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여울아 왜..."
"하..가지 않으면 안되나?
거기 꼭 가야되나?
오늘 비도 온다고 그랬는데...
너 눈도 나빠서 힘들텐데.
너 몸도 약하잖아.
몇 분도 못버티고 싸우다가 쓰러지면
그냥 그대로 도리없이 밟히는거야.
많이 아플 거라고."
-"하하 우리 대가리는 아직도 서방님
주먹이 얼마나 센 지 모르는구나.
애들 때려주다가 내 손목이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맞지는 않아..."
"그걸 누가 장담해!
누가 아냐고 누가!"
-"난 한여울 서방 황인수다.
약속은..죽어도 지켜.
울지말고 내가 저번에 니 핸드폰에 게임 받아놨거든?
그 게임하고 있어.
내가 끝나고 전화할게."
"......"
-"아니면 TV 보고 있던가.
착하지? 넌 착하니까 내 말 들을거야.
'황인수 개새끼 왔냐?! 씨발, 전화 안꺼?!'
들리지? 쟤네 되게 웃긴다, 킥."
"하..."
-"'씨발!!! 퍽퍽'"
...드디어 시작했다......
...
대책없이 머리좋고 주먹은 세다고 자기 스스로
자부했으니까 틀림없이 괜찮을거야.
누가 악역을 맡아 나쁜 짓을 한게 아니라
말 그대로 다툼이기 때문에 어느 쪽을 원망할 수도 없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마음은 점점 다급해져가고 어떡해야
흔들리는 마음을 잡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본 결과...
황인수와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한주영에게 부탁해보기로 했다.
'똑똑'
'드르륵'
"누구야?"
"안녕하세요."
"누구 찾아?"
"하..한주영이ㅇ, 아니아니 한주영오빠요."
" ^^ 기다려."
우리학교에서 제일 예쁘다고 이름 난 언니였다.
요즘 말로 얼짱.
긴 생머리에 왕방울만한 눈, 여자 연예인들이 울고갈 만큼 작은 얼굴,
글래머는 아니지만 나쁘진 않은 몸매.
내가 남자라도 눈길이 안갈래야 안 갈 수 없을 것같다.
"주영아, 니 동생이 찾아온 것같은데 복도로 나가봐."
언니가 날 안다! 우와...
에이에이, 한여울 니가 무서운 3학년 선배들이 바글바글 거리는
교실에 목숨걸고 찾아온 중요한 이유를 잊어서는 안돼.
황인수가 무너져간다고...
"왜 왔어? 지 아파 죽어도 3학년 교실엔
머리카락 하나 내보이지 않던 놈이."
"오빠!"
"왜?"
"...살려줘......"
"...?"
"황인수좀 살려줘, 오빠."
"아~함, 무슨 일인데?"
미련퉁이 -_-^ 누구는 무서워서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물도
왕창 쏟아질 것같고만 눈치파악 못하고 하품을 해?
"당신네 후배들이 다 죽게 생겼어!!!"
싸아- 아수라장같았던 교실안이 순간 조용해져버린다.
"싸우러 갔어요.
단체로 다른 학교 양아치새끼들하고
세력다툼하러 갔다구요."
"미친 새끼들.
좆만한 것들이 선배허락도 안받고...
참내, 벙가네..."
"오빠..."
"넌 뭐 그런 일 가지고 질질 짜냐?
2학년 새끼들이 한 두 번 그런 것도 아니고
줘터지고 오면 그때 싹 다 터뜨릴 거니까 냅둬."
"오빠!"
"왜! 기지배가 기차통을 삶아먹었나
목소리가 왜 이렇게 커 -0-"
"벙가네...나쁜 놈..."
"뭐?!"
"나혼자라도 가서 말릴거야."
'탁'
"거기가 어디라고."
"말릴거야. 황인수 손목 부러지면 오빠도 가만 안둬."
"한여울."
"내 이름 부르지마.
오빠도 무서워졌으니까."
치사한 놈 지독한 놈 못된 놈...
지 후배들이 줘터져가지고 오면 뭐 어쩌겠다고?
선배란 작자가 저 따위니까 2학년 애들이
선배 허락도 안맡고 저렇게 제멋대로지.
"야 좀 기다려~
무슨 기지배가 걸음이 그렇게 빠르냐?"
