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 정여송
청사포에 간다. 달맞이 고개 너머 있는 작고 쓸쓸한 동쪽 바닷가, 해운대의 눈부신 백사장에 비할 수 없고, 광안리의 휘황찬란한 불빛도 지니고 있지 않다. 푸른색 모래가 펼쳐진 포구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마음을 끈다. 유명세에서 빗겨나 초야에 묻혀 조용히 지내온 청사포.
해안에는 흘러내린 촛농 같은 암석들이 그리움을 달래듯 옹기종기 널렸다. 바다 위에서는 파도가 하얀 물굽이를 등지고 엎어지고 무너지면서 달려온다. 갈매기는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제 흥에 겨워 끼리룩거린다.
투명한 햇살 속에 웅혼하게 앉아 있는 저 검푸름, 아주 느린, 그러나 그 빛에는 움직임이 있다. 신뢰와 젊음과 순수를 내세우며 내 덜미를 잡는다. 내가 하려던 말을 송두리째 빼앗아가 버린다. 낡은 생각과 마음속에 그려진 부질없는 영상들이 쓸려나간다. 가슴이 확 뚫린다.
바닷가로 내려간다. 물속에 잠겼다가 몸을 드러낸 '물바위'들이 점잖은 미소를 흘리며 반긴다. 물속에서는 바다의 푸른색으로 물을 들이고, 물 밖에서는 하늘의 푸른빛을 우러르면서도 강하게 검은색만을 고집하는 물바위, 썰물 때가 되면 잊어버렸다가 문득 떠오르는 기억처럼 드러나고, 밀물 때면 떠오른 기억이 다시 사라지듯 물속 깊이 잠수해 버리는 물바위. '여'라는 이름을 지닌다.
'여'와 가장 가까운 파도는 늘 변덕스럽다. 때론 소곤거리기도 하지만 봉두난발한 백수광부의 모양새로 몸을 던지기 일쑤다. 그래도 '여'는 자세를 흩트리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살갗이 부서지고 금이 가 깨어져도 그저 묵묵부답이다. 저항을 포기한 영혼이 깃들고, 미움을 잊어버린 정신이 서렸는가. 혹독한 시련 속에서 보내고 기다리며, 풀기도 하고 끌어안기도 한다. 따개비나 해초들의 포근한 고향터요 삶터라고 추켜세워도 쉽게 마음을 데우거나 부풀리지 않는다. 다만 파도와는 동반관계임을 넌지시 화음으로 보여줄 뿐, 오로지 침묵이 금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양 말이 없다. 가끔씩 섬 아닌 섬이 되어 여운과 느낌 사이로 속내를 드러낸다. 숨기는가 하면 보여주고 드러내는가 하면 감추기도 한다.
'여'에 걸쳐 앉는다.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이 얘기를 주고받는다. 옛날이 들어있지만 과거 이야기가 아닌, 작은 것에서부터 한숨 섞인 속 깊은 이야기까지 얼마나 쏟아냈을까. 나중에는 나조차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사람들의 안부까지 묻는다. 이야기 속에서 정겨움이 끈끈하게 묻어나온다.
잠시 눈을 감고 자주 오르던 산을 그린다.
쨍쨍한 여름이 짙푸르다. 산은 바다가 되어 푸른 물결을 일으킨다. 나무들이 시야를 그들먹하게 메우며 만조 때처럼 출렁거린다. 부풀어 오른 희망으로 충만한 푸른 물결이 새소리와 바람소리, 오솔길과 바윗돌마저 푸르게 물들인다.
하루, 이틀, 사흘, 한 달, 두 달, 석 달.
서서히 불어오는 갈바람에 푸름을 날려 보낸다. 지난날의 화려했던 사랑과 열정과 행복을 내려놓고 사상누각 같은 헛된 권위의 외피가 있었다면 그것도 벗어던진다. 스스로의 기대마저 무너뜨리며 모든 것을 털어낸다. 푸름이 밀물 되어 빠져나간다. 산이 벌거벗는다.
헐벗은 나무들의 겨우살이는 지리고도 매운 찬바람과 같이 시작된다. 그래도 서로 섬기며 정을 나누는 모습들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끼는 마음들이다. 산 등줄기에 살며시 몸을 드러낸 바윗돌이 홀로 외로움을 짐 지고 있다. 자신의 슬픔을 끌어안고 스스로를 다독거리지 않는가. 다다를 수 없는 먼 곳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망부석이듯 안쓰러움이 인다. 간조를 맞은 겨울 산이 드러낸 '여'의 모습이다.
행상을 나가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정읍사>의 여인 같은 '여', 일본에 볼모로 잡혀있는 눌지왕의 동생을 구해내고 끝내 돌아오지 못한 박제상을 기다리는 부인 같은 '여'.
그래, '여'는 무언가를 그리는 그리움이다. 육친들과 살 비비며 나누던 정, 소식을 알 수 없는 어릴 적 동무들, 아리하게 번져오는 추억의 장소들… 각기 다른 색깔로 삶을 물들이고 싶어 했던 지나간 일들이며, 되살아나는 삶의 장면들이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닳거나 사라지지 않는 흔적들이다. 덧없이 보내버린 시간도 세월 속에서 점점 커 가는 추억으로 자라고, 순간의 인연들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채 그리움으로 남는다. 존재와 부재가 함께 들고나는 것이랄까. 아니, 그렇게 보이고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 살고 있는 수많은 것들의 수군거림을 엿듣듯이 '여'가 들려주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사람들이 즐겨 읽는 유자서有子書)가 아니라 무자서이다. 복잡했던 생각들이 소리 없이 녹아내린다. 유현금有絃琴인가 했더니 무현금이 아닌가. 그 소리가 몸속으로 맥을 타고 흘러든다.
점점 물속으로 가라앉는 '여', 밀려오는 물결에 하염없이 무현금을 뜯는 '여',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붙박인 채 지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