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욥기 7,1-4.6-
욥이 말하였다.
1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그 나날은 날품팔이의 나날과 같지 않은가? 2 그늘을 애타게 바라는 종, 삯을 고대하는 품팔이꾼과 같지 않은가? 3 그렇게 나도 허망한 달들을 물려받고, 고통의 밤들을 나누어 받았네.
4 누우면 ‘언제나 일어나려나?’ 생각하지만, 저녁은 깊어 가고 새벽까지 뒤척거리기만 한다네.
6 나의 나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희망도 없이 사라져 가는구려. 7 기억해 주십시오, 제 목숨이 한낱 입김일 뿐임을. 제 눈은 더 이상 행복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제2독서 1코린토 9,16-19.22-23
형제 여러분, 16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17 내가 내 자유의사로 이 일을 한다면 나는 삯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는 수 없이 한다면 나에게 직무가 맡겨진 것입니다. 18 그렇다면 내가 받는 삯은 무엇입니까? 내가 복음을 선포하면서 그것에 따른 나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복음을 거저 전하는 것입니다.
19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22 약한 이들을 얻으려고 약한 이들에게는 약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23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
복음 마르코 1,29-39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나오시어, 29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요즘에 전화 연락을 많이 받습니다. 곧 사순시기가 시작되니, 사순특강을 해달라는 청탁 전화입니다. 저는 시간만 있다면 어떤 강의든 나가려고 합니다. 부족한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어떻게든 강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강의 부탁을 받다보니 꾀가 납니다. 전에 했던 강의록을 그냥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사실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다르다면 똑같은 강의를 해도 모르겠지요(실제로 그렇게 강의를 한 적이 몇 차례 되었지만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휴일인 어제, 전에 썼던 강의록을 컴퓨터 안에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잠시 뒤에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글쎄 이제까지 썼던 강의록이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몇 년 동안 했었던 성서 강의, 교리, 특강 자료까지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마도 며칠 전 컴퓨터를 포맷하면서 실수를 했나 봅니다.
갑자기 화가 납니다. 왜 컴퓨터는 갑자기 이상해져서 포맷을 해야만 했을까? 왜 그 중요한 자료를 소홀히 했을까? 전에 백업해 놓은 자료는 다 어디 갔는가? 저의 부주의에서 온 결과인데도 외적인 것에 이유를 대면서 화를 내고 있는 저였습니다.
문득 이렇게 화낸다고 무슨 소용이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화낸다고 지워진 자료가 다시 ‘뿅’ 하고 나타나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지요. 그러면서 ‘이것도 잘 되었다.’라는 마음을 갖기로 했습니다. 하긴 예전 자료가 있으면, 그 자료에서 벗어나지 못했겠지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자료에서 벗어나서 더 앞으로 나아가라고 자료를 모두 없앤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준비하느라 조금 바쁘기는 하겠지만요.
예전에 수영을 배울 때가 생각납니다. ‘음~파’를 반복하면서 발차기만 할 때, 25m만 쉬지 않고 가도 소원이 없겠다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제 소원인 25m를 쉬지 않고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수영배우는 것을 그만두었을까요? 아닙니다. 저는 계속 배우고 연습하면서 어느 순간 몇 바퀴를 돌아도 상관없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지요.
우리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한계를 지으면서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열병으로 누어있는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십니다. 또한 많은 병든 이들을 고쳐주시고, 마귀 들린 이들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주시지요.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이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그들의 고통을 없애주시기 위해서일까요? 아닙니다. 그 이유를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고 있을 때 다른 고을로 몰래 떠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지요.
그들의 한계를 만들고 있는 것을 치워주심으로 인해, 이제는 그들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려는 것이지요. 즉, 이제 당신이 하실 일이 없기에, 당신을 필요로 하는 다른 고을로 떠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한계는 분명 주님께서 말끔하게 치워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더욱 더 주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스스로 한계를 만들어내는 우리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꼭 지금의 모습만큼만 대해 주면 늘 지금의 모습으로 남지만, 장차 되어질 모습에 맞춰 대해 주면 언젠가 그 모습으로 성장하는 법이다(괴테).
며칠 전 다녀온 공항 입국장. B게이트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C게이트로 나와 서로 1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네요. 공항의 안내, 믿을 것이 못되네요.
