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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에 요구되는 경건의 자세
참고말씀: 삿16:20; 잠1:3-5; 9:17; 마10:26; 24:12,22; 요5:39; 15:19; 고전10:13; 갈2:4; 딤전1:6,7; 6:5,11; 벧전4:12,13; 벧후1:21; 2:7,8; 요일2:15-17; 유1:4; 계22:11
읽을말씀: 딤후3:1-17
주제말씀: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 네가 돌아서라.”
첫째, 말세의 때일수록 경건의 능력을 소유해야 합니다(1-9절).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 네가 돌아서라.”(딤후3:5)
본문은 말세에 어떤 때가 이르리라고 했습니까? 고통하는 때입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1절) 어째서입니까? 말세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죄악(2-5절)과 이단들(6-9절) 때문에, 성도들이 그 가운데서 고통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의로운 롯이 죄악의 성 소돔 가운데서 고통받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벧후2:7,8)
말세의 때에는 어떤 죄악상이 낱낱이 드러난다고 했습니까?
①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합니다.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고,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2절 상) 하나님보다 돈을 서렁하며, “...돈을 사랑하며...”(2절 중)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4절 하) 즉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함으로써 영적 간음, 우상숭배가 더 심화되는 것입니다.
② 권위에 대해서 거스르고 거역합니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부모나 다른 권위자들에 대해서도 거역하고 거스르게 됩니다. “...부모를 거역하며...”(2절 중) 권위에 대한 거역은 말세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로써 말세로 갈수록 점점 더 심화될 것이 분명합니다.
③ 교만해집니다.
사람들은 말세로 갈수록 겸손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점점 더 자랑하고 교만하며 자만하게 됩니다. “...자랑하며 교만하며...”(2절 중) / “...자만하며...”(3절 중) 즉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자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④ 사랑이 식어집니다.
말세로 갈수록 사람들의 사랑이 점점 더 식어져서, 무정하고 비방하며 원통해하며 모함하고 서로 배신하기를 밥 먹듯이 합니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랑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24:12) / “...비방하며...”(2절 중) /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3절 상) / “배신하며...”(4절 상)
⑤ 절제하지 못하게 됩니다.
말세로 갈수록 인내심이 바닥 나서 서로 절제하지 못하고 조급하며 더욱 사나워집니다.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3절 중) / “...조급하며...”(4절 중) 한 마디로, 짐승처럼 서로 충동적으로 물고 뜯게 되는 것입니다.
⑥ 감사하지 않습니다.
말세로 갈수록 감사가 사라지고 오히려 원망과 불평만 가득하게 됩니다. 감사가 없는 삶 자체가 생지옥인 줄로 모르고 말입니다. “...감사하지 아니하며.”(2절 하)
⑦ 거룩하지 않습니다.
말세로 갈수록 거룩해지지 않습니다. 즉 세상과 전혀 구별되지 않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며 또한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지 아니하며.”(2절 하) /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5-17)
⑧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말세로 갈수록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악한 것을 더 좋아하고 가까이하게 됩니까? 악한 것이 보기에 더 탐스럽고 맛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3절 하) /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잠9:17)
⑨ 경건의 모양만 있고 그 능력은 없습니다.
말세로 갈수록 경건의 모양만 남아 있을 뿐 경건의 능력을 찾아보기 힘들어집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5절 상) 어째서입니까? 경건의 능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며, 또한 마음이 부패해지고 진리를 잃어버려서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삿16:20) /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6:5)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같은 일이나 사람들에게서 돌아서야 합니다.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5절 하)
또한 말세의 특징 중 하나는 무엇입니까? 더 많은 거짓 교사들의 출현과 미혹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거짓 교사들이나 그들에게 미혹된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①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유인합니다.
거짓 교사들의 특징은 ‘가만히’입니다. ‘가만히’ 교회에 들어가며, ‘가만히’ 성도들의 집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6절 상) /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갈2:4) /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유1:4)
②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리게 됩니다.
거짓 교사들에게 미혹되면, 죄를 용서받기는커녕 오히려 죄를 더욱 무겁게 지며,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6절 중)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는커녕 여러 가지 욕심에 질질 끌려다니게 됩니다.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6절 하)
③ 항상 배우지만 끝내 진리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단에 미혹되면 항상 배우는 것 같아도, 끝내 진리에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어째서입니까? 그들이 배우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거짓 교사들의 그릇된 가르침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7절)
거짓 교사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들은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 밑에서 배우는 사람들이 진리에 어찌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딤전1:6,7)
④ 진리를 대적하게 됩니다.