"왜 따라와? 상관 없다는 것처럼 하품이나 쩍쩍 하드니."
"너는 내 친동생이야.
그 새끼들이 다치는 건 상관 없지만
니가 다치는건 못보지."
"오토바이 열쇠 좀 빌려와."
"뭘 어쩌려고?"
"아, 댁한테 오토바이 몰라고 안해.
내가 운전할 거니까 열쇠 좀 빌려와."
"안돼."
'후두둑'
얇은 빗방울이 내 머리에, 내 어깨에,
내 신발에 조용하게도 앉기 시작한다.
"비오잖아. 황인수 눈이 안좋아.
시력이 마이너스에다가 난시도 있다고 그랬단 말이야.
안경은 나한테 있고 지금 비까지 쏟아져.
어떡할거야. 빌려올거야 말거야!"
"여기."
뭐야, 이 인간은 오토바이도 못 몰면서 왜 키를 가지고 있어?
아씨, 그런 쓸 데 없는 의문은
필요없고 오토바이에 집중하자.
"너 진짜 오토바이 탈 수 있는거 맞지?"
"이론상으로는 완벽해.
한 번도 몸이 따라준 적이 없어서 그렇지."
"야!"
"더군다나 난 스쿠터밖에 타본 적이 없거든?
그래서 지금 굉장히 두려운 건 사실이야."
"안돼!"
'부릉부릉 부르응~'
'쏴아-'
따뜻해 보이는 빗방울이 차가운 기세로 쏟아져내린다.
비때문에 앞은 잘 보이진 않지만 황인수를 구해야 한다는
그 일념 하나로 드러운 폭우속을 뚫고 달렸다.
...
드디어 내 발이 닿은 숭훈여고 앞 공사장.
내 교복이 비에 홀딱 젖어 색깔이 진한 회색으로
변해버리고 나서야 이 곳에 도착했다.
한주영이 공사장바닥에서 각목을
하나 주워들고 나를 앞서 걷는다.
설마 저거로 황인수를 때리진 않겠지 -_-
점점 들려오는 '퍽퍽' 주먹소리들과 듣기 싫을만큼
잔인한 남자들의 절규에 가까운 악소리.
...
이제서야 TV에서나 볼 법한 처참한
광경이 내 눈앞에 드리워지고 말았다.
이게 18살짜리 고등학생들의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나?
평생 봐야할 폭력물을 한꺼번에 보고만 것같은 기분이다...
"야!!!"
한주영의 짧지만 비장한 한마디. '야'...
지금 눈에 뵈는게 없어 서로를 물어대는 녀석들에게
욕이 무슨 소용이고 매질이 무슨 소용이냐.
한주영의 순간선택이 옳았던 것이다.
빗속이라 그런지 사방이 박혀 있는 정해진 공간처럼
오빠의 고함소리는 간단히 공사장안을 메워냈다.
그리고 내 눈은 구석구석 공사장의 철판들을
투시라도 하듯 황인수를 찾고 있었다.
모두가 싸움을 멈춘 이 마당에 누군가
'추작'하는 소리와 함께 흙탕물위에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난 역시 시각보다는 청각에 예민한가보다.
내게 한 말이 아닌데도 황인수의 저 한 마디에
난 단박에 눈물을 쏟아버렸다.
"난 너가 저 새끼들한테 맞아서
뒤지든 살든 아무런 상관도 없거등?
근데 니가 뒤지면 이 새끼가 울 것같아서 달려온거다."
턱으로 날 척 가리키는 한주영.
물론 황인수가 한주영에게 맞는건 내가 참을 수 없이 아프겠지만
다른 학교 놈들에게 맞는 것보단야 훨씬 나을 것같아
자리를 비켜서줘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난 황인수의 눈을 피하고 한주영의 턱(?)을 피해서
오토바이가 있는 곳으로 '처벅처벅' 걸었다.
"너넨 오늘 다 뒤졌어~
야 거기 봉신공고 새끼들부터 쫙 엎드려.
안엎드려?! 봉신공고 김연용한테 전화해서 오라고 할까?
그래, 그게 좋겠지?
옳지옳지, 잘도 엎드리네~"
'퍽 퍽 퍽'
"선배들이 우습다 이건가?!
