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뜰 고모
안상학
시집갈 때 보자기 하나 달랑 안고
가구서 납뜰까지 걸어서 갔더란다. 오십 리 길
열여덟 새색시 설움 반 설레임 반
가마도 없이 연지 곤지 족두리도 없이
두 살 아래 조카 하나 길잡이 세워
그 춥던 동짓달 다리도 없는 반변천
맨발로 물 건너 시집살이 갔더란다.
물 건너다 얼어붙은 조카,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말아주지 못하고, 못내 마음 아파
그 길로 물 되건너 바래주다 결국
동창이 박혀 생고생한 미련퉁이였더란다. 첫날밤
합환주 한 잔 없이 옷고름을 풀었더란다.
몇 달이 가도 말이 없어 그렇거니 하던 신랑
말 못하는 벙어린 줄 나중에야 알고
고향 하늘 바라보며 그리 섧게 울었더란다.
찢어지게 가난한 고향집
아귀 같은 입 하나 줄이는 게 그래도 나아
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앞 못 보는 봉사처럼
그렇게 억척같이 살았더란다.
배는 남산만해지고 이내 맏아들 낳아
줄줄이 생기는 대로 낳아 구 남매를 두었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