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가스펠 가수이며 지난 2012년 4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팝스타 휘트니 휴스턴의 어머니인 시시 휴스턴이 7일(현지시간) 아침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성명을 통해 밝혔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두 차례 그래미상을 수상한 고인은 뉴저지주 자택에서 알츠하이머로 호스피스 돌봄을 받다가 눈을 감았다고 며느리 팻 휴스턴이 말했다. 팻은 시어머니가 "강하고 우뚝 선 인물"이라며 “우리 가슴은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 우리는 가족의 큰어머니를 잃었다”고 말했다.
고인은 수십 년 가수로 성공 가도를 달렸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아레사 프랭클린 같은 슈퍼스타들과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다.
1933년 뉴저지에서 태어난 고인은 여덟 자녀의 막내였다. 어릴 적부터 노래를 불러 피붙이들과 가스펠 그룹을 결성했다. 1960년대 그녀는 리듬 앤 블루스 그룹 '스윗 인스퍼레이션스'를 결성, 오티스 레딩, 더스티 스프링필드, 외조카인 디온 워익(83) 같은 스타들의 백업 보컬을 담당했다. 그들은 밴 모리슨의 히트 송 '브라운 아이드 걸'도 불렀다.
'스윗 인스퍼레이션스'의 성공을 맛본 뒤 시시 휴스턴은 솔로로 전향해 차카 칸, 지미 헨드릭스, 비욘셰, 폴 사이먼, 딸 휘트니 등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1997년 솔과 가스펠 앨범 '페이스 투 페이스'와 이듬해 'He Leadeth Me'로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고인은 또 세상을 먼저 뜬 딸을 기억하는 'Remembering Whitney: A Mother’s Story of Life, Loss and The Night The Music Stopped'를 비롯해 세 권의 책을 펴냈다.
여든 나이에도 휴스턴은 레이트 쇼 위드 데이비드 레터맨에 출연, 아레사 프랭클린과 함께 영국 팝 스타 아델의 'Rolling in the Deep'을 부르기도 했다.
고인은 1955년 첫 결혼에 실패한 뒤 존 휴스턴과의 두 번째 결혼에서 휘트니를 포함해 세 자녀를 낳았다. 그는 특히 어릴 때부터 남달랐던 딸 휘트니를 팝 무대의 슈퍼 스타로 키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꼽힌다. 가스펠 음악 전문가인 로버트 다든은 2015년 일간 뉴욕 타임스(NYT) 인터뷰에서 "휘트니 휴스턴은 최고(the best)에게 훈련받았다"며 "그녀는 귀한 목소리를 타고났지만, 어떤 스타일로든 노래할 수 있었던 시시 같은 사람의 훈련과 영향력, 경험이 없었다면 그녀가 이룬 것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시 휴스턴은 딸 휘트니가 가수로 크게 성공한 뒤 함께 공연을 다니기도 했고, 휘트니의 '하우 윌 아이 노우'(How Will I Know)와 '아이 워너 댄스 위드 섬바디'(I Wanna Dance With Somebody) 같은 히트곡들의 백업 보컬을 맡기도 했다.
며느리 팻은 고인이 “70년 넘게 음악과 연예 산업에 종사해 우리 마음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 유족은 주님이 그렇게 오랜 시간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을 은총으로 고맙게 여긴다”면서 "딸 휘트니, 손녀 보비 크리스티나, 다른 축복받은 가족 성원들과 함께 영원한 안식에 들길"이라고 추모했다.
보비 크리스티나는 지난 2015년 7월 스물두 살 나이로 세상을 떠나 충격을 안겼다. 엄마 휘트니처럼 의식불명 상태로 욕조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6개월 만에 끝내 숨을 거뒀다. 휘트니는 2007년 바비 브라운과 이혼 후 유일한 상속자인 딸에게 재산 2000만 달러(현재 환율로 270억원) 가량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크리스티나는 스물한 살이 된 2014년 유산의 10%인 200만 달러를 받았고 스물다섯 살에 유산의 60%, 서른 살에 나머지 30%를 받도록 돼 있었다. 시어머니 시시와 며느리 팻이 유산 집행인 자격으로 자금을 관리해 왔는데 시어머니가 알츠하이머를 앓아 며느리 혼자 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