새끼들아, 선배들이 아무리 일년뒤에 사회생활을 하러 이 고딩탈퇴를
한다고 하지만 그 일년은 족히 너네 죽이고도 남을
시간이란 걸 왜 모르나?
봉신공고 너네 이 새끼들 우리 학교 새끼들을 이렇게 만들어놔?!
아니다, 너네가 좀 더 다친 것같으니까
김연용한테 연락만 하고 살려준다."
난 그냥 먼저 오토바이 타고 학교로 가는게 낫겠지?
우선 가서 전학처리도 좀 해야겠고 ㅜㅠ
그 전에 황인수를 지워버리려면 마음정리도 좀 필요하고... 아후...
'추작추작추작추작추작'
누군가..이 쪽으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
"한여울!"
"......"
이미 내 가슴한켠에 깊게 자리잡아 자국을 남긴 놈 황인수다.
"너한테 여길 말해주는게 아니었어.
보이지? 나 한군데도 안다친거.
넌 아직도 날 못믿냐?
나 천하무적이야.
너때문에 우리학교2학년 내일 학교도 못오게 생겼어.
주영이 형 매질이 얼마나 아픈지 넌 모를거다."
"......"
"아무리 그래도 날 보러 왔으면 무릎 꿇고 있는 날
일으켜주는게 여자친구로서의 도리 아닌가?
바보. 너가 그래서 아직 어리다는 거다."
"정말..죽는줄 알았어!
퍽퍽 주먹질소리가 다 너한테 향하는 것처럼 들렸단 말이야.
오토바이 타고 오는 내내 퍽퍽 소리만 내 귀에 윙윙 울렸다고."
녀석과 나..정말 끝나는걸까?
끝나겠지...? 녀석도 이젠 알았을테니까.
자기는 나와 너무 다른 세계 사람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을거야..나처럼...
"너..교복 다 젖었어. 야하잖아."
"...어?"
야한가? 정말?
아, 쪽팔려...ㅜㅠ
녀석은 뒤돌아 아까 그 공사장으로 뛰어들어갔다.
후...그래, 내가 잘못했으니까 황인수 잡지말자...
황인수를 원망할 필요도 없고 나만 정리해주면 되는거야.
'추작추작추작추작추작'
"야, 이것밖에 너 입혀줄게 엎드라.
이거 주영이형 마인데 괜찮지?"
...황인수...
"너 속썩힌거 미안해...
너 얼굴이 지금 잘 보이지 않아서 너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모르겠어서 그러는데 잠깐만."
녀석은 내게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밀고서
정말 보이지 않는지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이럴줄 알았으면 안경이라도 가져오는건데.
하긴, 이렇게 비오는 날 안경은 어차피 무용지물이겠다.
"떨리지?"
"어?"
"내 잘생긴 얼굴 보니까 떨리잖아, 솔직히."
"......"
" ^^ "
"이젠 내가 어떤 표정 짓는지 알았지?
내가 지금 느끼는 생각이나 마음이 다 표정으로 드러났거든.
이젠 얼마나 내 기분이 착찹하고 비참한지 알잖아.
이제 그만 해도 ㄷ.."
헐...난..광성고에서 유일한 순결한
여학생이라니까 아직도 모르나?
내 입술에 짧게 뽀뽀를 해버린 이 놈...
...하..그래도 키스가 아니라 다행이지...
아이씨 ㅜㅠ
"키스라도 해버릴 참이었는데
너 지금은 되~게 못생겨서 할 맛이 안난다.
거짓말이라고 할줄 알았지?
사실이야. 눈물인지 빗물인지 정체 모를 물때문에
얼굴이 대따 추해져버렸잖아."
"너..너도 추해!
참내, 너는 콧물인지 빗물인지
정체 모를 물이 니 코에서 나오네요 뭐~"
"...니가 이러니까..살고싶다......"
"...?"
"...아후..가만히 있으니까 되~게 춥네. 그치?"
나 순간 어떻게 되버린건지
녀석이 요구하지도 않은 행동을 해버렸다.
녀석을 와락 안아버린 것...
...
그렇게 빗속에서 몇 분동안
녀석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살고싶다는..녀석을......
카페 게시글
하이틴 로맨스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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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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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1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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