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라는 국호는 세계 국가와 문화마다 칭하는 이름이 서로 다르다. 한국어와 영어, 스페인어를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언어들은 라틴어로 그리스 땅을 뜻하는 '그라이키아'(Graecia)에서 유래한 그리스(Greece), 그레시아(Grecia) 등으로 부르는 반면, 터키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등 서아시아 계열 언어에서는 고대 페르시아어로 그리스를 일컫던 단어인 이오니아(페르시아어: ایونیا)에서 따온 유나니스탄(터키어: Yunanistan), 알류난(아랍어: اليونان) 등으로 칭한다. 음차 표기로는 희랍(希臘)이라고도 일컫는다.역사[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그리스의 역사입니다.
고대 그리스[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고대 그리스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문명은 에게 문명, 미노스 문명과 그 뒤를 이은 미케네 문명에서 시작되었다. 도리스인의 침입으로 인한 암흑 시대를 거친 이후 아테나이, 스파르타 등 일종의 '시국가'인 폴리스가 형성되었다. 대표적인 폴리스 중 하나인 아테네는 정치적으로는 민주 정치를 발전시켰으며 경제적으로는 상업과 해상무역에 주력했다. 또 다른 대표적인 폴리스 스파르타는 군국주의적 정치 체제를 취했으며 상업보다는 농업에 치중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세계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페르시아 전쟁 때였다. 기원전 5세기 초 오리엔트를 통일한 페르시아의 세 차례 공격을 모두 막아낸 뒤 전쟁 승리의 주역인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의 맹주로써 번영을 누렸다. 이를 마땅치 않게 여겼던 스파르타는 역시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맺은 뒤 아테네와 대립했다. 마침내 기원전 431년에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하여 기원전 404년까지 약 30여 년 간 이어졌다. 전쟁은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났고 스파르타는 그리스 지역의 패권을 차지했지만 오랜 전쟁으로 인해 쇠약해진 후였다. 스파르타는 결국 테바이에 패권을 내주었고 이후 오랜 전쟁으로 쇠퇴하게 된 그리스는 북방의 마케도니아에게 정복당하였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리스 폴리스들을 완전히 진압한 뒤 페르시아 원정에 착수하여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인더스강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 제국은 알렉산드로스가 3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 뒤 분열되고 말았다. 이후 휘하 장군들이 세운 왕조들은 모두가 로마 제국에 편입되었다.
중세 그리스[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비잔티움 제국입니다.
그 후 비잔티움 제국이 그리스를 통치하였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하여 비잔티움 제국은 멸망했다. 오스만의 지배 직전에 그리스의 지식인들이 서유럽으로 이주하면서 고대 그리스의 지적 유산을 전해주면서 서유럽 르네상스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서 이슬람교 개종은 원칙적으로 자유였으며, 개종을 거부한 그리스도 교도들은 비잔티움 시대의 농민이나 봉건제하의 농노보다 조금 나은 생활을 감수해야 하였다.[2] 그렇지만 오스만 제국의 밀레트 제도 덕분에 그리스 정교를 믿는 본토인들은 오스만 제국의 타지 사람과 섞이지 않고 결속을 유지하며 이후 현대 그리스의 정체성을 창출할 수 있었다. 1453년부터 독립할 때까지 그리스는 역사에서 개별국가로 존재하지 않았다.
근대 그리스[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근대 그리스입니다.
근대 국가 형성[편집]
1821년부터 1829년까지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운 그리스 독립 전쟁의 결과, 런던 의정서에 의해 신생 그리스가 독립을 인정받았다. 1827년에 이오니아 제도의 그리스 귀족 요안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가 새 공화국의 통치자로 선출되었으나 그가 암살당하자, 강대국들은 1832년에 왕정을 세우고 바이에른 왕국의 오톤을 국왕으로 옹립하였다. 1843년에 입헌군주제를 요구하는 무장봉기가 일어나자 오톤은 헌법과 대의제 의회를 승인했으나, 영국 등 열강에 기댄 나약한 권위주의 통치자로서 결국 1862년 10월에 폐위되었다.
현대 그리스의 영토 확장. (노란색은 한때 점령했다가 상실한 지역)
1863년에 덴마크 왕국의 빌헬름 공이 요르요스 1세로 왕위에 올랐으며, 영국은 그의 즉위 선물로 1864년에 이오니아 제도를 그리스에 할양하였다. 1877년, 그리스의 경제 발전에 공헌한 그리스 정계의 거물 하릴라오스 트리쿠피스는 왕권을 억누르고 의회 과반의 지지를 획득한 사람이 총리가 되는 원칙(dedilomeni)을 확립하였다.