거짓 교사들의 특징은 또 진리를 대적한다는 점입니다.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8절 중) 출애굽 당시에 모세를 대적했던 마술사 얀네와 얌브레처럼, 거짓 교사들도 여전히 진리를 대적합니다.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8절 상)
왜 그들은 진리를 대적합니까? 그 마음이 부패한 자들이기 때문이요,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8절 중) 믿음에 관하여 버림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라.”(8절 하)
⑤ 결국 어리석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얀네와 얌브레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거짓 교사들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그 어리석음들도 마침내 드러나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이 된 것과 같이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이라.”(9절) 어째서입니까?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마10:26)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이 곧 말세임을 깨닫고, 세상의 악한 것들로부터 돌아서고 경건의 능력을 소유하며, 거짓 교사들을 경계하고 있습니까?
둘째,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합니다(10-17절).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딤후3:13,14)
말세일수록 무엇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까? 교훈과 행실, 의향, 믿음과 오래 참음, 사랑, 인내 등입니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10절) 그리고 무엇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까? 복음으로 말미암는 박해와 고난입니다.
바울은 무엇을 예로 들면서, 디모데에게 고난 중에도 낙심하지 말도록 권면했습니까?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 때 만난 일들, 즉 안디옥과 이고니온롸 루스드라에서 당한 고난과 박해 사건들입니다.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11절 상)
바울은 왜 고난 중에도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까?
① 주께서 모든 것 가운데서 건지시기 때문입니다.
낙심할 필요가 없는 것은 주께서 고난 중에서 항상 우리를 건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11절 하) 즉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시험만 허락하시고, 혹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으면 그때마다 피할 길을 주시며,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고난 당하는 우리를 위해 그 기간도 단축시켜 주실 것이기에 낙심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마24:22)
② 경건하게 살려면 박해를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고난 중에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까?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고난이 필연적이기 때문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12절) 즉 우리가 시험당하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으므로, 혹 고난을 만나더라도 당황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2,13) /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9)
③ 세상이 더욱 악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고난 중에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까? 지금은 말세이므로, 세상은 점점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악해져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악한 사람은 계속 더 악해지고 속이는 자는 아무런 반성 없이 계속 속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한 자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13절) /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계22:11)
그러니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을 힘써 배우되 확신하기까지 그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14절 상) 참고로, 여기서 ‘거하라’(헬, 메네)는 ‘끝까지 그 상태를 유지하며 머물러 있으라’는 뜻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복음의 진리에서 멀어지는 것을 경계한 말입니다.
왜 말세일수록 성경을 힘써 알아가야 합니까?
①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지혜의 책으로써, 능히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15절 하)
세상의 그 어떤 책도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지만, 오직 성경만큼은 능히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요5:39 상)
②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의 교육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단순한 지식만 전달하지 않고, 오히려 교훈과 책망, 바르게 함, 의의 교육 등을 골고루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는 말세일수록 성경을 힘써 배워야 합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또는 징계)하기에 유익하니.”(16절 하)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성경을 통해 매일 교훈을 받고 있습니까? 성경을 읽을 때마다 책망을 달게 받고 있습니까? 성경을 통해 바르게 함, 즉 우리의 그릇된 신앙 자세를 발견하고 그때마다 고쳐나가고 있습니까? 성경을 통해 의로 교육받고 있습니까?
③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세워주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능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세워주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17절 상) 하나님의 사람은 저절로 되지 않고, 오히려 날마다 성경을 배우고 확신함으로써 만들어져 갑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딤전6:11 상) /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잠1:3-5)
④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모든 선한 일을 행한 능력을 갖추게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17절 하) 그러므로 필요한 능력을 갖추려면 응당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합니다.
참고로, 어떻게 이 모든 일이 가능한 것입니까? 모든 성경이 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16절 상) /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1:21)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이 곧 말세임을 깨닫고,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도록 전심전력하고 있습니까? 즉 ‘성경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고, ‘성경을 통해’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을 받으며,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세워져 가며, ‘성경을 통해’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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