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4일 물날 — 겉옷을 벗어도 되는 날
[삶을 가꾸는 영어와 수학, 교사의 운명]
사월의 볕이 제법 따갑다. 아침에 걸쳐 나온 겉옷이 금세 짐이 되었다. 계절이 한 발짝 더 앞서간다.
오전 아홉 시, 5·6학년 영어 수업은 교과서 대신 한 사람의 인생이 교재였다. Phuong 선생님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아이들 앞에서 가감 없이 펼쳐 보였다. 통역을 하면서 그 이야기를 두 번 듣는 셈이 되었다. 두 번 들어도, 아니 어쩌면 두 번이라서 더, 마음에 남는 것들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 정성을 다할 것, 현재의 행복을 놓치지 말 것, 가족과 친구의 격려가 얼마나 큰 힘인지를. 늘 꿈을 꾸고 도전하며 살아왔다는 말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살아온 날들이 뒷받침하는 말이었기에 울림이 달랐다.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권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을 직접 만나게 하는 일은 그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Phuong 선생님은 오늘 그 자체로 살아있는 책이었다. 교육이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를 만나는 경험이어야 한다. 현재의 행복에 정성을 다하고, 곁에 있는 이들의 사랑을 동력 삼아 도전하는 그녀의 삶은 아이들에게 그 어떤 훌륭한 고전보다 값진 '살아있는 책'이 되어주었다.
오후에는 4학년과 영어 요리 수업을 했다. 파스타를 만들며 영어로 묻고 답하는 시간이었다. 재료를 집어 올리고, 썰고, 볶고, 끓이는 동작마다 영어 표현이 따라붙는다. 새우, 양파, 버섯, 베이컨, 소시지, 치즈가 듬뿍 들어간 토마토 파스타는 부모님들이 마련해주신 재료 덕분에 푸짐했다. Phuong 선생님이 곁에서 함께해준 덕에 수업 준비부터 뒷마무리까지 한결 수월했다. 혼자 이끌 때와 함께할 때의 차이는 단순히 손이 더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다.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교실 안에 생기는 분위기,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에너지가 다르다. 좋은 협력 수업이란 그런 것이다. 파스타가 완성되고 아이들이 "야미야미, 딜리셔스"를 외칠 때, 영어는 이미 시험 문제가 아니라 기쁨을 표현하는 언어가 되어 있었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이 본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살아있는 맥락 속에서, 몸을 쓰고 감각을 열어가며, 필요한 순간에 자연스럽게 쓰이는 말로 만나야 한다.
오전에 5학년 수학 시간은 두 가지 방식으로 흘러갔다. 교실 안에서 익힘책을 저마다의 속도로 풀어간 뒤, 숲속놀이터로 나가서 두 모둠으로 나뉜 아이들이 7.5미터 줄자를 들고 측정했다. 숲속놀이터의 넓이를 재고, 그 수치로 소수의 연산을 익히는 수업이다. 두 모둠이 측정하는 방법도 서로 달랐다. 어떤 순서로 어느 지점을 잡아 재는가, 그 과정에서 이미 수학하는 사고가 작동하고 있다. 오늘은 측정에서 멈췄다. 다음 시간에 교실로 돌아와 그림을 그리고, 잰 값으로 분수와 소수를 다시 만날 것이다. 이집트에서 나일강이 범람할 때마다 흘러간 경계를 다시 측량하며 기하학이 생겨났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학이 인간의 필요에서 태어난 언어라는 것, 땅을 재고 하늘을 헤아리려는 오래된 욕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아이들이 어렴풋이라도 느낀다면 충분하다. 나중에 어림한 값과 실제 측정값이 얼마나 다른지를 확인하는 순간, 아이들이 눈을 둥그렇게 뜨는 그 찰나가 좋다. 그 작은 놀라움이 수학을 살아있게 한다. 어림값과 실제 정확한 수치를 비교하는 앎의 과정이 주는 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
5·6학년 사물놀이는 가락이 제법 모양을 갖춰가고 있다. 아이들이 깊은누리 사물놀이패로 무대에 서는 날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5학년 리코더 수업에서는 봄을 다들 잘 익혀 두 번째 곡으로 넘어갔다. 작두콩 모종이 땅을 밀고 올라오고 있고, 여행비를 마련하려고 담근 막걸리 항아리에서는 발효 기체가 올라오고 있다. 이번 주 딸기청 담기에 쓸 딸기와 유기농 설탕, 유리병도 모두 왔다. 농장에서 온 신선한 딸기 향이 정말 좋다. 맛있는 딸기청이 나올 것 같다. 교실과 교실 바깥에서도 아이들의 배움이 이어진다. 발효를 기다리는 법, 모종이 자라는 시간을 견디는 법, 계절의 재료로 무언가를 만드는 손맛, 이런 것들이 교과서에는 없지만 삶에 오래 남는 앎이다.
사월이 무르익으면서 교실 안도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은 날마다 사이좋게 놀다가도 다투고, 사과하고, 화해한다. 어제 서운했던 마음이 오늘 아침이면 제자리로 돌아와 있기도 하고, 잊을 만하면 다시 비슷한 일이 반복되기도 한다. 그것이 아이들이 자라는 방식이다. 다툼은 오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거친 말이 나올 때, 수업 태도를 지적할 때, 교사의 도움을 청할 때, 아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동체 안에서 자신을 조율해가고 있다. 스스로 풀어가되 필요할 때 어른을 찾는 그 균형 감각이, 사실은 어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의 정직한 마음을 믿는 것이 출발점이다. 그 믿음이 있어야 때로 나오는 알맞지 않은 말이나 행동을 지나치게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지나치지 않게 일정한 거리를 두되 따뜻한 눈길을 거두지 않는 것, 친절함과 엄격함이 함께 가도록 날마다 자신을 살피는 것이 교사의 일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가장 많이 배우는 사람이 교사다. 날마다 성찰이 교사의 운명이다.
점심때 어린이모임 전현직 이끄미들과 교사대표들이 함께 위원회 배치를 확인하고, 이끄미들이 해야 할 일을 이야기 나눴다. 저녁에는 과천시대안교육협의회 모임이 무지개학교에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