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와 "고비" 본래의 어원을 아시나요?

각자가 좋아하는 음식이 따로 있을 것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고기 반찬이나 고깃국보다는 각종 나물 반찬들이 더 맛있고, 좋았습니다. 아마도 기름기가 많은 갈비나 소고기 국보다는 담백한 맛의 나물들이 느끼한 맛이 덜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금치나 콩나물을 비롯하여 각종 마른 나물들을 좋아했습니다.
그런 식성과 습관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서 각종 나물 반찬들이 더 반갑고 맛있습니다. 이제 곧 다가올 설날이 지나고 나면, 정월 대보름이 다가올 것입니다. 붉은 팥밥과 더불어 지난 해에 말려놓았던 각종 나물 반찬들을 만들어 먹는 날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대보름에 먹는 팥과 오곡 잡곡들을 놓아 만든 찰밥과 각종 나물 반찬들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그 나물들을 점검하는 의미에서 꺼내보고 삶았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이미 곱게 말려두었던 그 뻣뻣한 나물들을 꺼내서 푸ㅡ르르 삶고 물기를 뺀 뒤, 식물성 기름에 볶아서 만든 나물 반찬들을 지금 미리 맛보고 있습니다.
그 나물 반찬들 가운데, 시래기와 취나물, 고비가 있었습니다. 주로 고사리를 챙겨두셨다가 매해 먹곤 했는데, 올 해에는 멀리 부산에 사시는 이모님께 고비를 얻었다며 내놓으셨습니다. 고사리보다 고비가 더 부드럽고 감칠맛이 있었습니다. 아래 오늘의 '고사리와 고비' 관련 내용은 '표준국어대사전'과 "김지형의 국어마당", "국립국어원", 그리고 " 우리말사랑(http://www.woorimal.net)"의 글을 참고, 종합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고사리와 고비의 의미와 어원
먼저 '고사리'와 '고비'의 사전적인 의미를 알아봅니다. '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고사리(Bracken)는 유럽, 아시아,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호주, 뉴질랜드 등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키는 1m 가량 자라고, 잎자루의 높이는 20-80cm 정도까지 자라는 고사리목, 고사리과의 양치류 식물입니다. 어린순은 갈색으로 꼬불꼬불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많은 문화에서 식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고비(Osmunda japonica)는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 중국, 타이완, 히말라야, 사할린, 필리핀 등 산지의 숲속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오른쪽 사진처럼, 키는 60∼100cm까지 자라며, 잎은 영양엽과 포자엽으로 구별되고 어릴 때는 붉은빛이 도는 갈색의 솜털이 나있는 고사리목 고비과의 양치식물입니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거나 국의 재료로 씁니다.
다음은 '고사리'와 '고비'의 역사적인 자료들을 살펴봅니다. '고사리'는 '훈몽자회', '두시언해' 등과 같은 중세어에서도 역시 '고사리'로 쓰였습니다. 한자로는 '미(薇, 고비 미, 고사리 미)'나 '궐(蕨, 고사리 궐, 고비 궐)'이 고사리를 가리키는 글자인데, 한자 단어로는 '궐채(蕨菜)'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중세어와 현대어에서 전혀 차이가 없이 그대로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방언에서도 살펴보면 정말 다양하게 불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개사리, 게사리, 게아리, 게비, 고비, 고삐, 고사리, 고새리, 고세리, 고시리, 고싸리, 괴비, 괴사리, 귀사라, 기사리, 깨사리, 꼬사래, 꼬사리, 꾀사리, 끼사리' 등 다양해서 정말 재미있습니다. 이처럼 '고사리'와 '고비'가 발음할 때 부르기 편하게 변이만 약간씩 겪은 것으로 보입니다.
'고사리'에 대한 어원 해석은 '동언고략(東言攷略)'이라는 책에서도 더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곡사리'라고 표기하고 있으며,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궐(蕨)을 '고사리'라 함(ㅏ: 아래아)은 곡사리(曲絲里)니, 권곡(拳曲)하고(ㅏ: 아래아) 유세(柔細)하니라(ㅏ : 아래아).“
이것을 해석하면, "'궐'을 '고사리'라고 하는 것은 '곡사리'이니, 모양이 구부러지고 연하고 가늘기 때문이다."라고 표현됩니다. 이 해석은 '구부러진 실'처럼 생겼다는 뜻으로 해석한 것인데, 고사리의 모양을 보고, 음이 비슷한 한자의 뜻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즉 한자 '곡사리'가 변하여 '고사리'가 된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므로, 조금 난해한 민간 어원이라고 할 수 있으나 모양과 관련하여 재미있습니다.
