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동화(秋天的 童話)
최용현(수필가)
‘가을날의 동화’(1987년)는 홍콩의 대표적인 여성감독 장완정의 섬세하면서도 여성적인 감성이 잘 녹아있는 작품으로, ‘첨밀밀’(1996년)과 함께 홍콩멜로영화의 쌍벽을 이루는 걸작으로 꼽힌다. 2000년 가을에 KBS에서 방영된 한류 드라마 ‘가을동화’는 이 영화에서 제목을 차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콩의 최고스타 주윤발과 홍콩의 마릴린 먼로라고 불리던 종초홍이 알콩달콩 케미를 이어가는 스토리인데, 홍콩 금상장영화제 작품상과 각본상, 촬영상을 비롯하여 대만 금마장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89년에 개봉하여 젊은층, 특히 여성 관객들의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홍콩에서 사는 23세의 제니퍼(종초홍 扮)는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남자친구 빈센트(진백강 扮)와 함께 공부하려고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다. 제니퍼는 공항에 마중 나온 먼 친척 샘팬(주윤발 扮)의 도움으로 기찻길 옆 샘팬의 방 바로 위층에 방을 얻는다. 제니퍼는 일이 있어서 공항에 나오지 못한다던 빈센트가 딴 여자와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괴로워하며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
샘팬은 10년간 배를 타다가 33세가 된 지금은 간간이 고급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하는데, 돈이 생길 때마다 도박판에 쏟아 부으며 화교(華僑)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건달생활을 하고 있다. 넉살이 좋은 데다 따뜻한 감성을 지닌 샘팬은 제니퍼를 가까이에서 돌봐주면서 어느새 마음까지 뺏기게 되는데, 제니퍼는 샘팬의 보살핌에 힘입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점차 안정을 찾아간다.
둘이 함께 바닷가를 걸으면서 샘팬이 ‘대서양을 마주하고 있는 저 바닷가에 식당을 차리고 싶어.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맥주도 마시고….’ 하고 말하자, 제니퍼가 ‘식당 이름을 샘팬이라고 지으면 좋을 것 같아요.’ 하고 말한다. 제니퍼는 샘팬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면서, 자신도 샘팬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닌 우정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샘팬은 친구들과 제니퍼, 그리고 그녀의 친구들을 집 앞 테라스로 초대하여 자신의 생일 파티를 연다. 직접 요리를 한 음식으로 손님 접대를 하며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빈센트가 찾아와 ‘페기랑 헤어졌어.’ 하면서 제니퍼에게 다시 시작하자고 한다. 두 사람이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본 샘팬은 밖으로 나가버린다.
얼마 후, 제니퍼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집에 입주보모(babysitter)로 들어가게 된다. 제니퍼가 ‘저 롱아일랜드로 이사 가요.’ 하고 말하자, 샘팬은 ‘거기는 가을이 특히 예쁘지.’ 하고 답한다. 이삿날, 빈센트가 차를 가지고 와서 제니퍼의 이삿짐을 도와준다. 샘팬은 자신의 고물차를 팔아서 제니퍼가 갖고 싶어 하던 시곗줄을 사서 담은 선물상자를 건넨다. 제니퍼도 선물상자를 내미는데 가고 나서 열어보니 제니퍼가 차고 다니던 손목시계가 들어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제니퍼는 보살피던 어린아이와 함께 바닷가를 걷다가 ‘SAMPAN(샘팬)’이란 이름의 레스토랑을 발견한다. 가까이 가보니 정장을 입은 샘팬이 손님을 배웅하고 있었다. 서로를 발견한 두 사람이 마주보며 아련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영화가 끝난다.
뉴욕을 배경으로 홍콩 출신 두 남녀의 애틋한 사랑을 잔잔하게 그려낸 수채화 같은 영화이다. 서로의 마음만 교감한다면 스킨십이 없어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고, 함께하는 것보다 멀리서 바라보며 추억을 되새기는 것이 더 고귀한 사랑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시곗줄과 시계 선물은 오 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을 떠올리게 한다. 두 주인공이 찰떡같은 연기호흡을 보여준다.
주윤발은 당시 한 달에 한 편 꼴로 영화를 찍으면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선글라스를 끼고 트렌치코트의 깃을 세운 채 성냥개비를 물고 서있는 느와르 장면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옛 남자친구를 잊지 못하는 종초홍의 주변을 맴도는 순정파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멜로드라마에서의 연기력도 입증하는 저력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가을날의 동화’는 주윤발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종초홍은 1979년 미스홍콩대회에 출전하여 하이힐 때문에 넘어지고도 4위에 입상하면서 영화계에 데뷔하였고, 1980년대 임청하 장만옥, 매염방과 함께 중화권 4대 미녀로 꼽혔다. 홍금보 감독의 ‘오복성’(1983년) 출연에 이어 ‘귀신랑’(1987년), ‘타이거맨’(1989년), ‘종횡사해’(1991년) 등에서 주윤발과 콤비를 이뤘다. 그 무렵 한 사업가로부터 500만 달러를 주겠다는 유혹을 받았으나 거절한 일화는 유명하다. 1991년 홍콩의 광고업자 주가정과 결혼하면서 은퇴했는데, 2007년 남편이 암으로 사망한 후 혼자 살고 있다.
또 한 사람, 가수 겸 배우인 진백강은 무명시절부터 장국영과 절친한 사이였다. 그런데 먼저 성공하여 스타가 된 진백강은 한 방송에서 진행자가 ‘피부가 너무 좋다.’고 칭찬을 하자, ‘타고난 피부’라고 대답을 했는데, 장국영이 ‘피부가 좋은 게 아니라 화장을 진하게 해서 그렇게 보인다.’고 노골적인 디스를 했다. 이에 진백강이 불같이 화를 내며 절교를 선언했고, 이런저런 오해가 더해지면서 철천지원수가 되고 말았다. 영화 ‘성탄쾌락’(1984년)에서는 진백강과 장국영이 함께 촬영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공연(共演)하기도 했다.
1992년 5월, 우울증을 앓던 진백강이 약물과다복용으로 의식을 잃은 채 자택에서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 후 17개월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었는데, 그때 장국영이 찾아가서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MBC 서프라이즈, 2014. 2.16). 진백강은 1993년 10월에 35세로 사망했고, 장국영은 10년 뒤인 2003년 4월에 자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