독립 당시의 그리스의 영토는 아테네 일대와 펠로폰네소스반도 등에 국한되었으나, 1881년에 그 북쪽의 테살리아 지방까지 확장되었다. 그리스는 1912년부터 1913년까지 치른 발칸 전쟁의 결과로 마케도니아와 이피로스, 크레타섬 등을 차지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불가리아로부터 1919년에 서트라키아를 할양받아 현재의 국경을 거의 완성하였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이탈리아로부터 1947년에 로도스섬 등 도데카니사 제도를 할양받았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전후[편집]
국론 분열 및 추축국 점령기의 그리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제1차 세계 대전을 앞두고, 외교 정책을 놓고 국왕 콘스탄티노스 1세와 카리스마적인 총리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사이의 갈등으로 그리스 정계는 양분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에 그리스는 무스타파 케말의 터키 민족주의자들과 전쟁을 벌였고, 로잔 조약에 의한 두 나라 사이의 인구 교환으로 약 150만 명의 그리스 피난민이 소아시아에서 그리스로 밀려들어 왔다. 한편, 약 50만 명의 무슬림이 그리스에서 추방당했다.
1923년부터 12년간 공화제가 실시되었다. 1940년 10월 28일, 파시스트 이탈리아가 그리스에 항복을 요구했으나 그리스의 독재자 요안니스 메탁사스가 거부하여 그리스-이탈리아 전쟁이 발발했다. 그리스는 이탈리아군을 알바니아로 몰아내어 추축국에 대한 첫 지상전 승리를 연합국에게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 전쟁 직후 이탈리아와 연합한 나치 독일이 재침공하여 1941년 4월 말에 그리스 영토의 거의 대부분이 독일군에게 점령되었다. 독일 점령군에 대한 그리스 저항군의 저항은 제a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편집]
그리스 내전 및 그리스 군사 정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2년 후인 1947년 그리스 북부에서 왕정에 반대하는 공산주의 게릴라의 반란이 일어났으나, 2년 만에 진압되었다. 그리스는 마셜 계획으로 전후 복구를 이루고 냉전이 종식된 1990년대 초까지 좌파 세력이 전반적인 열세에 있었음에도, 30여 년간 군부세력의 쿠데타 등 정정 불안과 전쟁, 그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좌우파 간 심각한 사회 갈등을 겪었다.
1963년부터 파리로 망명했던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 전 총리가 돌아온 것이 메타폴리테프시의 시작이었다. 1967년 4월 21일,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등장한 사회주의 정권을 두려워한 우파 세력을 등에 업고 미국의 지원을 받은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1973년 스스로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1973년 아테네 종합기술학교 시위로 정권은 타격을 입었다. 1974년 7월 20일 디미트리오스 요안니디스 장군이 역(逆)쿠데타를 일으켜 독재자가 되었지만 터키가 키프로스 섬을 침공하자 정권은 붕괴되었다.
1974년 8월 14일, 그리스군은 터키의 북키프로스 점령에 항의하고자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통합 군사 기지에서 철수했다.
1974년 그리스 국민 투표를 통해 왕정이 폐지되고 1975년에 민주적인 공화국 헌법이 발효되었다. 그리하여 마지막 국왕 콘스탄티노스 2세가 폐위되었다. 그러는 사이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는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의 신민주주의당에 맞서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을 창당하여 이후 그리스의 양당 정치 구도를 이루었다.
그리스는 1980년에 다시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했다. 1999년 여름에 그리스와 터키 두 나라를 강타한 지진 이후로 지난 십여 년간 양국 관계도 상당히 호전되었다. 오늘날 그리스 정부는 터키의 유럽 연합 가입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리스는 1981년 1월 1일 유럽 연합에 10번째로 가입했고, 그때부터 경제 발전을 이어가고 있다. 유럽 연합의 기금과 늘어나는 관광 수입, 해운업과 성장하는 서비스 부문 덕분에 기업과 인프라에 광범위한 투자가 이루어져 그리스의 생활 수준은 전례없이 높아졌다. 2001년 유로화가 도입되었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도 성공적으로 치렀다. 2008년에는 경찰의 총격으로 시민이 사망한 사건에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3]
지리[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그리스의 지리입니다.