이와는 달리 서정범 교수는 '국어어원사전'에서 '고비사리'가 줄어서 '고사리'가 된 듯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고'는 '고비'의 '고'이고, '사리'는 '풀'의 뜻을 가진 '사리'라고 보았습니다. 여기에서의 '사리'는 음운변화를 거쳐 '새'가 되기도 하는데, '새'는 어원적으로 '풀'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즉 삳>살>살-이>사리>사이>새의 변화를 거쳤다고 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리'는 '새'로 변하기 전의 형태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해석으로 본다면, 서정범 교수는 '고사리'를 '고비'와 '사리'의 합성어로 보고 있는 듯하며, 그 어원적 해석은 '고비풀'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로, 이 기회에 '풀'의 뜻을 가진 '새'와 관련하여 쓰이고 있는 말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삿갓(草笠) : 가는 대나무나 갈대를 엮어서 만든 갓.
- 삿자리(草席) : 갈대를 엮어 만든 돗자리.
- 새(草) : 중세어에서 ‘풀’을 뜻하는 말로 쓰임.
- 새끼(繩) : 볏짚으로 만든 줄. 삿(ㅏ:아래아) >삿기(ㅣ:아래아)>새끼
그러므로 '고사리'의 어원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1) 우선 중세어나 방언을 통해서는 어원을 추정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2) 동식물의 이름은 그 형태(모양), 서식지, 생태적 특성 등에 따라 붙여지기 때문에 이를 통해 어원 해석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3) '고사리'와 '고비'는 모양이나 쓰임이 비슷하기 때문에 예전부터 혼용되어 사용되었던 낱말들입니다. 따라서 '고사리'의 어원은 '고비'와 함께 풀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어원 추정을 해봅니다.
1) '고비'의 어원 추정은 이렇습니다. 어린 '고비'는 옆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고부라진 모양'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형태에 근거하여 '곱(형용사 '곱다/굽다', 곡, 曲)+이(명사파생접미사)'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의미는 '구부러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고사리'의 어원 추정은 이렇게 해볼 수 있습니다. '고사리'의 '고'는 '고비'의 '고'와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따라서 '곱다, 굽다(곡, 曲)'의 의미가 됩니다. 여기서 '사리'는 앞서 서정범 교수가 '풀'로 해석한 것을 따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나 다른 해석도 가능할 것입니다.
다른 해석이란 '사리'를 달리 해석하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국수나 실 등을 둥글게 말아놓은 것'을 '사리'라고 부릅니다. '고사리'는 옆 자료에서 보는 것처럼, 어린순이 둥글게 말려 있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사리'의 '사리'를 이 말과 관련지어 그 어원적 의미를 이해할 수도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정리를 하자면 '고사리'는 다음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1) '곱사리'에서 유래된 말로 보는 것입니다. 즉 바로 위, 어린 순의 두 자료에서 확인한 것처럼, '구부러진(곱다, 곡, 曲) 둥근 뭉치 모양의 풀'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2) '굽다'의 의미가 반영된 풀이름 '고비'와 '사리(둥근 뭉치)'가 합성되어 이루어진 말로 볼 수 있습니다.
위의 글들을 종합해본 결과,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개인적으로도 2)의 해석보다는 1)의 해석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곱사리'가 '고사리'로 변했다고 보고, 그 어원적 의미를 '구부러진 둥근 뭉치 모양의 풀'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맛있는 고비 나물 맛이 아른거립니다. 저녁은 집에 가서 나물 반찬에 밥을 비벼서 먹어야겠습니다. 덕분에 고사리와 고비의 어원에 대해 알아본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읽어보신 분들은 아래 '책나눔' 글도 읽고 응모해서 행운도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그냥 가지 마시길 바랍니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