력과 유가상승을 해결하려면 대체에너지 개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조수간만차가 9m에 이르는 서해안지역이 적합지라는 것. 발전소 건설 대상지역은 강화도와 장봉도, 용유도, 영종도를 잇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강화남단 갯벌 양쪽이 모두 막히는 셈이다.
저 새들은 알까. 한강 하구에 개발압력이 가중되면서 보금자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얼마 후에는 이곳을 떠나 새로운 터전을 찾아 쓸쓸한 방랑길에 올라야 한다는 사실을. 사진은 선두리 갯벌 한가운데에 있는 각시바위. |
물 흐름이 달라지면 갯벌지형 변화도 불가피하다. 한경남 교수(인하대 해양학과)는 “영종도 매립지의 동쪽 해수흐름은 느려져 갯벌 퇴적이 증가한 반면, 서쪽은 흐름이 빨라져 갯벌이 깎이는 등 개발영향이 나타나고 있는 상태”라며 정밀조사를 촉구했다.
내륙 하구습지도 개발이 가속화되기는 마찬가지다. 김포, 파주 등에서는 대규모 택지개발이 잇따라 이뤄지고 있다.
습지보호지역을 가로지르는 교각은 기존 승인된 일산대교 외에 2개가 추가로 건설될 예정이다. ‘하구 노다지’격인 골재채취도 남북경협 일환으로 추진 중이다. 서해 수산자원이 감소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 같은 환경변화로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생물종은 한강하구 생태계의 ‘깃대종’으로 꼽히는 여름철 저어새를 비롯해 봄·가을의 도요새, 겨울 재두루미(천연기념물 203호) 등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이 살지 못하는 환경에서는 왜가리·백로·개리·큰기러기 등 다른 철새들도 생존이 어려워진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이창희 박사는 “하구 개발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계획되지만, 환경영향평가는 개별사업에 대해서만 실시되고 있다”며 “개발의 ‘누적영향’에 대해서는 통합 모니터링이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일산과 김포 반도를 잇는 일산대교 공사현장. |
늦어도 남북경협이 활성화되기 전에 건교부, 해수부, 환경부, 농림부 등의 한강하구정책을 통괄하는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