그리스의 지도
그리스는 발칸반도 남단에 있다. 그리스 본토 남쪽에는 펠로폰네소스반도가 있으며 그 사이 코린토스 지협으로 운하가 있다. 해안에는 에게해의 크레타, 에비아, 레스보스섬, 히오스섬, 도데카니사 제도, 키클라데스 제도, 스포라데스 제도가 있으며 이오니아해에도 섬이 많다. 그리스는 세계에서 열 번째로 해안선(14,880km)이 긴 나라다. 육지 국경선은 1,160km다.
그리스 4/5는 산지나 구릉이며 유럽에서 가장 산지가 많은 나라다. 유사 이래 그리스 문화의 중요한 장소였던 올림포스산에서 가장 높은 미티카스봉은 높이가 그리스에서 가장 높은 2,917m에 이른다. 한때 신들의 옥좌로 여겼던 이 산은 오늘날 등산가 사이 인기가 매우 높다. 서부 그리스 지역에는 호수와 습지가 많으며 핀도스산맥이 있다. 핀도스산맥은 발칸의 디나르알프스산맥의 연장으로, 가장 높은 스몰리카스봉은 높이가 2,637m이다. 비코스 아오스 협곡은 장대한 모습으로 스포츠 마니아에게 인기 있는 행락지다.
https://youtu.be/9a5M1I6joc8
🇷그리스 유적지를 돌아보며, 윤재영, 이리스토틀 오나시스, 해운국가, 재클린,영웅, 조선, 화물선,선박, 펠로폰네소스, 아테네, 트로이, 코린토스지협, 에게해, 레스보스섬,에비아
케르키라섬의 폰티코니시와 블라헤라이나 수도원.
리토코로에서 본 올림포스 산의 모습.
그리스 중부의 메테오라
산계는 중앙펠로폰네소스를 지나 에게해 남서쪽의 키티라섬과 안티키티라섬으로 이어져서 크레타섬에서 끝난다. 에게해 섬들은 과거 그리스 본토에 속했던 지금의 해저 산맥의 봉우리들이다. 핀도스산맥은 높고 가파른 봉우리로 유명하며, 협곡과 다양한 카르스트 지형을 보인다. 특히 정교 수도원이 많은 메테오라에는 높고 경사가 급한 바위 지형으로,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에게 놀라운 경험을 제공한다.
대부분 그리스의 강은 얕고 계절에 따라 말라서 항해에 부적합하다. 가장 긴 강은 북부의 할리아몬강이다
그리스 북동부에도 동마케도니아 트라키주의 접경으로 로도피산맥이 있다. 이 지역에는 울창한 원시림이 있다. 유명한 다디아 숲은 그리스의 북동부 멀리 에브로스에 있다.
테살리아, 중앙마케도니아, 서트라키아에는 넓은 평야가 있다. 이곳은 그리스에서 얼마 안 되는 경작하기 좋은 농지일 뿐 아니라 중요한 경제 지역이다.
기후[편집]
그리스 기후는 세 가지가 있다. (지중해성, 고산, 온대) 핀도스산맥 때문에 그리스 서부 지역은 동부보다 평균적으로 더 침윤(浸潤)하다. 지중해성 기후 영향으로 겨울은 온난 다습하고, 여름은 고온 건조하다. 키클라데스, 도데카니사, 크리티, 펠로폰네소스 동부, 중부 그리스 일부 지역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스는 산지가 많고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지만, 해안 지역 기온은 극단으로 오르내리지 않는다. 도데카니사나 키클라데스제도에서 눈이 내리기도 한다.
그리스 북서부 지역(이피로스주, 중앙그리스, 테살리아, 서마케도니아주)은 고산 기온이 지배적이다. 핀도스 산맥이 지나는 아하이아, 아르카디아, 일부 라코니아 등 펠로폰네소스 중부 지역도 마찬가지 기후를 보인다. 마지막으로 온대 기후는 중앙마케도니아주, 동마케도니아 트라키주에 영향을 주는데, 겨울에 춥고 다습하며 여름에 덥고 건조하다. 아테네는 지중해성 기후와 온대 기후 사이다. 이 도시 북부 교외 지역은 온대 기후를 보이지만, 시가지나 남쪽 교외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다. 아테네 낮은 찌는 듯이 덥지만, 저녁은 시원해서 야외생활과 야간생활이 발달했다.
행정 구역[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그리스의 행정 구역입니다.
수도는 아테네이다. 주요 도시로는 테살로니키, 라리사, 파로스, 요안니나, 이라클리오 등이다. 행정 구역상 그리스에는 13개의 주가 있으며, 총 51개의 현으로 나뉜다. 또 중앙마케도니아주와 접한 아토스산은 자치 구역인 아토스산 수도원 공화국을 형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