구명조끼 양보한 남편
지난 1월 13일에 지중해에서 일어난 사고를 기억하십니까? 4200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호화 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가 좌초했었지요. 그때는 저녁식사 때로 프랑스에 사는 프란시스 세르벨(71) 부부는 아내인 니콜(61)의 회갑을 맞아 지중해 크루즈 여행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질리오 섬 150m 앞에 이르렀을 때 배가 굉음을 울리며 오른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우왕좌왕하던 승객과 승무원들은 배가 좌초했다는 사실을 알고 구명정과 구명조끼가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세르벨 부부는 젊은이들처럼 행동이 재빠르지 못했기 때문에 구명조끼를 하나밖에 구하지 못했습니다. 물이 쏟아져 배 안으로 들어오자 남편은 아내에게 함께 바다에 뛰어들자고 했지만 아내는 수영을 하지 못하므로 망설이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한사코 만류하는 아내에게 하나뿐인 구명조끼를 아내에게 입힌 뒤 입을 맞추고는 먼저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자, 뛰어내려요. 걱정하지 말고"라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고 아내 니콜은 난간 밖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물이 얼음처럼 차가웠습니다. 해역의 수온은 8도였다. 니콜이 큰소리로 남편을 찾자 어둠 너머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걱정하지 마요. 난 괜찮을 거야." 그 말을 끝으로 남편은 사라졌습니다. 니콜은 파도에 떠밀려 근처의 바위로 올라갔고 마을 주민들에게 구조됐습니다. 그러나 괜찮을 거라던 남편은 실종자 수색과정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노부부가 보여준 순애보입니다. 죽음 앞에 태연할 사람은 없습니다. 아내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 놓은 남편 세르벨의 사랑은 위대하기까지 합니다.
이 부부의 사랑을 보면서, 사랑은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노력으로 배우고 익혀야 할 귀중한 성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
첫댓글 아멘! 좋은 말씀 감사 드립니다.
조그만 빈터만 보이면 앉아 고이려는 속성에서 벗어 나, 늘 깨어서 고여있지않고 흘러야 겠습니다. 그것이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기도 하지 싶습니다. 노부부의 사랑 정말 아름답네요. 남편의 사랑이 가슴으로 스며듭니다. 나이에 상관없는 부부의 사랑 부럽기까지 합니다. / 근데 그 아까운 자료 다 날려서 넘 아쉽습니다. 감사히 들었습니다.
신부님 강론의 말씀 감사합니다 늘 건강 하세요
감사합니다~~~^0^
사랑은 노력으로 배우고 익혀야할 귀중한 성품이라는 말씀에 희망을 가져봅니다. 감사합니다~~
주님을사랑한다는것은`주님위해땀흘리는`일임을실천하는한주간되길을원하며~노부부의사랑을보면서`사랑은단순의감정이
아니라노력해야함을`다시한번다짐합니다~신부님행복한주말되세요
감사합니다.^^***
저희집 부억에서 늘 보이는 아파트가 쉐르빌입니다
세르벨 얼추 비슷하죠?
저도 숭고한 세르벨 어른의 영혼을 늘 기억할게요. 찬미예수님
제 문제점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하는 말중에 '난 의지력이 약해'가 있습니다. 이 생각으로 늘 핑계를 대고 있었던것이지요. 이제는 ' 나에겐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의지력이 있다. 난 할 수 있다.'라고 말해야겠습니다. 살려는 의지, 사랑하려는 의지. 선함을 행하는 의지. 모든것에 의지력이 바탕이됩니다. 어제 말씀과 오늘 말씀을 연이어 읽으면서 제안에 있는'의지'를 다시 일으켜봅니다. 작은것부터 실천. 욕심을 버리고 이미 해낸것에는 아낌없는 창찬을 주기! 신부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신부님 , 말씀 감사합니다...^^ 싑게 판단해 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오늘도 깨우치며 돌아갑니다....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들어와 신부님 강론을 들으니 환기가 됩니다. 동변상련? 4년간의 논문, 아티클, 개인분석 자료 그 모든 자료 고스란히 정리되어 있는 usb2개를 분실해서 황망한 시기를 보내고 넋을 놓았던 시간들..usb를 잃어버린 메세지를 주님께 열심히 물어던 찾던 때가 떠오릅니다. 지금은 이렇게 시간이 흘렀네요. 신부님 건강하시죠?
"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한계는 분명 주님께서 말끔하게"...
네! 주님의 뜻에 맞게 살 수 있도록...
주님 스스로에 대한 한계를 알게 하시고 그 한계에 부딪쳐주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제가 되게 하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아멘.
구명조끼 양보한 남편 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타이타닉호가 생각납니다.. 신부님께서 컴뷰터에 저장된 자료를 잃고서도 긍정된 마음으로 변화하는 모습에서 신부님의 진면목을 보는것 같습니다.. 신부님 화이팅~!!
그렇게 귀중한 성품의 소지자가 아닌 남성네 들이시여 맘놓고 실컷 울어 보세요 ,예수님을 한가족의 구성원이라 생각하시며 ,,,,. 어떻게 울어야 예수님이 나의 진정한 가족의 구성원이 되엇나를 기억하시며 실컷 우세요 .